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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2013.06.12 14:26 조회 수 : 1052 추천:170

 

오 종목(五 種目) 나의 기원

 

본문: 마태복음 5: 11~12, 로마서 8:18,31~39

나는 저들의 손에 몇 번째 체포되어 이번에는 오래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가 이 산정재 강단(講壇)에 다시 서게 되니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오며 나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시던 교우 여러분 앞에서 다시 설교하려 하니 감개무량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설교가 아니고 가치운 중에서 늘 기도하던 다섯 가지 제목 곧 「오 종목 나의 기원」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죽엄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으로 닥쳐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무릇 숨쉬는 인생(人生)은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사망 권세는 마귀가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인가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의(義)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일약 수사도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니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아담, 하와 범죄 후에 사람은 다 죽습니다. 제왕 장상 재자 가인도 다 죽었고 성현 군자 위인 걸사도 다 북망산에 갔습니다. 죄없이 억울하게 죽는 약자도 불쌍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는 사람, 가엾은 아이를 두고 가는 어머니 비참한 죽음도 허다합니다.

폐결핵 환자로 요양원에 눕지 아니하고 예수의 종으로 감옥에 가치우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동차에 치어 죽는 죽음도 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 백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 한들 그 무슨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몸이 부서져 가루 되어도 주님 계명을 지키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 주님 모르는 채 하오리까! 다못 일사각오(一死覺悟)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여! 나도 부활을 믿고 사망 권세를 내 발 아래에 밟게 하시옵소서 「죽음아 네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나도 부활하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 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을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 아니 두렵습니까? 한번 죽어 영원한 천국 복락 그 아니 즐겁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시오. 나는 내 주님밖에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살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주님을 따라서의 죽음은 나의 기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푸르고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삼십삼세, 스데반은 청장년의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제물이 되어지이다.

 

 


2. 장기(長期)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번에 받는 고난을 이길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 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일년 십년 계속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준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마디만 타협하면 살려주는데 용감한 신자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이 연약한 약졸(弱卒)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못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신신 부탁하였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직면하사 그 받으실 고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질 때 그 아픔 어떠하였으리오! 나와 여러분의 죄, 억만 죄인의 죄짐을 대신 지실 때 그 고통이 너무나 중대하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를 우주도 감당하지 못하여 태양이 빛을 잃고 그 고통의 피방울 땅도 감당할 수 없어 지축(地軸)이 흔들리어 지진이 터졌던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날 위하여 이렇게 고난을 참으셨는데 내 당하는 고난이야 그 무었이겠습니까!

「믿음을 주장하사 완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사 그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 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느니라」. 이제 받는 고난 오래야 칠십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 십년 만년 영원무궁합니다. 이제 받는 고난은 죽을 몸이 죽는 것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 불사의 몸이오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기리 참아 주가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라.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고난의 명상)

 

 


3. 노모(老母)와 처자(妻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팔십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남의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①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 중지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 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우고 매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고! 춘풍 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하였을고! 십자가 하에서 가슴치며 야통하시는 성모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였을까?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 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팔십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②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일생을 내게 바치었거늘 나는 남편 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 두고 잡혀 다니는 이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되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 이 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③ 세상에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네 명의 아들이 있어 어린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끝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에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든 어린 자식 떼어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지 못하는 이 내 마음 끝없이 비참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위로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 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으리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나의 자식을 부탁합니다.

어미 죽은 어린것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④ 나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나의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을, 내 양떼를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아니치 못합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에, 이리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아니가지 못합니다. 맡기나이다. 내 양들 대목자장 되신 예수님 손에 맡기나이다.

나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된 줄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길 잃고 헤매는 자를 주님 손수 인도하여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한 자를 주님 보혈로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내 마음 차마 못 할 일이올시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주옵소서.

나의 늙으신 어머님과 나의 병든 아내를 주님께 부탁하고 나의 어린 자식(子息)들과 나의 사랑하는 양떼를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 이 강단을 떠나지 아니치 못합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을 따라 주님의 피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못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어 나는 얽어매지 말라. 주님 따라가는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4. 의(義)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 이 되어서는 충절(忠節)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나라를 붓잡고 오장원(五丈原)에 쓰러질 때까지 국궁진쇄(鞠躬盡碎) 사이후이(死而後而) 죽기까지 애썼습니다. 더구나 우리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교회와 그 의를 붓잡고 「국궁진쇄 사이후이」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백이 숙제 두 형제는 은나라의 신민으로서 주 나라에 살 수가 없어 수양산에 숨어 서산의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 죽으니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불고 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 나라를 위하여 선죽교에 피를 뿌리는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 대보다 청청 창창 시푸르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야 있건 없건

임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이 있으랴


이는 우리 선인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충의 대절(忠義大節)입니다. 사람이 나라에 대한 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 되어 주님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 있으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붙잡고 풀무불에도 뛰어들었고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여 풀무불이냐! 예수를 사랑하여 사자 이냐, 그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 렸습니다.

백제 나라의 도미 부인(都彌夫人)은 개루왕(蓋婁王)의 협박과 부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두 눈 뽑힌 남편 「도미」를 찾아 일엽 편주 조각배로 만경창파 서해 바다에 떠서 황주(黃州) 마늘 뫼 아래에서 한 평생 그 남편을 섬기었습니다. 이는 우리 조선의 딸들이 정절을 지키던 피 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되어 주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으랴! 주후(主後) 이백년 카르타고의 벨 뻐추어는 이십이, 삼세의 방년에 젖먹이와 늙은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뒤에 두고 형장에 나가서 사나운 소뿔에 받겨 죽었습니다. 천고(千古)

의 열녀 벨 뻐추어는 주님 나라에서 승리의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이몸이 어려서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번 백먼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 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구구 도생(苟苟盜生) 피할 줄이 있으랴!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平壤)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나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다. 「누가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칼이랴」(롬8:35) 죽고 죽어 열 백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 정절(大義貞節) 변치 아니하오리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 몸 드립니다. 우리 초로 인생 살면 며칠입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나의 사랑의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살으사이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예수께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 짐승의 삶만 같지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는 살아계십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사이다.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 받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 받으시옵소서.

아버지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에 걷게 하시옵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게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