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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 세대주의 종말론의 창시자 '다비'의 사상

운영자 2005.10.11 04:01 조회 수 : 3935 추천: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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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 종말론의 창시자 '다비'의 사상

 

1) 세대주의의 공로와 세대주의가 간과한 점(계시의 발전)

경의 계시는 역사성과 점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세월이 지나고 때가 차면서 예언의 특정 단어나 특정 문장의 절반구 혹은 온전한 절이 성취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언약을 받은 그 사람 생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언약을 받은 사람은 약속만 받고 죽고, 그 언약을 믿는 믿음의 후손 대에 가서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큰데 인간의 수한과 머리는 작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거나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 당신 입에서 나간 언약을 어떤 대상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십니다.

기존의 정통신학, 특히 조직신학에서는 성경계시의 역사성, 점진성에 중점을 두기 보다 성경 전체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는가에 주로 관심을 두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때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법을 세우시거나 종들을 들어 쓸 때 그부분을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습니다. 때에 따른 하나님의 말씀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대주의는 시대들의 이 차이점들과 다양성을 다루는 노력을 기울인 공로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이 있다고 보일 수 있는 부분들을 세대주의가 나타나 일괄성 있게 알아볼 수 있는 체계로 만든 것은 칭찬받아야 할 대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성경계시가 시대가 흘러가며 (계시를 이룰 그 대상이 죽거나 바뀌어도) 점진적으로 완성되며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이는 거시안적 안목이 없어서가 아니라, 문자주의에 얽메여 성경의 모든 경우에 문자주의 해석을 100% 적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점은 세대주의의 장점이 곧 폐단이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2) 세대주의의 출현과 다비가 깨달은 은혜

세대주의는 은혜에 의한 구원의 순수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나타났습니다. 세대주의자의 창시자인 John Nelson Darby(1800~1882)의 글을 보면 그가 은혜시대 종으로서는 훌륭한 사람임을 알려줍니다. 다음은 다비가 쓴 편지 중 일부입니다..

다비의 글 1) "고독한 동안에 점차 심각하게 생각이 엇갈렸다. 그러나 영혼의 많은 운동을 통해 성경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과(엡 2:6), 그 결과로 하나님 앞에서의 내 입장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장으로 대변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율법의 요구 앞에서 육칠년 동안 나를 피곤케 했던 이 곤고한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비는 죄인들의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있게 깨달은 자라고 봅니다. 다비는 참된 순결, 참된 의가 율법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는데(빌 3:9),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그 사상이 교회관과 집단적 순결관으로 발전하면서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운영자는 다비에 관한 책을 읽다가 "바로 이부분에서 다비가 사단에게 속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3) 다비의 교회관

다비의 글 2) "그 후 하나님이 보시는 바대로의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렇게 연합한(엡 2:6) 자들로만 구성되고, 외부적으로 보이는 기독교는 사실상 세상이고 '교회'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 내게 분명해 졌다."

다비는 유형적인 교회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다비의 그러한 판단은 정당한 면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세상교회들이 조직화되고 교리화되고 교회정치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영자가 다비의 생각 중 옳다고 여기는 부분은 다음 부분이었습니다.

다비의 글 3)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천상에 있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지상적 부패의 현상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옳습니다. 영의 생명은 하늘에 있고, 영혼구원의 확신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늘 시민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천년간은 그 생각이 맞아도 새 천년이 창조되기 직전의 교회들에게는 영의 생명 뿐 아니라 육신의 생명(사망) 문제도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천년왕국은 이 땅(지상)에서 육신의 몸을 갖고 에덴동산 때와 같은 축복을 누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21세기 종말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천상적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그 축복은 그대로 유지하되 계시록에 순종치 못하므로 육체가 새 시대의 축복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영혼구원(중생)을 받고도 대환란에 떨어져 비참한 육체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일이 종말에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은 이사야 1:2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상 백성이 된 교회집단에서도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패역과 부패가 발견되고 있음을 뜻하므로 다비의 "따라서 참된 교회는 지상적 부패의 현상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은 이사야서가 다시 예언되는 이 때에 와서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운영자는 다비가 자기가 받은 사도의 사명만을 감당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종말론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고, 게다가 자기 생각을 너무 확신하는 태도까지 있었으므로 그는 계시록을 무시하는 현재와 같은 거대한 세대주의 학파를 낳은 시조가 된 것입니다. 



4) 교회와 이스라엘에 대한 다비의 철저한 구분

다비의 글 4) "이사야 32장이 현재 땅 위의 영광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의식은 내게 현재 하늘의 영광을 주었다"

그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천상성을 강조한 것은 좋았으나 한가지 착각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는 천상적"이고 "이스라엘은 지상적"이라는 그의 생각입니다.

다비의 글 5) "예언은 그 자체가 땅에 해당되는 것이 적절하다. 그 대상은 하늘이 아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일어날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이 점을 보지 못한 까닭에 교회를 잘못 인도하였다. 우리는 천상적 축복들을 누리도록 부름을 받았으면서도 이런 지상적 축복들이 우리 속에 성취된 것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교회의 특권은 하늘에 있는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지상적인 축복들은 지상의 백성(유대인들)에게 임할 것이다. 교회는 별도의 것, 즉 지상적 백성(유대인들)이 거절하는 동안 천상적 경륜을 받는 단체이다. 지상적 백성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제쳐놓음을 받았고 민족들 사이에 쫓겨났다. 하나님께서 이런 민족들 중에서 한 백성을 선택하사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함께 천상적 영광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들에 의해 거절당하였으므로 전적으로 천상적 인물이 되셨다(운영자주: 이부분은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이것이 특별히 사도바울의 글에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교리이다. 이젠 더 이상 유대인들의 메시야 문제가 아니라 승귀하시고 영화하신 그리스도의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신나는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 탓으로 교회가 이처럼 약해진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지상축복을 예언한 구약의 모든 선지서를 100% 이루실 것인데, 다비는 교회는 천상적이므로 지상축복이 예언된 모든 구약 선지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성취되고 교회는 공중 휴거됨으로써 끝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 종말의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창 1:28절의 축복이 인간의 타락으로 무너졌고, 노아 때에 인류를 심판하시고 다시 한번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말씀을 주셨으나 인간은 우상만을 숭배했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언약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에서 모든 계약과 율법의 토대가 나타났고, 모세는 영감으로 이것을 기록하여 모세 5경을 썼습니다. 그 5경의 율법대로 이스라엘이 살지 못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책망, 교훈하셨고 그 교훈들이 모아진 것이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대소선지 16권입니다. 이 16권의 예언서는 새 시대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다 성취되어야 하는데, 메시야가 나타나셔서 영혼의 구원에 관계된 천상적 생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 놓고서 종말에 예언의 남은 부분들을 144,000명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이라 "유다"라고 기록된 구약 예언을 세계적인 그리스도교파에게 다시 읽어 외쳐 주어야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다비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크게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큰 실수도 사실 성경을 사모하는 태도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문자주의적 해석입니다. 문자주의 해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자세이나 사단에게 속으면 탈선을 가속화시킬 뿐입니다. 대표적 예가 바로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문자주의적 해석입니다. 성경은 다 성취되어야 하는데, 지상과 관련된 예언은 천상 백성이 된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상관이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교회와 상관은 없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교회가 휴거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그는 그 성취대상을 바로 중동의 이스라엘 민족으로 정해버린 것입니다.



5) 이스라엘의 참된 의미

그러나 우리가 깨달은 이스라엘에 대한 참된 이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 그 열 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셨고, 그들에게 각종 율례와 생명의 교훈을 주셨는데, 먼저 사마리아 열지파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좇아가 버림받았고, 마지막 한 등불 유다도 우상을 숭배하다가 BC 587년 바벨론에게 멸망하므로 유다 왕조가 끊겼습니다(이스라엘 12지파가 다 멸망). 그러나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스룹바벨 총독 휘하에서 고토(이스라엘)로 회복되어 제2성전을 세우고, 학개, 스가랴, 여호수아,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 신앙회복과 성전복구 운동을 펼쳤으나 이것은 모두가 이 지구 땅이 다윗(예수님)이 통치하는 의로운 천년왕국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적 역사일 뿐 참형상은 아니었습니다.

저 많은 종들과 선지자들이 동원되면서 받은 묵시는 아직 미성취인데, 그 참된 성취는 종말의 세계화된 기독교(참이스라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20억 기독교인을 계시록과 16권의 대소선지서에 달아보아(다림보아) 미달되는 쭉정이는 제하여 버리고 무게가 나가는 알곡만 남겨 왕권(144,000)을 받을 만한 자는 천상으로 들려 올려(휴거) 예수님의 신부자격을 주어 새 시대 천년간 치리권을 주시며, 백성(종족)될 자격을 받을 만한 자들은 지상 예비처에 보호했다가 아마겟돈 불심판이 지나가면 지상에 풀어 천년간 사망, 질병, 전쟁 없이 에덴의 축복을 만끽하라는 것이 성경의 작정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교회를 통하여 완전히 이해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비는 성경의 '이스라엘'을 지금껏 중동의 유대인으로 믿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중 중동의 유대인을 나타내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예언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회복 및 이스라엘을 다윗(재림주)이 통치한다는 예언(겔 34:23~, 37:24~. 호 3:5)은 전부가 종말의 기독교를 겨냥해서 주신 예언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10지파와 유다 지파의 범죄와 멸망은 종말의 그리스도교파(구교+신교)에서 재연될 역사이며, 이 때 144,000명은 구약 선지자들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때 남은 모든 예언이 기독교인 중 차출된 144,000에 의해 재차 예언되고 성취되는 것이지 이스라엘의 한 민족을 통하여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기독교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 다시 예언함(계 10:7~11)에 무지했으나 다비 나름대로의 공로가 있음 

그런데 다비는 모든 선지자들이 받은 말씀이 종말의 기독교에게 다시 전파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계 10:11)을 오해했습니다. 오해는 세대주의 학파에게도 연속되었고 그들이 지금 기독계의 다수를 이루고 있으므로 기독교 대다수가 예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꼴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비가 아무리 성경대로 살려고 몸부림 쳤더라도 자기 사명이 아닌 부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가 교회와 이스라엘을 철저히 분리해버리지만 않았어도 '7년환란전 교회 휴거설' 같은 엉터리 종말론은 안 나왔을 것입니다. 다시 예언의 구조와 구약과 종말의 그림자-실물 구조를 깨닫지 못하므로 사단만 기뻐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이 융성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시 예언(계 10:11)의 구조를 200년 전에 태어난 다비가 깨달았을 리가 없고,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비의 사명이 거기까지였다는 걸 이해하는 정도에서 그의 잘한점과 부족한 점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예언의 구조가 밝혀진 이후에도 계속 다비의 주장만을 답습하여 세대주의 종말론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교회에게 계시록을 주신 주님 앞에서 교만과 패역이 되므로 책망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다비를 향해 쓰는 것이 아니라 다비의 후손들, 즉 다비가 창시한 세대주의 종말론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는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에게 쓰는 것입니다. 다비는 죽었으나 그 사상을 답습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비는 생존당시 성령의 영감하에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시대를 통하여 여러 종들을 동원해 가면서 약속하시고, 때리시고, 어루만지시고, 또 책망하시고 교훈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망가진 안식을 되찾아주려는데 인간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약속한 축복을 주지 않을 수도 없고(사랑의 속성), 말을 듣지 않는 패역한 인간들에게 무조건 축복을 쏟아 줄 수도 없고(공의의 속성)..... 그래서 하나님은 시대마다 법을 세우시며 교훈하시고 때리시고 다시 참으시고 또 교훈하시며 여러 가지 법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에덴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대 전제 하에서 진행된 것인데, 그 시간이 길었던 것이며, 거기에 불리움받아 쓰인 일꾼들이 달랐던 것뿐입니다. 세대주의는 이것을 잘 파악하여 나눈 공로가 있습니다. 운영자는 다비가 19세기에 저 정도 한 것은 대단히 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적어도 "기록된 예언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소망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재림을 문자 그대로 믿었고, 인류에 종말이 오고 새 시대가 펼쳐진다는 것을 믿은 것은 확실히 칭찬해야 할 대목입니다.  



7) 다비의 한계

다비는 시대적인 변화와 차이는 잘 구분해 놓고서는, 언약이 주어지면서 그 언약이 성취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진보와 엄청난 개혁은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경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축자영감의 신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와 이스라엘의 이원적 병행구조라는 무리한 개인종말론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개인종말론이 지금은 마치 기독교를 대변하듯 큰 세력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만일 질문자님을 포함한 세대주의 종말론을 취하는 교단들이 계속하여 "구약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 종말의 교회를 통하여 완성된다"는 깨달음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세력만 크고 깨달음은 없는 골리앗이 되어 다윗 앞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다비를 무조건 욕하지 않습니다. 그가 행한 업적을 시대의 상황에 따라 판단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거기까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한 그가 종말의 일꾼들이 할 "다시 예언의 몫"까지 다 깨닫고 외쳤다면 "동방 한국"을 통해서 일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에는 착오가 생길 것이 아닙니까? 다비는 조금 모자랐으나 그래도 옳게 본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중 주님의 실제적 재림, 69이레와 1이레를 구분하여 1이레 동안 계시록에 기록된 환란이 이루어지고 천년왕국이 지상에 펼쳐진다는 것까지 내다본 것은 다비를 통한 큰 진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7년 환란 전에 교회를 몽땅 하늘로 올려버린 그의 개인적 종말론은 사단이 최고로 좋아하는 교리가 되고 있습니다. 몹시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 한국의 종들을 통해 세대주의의 잘못된 부분을 잡아내어 올바른 다림줄(슥 4:10, 암 7:7~9)을 전파케 하고 계시니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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