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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자의 글(미래한국신문)

운영자 2004.03.19 07:55 조회 수 : 1498 추천:182


러시아 르포 - 기회의 땅, 러시아


작업장 이탈한 북한 벌목공 만나/초콜릿에서 보드카까지… 뇌물만연
 

본지 임영선 기자가 러시아 탈북민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최근 시베리아를 다녀왔다.
임 기자의 현장르포를 싣는다<편집자주>.

속초항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한 ‘동춘호’가 러시아 연해주 자르비노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11시였다. 극동최대 끝에 있는 시골 항이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파철을 싣는 선박과 일본산 중고승용차를 싣고 온 자그마한 선박이 전부였다.

야심을 가지고 건설해 놓은 대형 창고들은 텅텅 빈 채 낡아가고 있고 페허가 된 고장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70년의 소련공산당 통치가 썰물처럼 밀려나가면서 남겨 놓은 잔해들이다.


▶ 1. 러시아는 아직 통제나라


러시아에 갈 사람은 비자발급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모스크바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어디로 들어갈 것인지에 따라 비자를 선택해야 한다. 러시아에서 받은 초청장이 꼭 있어야 하는데 여행사에서 수수료를 받고 대행해주기도 한다. 초청장에는 꼭 도착지가 밝혀져야 하며 러시아 어디에 가든 그곳의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에 도착해 3일 이내로 초청한 곳의 경찰서로부터 인증을 받지 않으면 500루블 벌금을 내야 한다.

열차표는 여권 없이 살 수 없으며 열차에는 경찰이 탑승해 있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여행을 통제하는 방법을 러시아에서 배워왔음을 확신했다.


▶ 2. 뙈기밭과 대초원

열차를 타고 며칠을 가도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초원과 수림은 인간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그러나 러시아주민들의 집과 울타리 안의 텃밭을 보면 웃음이 난다. 다 낡아빠진 자그마한 목조건물과 뙈기밭이 사람의 눈을 의심케 한다. “아니 저 넓은 땅과 울창한 목재를 놔두고 이렇게 초라하게 산단 말인가?”

집안은 더 한심했다. 가구라고 말하기 힘든 투박한 식탁과 소파들이 대부분이다. 벽과 바닥에는 카펫을 깔아 아늑하게 하고 창가에는 화초를 놓아 신선함을 연출했는데 담배와 보드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근로자들은 주변초원에 자그마한 별장들을 짓고 뙈기밭에 감자와 야채를 심어 먹는다. 그것이 러시아인들의 가장 즐거운 낙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살고 있고 살아 왔을까. 공산주의 이념 때문이었다. 흐루시초프 대통령 때는 30평 이상의 텃밭을 가진 사람은 부르조아 계급으로 지탄받았다고 한다. 저 거대한 토지를 가지고 소련과 공산권국가들이 식량난에 허덕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강 하나를 건너 중국땅에서는 밀, 옥수수, 콩, 야채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러시아땅은 아직도 잠자고 있었다.

빵, 돼지비계, 소시지, 보드카, 담배 그리고 섹스가 전부였던 소련이었다. 하긴 개울 같은 압록강을 넘어 북한쪽에서는 수백만이 굶어죽지만 중국은 쌀이 남지 않는가. 나라가 잘 살고 못 살고는 어떤 이념을 가졌는가가 결정적임을 확신했다.


▶ 3. 월급 150달러, 물가는 서울과 비슷해

경찰이 응당한 업무를 보는 데도 사람들은 뇌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굳어 있었다. 하긴 하바로프스크 도시에 들어왔다는 증명도장 하나 받는 데 꼭 3일이 걸렸다. 돈 500루블을 찔러주면 당일에 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뇌물을 고이라” “ 날 즐겁게 해 달라”라는 공용어가 있는데 무슨 일이든 뇌물 없이는 안 된다는 뜻이다. 뇌물을 받으며 공무집행하는 부패한 공무원들은 한국에도 많으나 러시아공무원들의 뇌물행위와는 다르다. 모든 행정절차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뇌물을 받으며 뇌물의 크기는 초콜릿 한 개에서 보드카 한 병까지 자그마한 규모로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게에서 팔리는 대중소비품의 가격도 엄청 비싸다. 원인은 간단하다. 러시아 공장들은 이미 생필품 생산을 포기했다. 빵이나 음료수를 비롯해 몇몇 소비품생산을 제외하고 전부 외국에서 수입한 상품이다. 공산정권시절의 낡은 생산시설과 방법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산방식이 일어나기 전에 외국산 상품이 러시아를 덮쳐 버린 것이다.


▶ 4. 고철왕국

러시아 어디를 가나 고철이다. 고철이 많다 해도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공산정권 시절의 공장은 전부 고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원에도, 강가에도, 마을에도 어디든 고철이다. 낡은 목조건물들도 대체로 고철로 무장하고 있다.

고철창고, 고철울타리, 고철화장실, 어쨌든 눈에 보이는 구조물마다 고철이다. 고철수출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저렇게 썩이는 고철을 팔지도 않고 그렇다고 러시아에서 소비하지도 않고 원인은 대국자존심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고철수출국이라는 자존심 상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 5. 방황하는 북한 벌목공들

2002년에 러시아로 입국한 북한벌목공 2,500명 중 200명만 남고 전부 현장을 이탈했다고 한다. 러시아에 북한근로자들은 벌목공과 건설노동으로 들어온다. 벌목공들은 산속에서 노동하는데 북한에서 공급하게 되어 있는 식량과 부식물이 들어오지 않고 러시아측에서는 먹지 못하는 근로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고 일감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어 TV나 카세트 같은 물건을 준비해가려던 노동자들의 꿈은 깨어지는 것이다. 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로 흘러들어가 개인집 보수나 건설장에 동원되면 한달에 100달러는 벌 수 있다. 그러니 전부 현장을 이탈해 도시를 방황하는 것이다. 북한대표부도 손을 들었다. 가는 곳마다 북한 근로자들이 거지꼴로 돌아다니고 잡아봤자 처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잡부노동이다.

탈북한 북한근로자를 잡아 오면 추궁보다는 협상을 진행한다. 조국과 김정일을 배반한 죄는 심각하나 돈을 열심히 벌어 오면 용서해준다는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한달에 100달러는 갖다 바치고 나머지는 근로자가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요즘 북한대표부의 주요 수입원이 탈북한 노동자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 6. "까레아 하라쇼”


“한국 좋다” 요즘 러시아인들 속에서 유행되는 용어다. 한국산 제품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식품이든 의류든 관계없다. 대우버스는 성능이 좋다고 온 러시아인들이 선호한다. 한국산 라면과 초코파이를 비롯해 일부 식품들이 러시아인들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러시아에 들어온 중국장사꾼들이 엉성한 중국상품에 한국상표를 붙여 판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러시아인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경찰들도 한국인이라면 상당한 믿음을 표시한다. 러시아인들은 진심으로 한국과의 유대를 갈망하고 있었다.


▶ 7. 러시아는 위대한 잠재국

뭐니뭐니 해도 러시아다. 찬란한 문화와 독창적인 이념 창조, 지구절반의 거대한 영토와 무궁무진한 자원, 비상한 두뇌와 최첨단 과학기술, 열정과 쾌활한 성격. 러시아는 어느 면을 보나 힘있는 대국이다. 70년간의 공산체제를 버리고 15년간의 홍역도 끝났다. 어느 도시를 보나 사회적 안정기에 들어갔음이 확실하다.

이제 남은 것은 성장뿐이다.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일어나면 세계 힘의 균형은 또 한번 조정시기를 맞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에 러시아는 영원한 기회의 나라다.


미래한국신문 임영선기자 ysi@futurekorea.co.kr  제51호  2003.6.9.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