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예레미야 42장

제 목 :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


 

  1.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함 : 1~6

 『 1 이에 모든 군대의 장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

바벨론 포로이송이 있은 후 남은 백성이 요하난의 지도를 따라 애굽으로 피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동기는 41:16~18절에 나타나 있다. 지금 이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자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 할지에 관한 하나님의 합당한 계시를 얻어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이들이 가진 행위의 이중성이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요망하는 행위 자체로는 아직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분간해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저들의 이면을 파헤쳐 보자. 그들은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이미 유다 땅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정을 그 마음 속에 내려둔 상태였다. 이는 원죄에 물든 인간의 간사함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도망간 사건이 결국 바벨론 왕의 노를 격동케 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41:18). 시온산(예루살렘)에 남아 있으면 또 다시 북방 군대의 칼을 맞을 것이니 강대하여 전쟁위협을 당할 일이 없는 애굽 땅으로 피신하면 편안히 살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굳혀 놓은 상태에서 최후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릴 수록 하나님만 앙망해야 하는데, 요하난은 잠시 생사화복
(生死禍福)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애 3:38)을 망각하고 멸망의 길 '애굽행'을 택했던 것이다.

다시 예언한다! 지금도 교회지도자들이 전쟁의 공포로 인해
평화공존 거짓정책에 미혹을 받아 협상의 쑥물을 먹고 있다. 구약의 요하난의 실수가 오늘날 거대하게 세계적으로, 교회적으로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종말에 관하여 빠짐없이 예언하셨다(사 34:16). 그러므로 사명자가 자세히 읽고 깨달아 증거를 마치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계 11:1~12).

"우리는 많은 자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다른 곳으로 피난함으로써 소수의 백성이나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졌다. 자기들의 소욕대로 하기를 굳게 정해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척 하는 것은 시작부터가 모순된 것이요 가증한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는 예레미야와 직통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왜 "우리 하나님"이라는 말을 못했던가? 그것은, 그들도 여호와가 특별히 대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또한 당신의 계시를 예레미야에게 진실히 보이시는 줄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두려워함 없이 자기들의 소욕을 뒤로 감추고 예레미야를 이용하며 하나님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북방군대가 와서 유대인들을 많이 잡아갔으니만큼 이미 그들은 예레미야를 권위있는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벌써 다른 데로 향해 있는 속마음을 감추고 마치 어떤 응답에라도 순종할 각오가 되었 있다는 양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 눈이 가리워지면 이런 행위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법이다.

예레미야의 권위는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일하는 데로부터 온다. 강한 민족주의와 바벨론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탈 그 때 북방이 들어와도 (도망하지 않고) 항복하면 산다고 외친 것을 보면 그가 아부나 타협을 거부하고 인본주의도 배격하며 오직 여호와의 뜻만을 전하는 진실한 참 종이란 것을 알수 있다.


『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

예레미야는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백성들의 청을 허락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가 계약적인 관계임을 밝혀주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서는 살 수가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서만 보호와 축복이 있을 것을 암시(暗示)한 것이다.


『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

그때에 백성들은 이 구절들에 있는 말씀대로 순종을 약속하되 속과는 달리 너무도 지나친 확고한 말로써 장담했던 것이다.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죄인된 자기들의 무능(無能)을 인정치 않는 과분한 장담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자기들의 실행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진실성을 대등(對等)시키는 말로서 상대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과 진실함을 과신하며 뱉은 말이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할 수 있는가? 죄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명목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시다(창 22:16. 민 14:21~. 신 32:40~. 사 45:23, 49:18. 렘 22:5, 24~. 겔 5:11~, 14:16~. 습 2:9. 요 8:14). 언제 넘어질 지 모르는 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만'일 뿐이다. 우리도 혹 이런 맹세를 할까 조심하여야 한다.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역시 너무 지나친 확언이며 감언이설이었다. 이는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는 행동으로서, 자신들은 이 말대로 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말이 마귀가 주는 거짓말임은 얼마 안 가서 금방 드러나고 만다.

위의 3가지 언사는 외식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즐겨쓰는 방식의 어투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수제자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외식자가 아닌, 죄인된 자로서의 마땅한 태도가 요 21:15~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는 혹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지라도 "무익한 종이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함이 옳다. 본 장을 통하여 교만이 무엇이며 겸손이 무엇인 것을 확실히 배우도록 하자.

 

  2.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응답받음 : 7~12

『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

"10일" 후에야 응답이 왔다. 하나님의 역사로서는 금방이라도 응답하실 수 있는 문제인데 왜 10일나 끄셨을까? 10일에는 큰 뜻이 있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단 1: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10일은 시험기간임을 알 수 있다.

계 2:8~10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서머나 교회에게도 예언하시기를 앞으로 10일간 환난의 시험이 있다고 하셨다. 앞으로 북방환난이 일어나면 유다 땅에 10일 동안 환난이 있다는 것이다. 초막절의 역사는 환난이 들어온 후 10일 만에 나타난다는 뜻이다(욜 2:1~32).

③ 행 2:1~ 오순절 역사에서도 10일 만에 성령강림이 있었다 (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고로 10일이란 기간은 기도하는 기간이요 환란의 기간이요 시험의 기간임을 알 수 있다.


『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과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가라사대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

예레미야는 그의 받은 바 계시를 민중에게 발표하기 위하여 그들을 빠짐없이 다 모이도록 했다. 이유인즉 이 중대한 일에 있어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순종하여야 되겠기 때문이다. 계시받은 바에 의하면 순종하면 살고 순종치 않으면 죽을 것이 확실하므로 다 모여 들으라 한 것이다.

10절의 계시는 애굽으로 가려던 남은 백성이 그곳으로 갈 생각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만 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요하난 단체)은 떠나야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더러 머물러야 산다고 하신다. 두 마음을 품었었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그들이 머물기만 하면 그들을 보호해주시겠다는 의미에서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리라"는 약속까지 하셨다. 감사요 은혜가 아닌가?

사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셨고 본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릴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긍휼 자비는 한이 없기만 하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변치 않으시니 70년만 되면 귀국이 있다는 것이다(렘 25:11~12, 29:10. 단 9:2).


『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 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벨론 왕에 대하여는 "두려워 말라"고 안위하신다.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은 이스마엘 사건 때문에 겁내고 있는 그들로부터 공포심을 제해 주시기 위함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지리라" 하셨고 또한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3. 애굽으로 가면 재앙과 화가 있을 것을 예언함 : 13~18

『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도에 순종하는 경우에 구원이 있으리라는 약속과 동시에 애굽으로 가려는 당신의 백성을 만류시켜 가나안 땅에 머물도록 재차 권고하셨다. 이는 순종하는 경우에는 구원이 있으리라는 원칙을 보여주면서도, 만일 참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불순종하면 재앙이 있을 것을 시사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때 남은 백성들은 "오직 살 길은 애굽으로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사야 선지도 "애굽은 신이 아니요 사람이니 그곳에 들어가면 저주뿐이라"고 이사야 31:1~3절에 예언한 바 있으나 선민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강대국을 의지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재앙밖에는 달리 준비된 것이 없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위와 같은 일을 너무도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적으로 볼 때
평화공존은 영적 애굽으로 치우치는 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16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 』

"유다의 남은 자여" 백성에게 행해지는 마지막 예언을 잘 듣고 재앙을 피하라는 뜻이 담긴 간곡한 어투이다.
"고집하면"
말씀을 이탈하여 자기 고집 중에 따먹은 선악과의 뿌리가 아담 후손들에게 유전되므로 우리는 패역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분명한 죽음의 길이 생명의 길로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소경,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선악과의 질을 붙들고 역사하는 흑암이 오면 생명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두움의 길이 살 길로 착각되기만 하는 법이다(사 5:20, 42:19~).


『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앙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와 분을 예루살렘 거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른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

부탁한 기도의 응답이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겠다 장담하던 그들이(42:6) 만일 10일간 기도하고 받은 이 진실된 응답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리며 크신 사랑을 배척하는 악독한 불신앙이 되고 말 상황이다. 고집하는 자는 이미 기록한 바 "악한 무화과"라 하셨다(24장). 살려주려 해도 받지 않겠다는 자들에게는 "노와 분을 부으리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살려고 간 그곳에서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선민인 백성은 하나님이 직접 택한 백성이요, 누구보다도 축복을 많이 부어준 백성이니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엔 부어 줄 재앙도 크다는 것이다.

 

  4. 하나님 말씀 불순종 : 19~22

『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 일로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날 너희에게 경계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이를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고하였어도 너희가 그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치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우거하려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

"유다의 남은 자들아"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20절). 자기들의 입으로 어떠한 말씀이든 지키겠다고 장담하였고(6절), 하나님께서도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명백히 경고하신 상황이기 때문이다(19절). 그러나 그들은 행위에서는 이미 불순종의 의지가 농후하게 배어나오므로(21절) 그들이 처음에 예레미야에게 와서 진실된 모양으로 기도부탁을 했던 때와는 완전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43장에 가면 그들은 결국 불순종의 의지를 행실로 옮기게 된다. 사단의 조종대로 행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사단에게 점령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아 마지막 때 다시 한 번 있을 이 일을 간접 체험토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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