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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특강) 3. 말세 증인의 설교의 의의

운영자 2011.05.30 19:41 조회 수 : 4653 추천: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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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zion924.com/09_dataRoom/LeeLewaeJa/SpecialLecture/1/03_Sermon_of_Witnesses.htm

 

 

3. 말세 증인의 설교의 의의

 

 

 

 

1. 말세 다림줄을 쥔 증인의 설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1) 심판기에 설교자라는 것은 합법적인 다림줄에 의한 정확무오한 설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강단에 선 종이 조금만 혼선되어도 그 자체가 흑암을 뚫을 수 없기 때문에 양 떼를 (올)바로 재앙에서 구출시킬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선이 없는 설교라는 것은 알파적인 진리와 오메가적인 진리를 완전히 짝을 맞춰서 증거하는 설교라야 될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시기에는 죄인을 부르는 때이니만큼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하는 것 하나에 중심된 설교이면 모든 영들은 죄의 권세잡은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주는 열매를 가져올 수 있었으나, 심판의 다림줄을 쥔 종으로서는 재앙기에 양 떼로서 재앙을 피하도록 인도하는 설교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진리도 정확히 증거하는 동시에 ★★★ 재앙의 날에도 어떻게 되므로 피로 산 백성은 재앙을 받지 않고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다는 길을 명확히 말해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변론적인 설교라야 된다.

 

심판기의 종은 완전한 변론이 서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마귀가 죄의 권세를 가지고 있은 것뿐이었으나, 종말에는 환란과 재앙을 가져오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완전 변론의 설교가 아니면 마귀의 허락 받은 재앙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앙이 오는 것도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요, 재앙 중에 살 길을 찾아 구원 받는 것도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날까지 기독교 신학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국한된 신학을 말하는 것이요, 종말에 재앙기에 관한 신학을 감히 뚜껑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재앙기에 관한 진리가 은혜시대에는 필요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봉하여 두었던 까닭에 사람으로서는 변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앙이 올 때는 재앙기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변론을 할 수 있게끔 진리의 창고를 열어 놓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 새일성가 19장 2절

 

 

3) 권세가 같이 하는 설교가 있어야 한다.

 

은혜 시대 설교라는 것은 은사가 같이할 때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이 되었고 재앙의 날에 설교자는 권세 역사가 있으므로서 흑암의 재앙을 물리치고 양 떼를 구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권세라는 것은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마귀를 쳐부술 수 있는 권세는 다림줄을 통하여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혜 시대의 종된자로서도 이 권세가 없이는 환란 중에서 역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권세는 보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2. 설교 방법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법에 따라 쓰지 않을 때 아무런 효과를 발휘치 못하는 것같이 아무리 다림줄의 진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바로 써야 할 것이다. 다림줄의 진리를 증거하는 설교 방법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해야할 것이다.

 

 

1) 강해적인 방법

 

이것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원리에 따라 글자 글자를 해석하는 설교이다. 이 해석 방법은 어느 성경이든지 펼쳐들 적에 이 성경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가르친 예언이라는 것을 먼저 명확히 말하고, 그 성경의 의의를 말할 적에 모조리 성경을 읽어가면서 먼저 말한 목적을 해석해가며 순서있게 말하되 성경에서 풀어야 한다. 성경이라는 것은 목적 하나를 두고 말세의 성도는 바로 알도록끔 가르치는 글이니 본문에서 본문을 해석하는 설교가 되지 않고는 완전한 강해를 하는 설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감히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2) 요지 설교

 

이 설교는 성경을 강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성경에 가장 요지가 되는 절수 하나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말씀을 나리는 대로 대중 앞에 말하는 설교다. 요지를 말할 적에 그 뜻을 대중이 알도록 할뿐만 아니라 일반 심령들이 마땅히 각성해야 될 문제를 놓고 혹은 권면, 책망, 경고, 위로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이 설교할 때에 요지에 따라서 대지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일도 결부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설교는 특수한 예배 시간에 무슨 일을 앞에다 놓고 그 일을 완성시키는 힘을 얻기 위해서나 또는 큰 시험 문제가 닥쳐올 적에 이것을 대중이 물리칠 수 있도록 하는 목적과 또는 극도로 영들이 피곤할 적에 새로운 소성을 가져오는 것을 목적하는 설교다.

 

 

3) 교리 설교

 

교리 설교라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적인 신앙 체계를 바로 가르치며 각 성경을 들어서 신앙 노선이 바로 서도록끔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지식을 넣어 주는데 효과를 주는 것이다. 마음판에 또렷이 새겨지도록 신앙 체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교리적인 설교를 바로 못할 때에 그 영들은 담대한 힘을 얻지 못할 관계가 있다. 교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도록끔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설교의 인격

 

설교라는 것은 대중 앞에 대표로 서는 인격이니 필요한 것이다. 왜냐할때에 음성을 듣는 반면에 그 태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인격은 다음과 같이 자신이 조심할 일이 있는 것이다.

 

 

1) 설교자는 사람을 상대하는 태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엄숙하고도 경건한 태도가 따라야 한다.

 

엄숙, 경건이라는 것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대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든지 <그 영들에게 만족한 진리를 증거해 보려는 눈물겨운 심정>이 있을 적에 신께서 역사함으로서 대중이 바라볼 때에 그 인격과 영감을 받게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모양을 내보려고 해도 그 영들에게 경건하고, 엄숙하고, 사랑스러운 무엇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하여도 심령을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2) 설교자는 음성이 대중이 알아듣도록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뜨게도 않고, 한마디 한마디 말이 명랑하고 힘있게 나가도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있다 하여도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떠들기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주는 일도 있다. 어떻게 하든지 한마디 말이라도 대중의 심리를 뚫고 들어가는 말이 있도록끔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균일된 태도라야 된다. 이것은 말씀에 사로잡힌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마음 속에 그 진리를 자기가 은혜 받으면서 말하는 것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3) 입의 구재에 관하여

 

억지로 재간 있게 말해보려는 그런 방법을 취할 필요가 없고 한마디 말이라도 정직하게 진실하게 간절한 태도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설교자가 중심에 없는 변명적이나 선전적이나 어떤 포섭적인 태도를 가지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다. 설교가 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설교자는 말보다 중심을 울려주는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을 꾸며 보려고 말의 재주를 얻기 위해서 책을 볼 필요는 없다. 성령이 말하게 하므로 입을 열겠다는 신앙 양심에서 겸손히 나서야 할 것이다. 어떤 자가 인격을 내세울 마음이 있든가,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있을 때 성신은 떠나가는 것이다. 설교자는 모든 사람의 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딴 방침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한마디 말이라도 성령이 내 입을 사용해야만 나는 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말할 재료를 가졌다 하더라도 성신의 역사가 나를 떠나면 필요없다는 견지에서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해야 할 것이다.

 

 

 

4. 개인 방문적인 설교

 

방문적인 설교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 찾아갈 적에 성경을 가지고 말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가장 필요한 시간인 줄 알고 생명 하나를 살려준다는 친절의 태도와 말이 있어야 될 것이다. 개인 방문 설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3가지를 해야될 것이다.

 

 

1) 병자를 방문하는 시간

 

그 시간은 설교에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그 병자에게 소망을 주고 믿음에 도움을 줄 성경 절수를 바로 찾아서 한마디 말을 마음에 꼭 기억하도록 간절히 읽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을 하고 말씀에 의해서 간절한 기도를 한 다음에 위로의 말을 많이해 주어야 할 것이다. 위로의 말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병자에게 새 힘을 얻도록 주님의 사랑을 깊이 말해주는 위로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시험을 받고 있는 자를 방문하는 시간

 

방문하는 그 시간은 성경을 들어서 권면하는 시간이 많아야 될 것이다. 권면하되 그 사람의 단점을 쳐서 오해가 되는 말을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의 장점을 들어서 소망을 넣어주는 동시에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아지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압력을 받는 사람에게 단점을 지적할 적에 사탄은 더 강하게 와서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고 의심이 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귀가 물러가는 일은 그 사람이 주님을 보도록 만들어 주므로 주님께로 온 힘을 받아야만 시험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3) 믿음이 식어진 사람을 방문할 때

 

이때는 각성을 받도록끔 말하되 무엇 때문에 식어졌다는 원인을 본인이 깨닫도록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대부분이 교만해서 드는 시험이 될 것이니 얼마만큼 자기 신앙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될 것이다. 이때는 그사람 자기가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자극을 받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극도로 위기에 들어갈 것을 알라고 강하게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에게 겸손히 가서 붙들어 주는 태도보다는 하나님 편에서 노여워한다는 것을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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