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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英서 맞춤아기 시대 개막
2004/07/23 00:10 송고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영국의 의료 감독기구인 인간수정태생국(HFEA)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형제자매를 치료할 목적으로 유전적으로 조직이 일치하는 이른바 `맞춤아기(designer baby)'의 출산을 공식 허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언론은 22일 HFEA의 이 같은 결정으로 수십명의 부모들이 조직이 동일하지만 건강한 유전형질을 지난 동생을 선택적으로 출산해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에게 줄기 세포나 골수 등을 이식함으로써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의학계와 난치병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시했으나 종교계와 생명윤리단체들은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맞춤아기 시술이란 = 시험관에서 수정된 배아를 착상전유전적진단법(PGD) 등을 통해 검사해 특정한 유전 형질을 지난 아이를 선택적으로 출산하는 방법을 말한다.
영국은 선천적 기형이나 혈우병 등 유전질환을 지난 아이의 탄생을 막기 위한 경우를 제외한 PGD 시술을 엄격하게 금지해 왔다. 금발에 키가 큰 아이 또는 머리가 좋은 아이 등을 선택적으로 출산하는 방식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 다만 `태아 자체만의 이익'을 위해 PGD를 활용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어 불임치료 과정에서 시험관 수정된 배아들 가운데 유전 질환 가능성을 가진 배아를 도태시킬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HFEA는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의 난치병 치료를 위한 선택적 출산을 최초로 공식 허용, `태아 자체만의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맞춤아기 시술이 가능하게 됐다. HFEA의 이번 결정으로 북아일랜드의 2살난 남자 아이 죠슈아가 혜택을 보게 됐다.
조슈아는 `다이아몬드 블랙팬 빈혈'이라는 희귀 질병을 앓고 있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일치하는 사람으로부터 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아야 하나 기증자를 찾지 못해 고통받아 왔다. 의료진은 조슈아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추출해 시험관에서 수정된 10여개의 배아를 만든 뒤 PGD를 통해 조슈아와 조직이 일치하면서도 건강한 혈액 생산 능력을 가진 배아를 선택해 착상시켜 동생을 태어나게 할 계획이다. 의료진은 이렇게 해서 태어나는 동생의 탯줄에서 혈액 줄기세포를 추출해 조슈아에게 이식하게 된다.
▲ 영국 의료계 반응 = 영국 의료계는 형제자매의 난치병 치료를 위한 맞춤아기 출산 허용을 적극 환영했다.
영국 불임학회의 앨리슨 머독 회장은 "의사들은 특정한 머리 색깔이나 잘생긴 외모를 가진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한 생명을 구하려 하고 있다"면서 "맞춤아기란 잘못된 용어가 일반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최고의 의과대학인 임페리얼 칼리지 불임연구소의 로버트 윈스턴 교수는 "소수의 부모가 특정한 세포 타입을 가진 아이를 임신, 출산하는 것에 대해 의학계에서는 전혀 반대가 없다"고 말했다. HFEA를 이끌고 있는 수지 레더 박사도 유전자 검사가 배아에 어떠한 위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형제자매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을 고려, 맞춤아기 출산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종교계 및 생명윤리단체 반발 = 영국의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맞춤아기 출산을 허용한 것은 인간의 생명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영국 성공회 로체스터 관구의 마이클 나지르-알리 주교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련의 사태 진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난치병 어린이 치료를 위한 맞춤아기 출산 허용으로 난치병에 걸린 어른을 치료하기 위한 맞춤아기 출산 요구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면서 "HFEA는 새로운 생명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도구로 탄생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생명운동단체 재생윤리비판은 "HFEA가 어린이 난치병 치료 목적에 한해서만 맞춤아기 출산을 허용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c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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