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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70.12) 2. 전쟁이냐 평화냐에 대하여

운영자 2008.01.19 01:36 조회 수 : 1378 추천:155

 

2. 전쟁이냐 평화냐에 대하여

 

인간의 완전한 지식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진리를 분명히 아는 것이 20세기 말단에 처한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인간은 지식을 위하여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미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지식에서 발전하고 지식에서 복을 받도록끔 한 것이 인간의 인격이며 향상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알파와 오메가의 진리를 알아야 된다. 전쟁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디서 끝을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람을 위하여 창조했고 또는 이것을 바로 다스리느냐에 문제를 놓고 하나님은 시험해 보는 것이 사람에게 향상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시험을 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야 한다.

  첫째:시험의 제목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둘째:그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해보는 자를 냈으니 이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란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간교하게 낼 수 있고 가장 진실하게도 낼 수 있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마음대로 얼마든지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같이 창조주의 권리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창조하되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맡은 사람에게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시험해 볼 권리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선생은 학생에게 시험을 쳐 볼 권리가 있고 또는 정치인은 백성들을 다스릴 때에 백성들에게 법을 따라서 벌할 권리와 또는 얼마든지 보장할 권리도 있다.

이와 같이 조물주 하나님은 피조물된 만물을 사람에게 주는 동시에 사람을 기계화시키지 않고 더 향상을 시켜서 하나님과 동등가는 권리를 주기 위해서는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해서 사람과 싸움을 하게 하여 그 간교한 뱀을 이기면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이요, 이기지 못하면 이긴 자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옛 뱀이요 붉은 용이요 마귀요 사단인 세력이 지금 북방에 자리잡고 세계를 침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선한 모략의 방법이 있다.

  1. 에덴 동산에서 세웠던 법을 다시 끝을 맺는 것이니

에덴 동산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으로 시험을 해 본 것은 이기면 왕권을 주기로 작정한 것인데 사람이 이기지 못하므로 간교한 뱀이 용이 되고 사단이 되는 발전을 가져오게 되어 사망으로 왕 노릇하는 권세 아래서 세계 인류는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낸 것은 만왕의 왕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시므로 만왕의 왕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권세로 마귀 권세 아래서 죽은 영들을 해방시키는 역사가 즉 기독교 십자가 복음 운동인데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중생 받은 사람들에게 지상 왕국을 주기 위하여 다시 옛 뱀 붉은 용의 세력을 개방시키어 전 세계 인류를 꾀도록 한 것이다(계12:7~9).

이것이 마지막 미혹이다. 이 미혹을 받지 않고 예언의 말씀대로 붉은 용의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참인 줄 믿고 붉은 용의 표를 받지 않는 자라야 지상 왕국인 에덴 축복을 다시 받게 한다는 것이 기독교 종말론이다.

그러므로 지금 전쟁은 무력전보다도 사상전이다. 이 사상이라는 것은 붉은 세력이 세계를 통일하느냐, 그리스도의 기독 사상이 세계를 통일하느냐에 대하여 사상전이 대립된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사상은, 봉건주의 사회가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변론을 하고 있다. 이 변론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요 간교한 옛 뱀의 말이라고 계13:2, 11에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가 대립된 현실에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옹호하자는 주의요,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시켜서 사회주의 노동당 정권의 자본이 되게 하여 이 자본을 노동당 정권이 지배하여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목적을 두고 움직이되 사회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전부 노력을 해서 사회주의 정권의 발전을 위하여 순종할 것 뿐이요, 전 국민은 다 목적을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총 궐기하자는 것이 소위 공산주의를 위한 사회주의 정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데는 자본주의 정치라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 그 이론은 무신론자의 마음을 끌고 있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본을 위하여 종이 되지 말고 세계를 공산화시키는 이 운동에 손길을 맞잡아 준다면 너희는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올 때 농장이나 공장이나 모든 전부를 과학적 기계로 움직일 때 사람의 손이 필요 없이 평안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니 그 농장과 공장을 개인에게 주지 말고 국가가 움직이는 사회가 되므로 국민은 차별이 없이 공평하게 사는 것을 공산주의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나오는 현실에 공산주의와 싸울 필요가 없다는 반전 데모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성경을 비추어 보면 계시록에 만 왕의 왕이 지상 왕국을 이룰 때는 붉은 세력을 내보내서 전 세계 사람을 인간 육․육․육의 세력으로 미혹해 본다고 했으니 육이라는 것은 인간 과학적인 최고 발달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서 기계화되는 공장과 농장으로 전 국민이 하나같이 잘 살 수 있게 한다는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분명히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과 거짓 선지를 통하여 오는 미혹이라고 성경은 가르쳤다.

그러므로 소위 협상주의라는 간판 아래 W.C.C라는 것은 성서로 볼 때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음녀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상을 대적하는 공산당을 용납한다는 것은 영적과 사상적으로 음녀라고 본다.

우리는 사상전을 하는 것이 성서적이요, 또는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양심의 행동이라고 본다. 종교를 아편으로 보는 공산 사상은 참된 진리의 종교가 되는 기독교로서 사상전을 하는 것이 마땅히 할 의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쟁은 영토를 위한 전쟁도 아니요, 정권을 위한 전쟁도 아니요, 진리를 위한 전쟁이다. 진리를 대적하는 붉은 용의 세력을 이기는 방법은 진리 하나를 바로 변론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권세 역사를 주어서 마귀 권세를 이기도록 역사를 내리시므로 마귀 권세가 거꾸러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끝까지 싸우는 사람을 내세우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사상적으로 바로 변론해서 싸우는 사람이면 하나님은 붉은 용의 세력을 없이하고 그 사람에게 지상 통치권을 맡기겠다고 예언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은 필연코 참된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를 부르게 된다.

  2. 완전 평화의 왕국

우리는 무신론자가 아니요, 신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믿는 동시에 그 하나님과 교통하는 산 체험의 종교를 믿는 자로서 공산주의를 용납하는 평화라는 것은 한 미혹에 떨어지는 마귀의 술법이요, 공산주의를 없이하므로 이 세상은 참된 평화가 오는데는 사람의 무력으로써가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붉은 용, 붉은 짐승, 붉은 여자인 바벨론에 온다고 하였으니 오늘에 성경대로 붉은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는 것을 볼 때 성경대로 심판이 올 것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세 비밀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망한다는 것이 아니고 붉은 세력이 망하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평화 왕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어 천당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지상 평화 왕국은 붉은 세력이 망하는 것으로 온다는 것을 믿고 싸우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말세 비밀 진리 사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때에 기독교가 누구든지 믿으면 다 천당을 간다는 진리만 가지고 공산당도 믿으면 천당 간다는 것은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의 잠꼬대와 같은 소리로 본다. 공산주의가 예수 믿고 천당 간다는 것으로 성경을 들고 교회를 들어오는 그 행동은 성경을 볼 때에 거짓 선지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승리가 오고 말씀대로 평화가 올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인의 완전한 신앙 사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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