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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70.07)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4:22~26)

운영자 2004.03.08 14:53 조회 수 : 1696 추천:287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4:22~26-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배를 받으시고 역사하는 신이시다. 왜냐할 때에 타락한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니 죄를 진 인간에게 무조건 준다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타락한 인생이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것을 받으시고 응답하셨지만, 그리스도의 완전 속죄가 성립된 후에는 희생의 제물이 중심된 제사가 아니고 예배를 중심 하는 것인데 참된 예배가 있는 자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이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주는 예배를 원하심 (22)

 

하나님의 요구라는 것은 합심을 요구하신다(마5:24). 합심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인데, 서로가 부족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께로 오는 것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이 생길 때에 서로가 화목을 이루는 합심이 생긴다. 예배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므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기 부족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마음이 불타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예배는 신령한 세계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구약 때 이스라엘에 사마리아가 생긴 것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따로 그리심산에서 예루살렘과 담을 막고 제사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예배를 본다 하여도 이모저모로 서로 합심이 되지 않는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밖에 없다. 이것은 자녀들이 각각 자기 요구를 들어 달라고 할 때에 부모의 마음은 오히려 괴로움을 느끼는 것같이 오늘의 기독교가 시대적인 하나님의 법을 순종치 않고 자기 주관을 내세우는 예배는 옛날 사마리아가 망하듯이 큰 화를 받게 되는 예배가 될 것이다. 

 

 

  2. 시대적인 진리의 법을 따라서 예배하는 것을 원하신다 (23)

 

하나님은 그 시대를 따라 법이 있고 법에 따라서 역사하는 신이시니 아무리 예배를 본다 하여도 시대의 법을 순종치 않는 예배는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그 시대 사람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그 진리를 신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할 때에 진리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시대적인 축복을 나리는 것이다.

 

아무리 예루살렘이 거룩하고 성전이 거룩하다 하여도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인 십자가법을 무시하고 예배하던 예루살렘은 황폐화된 것이다. 비록 미약한 무리이지만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목적으로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무리에게 큰 응답이 내렸던 것이다.

 

예배라는 것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진리를 순종하며 진리를 따라 나리는 은총을 받기 위한 것이 예배의 목적이며 은총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를 원하신다. 아무리 예배한다 하여도 진리의 법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없다면 진리의 신은 역사하다가도 떠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신이 아무런 역사를 할 수 없는 불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나라도 국법에 위반된 요구를 들어준다면 요구를 들어준 자에게 혹독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조물주 하나님께서 진리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장소의 예배를 조금도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3. 신령한 역사가 영적으로 통하는 예배를 원하신다 (24)

 

예배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니 아무리 의식과 모든 설비가 장치되었다 하여도 영적 운동을 중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송이나 기도가 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엡5:19). 언제나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없는 예배라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횡설수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통하여 활동하며 역사하는 것이니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몸은 제물에 불과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롬12:1). 몸이라는 것은 예배 시간에 아무런 활동이 없고 영에 이끌려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자리를 이루어야 될 것이다.  예배 시에 몸에 국한된 생각으로 시간이 지루한 생각을 느끼게 된다면 영적 예배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몸은 성령의 은혜 속에 잠겨 있을 것 뿐이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새롭게 나타내기도 하고 말씀대로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결    론

 

예배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 사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누구든지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 때에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는 것이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없고 자유스러운 예배가 이루어진다. 이 자유라는 것은 성신의 자유다. 예배하는 자가 억지로 사람에 보이려는 의식이나 법에 국한된다면 자동적으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외식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예배의 원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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