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스룹바벨선교회

설교 (70.12)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이름 (요 4:1-26)

운영자 2006.10.27 12:50 조회 수 : 1753 추천:310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이름

- 요4:1∼26 -


인생(人生)이라는 것은 예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에 참으로 아는 것을 예배한 자가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할 적에 오히려 죄가 되는 것이요, 아는 것을 예배할 적에 의(義)를 이루는 동시에 최고의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타락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격을 상실하고 보니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을 수가 없게 된 이유는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예배할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귀를 숭배하는 우상적인 종교가 되고만 것이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야곱의 열 두 지파라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치 않고 예배할 때 북방 사마리아라는 나라가 생겼던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므로 복을 받았지만 이방의 여신을 용납했다는 죄로서 결국은 알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는 부패가 생겼던 것이다. 북방 사마리아가 남방 예루살렘과 원수가 된 것은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가 남방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가지 못하도록 담을 막고 그리심산에 신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예배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가고 우상적인 종교를 이룬 사마리아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소위 기독교 교인이라 하면서 예배를 방해하고 자기의 주권적인 운동을 해보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바로 알고 그 진리에 따라서 예배해야만 될 것이다. 이제 아는 것을 예배하는 자는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예배를 받는 자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1∼20)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들어가 볼 때에, 노하여 강도의 굴혈을 짓지 말라고 하면서 모조리 채찍으로 때려서 내몰았던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서 생수를 받으라고 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 여자가 남편이 많다 하여도 그 여자를 더럽다 하지 않고, 나는 메시야라고 하면서 지금은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온다고 했던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더러운 죄인으로 볼 수 있는 여자 하나를 앞에 놓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생수를 받으라고 하는 심정, 나는 메시야라고 하는 심정,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어떠하다고 말씀하신 그 심정은 아무런 죄인이라도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왔으니 너는 나를 누구인 줄 바로 알고 예배하라는 말씀이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거룩한 거리에 거룩한 의복을 입고 왕래하던 무리들이 예배하던 성전은 황무지가 되었고, 유대인이 볼 때 짐승같이 여기는 죄인들은 (알 것을) 바로 알게 되어 성전을 짓고 예배하는 일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2. 시대를 따르는 예배 (21∼22)

언제나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법을 세우고 법을 따라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를 받으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는 아담의 집에서부터 양을 잡아 드리는 피의 제사로 하나님을 공경하되, 양심으로 공경했다(딤후1:3). 이 양심이라는 것은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는 양심에서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이루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므로 어느 민족이나 다 같이 예배할 수 있는 비밀을 모르고 예배를 방해하던 유대인들은 다 망하고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아는 자들이 예배할 때에 성령은 강하게 역사하므로 기독교는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대 종교를 이룬 것이다.


  3. 신령과 진리의 예배 (23∼24)

과거에는 모든 일을 몽학적인 교훈으로 예배 의식을 하나님이 주셨지만,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 되는 역사가 있을 때는 몽학적 교훈의 의식이 필요 없고 직접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때와 성령이 역사할 때의 예배는 다르다. 지금 만일 어떤 교회가 성령의 역사 없이 예배 의식만 지킨다면 이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예배가 된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예배를 볼 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은사로 내렸던 것이다.

지금은 예배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분명히 알고 예배하는 자라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하므로 은사의 체험을 받는 신령한 세계에서 그 영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같이 새로워지는 열매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도하는 자는 십자가 중심에서 날마다 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나가는 승리의 생활이 있으므로만 마귀의 흑암을 이기는 예배가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지금 이때에 아는 것을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금일에 예배하는 자가 많이 있지만 사랑을 떠난 교회에는 도저히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으므로 그 예배는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나타나서 구원을 완성했으니 이제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제물이 필요 없고 구원을 완성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녹아져서 그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에 적은 무리가 모여도 신령한 예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 그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적에 사랑의 은사를 체험하고, 사랑의 진리를 가지고, 사랑이 넘치는 생활에서, 입으로 찬송하고, 입으로 기도하고, 입으로 증거할 때에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는 다 열매가 되는 것이다.


요한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육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아름다운 소식 (다운로드용. hwp파일) 운영자 2004.08.17 2277
공지 창간사 운영자 2004.02.28 2396
83 (70.07) 7. 한국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운영자 2008.01.17 1499
82 (70.07) 6. 촛대교회 주일학교 선생에 대하여 운영자 2008.01.17 1464
81 (70.07) 5. 촛대교회 목회자에 대하여 운영자 2008.01.17 1445
80 (70.07) 4. 공산 청년과 기독 청년에 대하여 운영자 2008.01.17 1417
79 (70.07) 3. 시국 난제 해결은 무엇으로 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한다 운영자 2008.01.17 1473
78 (70.07) 2. 기독교 통일의 전망을 말한다 운영자 2008.01.17 1509
77 (70.07) 1. 70년부터 기독교의 나아가야 할 방향 운영자 2008.01.17 1643
76 (70.12) 유익하도록 가르친 하나님의 교훈 (사 48:12-22) 운영자 2007.02.02 1905
» (70.12)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이름 (요 4:1-26) 운영자 2006.10.27 1753
74 (70.12)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 (슥 8:1-8) 운영자 2006.10.22 1743
73 (70.12) 시험을 통해 오는 온전 (약 1:1-4) 운영자 2006.09.11 1688
72 (70.12) 곤고한 사람으로 감사할 일 (롬 7:22-8:2) 운영자 2006.05.29 1585
71 (70.12) 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 (눅 1:26-33) 운영자 2006.05.11 1529
70 (70.11) 기도인과 정치 문제 (딤전 2:1-4) 운영자 2006.04.26 1518
69 (70.11) 욕심은 마귀에서 난 것이다 (요 8:42-49) 운영자 2006.04.25 1497
68 (70.11) 지혜를 진주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이 되자 (잠 8:11-21) 운영자 2006.04.20 1754
67 (70.11) 대강 기록한 바울의 편지 (엡 3:1-9) 운영자 2005.04.18 1808
66 (70.11) 온전함을 이룬 자의 사상 (빌 3:10-16) 운영자 2005.02.23 1982
65 (70.11) 성도의 고난과 기도 (시 102:1-28) 운영자 2005.02.22 2072
64 (70.11) 여호와의 응답과 새 시대 (사 41:14-20) 운영자 2005.02.11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