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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심판 받을 행위(갈5:2-10)

운영자 2007.03.18 07:01 조회 수 : 1834 추천:223

 

심판 받을 행위

-갈5:2-10-


 서  론

 하나님의 심판이란 죄를 지은 사람을 덮어놓고 심판한다는 법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지었다고 그대로 심판하는 신이라면 사랑이 없는 신이시니 사랑이 없는 신은 죄를 짓는 인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되 심판 받을 행위를 가진 자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제 심판 받을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 남의 믿음을 요동케 하는 행위 (갈5:10)

 우리는 실수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되 고의적으로 남이 진리를 따라 바로 믿는 신앙을 쓸데없이 딴 교훈으로 동요를 시켜서 그 마음이 탈선되게 만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와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정통적인 복음을 받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할례를 주장하는 이단설은 순수한 양떼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무리의 행위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 종이 있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죄는 죄 중의 큰 죄가 될 것이다.


 2. 빛을 미워하는 행동 (요3:19-20)

 우리는 빛을 사랑하지만 어둠과 싸우다가 실수하는 죄도 있고, 짐짓 빛을 미워하는 죄도 있으니 두 가지 죄를 놓고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체가 어두운 미로에서 헤매면서 빛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빛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빛을 미워함은 하나님의 사랑은 크지만 책임질 수 없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중심에 빛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빛의 열매를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은 빛의 열매를 맺도록 책임지고 역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교훈을 듣고 증거를 보고도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바리새교인들은 정통을 찾는 교파요 매일같이 기도하고 또는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려도 결국은 멸망을 받았던 것이다. 사랑은 두 가지가 있고 미워하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사랑도 빛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죄가 되고 미워하는 것도 악을 미워하는 것 외에는 죄가 될 것이다.


 3. 종을 대적하는 죄 (사41:8-11)

 하나님께서 종을 쓰시되 말씀을 따라 쓰시는 것이다. 은혜 시대 종을 대적하던 자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옳다고 판정을 내리던 바울도 회개하여 사도가 되었다. 그러나 말세에 동방 땅 끝에서 심판의 권리를 받고 나오는 종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이라고 했다. 이것은 왜냐 할 때 동방 역사는 피 값을 갚는 역사니 그 종에게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는다는 특권을 주었기 때문이다(사41:25).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는 것은 대장이 군대에게 너를 대적하는 자를 쳐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말세 사명자는 만왕의 왕의 특명을 받고 나오기 때문이다. 엘리야 모세같이 쓰여지게 된다. 이것을 기독교 종말에 진노의 날에 쓰여지는 종이라 한다(계11:3).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쓰는 종도 있고 원수를 치기 위하여 쓰는 종도 있으니 죄인을 부르기 위해 쓰는 종은 대적해도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원수를 치기 위하여 쓰는 종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하는 것이다.


 4. 예언을 경홀히 아는 죄 (계22:18-19, 사65:12)

 교훈도 용서하기 위하여 전하는 교훈도 있고, 심판하기 위하여 주는 교훈도 있으니 종말에 심판하려고 예언하는 말씀은 조금만 가감해도 용서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심판을 하고 싶어하는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자체는 사랑의 본질이다. 그러나 사랑으로써 살리기 위해서 역사하는 역사를 순종치 아니하므로 자동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을 무서워하는 것보다도 시대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한다든지 그 말씀을 경홀히 여긴다는 것은 심판 받을 행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