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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관한 솔제니친의 기록들

운영자 2004.03.19 07:34 조회 수 : 1415 추천:204

공산주의에 관한 솔제니친의 기록들


솔제니친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전망'이라는 책자 中...

- 우리의 복잡한 혹성 지구 위에는 이제 더 이상 국내 문제라는것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지도자들은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 우리가 우리 시민들을 평화롭게 목조를 수 있도록 가만히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보다 많이 간섭하라. 여러분이 가능한 한 더욱 깊숙이 간섭하라. 제발 와서 간섭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내가 가본 몇몇 지방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지역들은 미국 역사의 발상지로서 미국을 창건했던 영웅들이 자신의 도덕적인 책임을 결코 소홀히 한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善과 惡의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도덕적인 표준으로 일관되어 있었지요.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이렇게 도덕적인 조치를 채택했겠습니까? 여러분의 나라를 창건했던 지도자들은 "우리의 바로 옆에서 노예제도가 판을 치더라도 필요할 땐 노예를 부리는 사람과도 데탕트를 해야 한다.그들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는 한..."이라는 식의 논리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이 아닌 것이 곧 평화'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과 평화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잘못이지요. 단지 반대되는 명제의 일부분을 전체 명제에 대립시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 없으면 테러를 사용하는 등 배후에서 탄압정책을 써 왔습니다. 빨치산 전쟁, 각종 폭력, 감옥, 집단수용소 등등 그들이 이용하는 수단은 많습니다. 이것이 '평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여러분들이 자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세상에서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자유를 획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세게의 상당한 인민들이 폭력과 탄압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 여러분 스스로만 자유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도 억압에 대해 들고 일어서야 한다.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면 그것은 결국 여러분의 장래를 동시에 보호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 소련의 공산치하에서 우리들은 이를테면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노예이지만 자유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노예로 부리는 공산주의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생매장하려고 할 때 제발 여러분들은 공산도당에게 땅을 하는 도구, 그것도 가장 현대화된 굴착기계들을 제공해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공산주의자를 도와주면 결국 여러분의 입을 흙으로 채우려고 덤벼들 것입니다.

- 유감스럽게도 어떠한 타인의 괴로움도 우리들의 일시적인 至福을 어둡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 괴로움이 우리들의 신변에 미칠 때까지 우리들 자신에게는 절실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인간의 천성이 아닐까요.

- 거듭 말하거니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역시 최초로 인질 제도를 도입, 자신들이 추적하고 있는 인사를 체포하지 못하면 그의 가족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을 마구 체포하여 사살해 버렸습니다.

- 우리들은 당신들에게 우리의 쓰라린 경험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많은 죽음과 노예상태라고 하는 우리들이 지불했던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에게 우리들의 경험을 살려주십사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당신들 사회는 경고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군요. 필경 경험이란 것은 도시 전달불가능한 것으로서, 누군들 스스로 체험해야 된다는 사실을 유감스럽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있는 이 시간, 만일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신음하며 죽어간다면 그것은 데탕트가 아닙니다.

- 여러분이 소련에서 박해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여러분의 아량과 고상함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들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과학이 아니다"
이 점은 소련의 인텔리들도 전적으로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의 일종으로 본다면 그것은 조크로밖에 볼 수 없지요. 그것은 물리학이나 수학 및 기타 자연과학과 비교할 수 없을 뿐더러, 일반 사회과학처럼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사실 공산주의는 그 어떤 예측도 하지 못했지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선전 뿐이지요.즉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들고 일어나 부르조아 계습을 타도하게 되면 그때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가 된다는 것뿐입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의 환상은 모두 이 예측을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도 그러한 사회가 어떤 형태를 갖고 등장할 것인지에 관해 보다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찬란'하고 '행복'하며 모든 것이 인류를 위하는 방향으로 될 뿐이라고 말했을 따름입니다.

<1975년 7월9일, AFL-CIO 제2차 초청강연>


짜르시대에는 연간 17명, 스탈린 시대에는 월간 4만 명 처형

전문가들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통계에 의하면 러시아 혁명 이전 80년 동안 연간 약 17명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혁명운동의 시대로서 짜르를 암살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던 때입니다.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던 스페인의 종교재판도 그 절정기에는 매달 10명 정도 밖에는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수용소 군도'에서 나는 '체홉'이 1920년 출판했던 저서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체홉은 이 책에서 1918~1919년 동안 매달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되었다는 '혁명활동'을 자랑스럽게 보고했습니다. 체홉이 지적한 이 수치가 완벽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아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체홉이 이러한 내용에 관해 역사가 조명하기 이전에 스스로 집필한 것은 사실입니다.
스탈인의 테러가 절정에 달했던 1937년과 1938년에 처형된 사람들은 월별로 따져보면 1개월 동안 약 4만 명 이상이나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민주적인 서방국가들이 어떻게 러시아와 동맹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1975년 6월30일, AFL-CIO 제1차 초청강연>


산주의자들은 벽에 부딪칠 때만 후퇴한다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레닌의 모든 '교훈' 중에서 자기 앞에 놓여진 것을 취하지 못하는 자는 바보로 취급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인 것입니다. 만일 가질 수 있으면 가져야 하고, 공격할 수 있으면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벽에 부딪치면 후퇴하라는 것이지요. 공산지도자들은 확고한 자세만을 존경하고 계속해서 후퇴하는 사람은 경멸하고 비웃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지도자의 연설에서 끝으로 인용하고자 하는 것은 "화해를 모르는 힘은 세계분쟁을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복종만 하는 힘은 결코 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975년 6월30일 AFL-CIO 제1차 초청 강연에서>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人道的인 일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반공주의(anti-communism)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우매한 표현입니다.
마치 공산주의가 무슨 근거가 있는 독창적인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또 반공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공산주의의 어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非인도적인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행위는 바로 인도적인 일이 됩니다. 다시 말해 非인도적인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善과 惡의 관념을 망각시키려고 책동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 영혼의 저항입니다.

<1975년 7월9일 AFL-CIO 제2차 초청 강연에서>


-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있는 이 시간, 만일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신음하며 죽어간다면 그것은 데탕트가 아닙니다.

- 데탕트는 미소를 짓거나 구두로 양보하는데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고한 기초 위에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기초 아래 데탕트가 하룻밤 사이에 파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의 보장을 위하여 협정의 상대편 당사자는 여론과 언론 및 자유선거에 의한 의회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통제가 존재할 때까지는 결코 보장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소련에서 소위 이념전이라고 부르는 비인도적인 선전을 자행한다면 그것이 무슨 데탕트일까요? 우리가 데탕트를 유지하려면 피차 우호적이어야 하며 이념전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협상을 하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다가는 막판에 가서 조금 양보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마치 승리나 한 듯이 "보라, 그들의 양보를 얻어냈다. 이제 서명할 시간이다"라고 떠들어댑니다.

- 스웨덴의 사회주의 지도자인 오라프 팔메는 "공산주의가 생존해 나가려면 민주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이리가 살아나가려면 고기를 먹지 말고 양처럼 순해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현대인들이 공산주의의 다양한 행태를 그냥 보고만 있다는 점이지요. 탱크가 부다페스트의 시가를 누비고 체코에서 탱크포가 불을 뿜어대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비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짓을 했다면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지만, 공산주의자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 여러분이 소련에서 박해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여러분의 아량과 고상함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들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미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 서방세계는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력을 되찾기 전에는 아무리 강력한 무기나 수단이라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안락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각오가 있기 힘듭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것은 양보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벌려는 시도와 배반만 남습니다.

- 현상유지의 쇠약한 꿈은 발전을 중단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 현재 동구의 여러 나라에서 공산주의는 이념적으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점수로 따지자면 빵점이나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일부 지식인들은 아직도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과 연민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방세계가 공산권과 대결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조갑제 홈페이지에서 모은 글들 / 작성자 : 배진영
http://www.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