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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여러 성모, 마리아 발현

운영자 2004.04.14 07:39 조회 수 : 3367 추천: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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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목차


1-1. 과달루페 1-2. 과달루페

2-1. 기적의 메달 성당 2-2. 기적의 메달 성당

3. 라 살레트의 성모 4. 루르드

5. 퐁맹 6. 녹크

7. 파티마 8. 보랭 9. 바뇌


1-1. 과달루페 #



과달루페의 성모 [영] Our Lady of Guadalupe
1581년 12월 9일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

1519년 마야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에 스페인의 군대가 들어왔다. 당시 멕시코는 이미 유럽과 비견될 만한 고도의 문명 국가였지만 종교만은 여러 형태로 나뉘어져 있었고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을 죽여 바치는 미신적인 제사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었다. 때문에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앙을 심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갖가지 토속 신앙과 정복자의 종교라는 선입견 때문에 선교 활동은 많은 장애를 받았다.

성모께서 요한 디에고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은 한 아즈텍인(원명은 쿠아틀라테우악: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발현하신 것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의 일이었다. 영세 후 날이 갈수록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던 요한 디에고는 12월 9일, 지금의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 투성이었던 그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 한 귀부인이 나타나 요한 디에고를 불렀다. 그때 그 귀부인은 자신이 은총을 가득히 입은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멕시코의 초대 주교 주마라기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성모님은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요한 디에고에게 다시 발현하시어 내일 다시 주교에게 가서 성당을 반드시 세울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다음날 두 번째로 주교를 만나 다시 그 말씀을 전하자 주교는 성모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말하였다. 디에고가 이 말을 다시 성모에게 전하자 성모는 징표로서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미를 주워 주교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러나 때는 12월이라 추었고 또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요한 디에고가 산 정상에 가니 과연 장미꽃들이 있었고 이를 틸마(외투 또는 보자기로 쓰이는 겉옷)에 담아 주교에게 내보였다. 그 순간 주마라기 주교는 별안간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겨울이라 장미꽃이 필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요한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었다. 바로 그 귀부인의 모습과 그 옷자락을 한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분은 스스로를 '과달루페의 평생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그 후 요한 디에고는 과달루페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에게 성화를 보여 주면서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의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였다. 마침내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발현 후 7년만에 우상 숭배와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800만 명이 거의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이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에는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를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고 헌당식을 가졌으며 과달루페 성모가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 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들의 신앙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의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신자들을 깊이 믿고 있다.

현재 과달루페는 멕시코의 신자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신자들이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전구하시는 성모님을 만나 뵙는 곳으로서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1979년 1월 25일부터 30일까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과달루페를 순례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세운 현대식 대성전이 새로이 세워졌고 순례자들을 돌보는 사목 활동도 활발하다.

- 한국가톨릭대사전, '과달루페의 성모', 편찬실


1-2. 과달루페(Guadalupe)의 성모 ##



1. 발현과 역사적 의의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을 이해하려면 1521년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멕시코가 정복되었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 후 꼭 10년만에 테페야크(Tepeyac)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어느 인디언 원주민에게 발현하셨는데, 이 원주민은 최근에야 개종하여 유럽인 선교사로부터 예비자 교리를 배우고 있었다. 목격자의 이름은 후안 디에고이다. 후안 디에고는 이 발현을 목격한 뒤에 곧바로 후안 데 수마라가 주교에게 가서 말씀드렸으나,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발현 때, 후안은 주교를 납득시킬 수 있는 표지를 하나 달라고 복되신 동정녀께 청하였다. 성모님은 발현 장소에서 장미 몇 송이를 집으라고 말씀하셨지만, 때는 12월이라 추웠기 때문에, 또 그곳은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후안 디에고는 장미를 발견하고 이내 자기 외투에 그득함을 보았다. 그가 주교에게 가서 옷을 풀어 장미꽃들을 보여드릴 때, 마리아상이 외투에 새겨졌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 성모상이 과달루페에서 공경 받으며, 멕시코인들의 정신적 요람이 되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발현은 새 민족이 형성되는 시초에 그리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시초에 일어난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 발현은 후안에게 내린 메시지로써 완성되었다: 아직 예비자이던 후안 디에고는 그녀가 "생명을 주시는 참 천주의 모친"이라고 전했으며, 또 당신이 모성적 사랑을 보여준 이곳에 성전을 세우라고 명하였음을 전하자, 온 멕시코인들은 열광하였던 것이다.



2. 과달루페에서 일어난 발현의 중요성

발현이 새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멕시코인들이 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고로, 이 멕시코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 역사의 중요한 단계마다 성모님은 당신 백성들을 보살펴 주셨다. 과달루페는 멕시코의 정신이요, 보배이다. 이에 대하여 크리스토포 렌저 신부(O.F.M. CAP.)의 말을 들어본다: "후안 디에고의 외투에 기적적으로 새겨진 성상을 보면, 마리아께서는 당신이 임신했음을 보여주는 띠를 두르고 계신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이것을 마리아가 아직 낳지 않은 아들과 함께 그들에게 오셨다는 표시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의미를 보여주는 책으로 생각한다. 선교사들은 성상의 도움으로 믿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원주민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마리아가 선택하신 장소 테페야크 언덕은 인디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왜냐하면 테페야크는 이교신의 모친을 위해 신전을 세웠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 성모님이 바라시는 것은 참 천주의 성전을 이곳에 세우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녀가 참 천주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를 '토난친' 즉 '우리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때로는 '천주의 모친'이란 의미로 '테오토난친'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현재의 상황

과달루페는 모든 멕시코인들의 집이다. 여기서 그들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전구하시는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나 뵙는다. 모든 멕시코인들은 가능하면 자주 이곳을 순례한다. 오늘의 과달루페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세운 현대식 대성전이 세워져 있고, 순례자들을 돌보는 사목활동도 활발하다.



4. 요한 바오로 2세의 순례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1월을 기하여 당신의 첫 번째 사목 방문을 "믿음의 순례"라고 하시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성적 보호와 도움을 간구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으셨다. 그리고 마리아께 새롭고도 완전한 순종을 약속하시고, "나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고 외치시며, 라틴 아메리카 복음화의 장래를 당신의 손에 맡겨 드린다고 말씀하셨다(1979년 1월 25일, 파우미치노 공항에서).

또 과달루페 성모 대성전에 드린 미사 강론에서(1월 27일),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디언 후안 디에고가 당신을 일컬어서 테페야크의 사랑스런 부인이라 부른 이래, 당신은 과달루페의 어머니가 되셨고, 멕시코 주민들을 크리스챤 생활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1979년 1월 28일, 푸에블라에서 개최된 제 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 개막식에서, 성하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들의 이 집회는 멕시코를 비롯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가 교회의 어머니로 섬기고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영적으로 함께 하시는 이 곳에서 거행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마리아께서 '복음화의 별'이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1. 기적의 메달 성당 #



기적의 메달 [영] Medal of miracle [프] Medaille miraculeuse
성모 마리아가 1830년 1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바오로 자비 수녀회 내 소성당에 발현하여 가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수녀에게 직접 준 메달, 기적의 메달은 성모 마리아가 라부레 수녀를 통해 인간 모두에게 내려 준 은총과 구원의 상징이며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메달은 1947년 7월 27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침묵의 성녀"로 명명된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의 일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1806년 5월 2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1남매 중 아홉 번째였던 그녀는 전형적인 가톨릭 집안의 분위기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불과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했던 장녀 마리 루이즈가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자 자연히 가타리나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19세가 되던 무렵 하느님의 소명을 느껴 수녀회에 입회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좌절되고 1830년 초에야 파리 근교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이후 4월부터 파리 시내에 있는 수녀회 본원에서 수련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그녀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7월 18-19일 밤이었다. 수녀원 내 소성당에 있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좋으신 하느님이 당신에게 하나의 임무를 부과하시려 합니다. 그 임무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반박을 받을 것이지만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였다. 또한 "시대가 좋지 않습니다. 불행이 프랑스를 덮칠 것이고, 왕좌가 뒤집혀질 것이며, 전세계가 온갖 종류의 불행에 의해 뒤집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대로 걸어 나오세요. 거기서 믿음과 열정을 갖고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총이 널리 내려질 것입니다. 은총은 강한 자에게도 약한 자에게도 모두 내릴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성모의 두 번째 발현은 1830년 11월 27일 대림 첫 주일 전날인 토요일 저녁이었다. 장소는 마찬가지로 소성당 내의 강론대 옆이었는데, 흰색 옷을 입고 일종의 공모양의 것을 밟고 서 있었다. 또한 아주 귀해 보이는 둥근 물건을 양손으로 떠받친 상태로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라부레 수녀에게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둥근 물체는 전세계, 특히 프랑스 그리고 특별히 모든 사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나에게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내리는 은총의 상징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성모의 주위에는 타원형이 판같은 것이 형성되었는데, 그 판에는 금으로 된 글씨로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로서"라고 새겨져 있었다. 성모는 "이 모형대로 메달을 새기도록 하세요. 이 메달을 지니는 사람들은 커다란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은총은 믿음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내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메달의 전파]


라부레 수녀는 성모의 최초 발현 사실을 알라델 신부에게 처음으로 알렸다. 그러나 알라델 신부는 젊은 수련 수녀의 상상으로 간주했고 두 번째 발현 사실을 듣고도 마찬가지 반응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성모의 발현이라는 사실 때문에 고민한 끝에 알라델 신부는 파리의 대주교에게 보고하였다. 대주교는 메달을 조각하는 것이 신앙에 전혀 위배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이를 허락하였다. 1832년 6월 30일에 최초의 메달이 주조되었고, 이 메달을 통해 많은 치유와 회개가 있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그때부터 대주교는 신자들에게 메달을 지닐 것을 권장하였으며, 일반 신자들은 그 메달을 '기적의 메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메달의 모양]


타원형으로 된 이 메달의 전면에는 죄를 상징하는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상태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이미 언급한 대로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십자가가 'M' 이라는 글자를 들어올리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M'은 성모 마리아 즉 예수의 십자가와 수난의 신비에 깊이 동참하고 있는 성모를 상징한다. 그 밑에는 두 개의 심장, 즉 왼쪽의 가시관에 둘러싸인 것은 예수 성심, 오른쪽의 칼에 찔린 모양을 한 것은 성모 성심을 의미한다. 또한 그 주위에는 12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예수의 12제자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도가 될 것을 권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메달은 신덕·망덕·애덕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적의 메달 성당]


성 빈첸시오 바오로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악 수녀에 의해 세워진 자비 수녀회에 소속된 이 소성당은 파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도 많은 순례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당 내 제대 위편 벽에는 성모의 첫 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정면에는 메달과 같은 모양의 성모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 번째 발현 모습을 조각한 성모상이 있으며, 그 밑에는 사망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실 발굴 당시(1933)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라부레 수녀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기적의 메달", 변기찬


2-2. 기적의 메달(Miraculous Medal)-뤼 뒤 박의 성모 ##



1. 기원

1830년, 동정 마리아께서 파리의 박(Bac) 거리 140에 위치한 애덕의 딸 수녀회 모원 성당에서 발현하셨다. 목격자는 24세의 가탈리나 라부레인데, 그녀는 그해 4월에 입회한 수련자였다.

첫 발현은 그해 7월 18-19일 사이의 밤중에 일어났다. 이때 가타리나는 성당 합창단석에 앉아 계시는 복되신 동정녀를 목격했다. 복되신 동정녀는 당신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수련자에게 긴 말씀을 하셨고, 그 후 몇 년 뒤에 곧 사실임이 증명된 몇 가지 예언적인 말씀을 일러 주셨다.

1830년 11월 27일, 가타리나는 재차 복되신 동정녀를 목격하였다. 공동체의 회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묵상하고 있는 시간인 아침 다섯 시경이었다. 이번에는 복되신 동정녀가 지구의(儀) 위에 서 계시는 모습으로 발현하셨는데, 당신 팔을 지구 위로 활짝 펼치셨을 때, 펼쳐진 당신 손에서 밝은 빛살이 환하게 내리 비추고 있었다. 이 광경 주위에서 가타리나는 금색 글씨로 쓰인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얼마 후, 발현은 사라졌지만, 가타리나는 십자가 위에 있는 M자를 식별할 수 있었는데, 그 글자는 예수와 마리아 성심 위에 박혀 있었다. 그 다음에 가탈리나는 "이 모형에 따라 메달을 만들어라" 하시는 복되신 동정녀의 말씀을 들었다. 이리하여 이 메달의 기원이 시작되었고, 이 메달을 통하여 온갖 형태의 은총이 수없이 내려졌기 때문에 "기적의 메달"이란 칭호를 얻어 보편적인 신심으로 정착케 되었다.

1830년의 이 발현은 원죄 없이 잉태하신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을 크게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꼭 24년 후에 비오 9세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가톨릭의 믿을 교리로 선포했던 것이다. 그리고 1858년에 있었던 마시비엘의 "성모"는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나는 원죄 없으신 잉태의 모후"라고 당신의 신원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기 때문이다.

이 기적의 메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구세사의 생생한 상징임이 전 세계를 통하여 입증되었다. 순례자들은 뤼 뒤 박에 있는 이 발현 성당을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들은 세계 도처에서 몰려 와 마리아가 가르친 메시지를 자신의 귀로 다시 듣고 확인하며 기도하고, 그렇게 마리아를 섬기려고 한다. 또한 순례자들은 1947년에 시성되신 가타리나 라부레를 기적의 메달의 성모의 사자로서 공경한다. 이 겸손한 수녀는 그 후에도 수도원의 하찮은 일만 하고 성모 공경을 전파하다가 45년간의 수도생활을 마치고 주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1876년 12월 31일에 운명하셨다(1806-1876).



2. 상징

1) 기적의 메달은 단순한 작은 메달이 아니라 하나의 징표이다.

사실 메달은 판에 새겨져 있는 대상의 표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의 메달은 자연적인 관계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부족한 의미를 파악케 하는 구체적인 표시 내지 상징인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재료나 새겨진 말마디를 뛰어넘어 기적의 메달이 지니고 포함된 그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고대의 "상징적 물건"들을 가끔 발견하고, 우리가 그 당시에 살지 않아서 모르고 지내던 여러 가지 의식 구조와 삶을 알기 위하여 발견된 대상을 재료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런 물건들은 대개가 그 시대의 생활과 의식을 밝혀 주든지, 무의식의 세계와 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가타리나 라부레를 통하여 기적의 메달을 주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이것을 하나의 상징적 언어로 사용하신 것이 분명해진다.



2) 동정녀는 빛 가운데 계신다

a) 흰 수건을 쓰신 동정녀: 동정은 흔히 손상되지 않는 것, 거룩한 것, 접촉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심지어 수건 자체도 봉헌 혹은 축성을 가리키는 언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마리아는 완전히 개방적인 자세로 하느님의 풍요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천주의 동정 어머니는 태양을 향한 땅"을 상징하고, 따라서 이 상징이 다시 "변화된 땅", "빛의 땅"이 되는 것이다.

b) 빛의 상징: "그녀의 모습은(가타리나의 말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는 감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다..." 그녀의 손에서 내리비치던 빛살은 복되신 동정녀가 전달해 주시는 은총의 상징이다. 성서에서도 빛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 구원 그리고 행복을 상징하고, 반면에 암흑은 "악마, 불행, 벌, 파멸, 그리고 죽음의 상징"이다. 빛과 밝은 빛살로 눈부신 마리아는 종말론적 하늘에, 산 자의 빛나는 지역에 계시는 듯 보인다. 교부들에 의하면 빛은 천상 세계와 영원한 세상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주님안에 계시는 빛이신 마리아는 위선과 불투명과 정반대이다. 마리아는 완전한 진실이시다.



3) 승리자이신 동정녀

a) 반지를 끼신 손: 우리는 성모님이 양손을 널리 펴시는 모습과 반지를 끼신 손에 대해서도 퍽 관심이 있다. 원래 마리아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필요 없는 분이시다. 마리아는 소유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다. 당신의 손은 환영하고 맞이하기 위하여 펼치셨다. 반지는 성실한 유대를 가리킨다. 반지는 계약, 서원, 공동체, 동일한 운명체의 상징이다. 하느님의 신부인 마리아는 인류에게조차 성실하시다. 마리아는 새 세상을 위해 하느님과 체결한 새 계약의 인격화이다.

b) 누른 점이 박힌 푸르스름한 뱀: 유태인과 크리스챤의 눈에 사탄과 악의 세력의 상징으로 내비친다. 뱀은 동정녀의 발꿈치를 물려고 했다. 이것은 선악의 피나는 전투의 현장인 세상에 대한 극적인 환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뱀은 구약성서에 의하면 태초부터 인류의 적수로 나타났다. 사탄의 정복자인 동정녀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암흑의 영역을 무력화시키고 피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악의 세력을 부수어 평화를 이룩하게 하신다.

c) 지구: 지구는 우주 속의 지리적인 총체 또는 절대 권력의 법적 통일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지구는 사람의 권력이 행사되는 한정된 지역을 가리킨다. 이 권력은 유한하다. 동정녀의 발아래 있는 지구는 온 세상, 온 나라 그리고 모든 영혼들에 대한 당시의 왕권을 상징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녀에게 속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승리자이신 동정녀가 되신다(J. 귀똥).



4) 함께 수난하시는 동정녀

a) 십자가: 십자가는 십자가상 죽음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인간사, 즉 그분의 인성과 결부되어 있다. 십자가는 흔히 "가장 완전한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십자가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마주치고...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엇갈린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 사이의 연결, 밑바닥에서 꼭대기, 꼭대기에서 밑바닥을 연결하는, 우주의 영구적 일치를 도모하신 중재자의 상징이다. 여기에 동정녀가 참여하신 것이다.

b) 예수와 성모 성심: 기적의 메달 뒷면에 두 번씩이나 되풀이 표시된 성심은 예수와 성모 성심을 가리킨다. 성서적인 전통에 따르면, 마음은 내적 인간, 영적인 생활 그리고 한 존재의 심장부를 상징한다. 심장은 첫 번째 생성 기관이지만 죽을 때에는 맨 마지막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장은 죽을 때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한없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 마음은 자신을 온전히 바쳐서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본받도록 우리 의식에게 호소한다. 그러므로 기적의 메달의 성심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절대 필요한 치료약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5) 또 다른 상징

기적의 메달은 상기시키고(과거), 계시하며(현재), 그리고 보호한다(미래).

a) 기적의 메달은 구원 사건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하나의 기념물이다.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나타나신 복되신 동정녀의 발현, 시간과 영원과의 만남, 땅과 하늘과의 만남, 역사의 주이신 하느님이 마리아의 중재를 통하여 인간사에 개입하신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킨다.

b) 기적의 메달은 계시의 말씀이다. 전면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에게 제시된 구원의 원형으로 선택되신 분에게 비치는 하느님의 빛이 있다. 이것은 만민이 그분의 빛 가운데 빛날 것을 상징한다. 뒷면에는 엄숙하고 감추인 듯한 메시지, 곧 사랑과 십자가가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수난과 우리 성모 마리아의 공동 수난으로 설명할 수 있다.

c) 기적의 메달은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다. 이것은 군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어물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기적의 메달의 의의를 생각하더라도 결코 그 진가는 감소되지 않는다. 기적의 메달은 그만큼 상징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영적 세계, 하느님과의 일치를 꾀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라 살레트의 성모(La Salette) ##




1. 발현

1846년 9월 19일(성모 칠고 축일 전 날), 한 "아름다운 부인"이 프랑스 알프산의 라 살레트(해발 6,000피트) 근방에서 양떼를 돌보던 두 어린이에게 발현하셨다. 막시민 지로는 11세이고, 멜리니 칼바는 14세였는데, 이 아이들은 꼬르(이세르) 지방에서 이곳의 두메 산골로 와서 남의 양을 치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부인'이 처음에는 바위 위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가, 일어나서는 프랑스어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말씨는 그 지방 말투였으나 부드러웠고, 여전히 우시는 모습이었다. 그런 뒤, 그 부인이 한 발짝 다가서시는 듯 하더니, 곧 밝은 빛 속으로 사라지신 것이다. 그 부인이 감싸인 밝은 광채는 망치와 못 그리고 쇠사슬과 장미꽃들로 둘러싸인, 그녀의 가슴에 있는 십자가로부터 비치는 듯하였다.

만 15년 후인 1851년 9월 19일, 그레노블의 주교 브뤼아르는 이 사건들과 관련되는 증언들과 메시지의 내용 등을 면밀히 조사한 뒤 교서를 발표하고, 이 발현은 모두가 사실임을 선언하였으며, 신자들은 의심 없이 믿어도 좋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이 발현 당시부터 물밀 듯 밀려오던 신자들에게 큰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처음부터 순례자들은 발현 장소로 오르는 좁은 산길을 꽉 메울 지경이었는데, 그들은 이 부인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 한적한 산꼭대기에는 성모님의 명에 따라 큰 성당이 들어섰고 또 숙박소도 세워졌다. 그 후 이 발현 이야기는 신문과 다른 대중 매체를 통하여 전 세계로 알려졌고, 신자들의 회개 운동이 먼저 그 지방에서 일어나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어서 1872년에는 라 살레트가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라 살레트의 성모님은 기도와 회개 그리고 봉헌의 큰 물결을 이루게 하였다. 기도와 회개 그리고 봉헌 운동은 비단 개인에게만 그친 게 아니라, 수도회와 수도원 단위, 신자와 신자 단체 단위로 조직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신자들은 어디서나 그 영향을 목격할 수 있었으며, 성지 봉사자들은 수도회나 선교회로 발전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들 가운데에 "라 살레트의 성모선교회"와 "라 살레트 수녀회"가 가장 돋보인다.

라 살레트의 성모님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성인들, 사목자들 그리고 저술가들과 일반 신도들은 수없이 많은데, 돈 보스코 성인, 아르스의 성자 요한 비안네, 베드로 에이마르,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 프레보스르 신부 그리고 뒤팡루프 주교, 블로와, 위스망, 쟈끄 마리땡, 프시카리, 뽈 끌레델, 프랑소와 모리악 등이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오늘날 "라 살레트" 성지는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 "작은 라 살레트" 성지가 개발되어,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사랑의 눈물로 회개의 길로 들어서고 있으며, 수많은 순례자들은 마리아 어머니의 눈물 속에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2. 메시지

라 살레트 성모님의 메시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 즉 인류 구원에 대한 어머니 마리아의 협력을 잘 표현해 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죄인들의 화해자이다"

"왜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주일도 지키지 않고 있다. 세상 것에 너무 빠져서 하느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금육이니 금식은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이렇게 우는 거란다. 그러니 가서 이렇게 일러주어라.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쳐서 하느님과 화해하라. 내 말을 들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지 않으며 말할 수 없이 큰 재앙이 곧 닥칠 것이다."

이어서 그 부인은 말씀하셨다. 프랑스와 영국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버티면 앞으로 7년 동안은 큰 흉년이 들어 밀을 심어도 다 말라 타 죽어버릴 것이고, 포도는 썩어 무너질 것이며, 가축들도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할 것이고, 역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누구 하나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부인의 말씀대로 흉년이 들고, 이윽고 1870년에는 보불전쟁까지 터지자, 그때서야 "라 살레트"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회개의 순례객들이 끊이질 않고 몰려 왔다.

그 후막시민과 멜라니아는 성모님이 천상으로 데려 가셨고, 이 아이들의 유해는 라 살레트 성전에 안장되었으며, 메시지를 받은 곳에는 그 때 그 모습을 재현시켜 놓았고, 성모님이 앉아 우시던 바위 밑에는 기적의 물이 흘러내린다. 이곳이 라 살레트의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이다.



3. 메시지의 의의

성모님의 메시지는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첫째, 라 살레트의 성모님은 십자가의 구원의 의미를 재삼 음미하게 한다. 그 메시지 자체는 19세기 프랑스와 인접 지역들의 재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절망적인 듯 하지만, 당신 구원을 성취하신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인류의 동참 없이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망각한 현대인에게 다시금 믿음을 소생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성모님의 중재가 크게 기여함을 우리에게 밝힌다.

둘째, 성모님의 메시지는 우리의 해방을 호소하며, 주일을 거룩히 지낼 것을 요구하신다. "성자의 이름"과 "그분의 팔"을 신뢰하라고 이르신다. 또 시대의 징표를 읽고, 회개 생활을 재촉해야 함을 일깨우신다. 이 회개 생활 가운데, 특히 마리아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매일의 일상적인 기도생활, 주일 미사 그리고 사순절을 엄수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만인에게 전하라는 요구도 내포되어 있다.

셋째, 이 메시지는 인생의 넓은 길은 외면하고 "좁은 길"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래서 해발 1800m의 산꼭대기에서 발현하신 듯하다. 복되시고 아름다우신 어머니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고린 5,20)" 하며 애소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서이 곧 화해임을 일깨우시는 것이다. 라 살레트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4. 루르드 #



루르드 [프] Lourdes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소도시로 성모 마리아 발현지. 루르드 성지는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번에 걸쳐 성모 마리아가 성녀 벨라뎃다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에게 발현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며, 많은 병자들이 이곳을 방문한 후 병이 치유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성모 발현과 메시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던 벨라뎃다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하는 열네 살까지 문맹이었고 종교 교육조차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식까지 앓고 있었다.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정오경 나무와 짐승의 뼈를 줍기 위해 마을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가브(Gave) 강변의 동굴 근처로 간 벨라뎃다는,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하늘은 잠잠하였고 나무들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동굴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서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 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아주 '젊게 보이는 어떤 여인'을 보았다. 벨라뎃다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미소를 띠고 서 있는 그 여인 앞에서 잠시 묵주 기도를 바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으나, 그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어머니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그 일로 둘은 담요를 털 때 사용하는 방망이로 어머니에게 맞았지만, 벨라뎃다는 2월 14일과 18일에 또다시 동굴로 갔다. 그때 '동굴의 젊은 여인'이 "앞으로 15일 동안 매일 이곳에 와주시겠습니까?"하고 묻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벨라뎃다는 2월 19일 금요일부터 3월 4일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동굴로 갔으며, 2월 22일 월요일과 2월 26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동굴의 젊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매번 그 '여인'은 조금씩 벨라뎃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8일째인 2월 24일 수요일에 "회개하시오.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오.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손가락으로 샘물의 원천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였다. 또 13일째인 3월 2일 화요일에는 "사제들에게 전해 이곳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게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짓게 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이야기는 곧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 '동굴의 젊은 여인'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월 21일에는 100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15일째 되던 3월 4일에는 8,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모두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실망하고 흩어졌다. 이제 모든 일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3월 25일 목요일 아침, 벨라뎃다가 다시 동굴로 갔을 때 이 '젊은 여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네 번에 걸쳐 반복된 질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던 이 '여인'은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 Immaculata conceptio"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벨라뎃다는 곧바로 마을의 주임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인 1854년에 이미 당시의 교황 비오 9세는 동정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을 교리로 발표하였으나,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써 벨라뎃다는 전세계에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의 전령자가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4월 7일 수요일과 7월 16일 금요일에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4월 7일에는 촛불이 벨라뎃다의 손가락에서 오랫동안 탔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기적이 있었고, 이 일은 7월 16일 다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7월 16일 발현에 대해서는 그녀가 자세하게 언급하기를 회피하여 아직까지 비밀로 되어 있다. 타르브(Tarbes) 교구장 로랑스(Laurecce) 주교는 성모 발현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였는데, 그녀의 증언, 기도와 회개 운동 그리고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하여 1862년 1월 18일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로랑스 주교의 교서는 성지 순례의 토대가 되는 인정서였다. 그는 교구 내 신자들에게 '루르드 동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소망에 응답하기 위한 성당을 동굴 위에 건립할 것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성직자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벨라뎃다와 동굴을 보기 위하여 루르드에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성지화 작업 및 성당 건립]


1864년 4월 4일, 여러 주교들과 200여 명의 신부들을 비롯하여 1만 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체 거동과 더불어 루르드의 성모상이 축성되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동굴을 중심으로 한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다. 동굴 위에 건립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전은 크게 지하 성당, 상단부 대성전, 로사리오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성 비오 10세 대성전이 있다.

1866년 5월 19일 벨라뎃다가 참석한 가운데 봉헌된 지하 성당은 뾰족 아치로 된 세 개의 중앙 회중석이 모두 28개의 짙은 색 대리석 기둥에 의해 떠받쳐 지고 있으며, 기둥 상단부는 아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앙의 제대는 1966년과 1973년에 개수되었으며, 제대 위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성체 현시가 이루어진다. 성당 폭은 가장 넓은 곳이 10m이며, 길이는 25m이고 높이는 중앙 회중석 아래 부분이 가장 높아 4.2m에 이른다.

1862년 처음으로 구상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전은 13세기 고딕 양식 설계로 이루어졌는데, 1871년에 낙성되고 1876년에 축성되었다. 고딕 양식의 종루는 그 높이가 지상 70m에 이르며, 금색이 칠해진 중심부는 성모 마리아가 벨라뎃다에게 원죄 없는 잉태를 알려 준 말씀이 문자로 새겨져 있다. 입구 중앙에는 왕관을 쓴 루르드의 성모상이 있으며, 성당 후면부에는 여러 개의 소성당이 있는데 이 소성당들은 각각 로사리오의 성모, 승리의 성모, 가르멜 산의 성모, 살레트의 성모에게 봉헌되었다. 성당의 중앙 회중석과 중심부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각 소성당에는 루르드에서의 발현, 순례, 벨라뎃다의 일생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래스 있다.

신비잔틴 양식으로 설계되어 1881년부터 착공된 로사리오 대성전은 1889년에 완공되어, 1901년 10월 6일 교황 레오 12세의 교황 대사에 의해 축성되었다. 성당 내에는 15개의 소성당이 있으며, 약 2,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지하에 길이 200m, 폭 81m의 규모로 지어진 성 비오 10세 대성전은 1958년 3월 25일에 축성되었는데, 2만 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 면에서 거대하다. 성당 내부는 아무런 지주나 기둥도 없이 건축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 또는 밀알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1988년 3월 25일 성 벨라뎃다 성당이 17개월간의 공사로 새로이 건립, 축성되었는데, 이 성당은 동시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순례자들이 여러 형태의 모임을 위해 40명부터 500명까지 들어가는 방들이 있는 이 성당은 햇빛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지어졌다.



[성지 순례와 질병의 치유]


각지에서 오는 순례객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여 이미 1872년에 6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있었고, 이후 교통 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1908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1964년이래 매년 30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방문하였으며 현재는 연간 400만 명이 넘는다. 순례객들 중에는 환자들도 있는데, 때로 이들 가운데 병이 치유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었으며, 1866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루르드 연보> 에는 더욱 많은 놀라운 사실들이 보고되고 있다. 1882년 의학적 증명을 위해 의사 생 마클루(Saint-Maclou)가 세운 사무소에서는 1905년까지 총 2,000여 건의 기적적인 치유 사실을 증명하였다. 교황 비오 10세는 시성을 위한 공정한 판단이 될 수 있도록 이 치유 사실들을 이중적 판단, 즉 의학 및 종교적 판단과 함께 교회법에 맞는 형태로 정리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수천 건에 이르는 치유 기적 중에서 각종검사와 실험을 통해 1858-1862년의 8건, 1907-1913년의 33건, 1946-1970년의 24건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현재 루르드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의 순례지가 되었으며, 기적에 의한 병의 치유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 한국 가톨릭 대사전, "루르드", 변기찬


5. 퐁맹(Pontmain)의 성모 ##




1. 큰 재앙

1870년의 전쟁은 참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였다. 프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하였고, 국가는 완전히 함락되는 존폐의 위기에 처하였다. 1871년 1월 17일 아침, 프러시아 군대는 메엔느 지방의 라발 외곽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금화 약 3백만 프랑 상당의 무거운 전쟁 비용을 준비해야만 했다. 또 달아난 군인들의 횡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였다. 그들은 관리들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 말하자면 공권력이 무너진 무질서 그대로였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철길에서 총살을 당했지만, 이것도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는 39년 동안이나 복무해 왔지만 이런 암담한 처지는 생전 처음입니다"고 16대 대장은 하소하였다.



2. 희망의 징표

1월 17일 저녁 무렵, 메엔느 북쪽의 작은 마을인 퐁맹은 마치 흰눈담요를 뒤집어 쓴 듯이 조용하였다. 주민들은 걱정스러웠지만 누구하나 평상시처럼 밖으로 나가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한 헛간에는 유진과 요셉 바르베데뜨라는 두 소년이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 몇 분 전쯤, 일을 쉽게 마친 유진이 헛간을 나서다가, 공중에서 한 부인을 보았던 것이다. 그 부인은 암청색 옷을 입고 계셨는데 거기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부인은 다가오라는 시늉으로 손을 아래로 펴셨고,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요셉 바르베데뜨 역시 몇 분 뒤에 뒤따라 나오다가 그 부인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두 소년의 아버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용감했던 이 두 소년은 어머니를 불러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 부인은 집안에서 안경을 가지고 와서 보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들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고, 소년들은 다른 일을 조금 더 한 뒤에 저녁 먹으러 갔다. 막 식사를 마친 후, 소년들은 또다시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다. 그래서 학교의 수녀들이 불려왔지만, 그들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던 두 소년은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별이 빛나는 암청색 옷을 입고 검은 수건을 썼으며 금관을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던 것이다.



3. 저녁기도

이리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 소년 주변에 몰려왔다. 35세 된 퐁맹 주임 사제이신 게렝 신부도 와 있었다. 눈 속에서, 동정녀께 드리는 뜨거운 기도가 열기를 더해갔으며, 마리아 어머니께 대한 대화들이 오갔다. 주민들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 발현이 일어났고, 사방은 온통 별들로 가득해졌다. 4개의 촛불이 켜진 거대한 푸른 타원형 같은 것이 그 주위를 둘러쌌던 것이다. 주민들은 무릎을 꿇었다. 어떤 이는 눈 위에 또 어떤 이는 헛간에서 무릎을 꿇었다. 헛간의 작은 문은 열려 있었다. 마리 에드워드 수녀는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기도를 선창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고, 기도가 계속되는 만큼 더욱 더 커져 보였다. 부인 모습이 더 커지는 것은 주변 상황과 조화 있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푸른 타원형도 더 확산되었으며, 발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별들은 마치 짝지어서 동정녀의 발 아래에 모여들었다. 이 별빛은 부인의 옷을 여러 색깔로 빛나게 했고, 암청색 옷은 더욱 빛났다.



4. 희망의 메시지

로사리오 기도를 끝낸 주민들은 브리톤의 아름다운 선율로 마니피캇을 노래했다. 그러자 흰색 깃발이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큰 금색 글씨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두 소년은 그 글씨를 보려고 애썼다. 잠시 후, 그들은 읽을 수 있었다: "내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은 오래지 않아 대답을 주실 것이다. 내 아들을 움직이게 하여라."

이 메시지는 주민들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임 신부는 "희망의 어머니" 찬미가를 노래하자고 제안했다. 어린이들은 기뻐 날뛰며 온갖 손짓을 다 해가며 성가를 불렀다: "저 미소 지으시는 부인을 보라! 오, 얼마나 아름다우신가!" 찬미가가 끝날 무렵, 글씨가 새겨진 흰 깃발도 사라졌다.



5. 십자가 표시

주민들은 이제 보속의 기도를 바쳤고, 보속의 찬미가를 노래 불렀다: "자비로우신 예수여, 이제는 통회하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슬픈 모습이 동정녀에게서 역력했고, 어린이들에게도 이 슬픔이 반사되었다. 그런 후, 거대한 붉은 십자가가 보였는데, 아름다운 붉은 글씨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적힌 현수막 같이 깃발이 휘날렸다. 그 동정녀는 어린이들에게 십자가를 제시하였다. 슬픈 모습을 하신 동정녀는 특히 요셉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셨다. 후일, 그는 이렇게 글을 썼다: "동정녀의 슬픔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몇 달 후에 저의 부친이 임종하셨을 때, 슬픔에 북받힌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에 담긴 슬픔이 어린아이의 마음에 어떤 충격을 주는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본능적으로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복되신 동정녀의 슬픔입니다. 그 동정녀는 죽어 가는 아들을 보시며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예수의 어머니의 슬픈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6. "모두 끝났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군중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얼마 뒤에 붉은 십자가는 사라졌고, 동정녀는 당신의 처음 자세를 취하신 다음, 손을 아래로 펼쳐 보였다. 이제는 흰 소십자가들이 그녀의 양 어깨 위에 나타났다. 부인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주임 사제의 제안에 따라 저녁 기도가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헛간이든 눈 위이든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무릎을 꿇었다. 거대한 흰 수건 하나가 동정녀의 발에서 나타나, 천천히 하늘로 쳐 들렸다. 이윽고 이 수건이 동정녀를 가리워 버렸다. 저녁 기도가 끝났을 때, 이 발현도 사라졌다. 두 소년은 이렇게 말하였다: "모두 끝났다." 시간은 저녁 9시경이었다. 그 후 모든 군중은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7. 결론

천주의 모친이 발현하신 퐁맹의 동정녀는 먼저 당신 아드님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의 희망에 서광을 비치는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퐁맹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기뻐하며, 마을 주민들과 꼭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 외에 덧붙일 말은 전혀 없다. 두 시간 이상 계속된 이 발현 동안, 주민들은 기도했고, 이 메시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할 의지를 불태웠을 따름이다.

6. 녹크(Knock)의 성모 ##




1. 발현

성모 마리아의 많은 발현 가운데, 아일랜드 녹크의 발현은 매우 특이하다. 왜냐하면 아무런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발현은 가톨릭 해방령(1829)이 반포된 지 꼭 50년 후에 있었는데, 그 이후 가톨릭 교회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보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1879년 8월 21일은 성모 몽소승천 8부 전야였다. 이날 저녁 7시 30분 경에 마리아는 마요 마을(지금의 녹크) 성당 남쪽 박공벽에서 발현하셨다. 이 발현은 꼭 두 시간동안 지속되었고, 15명이 목격하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초저녁이었으나, 발현하신 분의 모습은 전혀 비에 젖지 않으신 채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목격자들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복되신 동정녀는 흰 옷을 입고 계셨고, 크고 찬란한 화관을 목에 두르셨다. 그녀의 손은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들어 올려져 있었고,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 오른편에는 마리아를 향하여 머리를 기댄 성 요셉이 있었고, 왼편에는 복음사가 성 요한이 서 있었는데, 그는 주교복장을 하고서 왼손에는 책을 잡고 오른손은 마치 설교할 때처럼 치켜들고 있었다. 성 요한 왼편에 제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십자가 하나와 8주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양 한 마리가 있었다. 제대 뒷편이 되는 박공벽은 온통 빛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2. 메시지

비록 성모님이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이 발현의 공통된 해석은 아일랜드 백성들이 그들의 "길"을 고수하고 확고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마리아는 개인적인 성성을 구체화시키셨다: 성 요한은 교회의 옹호자이고 전파자이다. 성 요셉은 자부적 사랑을, 십자가는 희생을, 제대는 가톨릭 생활에 필수적인 힘의 원천임을 계시하셨다.

발현의 첫 번째 교훈은 미사성제이다. 발현의 분위기가 이 점을 지적하는 듯했다. 예컨대 희생될 어린양이 있는 제대, 성모님의 몸짓, 주교복을 입은 성 요한의 모습, 그리고 성 요셉의 경건한 태도가 마치 미사 분위기를 말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 발현은 미사와 관련되는 또 다른 큰 진리를 가리키는 듯 하다고 한다. 즉 마리아의 중재가 필요하며, 그 중재의 독특한 성격을 강조하는 듯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승천과 대관 때문으로 본다.

미첼 오케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녹크의 발현에서 우리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녀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기도하며 당신의 의식이 우리들의 삶속에 스며들도록 하라시는 초대장을 보아야 한다."



3. 성지

녹크는 지금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고, 옛 성당 외에 또 다른 대성당을 지었다.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정밀히 검사하는 보건국도 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은 놀라운 영적 치유에 대한 경험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9월 30일에 이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발현 백주년을 기념하셨다: "1879년 8월 21일, 그 은총의 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이 부자유스런 수많은 환자들과 고난받는 사람들이 천주의 모친께서 우리를 천주 성자께 인도해 주시리라는 신뢰 때문에 치유되었고, 믿음으로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7. 파티마(Fatima)의 성모 ##




1. 발현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제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비록 가난했으나 순진했고 티없이 맑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였고, 그녀의 나이 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 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 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은 첫 발현날인 5월 13일처럼 일찍이 그 곳을 향하였다. 약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년 10월 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 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2. 파티마의 메시지

파티마의 공적인 메시지는 루르드의 메시지와 거의 같다.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마리아는 죄인들을 위한 기도와 로사리오기도 그리고 보속행위를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10월 13일의 말씀은 이렇다: "나는 생활을 개선하고, 죄로 인하여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권고하기 위하여 왔다. 나는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를 개선한다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비밀"도 일러 주셨는데, 루치아가 이중의 몇 가지를 전달하였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머지 않은 장래에 또 다른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에 관한 공경이 주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루치아가 받은 마지막 비밀은 요한 23세 교황님께 맡겼다. 루르드에서처럼, 파티마의 "발현"은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게 하였다. 1917년 여름부터 시작된 순례는 놀라운 숫자에 달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포르투갈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았다. 1931년 5월 13일,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 인정이 있은 다음부터는 순례자들이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교황님들도 파티마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오 12세,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순례하고 기도하였다. 교황님들의 이런 관심이 순례자의 수를 더욱 많게 하였고, 마리아께서 어린이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묵상하며 마리아 어머니의 말씀을 실행하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3. 파티마와 교황

a) 비오 12세: 세상을 마리아 성심에 봉헌하심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하여 모여든 순례자들에게 라디오 메시지를 보냈다. 성모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리고 기도하라고 권하신 뒤, 교황은 세상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신 것이다.

또한 파티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1946년 5월 13일, 비오 12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상 대관을 위하여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교황은 "파티마의 장관(壯觀)"은 "티없이 깨끗하신 여왕이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인 자애로운 성심의 활동"이라고 하시고, 마리아의 끊임없는 보호가 포르투갈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교황은 마리아가 천상적이며 우주적인 여왕이심을 찬양하시며, 파티마 발현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b) 바오로 6세: 인간 가족을 성모님께 봉헌하심

1964년 11월 21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제 3 회기 폐막식에서,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 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쇄신을 당부하셨다: 1967년 5월 13일, 코바 다 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다. 그때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다.

c) 요한 바오로 2세: 파티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2년 5월 12일에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하심에 감사드리고, 세상의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하셨다. 1982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첫 발현일을 즈음하여 교황은 발현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신 후, 75세의 가르멜 수녀이며, 발현을 증언했던 세 어린이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셨다. 이때, 교황은 파티마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역설하였다.



8. 보랭(Beauraing)의 성모 ##




"당신의 마지막 발현 때, 동정녀께서는 이 산사나무 아래서 당신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보여주셨다." 파티마의 발현 이후, "이 세대를 위한 또 다른 징표"가 1932년, 벨기에의 보랭에서 드러났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까지 무려 33번이나 발현하셨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섯 아이들에게 성모님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발현하셨다. 그들은 두 집안의 아이였는데, 두 집 모두 믿음이 부족하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형편이었다. 그들 중에서 네 아이는 지금도 살아 있으나, 다섯 번째 아이는 1978년에 선종하였고, 네 명의 생존자 중의 한 여자아이는 지금 과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발현을 목격했던 다섯 모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는데, 한결같이 지혜와 용기 그리고 완전한 자기 이탈의 정신을 보여주어 세인의 칭송을 들었다. 그들은 지금도 성모님께 한없는 충성을 바치며, 발현 장소를 소중히 가꾸는데, 그들이 부르는 발현 장소 이름은 "정원"이다.

이 정원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이었다. 세 번째 발현이 있던 날 저녁 무렵,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길을 따라 오시다가 정원의 산사나무 곁에 머무시는 것이 보였다. 어린이들은 믿어지지 않았고 또 그들이 또 다른 "벨라뎃다"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발현이 일어난 뒤로 만 9년되던 해인 1942년, 샤르브 주교(+1977)는 보랭의 성모 마리아 공경을 잠정적으로 인정한 뒤 1949년에야 비로소 모든 사실이 옳다는 판정을 내렸다.

아이들은 마리아가 발현하신 마지막 여섯 번의 저녁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의 신앙 생활과 가정생활을 안타깝게 여기시면서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 성심의 표시와 메시지를 받았으며, 성심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똑똑히 알게된 것이다. 동정녀는 당신을 아이들에게 이렇게 소개하셨다: "나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다"(1932년 12월 21일),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하늘의 여왕이다"(1933년 1월 3일).

그리고 세 번에 걸쳐 같은 요구를 하셨다: "많이 기도하여라. 항상 기도하여라." 그리고 "성당을 짓고"(1932년 12월 17일), "사람들이 이 성지로 순례"하도록(1932년 12월 23일) 마리아께서 교회에 요구하셨다.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복음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 "내 아들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희생을 바쳐라. 안녕"(1933년 1월 3일). 지정 순례일은 8월 22일이다. 세계 도처에서 몰려드는 순례객들은 이날 하루에도 200,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9. 바뇌(Banneux)의 성모 ##




1. 발현

1933년, 가난한 이의 동정녀 발현이 있었다. 바뇌는 벨지움의 작은 마을인데 리에쥬에서 15마일 가량 떨어진 곳이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신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당시 11세이던 마리아뜨 베코(Mariette Beco)이다. 마리에뜨는 소나무 숲이 무성한 등성이를 따라 살고 있던 어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일곱 자녀 중의 맏이였던 것이다.

발현은 1933년 1월 15dfl부터 3월 2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 저녁 일곱 시경에 이루어졌다. 복되신 동정녀가 어린 마리에뜨를 방문하시고, 이 어린이에게 전하신 메시지가 차츰차츰 전파되자마자, 바뇌에서는 동정 마리아께 대한 공경이 불같이 치솟았고, 연일 순례자들이 쇄도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동정녀가 오신 이 엄청난 은혜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복음서의 반향처럼 들리는 메시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 후 리에쥬의 주교 케르크호프스는 이 발현이 있은 지 16년 뒤인 1949년에야 비로소 바뇌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성지방문을 공인했던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발현 일지를 살펴보겠다:



2. 메시지

1933년 1월 15일, 토요일: 거룩하신 동정녀가, 눈부신 광채 속에서, 기도하시다가, 마리에뜨에게 미소를 지으시며 당신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이번에는 동정녀께서, 다소 길게 기도하신 후에, 마리에뜨를 샘으로 인도하시고 말씀하셨다. "네 손을 물 속에 담가 보아라. 이 샘은 나를 위한 것이다. 잘 있거라, 안녕."

1933년 1월 19일, 목요일: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동정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가난한 이의 동정녀이다." 그 후, 동정녀는 두 번째로 그녀를 샘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샘은 병자들을 돕기 위한 온 나라의 것이다. 널 위해 기도하마. 잘 있거라. 안녕."

1933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동정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조그마한 성당 하나를 원한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마리아는 십자가 표시와 함께 안수하시며 아이를 축복해 주셨다.

1933년 2월 11일, 토요일: 거룩한 동정녀께서 세 번째로 아이를 샘으로 인도하신 뒤에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왔다. 잘 있거라, 안녕."

1933년 2월 15일, 수요일: 마리에뜨가 "거룩하신 동정녀여, 아버지는 당신께 무슨 표시를 청하라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하고 말을 건네자, 동정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날 믿어라, 나는 널 믿을 것이다." 그 후 동정녀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더 하셨다. "기도를 많이 바쳐라. 잘 있거라. 안녕."

1933년 2월 20일, 월요일: 거룩한 동정녀께서 네 번째로 마리에뜨를 샘가로 데리고 가서 말씀하셨다. "귀여운 아가야, 기도 많이 해라. 잘 있거라, 안녕."

1933년 3월 2일, 화요일: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구세주의 모친이다. 기도 많이 하여라. 안녕." 그러나 사라지시기 전에 거룩한 동정녀께서는 1월 20일에 십자가 표시와 함께 안수하시며 마리에뜨를 축복해 주셨다.


* 샾 하나로 표시된 내용(#)은 [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 연구소, 서울,1997 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 샾 두개로 표시된 내용(##)은 [마리아사전], 최정오 역편, 계성출판사, 1990 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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