성
경
: 에스겔 11장
제 목 : 거짓선지자 심판과 성민의 보호와 회복
1. 악한 꾀를 베푸는 방백에 대한 형벌 : 1~13
『 1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東門) 곧 동향(東向)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 문에 이십오 인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방백이라 2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베푸는 자니라 3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 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
"25명"이란 숫자는 24반열 제사장의 대표자 수효에 대제사장을 1명을 가산한 수인 듯하다. 이들이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유대인 지도층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 중에도 특별히 '야아사냐'와 '블라댜'가 두목으로 뽑히운 듯하다. 이들이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베푸는" 자들이라는 것은 이사야 10:1절같이 되었음을 뜻한다(2절). 유다 나라가 패망할 날은 멀고도 멀었으니 안심하고 예루살렘에 살라는 거짓말! 즉 거짓 평화를 증거하던 자들이다(3절).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 우상숭배라는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는 말이다. 가마는 고기가 불에 타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익을 수 있도록 보호해 준다. 그와 같이 거룩한 예루살렘 안에 사는 거민은 절대로 심판받지 않으리라는 거짓말이다. 이 사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루살렘 자체를 믿는 것이니 심히 타락한 신앙 사상이다. 오늘도 기독교회가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계 10:10~11)에 순종치 않고 교파운동, 협상운동만 하고 있으니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을 받아먹지 못해 불법이 차게 된다. 교회에 불법이 차면 북방 칼이 내려온다.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니 거짓된 선지자를 쳐서 예언해야 한다(겔 24:1~ 에스겔은 녹슨 가마 비유로 이스라엘을 쳐서 예언했다). 예수님을 (입으로는)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서는 '꼭 알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으니 계 1:1~3절에 정면 도전하므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5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중심'을 보시고 그들의 인격을 판정하신다.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은 바로 그들의 말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은 말하기 전이라도 사람의 속을 다 아신다.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셨다.
『 6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
본 절은 거짓 선지자가 쑥물을 먹이므로 나라와 교회를 죽였다는 뜻이다(렘 23:15~40).
『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9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붙여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
이 말씀은 악한 유대인 지도자들의 손에 죽은 사람들이 도리어 가마 안의 고기처럼 보호를 받은 셈이고, 그들 자신(악한 지도자)은 더욱 불행한 방법으로 망하되 그 성읍에서 쫒겨나 칼에 망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 환난이 없는 줄로 알고 착각하며 살던 그들은 결국 북방에 끌려가 죽게 되었다(BC 587~).
이 예언은 종말에 다시 살아 올 말씀으로 다시 예언해야 한다. 지금은 계 17:3절 이하 예언같이 많은 음녀(바벨교회)가 북방 짐승을 타고 협상의 쑥물을 먹이므로 주님의 피로 산 교회의 양떼를 죽이는 시대이다. 이 음녀들은 구약의 유대교권처럼 '전쟁이 없다' 하고 '평강'을 말하며, 신앙과 사상을 조금씩만 양보하면 지구촌이 다함께 평화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거짓이기에 그들이 올라 타 사상적 간음을 저지르던 짐승에게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계 17:16).
『 10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1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
여기서는 또다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곧 "칼에 맞아 엎드러질 것"을 재설(再說)한다. 하나님의 뜻은 다수를 차지하는 교권의 뜻과는 정 반대로 선포된다. 오늘날도 동일할 것이다. 하나님의 참 종들은 거대한 교권의 틀에서 안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겔 9:4절같이 된 자들은 작고 멸시받는 제단이나 예언의 말씀으로 갈급한 심령을 적셔주는 '순의 제단'에 연합되고야 말 것이다.
높아지기를 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어코 낮추신다. 이 시대는 계 9:1~12절같이 다섯째 천사 나팔이 불려진 시대이나 세계교회는 거짓 선지의 말을 분별할 수가 없으니 쑥물을 단물로 착각하는 시대가 되었다(사 5:20). 북방 공산주의에서는 수정주의 노선을 채택하여 수많은 양떼들에게 정치쑥물을 먹이고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기독교까지도 이 거짓된 평화공존(1958.3.18 흐루시초프 선언)을 참인 줄 알고 따라가고 있으니 아무리 평화를 사랑해도 계시록을 모른는 것이 성도에게는 불법이 되어 바라던 평화는 사라지고 북방 칼에 잡혀가게 된다(마 7:21~23, 마 24:4~12).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감추어져 있는 법이니 마음 든든한 다수 권력층은 결코 깨달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가련하고 정직한 소수의 집단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깨닫고 증거하게 된다.
① 다섯째 나팔은 '첫째 화'인데 성령 받은 종들이 당하는 심판이요(5개월간 일어나는 황충떼 환난에서 하나님의 인이 없으면 피할 길이 없다).
② 여섯째 나팔은 '둘째 화'인데 촛대교회로 나오지 않는 교인은 모두가 '후 3년 반' 대환난에 떨어진다. 반면에 촛대교회는 단체적으로 예비처에 피신하여 '한때 두때 반때'를 양육 받는다(계 9:14~21, 13:1~18).
③ 일곱째 나팔은 '셋째 화'인데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 땅에서 악을 제하고 선만 남겨 새 시대를 이루는 결전이다(계 11:15, 15~16장).
계시록 시대에 살면서 계시록을 모른다는 것은 스스로 "소경, 귀머거리" 임을 자랑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사 42:18~25). 오늘날 우리 제단을 향해 던져지는 한국 정통파라 하는 교인들의 말을 간추려 보면, 교회와 종들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할 계시록은 구원에 있어서 꼭 필요한 책은 아니니 너무 설치지 말라 한다. 또한 자꾸 계시록을 파헤치지 말고 은혜로 주신 믿음의 법(롬 3:27) 안에 거하면서 영혼구원을 찬양하고 전파하는 정도의 범위에서 바르고 건전한 신앙을 유지하라 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애정어린 충고를 들어야 할까? 환난에서 우리를 살리려는 사랑으로 계시록을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까?
한국 교회는 심판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나쁜 짓을 해야만 심판 받는 줄로 알고 있다. 전환기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가지 않는 그것이 대죄가 된다는 진리를 전혀 모르고 있다. 부분을 전체로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착각이다. 기독교인이 17억이나 되어도 주님은 말씀하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율법 때는 양의 피로 제사하는 것이 참 믿음이요, 은혜 때는 예수의 피로 제사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은혜 때 양을 잡으면 예수의 원수가 됨을 유대인들은 몰랐고, 지금까지 모르므로 세상에서는 1등인 그들이 영적으로는 꼴찌가 되어 있다. 은혜에서 환난으로 넘어온 이 시대에 '위로의 천국복음'과 '영혼구원'만을 주장하며 계시록을 금기시한다는 것은 종말의 유대인(바리새인)이 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라.
지금은 마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계시록을 무시하는 것은 때를 따라 주시는 예언의 법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가장 믿음 좋은 자들이 예수님이 제일 미워하는 불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청황색말이 판치는 이 시대이다.
"이 성읍(교회)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무시하고 안일한 신앙을 갖고도 다 된 줄로 알던 자들을 기어코 북방 칼에 붙여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신다(겔 38~39장).
『 12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
그들은 벌을 받고야 선지자들의 이전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을 알고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는 것은 유대인이 이방 우상을 수입하여 참 종교가 바벨화 된 상태를 말씀하심이다(출 21:23~25 심판의 원리 ; 선민이 이방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도 선민을 할례받지 않은 자처럼 대하심).
『 13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
"블라댜의 죽음" - 25인중에 한 사람이 죽은 것은 그들의 받을 벌이 이미 착수되었음을 알려준다. 동족을 사랑하는 에스겔은 심판의 신속성을 깨닫고 모세와 같이 주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멸절치 말아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다. 참 선지의 마음을 패역한 백성들이 알런지...?
3. 포로될 성민을 보호할 약속 : 14~16
『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5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
1~2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되어 잡혀간 백성들을 주님은 '좋은 무화과'라 칭하셨다(렘 24:1~10). 그래서 그들에게는 70년 만기가 되면 회복이 온다. 그러나 현재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대인은 악한 무화과에 속한다. 그들은 연대를 믿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의 정하신 70년간 속죄기간을 자기네와 상관없이 여기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2차에 걸쳐 잡혀간 동족이 바벨론에 살고 있음을 보고 있면서도 예루살렘 성소에서 우상을 섬기던 파렴치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의 성소가 되리라" - 다니엘은 70년간 하나님 성소의 일을 잘 수행하였다(단 1:8~21, 9:1~3). 하나님은 영이시니 일정한 장소에 메이지 아니하시고 어디서든지 역사하신다(요 4:24. 렘 23:24).
3. 순의 종들에게 회복 약속 : 17~21
『 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18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0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1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본 절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장차 유다 본토(모리아산)로 귀환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실 것을 에언하고 있다. 구약 때 정한 70년 기한과 회복은 종말의 그림자이다(렘 25:11, 29:10. 단 9:1~3. 대하 36:21).
그렇다면 종말의 70년은 어느 나라에서 언제 이루어질까? 정답은 물론 '유다'이다. 다만 예수 피값으로 이루어진 영적 이스라엘 12지파 안에 있는 새로운 유다일 것이다. 슥 1:12절의 예언인즉 "유다를 노하신지 70년이 되었나이다" 하는 외침인데, 참 종의 입에서 이 기도가 나올 때가 바로 영적 유다에 70년이 될 때라 말할 수 있다. 육적 유다의 다니엘이 70년이 차 갈 때 홀로 연대를 깨달았듯이(단 9:2), 종말의 영적 유다의 사명자 역시 70년이 차 갈 때 홀로 슥 1:12절을 깨달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종말에는 계시록과 더불어 구약의 어떤 예언서건 읽어 깨달을 수 있는 '유다' 장막이 등장해야 하며 그 안에 다니엘과 같은 사명자가 연대를 깨닫고 나옴으로 동방 '순의 역사'는 출발하는 것이다. 스가랴 1:12절은 구약 성민이 회복된지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받은 묵시이므로 결코 육적 유다에게 임할 수 없는 예언임을 알아야 한다. 구약 때의 회복은 유다 총독 스룹바벨이 '순'과 같은 포로민 2세들을 이끌고 돌아와 무너진 솔로몬 성전을 재건한 역사였음을 볼 때, 사 46:10절의 원리에 의해서 종말의 유다 장막 안에서도 슥 1:12절을 깨닫고 나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순'들을 모아 무너져가는 기독교계에 각성을 주며 촛대교회를 일으킬 '영적 스룹바벨'이 등장하게 됨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것은 다시 예언을 가능케 하는 주님의 모략적 역사 운행방법이니, 인간의 조작이 끼어들 수 없는 영역에서 되어지는 일일 것이다.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깨닫고 가톨릭 교계로부터 혁명을 일으켰다. 이제 종말에 영적 유다로부터 나가는 46:10절의 원리는 히 10:1, 롬 15:4, 고전 10;11절과 더불어 종말의 기독교계에 영적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영적 유다의 '성전 재건' 사명이 학개서에 예언된 다리오 왕 2년 9.24에 지대놓은 제단으로부터 출발함을 깨닫고 말씀을 따라간 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간증하건대, 구약의 70년은 B.C. 606~536년까지요(종말에 대한 청사진), 종말의 70년은 A.D. 1905~19750년까지이다(현상된 실물모양).
'순의 역사'라는 것은 슥 3:8~9절처럼 새길 말씀을 다 새겨서 하루에 죄악을 제하는 역사인데, 스가랴 4장은 이 역사가 어둠을 밝히는 순금등대 촛대역사로 일어나 세계를 통일시키는 역사가될 것을 일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는 (인간의 힘과 능은 낄 자리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일이라 못박으셨다(슥 4:6). 몸이 없는 하나님께서 강권역사를 행하실 때는 당신이 들어쓰는 몸이 있는 종이 필요한 법이다(암 3:7). 종말에 절대적 기준으로 쓰임받는 종의 이름이 '스룹바벨'인 것은 성경의 예언이지 인간의 주장이 아니다.. 그의 손에는 주님이 맡겨주신 머릿돌, 다림줄, 그리고 하나님의 인이 있다(슥 4:7,10. 학 2:21~23).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죄의 유혹을 느끼며 때때로 범죄하는 것은 우리의 뼛골속에 박혀 있는 원죄 때문인데, 이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도 그 영혼은 낙원에 갔다가 마지막 때 부활하지만 육체는 풀과 같이 쓰러지는 사망선고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있다(사 40:6~8). 즉 어린 양으로 옷을 입고 그의 피로 씻기움 받아도 창 3:19절의 형벌은 지금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도 살고 육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므로 이 원죄의 패역을 고쳐야 되겠기에 여호와의 날 초막절을 정해놓으시고, 그날에 성령의 인 맞은 종들 중에서 다시 하나님의 인을 쳐 첫째 아담에게 유전받은 그 육신을 개조하여 죽음없는 새 시대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 진리를 말할 때 한국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고 정죄받고 있으며 더러운 자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죽어도 사는 시대에 이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요 11:25~26)이 응할 때에 우리에게 드리워진 수치는 말끔히 씻겨나갈 것이다. 아멘!
4. 하나님 영광이 떠나고 에스겔이 귀환함 : 22~25
『 22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24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25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
예루살렘에 대한 이상을 보던 에스겔은 이상 중에서 다시 갈대아로 되돌아간다. 구약 시대는 만민에게 역사하는 성령님의 일반적인 역사가 없었던 때이므로 인간 스스로는 회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만인 제사장의 시대요, 그들에게 이 말씀을 전해 줄 때에 택자는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때를 따라 일하시는 것은 성경 기록의 목적은 마지막에 이루어질 완전한 안식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이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등장할 영적 이스라엘 12지파의 인 맞은 자들에게(계 7:2~8) 교훈하기 위하여 "고하고, 보이고, 일러 주는" 의미가 있다(사 46:10上). 그러나 사 46:10절의 후반부에는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으니 '고하고, 보이고, 일러 주었던' 구약을 다시 외칠 때 '주님의 모든 기뻐하시는 일'이 성취되는 구조로 신약이 결론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론을 맺는 종말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실로 육체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년왕국으로 이전되는 엄청난 사건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육체구원'을 말하면 이단이 되었지만 이제는 '육체구원'을 말하지 못하는 자가 이단이 될 때가 온 것이다.
신약과 구약이 왜 한 권의 책으로 합본되어 나오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구약 없이는 계시록을 읽을 수 없는 구조로 역사가 마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세에게 고하신 율법과, 그가 보내신 선지자들과, 당신의 초림과, 당신의 재림 역사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이루기로 작정하신 모든 기뻐하시는 일들이 계 10:7절과 같이 이루어지고, 그때 비로소 세계적 통일이 성취된다는 것을 성도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계 11:5).
당신의 구약은 많은 손때가 타 있는가? 아니면 매우 깨끗한가?
이 질문은 당신이 기름없는 빈등을 들고 있는 미련한 처녀인지, 종말을 위한 기름을 예비한 지혜로운 처녀인지를 스스로 가늠케 해 줄 질문일 것이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끝까지 예수님만이 주인공이시다(요 5:39). 그분만이 변하지 않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선하게 다스릴 수 있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다. 그분이 때에 따라 주신 말씀의 집합체인 신구약 합본은 알파와 오메가의 진리가 다림줄로써 꿰어져 있는 진정한 보배이니 우리는 구약이라 하여 경홀히 여기지 말며, 부드러운 말씀만 편식하지도 말고, 이 모든 말씀을 꿀같이 먹고 이 시대에 증거할 수 있는 계 10:7~11절의 종들이 되어 보자! 할렐루야 아멘!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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