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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71.06) 아들의 영화와 아버지의 영화 (요 17:1∼7)

운영자 2011.04.24 06:19 조회 수 : 1037 추천:87

http://www.zion924.com/09_dataRoom/LeeLewaeJa/GoodTidings/GoodTidings_71_06_john17_01_07.htm

 

아들의 영화와 아버지의 영화

 

- 요 17:1∼7 -


요한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영화라는 것은 아들의 영화와 아버지의 영화가 무엇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기독 신자가 덮어놓고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영화와 성부의 영화를 바로 아는 데서 우리는 영화롭게 될 수 있다.

 

 

    1. 성자의 영화 (1∼2)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에게 온 일이다. 성자께서 영원히 성자의 신으로 있다는 것은 영화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아담을 낼 때에 아담 자신이 영화롭게 될 인격을 준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은 아들의 이름으로만이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 나신 일이 창조의 목적을 달성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것이다. 흙에서 난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 영화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소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물과 피가 마리아에게 임하여 그 몸이 인간에 탄생되었다는 것은 성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몸이 없이는 영화라는 것이 다 풀의 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신이 완전한 몸을 하나님께로 받았다는 것은 큰 영화를 가져올 싹이 되었던 것이다.

 

둘째 : 그 몸이 대속의 제물이 된 일이다. 아무리 성자가 완전한 몸을 성령의 잉태로 받았다 하여도 그 몸을 가지고 홀로 있다는 것은 영화가 될 수 없고 그 몸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만이 천하 만민이 예수님의 몸과 같은 몸으로 가지게 된다는 것이 큰 열매가 되는 것이니 영화가 되는 것이다.

 

셋째 : 통치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통치하려 해도 죄진 사람을 그냥 두고 통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 아들에게 맡긴 것이 만민에게 영생을 주는 일이 됨으로 영화롭게 된 것이다.

 

 

    2. 성부의 영화 (3∼7)

 

조물주 하나님은 영화를 목적두고 창조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신은 자기 홀로 있어서 아무런 영화가 없으므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보다도 그것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그 사람을 통하여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자연을 바로 사용하는 인격을 갖지 못하므로 오히려 자연계를 지배하는 것보다도 자연계의 지배를 받고 오히려 그 물질 앞에 종이 된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를 영화롭게 못하고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이제 성부의 영화는 무엇이냐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행하는 자가 있으므로(3∼4)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게 될 때에 이 세상은 죄의 세상, 사망의 구렁텅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하라는 일을 다 하였던들 그야말로 얼마나 큰 영화가 될 것인가!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씀한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화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그 영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보다는 하나님의 큰 슬픔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아버지 앞에 예배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은 큰 영화가 되는 일이다. 첫째 아담이 순종치 않으므로 천하의 모든 사람이 질적 타락으로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엡 2:3).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신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 주고 싶은 사랑의 자체가 되신 하나님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의중에 큰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순종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리스도 한 분이 하라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이다.

 

둘째 : 아들과 함께 영화롭게 됨(5)

 

예를 든다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아버지 마음이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은 아들과 함께 영화롭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아들이 영화롭게 될 때에 아버지는 그것을 자기 영화로 생각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이다(요 14:13∼14). 인간이 행함으로 되는 것 보다도 아들의 이름으로 응답이 와서 이루어지는 일을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아는 것을 우리 인생은 알고 겸손히 그 뜻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결    론

 

영화라는 것은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고 성부, 성자의 영화 아래서 우리는 같이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의 영화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성부, 성자의 활동은 죄를 지은 인생들이 성부, 성자의 영화 아래 들어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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