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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방 로마의 기독교 박해 역사

운영자 2009.12.13 07:12 조회 수 : 4021 추천: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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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네로(Nero) 박해 (A.D 37 - 68)


54년에 황제에 오름
예술과 스포츠 광이었다.


(1) 원인...로마 대화재 사건 (64년 6월 18일,14구중 3구 전소.7구 반소)
(2) 죄명... 방화 책임을 기독교 신자에게 뒤집어씌움.
(3) 처형방법 * 맹견과 사자밥 * 십자가에 못밖음 * 화형
(4) 순교자...바울,베드로가 순교한 듯




B. 도미티안 (Domitian) 박해 (A.D51 - 96)


81년에 황제에 오름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숭배
후에 암살 당함


(1) 원인...황제 예배 불복
(2) 죄명...기독교도 때문에 모든 신이 노했다는 죄명
(3) 처형 방법 ... * 재산 몰수 * 맹수와 결투 * 저명인사를 추방
(4) 순교자...황제의 4촌 동생 등 많은 신자
(5) 카타콤... 박해를 피해 지하 무덤에서 예배드림 (순교자들의 신앙파수 무대가 됨)


*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으므로 도미티안은 유대인들이 매년 예루살렘에

보냈던 헌금을 황제에게 바치도록 결정하였다.



박해 - 당시에는 아직도 로마 당국 지도자들의 마음 속에 유대인들과 기독교 신자들

사이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관리들은 `유대교적 풍습`을 좇는 모든 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유대교 신자과 기독교 신자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런 핍박 가운데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고 요한 계시록이 쓰여졌다. (96년 기록)



C) 트라잔 (Trajan) 박해 (A.D97-117)



원인 = 비밀결사, 사회생활
내용 = 황제에 대한 예배 강요, 집회불허
순교 = 107년 익나티우스가 맹수에게 먹혀서 순교



플리니는 익나티우스를 로마에 보내서 재판을 받게하여 죽게 했다.
익나티우스(Ignatius)는 순교의 형장으로 가면서 7개의 서신을 남겼는데
초대 기독교사에 중요한 기록이다.



D) 하드리안 (Hadrian) 박해 (76-138)


117년 황제 오름
예루살렘을 멸망 시킨 디도 장군의 아들이다.
하드리안은 예루살렘 이름을 "앨리아 카피톨리나" 바꾼 자이다.



원인 = 그리스도인을 증오
내용 = 국경일에 황제에게 예배 강요
성묘에 여신상을 세우게 하였다.
(심한 박해는 없었다)



E)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박해 (121-180)


161년 황제 오름



원인 = 야만족들의 침략과 홍수와 전염병과 기아 자연 재해들이 그치지않고 일어나자

이것은 기독교 신자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내용 = 177년 프랑스 리용에서 박해가 심했다
순교 = 폴리갑 순교.


또 이때 순교한 자들은 (78P 하단)
과부 펠리시타스와 그의 일곱 아들의 순교기가 있다.

3세기에 와서 교회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새로운 정책들이 수립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을 발안하고 수행했던 황제들은 셉티무스 세베루스와
데시우스였다.



F) 셉티무스 세베루스 (Septimus Severus) 박해 (A.D 193-211)


원인 = 종교 혼합 정책을 실시하였다.
내용 = 태양 신에게 예배하도록 강요.
태양이 지존의 신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모든 신들을 하용할
생각이었다.
순교 = 이레니우스, 오리겐 부친 순교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두 집단이 있었다. 바로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이었다.
세베루스는 이 두 종교들의 확장을 막기 위하여, 기독교나 유대교에 개종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당시까지 시행되고 있던 트라잔의 법령에

추가되어 수행되었다.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칙령이 발해졌던 서기 202년은 기독교 박해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순교자들은 203년경에 죽은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이다.


엘라가바루스(Elagabalus 218-222 ) 와 알렉산더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222-235)는
셉티무스 세베루스와 같은 혼합 정책을 추구했지만 기독인들에게 강요하지는 아니했다.

알렉산더 세베루스 황제는 오리겐의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특히 244-249년까지 황제였던 아라비아인 필립은 기독교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G) 막시민 (Masmin)(막시미아누스)박해 (A.D 235-288)


간헐적인 박해.
교회의 감독인 두 사람 폰티아누스, 히폴리투스 광산에 보내어짐.



H) 데시우스(Decius) 박해 (A.D240-251)


249년 황제에 올랐다.



원인 = 로마의 영광을 위해 다시 옛 종교를 수복하고자 했다
내용 = 기독교인들을 회유시켜 배교하도록 유도하였다.
로마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했고 향불을 살라야 했다.
순종한 자들에게는 증명서를 발부해 주었다.

전통적 로마인이었던 데시우스의 눈으로 볼때 여러 혼란한 현상은 로마국민들이 옛날의

신들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옛 영광을 다시 복구하고자 한다면 옛날의

종교를 다시 수복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것이 데시우스 황제의 종교 정책의 기반이었다
황제의 목적은 순교자들이 아니라 배교자들을 낳기 위한 것이었다



I) 발레리안 (Valerian) 박해 (235-260)


잠간 동안의 박해
원인 = 병과 흉년은 신이 노한 까닭으로 기독교를 박해
내용 = 예배 금지, 재산 몰수, 황제 숭배
순교 = 키프리아누스



J) 디오클레티안 (Diocletian) 박해 (A.D245-313)


284-305년 까지 로마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초대 교회 박해 중 가장 심한 박해였다.



원인 : 기독교인들이 군대에 입대를 거부
내용 : 기독교 병사들에게 신앙을 거부하도록 강요. 불복종한 자들은 처형.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체포. 황제 숭배 제사 강요.
잔인한 고문으로 처형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5~316]





공화정적(共和政的)인 요소를 일소하고,
오리엔트식 전제군주정(專制君主政 : 도미나투스)을 수립한 황제이다.
이탈리아의 천민 출신으로, 졸병에서부터 입신하여 284년 황제가 되었다.
 
286년 부제(副帝) 막시미아누스를 정식황제로 승격시키고,
제국 분할통치의 기초를 세워,
제국 내의 치안과 변경방위에 힘을 썼으나,
293년 2명의 정식황제 및 2명의 부황제에 의하여
분할통치하는 4분 통치제를 시작했다.

트라키아 ·아시아의 여러 주(州) ·이집트를 스스로 영유하여
니코메디아에 도읍하고, 막시미아누스에게는
이탈리아 ·아프리카 ·에스파냐를 맡기고,
메디오라눔(밀라노)에 도읍을 정하게 하였다.



갈레리우스에게는 시루미움에 있으면서
도나우 지방, 발칸(트라키아는 제외)을 통치하게 하고,
콘스탄티우스에게는 트레이브(트리엘)에 있으면서
서방 속주(屬州)를 통치하게 하였다.
4분통치는 군사적 ·행정적으로 적극적인 뜻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위(帝位) 계승의 원칙을 정하고, 내란의 소지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갈리아의 바가우다이난(亂)을 진압하고,
라인 ·도나우 유역에서 게르만인을 격퇴했으며,
동방에서는 페르시아에 승리하고,
아르메니아를 회복하여 제국에 통일과 질서를 가져왔다.



또, 군제(軍制) ·세제(稅制) ·화폐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군제 개혁에서는 정규 군단 수를 40에서 약 60으로 늘려
총수 약 50만으로 하고, 각 속주에 주둔군(변경군)을 두는 동시에,
기동력이 우수한 야전군을 설치, 보병과는 별도로 기병을 배치하였다.



또 속주통치에는 문관 ·무관을 구별하고 속주를 세분하였다.
세제개혁으로는 토지의 단위와 인구의 단위를 결합한
농업과세제도, 카피타티오 유가티오를 정하고,
수공업자 ·상인의 수입에도 돈 또는 물품으로 세금을 매기어,
재정의 개혁을 꾀하였으며, 직업과 고향의 고정제도를 도입하였다.



화폐개혁으로는 새로운 은화(銀貨)를 주조하게 하고,
 청동화(靑銅貨)를 유통시켰는데, 화폐가치 절하에 따라
물가등귀를 초래하였기 때문에 301년에 최고가격령을 발포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권위와 신성성과 초자연성을 강조하고
페르시아에서 궁정예절을 도입, 신하들에게 무릎꿇고 배례(拜禮)하게 하는 한편,
전통수호의 뜻에서 옛 다신교(多神敎)를 회복하여 많은 신전을 세웠다.
치세 말기의 303년에는 그리스도교 대박해를 가했다가 실패로 끝나 퇴위하였다.
니코메디아와 이궁(離宮) 사로나, 그리고 스파라토의 호화스러운 건축물들은
황제의 궁정 취향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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