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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한국교회 개혁의 실체 (퍼옴)

운영자 2004.05.04 18:12 조회 수 : 1208 추천: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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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상태

작성일 2004-05-04


제 목 : 한국교회 개혁의 실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예수님은 2,000년 전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온 유대인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그들 신앙의 개혁을 부르짖으셨다.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들이 배우고 행하고 있던 신앙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 하시면서 형식적인 그들의 신앙이 개혁되지 않으면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인 천국조차 갈 수 없다는 경고를 하신 것이다.

그런 예수님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매우 못마땅히 여겼고, 결국 목이 곧은 그들은 부패된 자신들의 신앙을 고치는 대신 개혁자를 처단하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개혁을 받아들임으로 초대교회가 탄생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음을 분명히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이 세우는 교회는 거짓 교회인데, 예수님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로 구분지으셨다. 즉, 나무의 비유를 통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지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구별할 수 있는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 7:16,17)

그 기준의 핵심은 열매이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고, 배나무에서는 배가 열린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식물의 속성을 통해 정확히 가르쳐주신 것이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그들의 나쁜 열매를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들어 그들의 외식된 신앙을 지적하셨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마 6: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 6:5)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마 6:16)


구제, 기도, 금식... 당시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신앙의 열매들을 예수님은 하나같이 나쁜 열매로 보셨다. 그 모든 열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보이려고'가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고'였다. 예수님은 단순히 열매를 잘 맺어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열매를 통해 그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나쁜 나무인 그들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신 것이다.



나쁜 열매를 맺고 있는 한국 교회들

그렇다면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은 좋은 나무인가 나쁜 나무인가? 역시 그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나쁜 열매를 맺고 있다. 그 예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밝혀 보자.

1) 교회 세습제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이라 할 수 있는 대형교회들에서 '교회 세습'이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내노라 하는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목회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 아버지 없는 신학생은 팔불출'이란 말이 신학교 안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이다.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북한을 자기 소유로 여겨 김정일에게 물려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스스로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목회자의 소유가 되어 있는 거짓 교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반드시 신앙의 지도자는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4)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 16: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요 1:6)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모세, 기드온, 다윗, 에스겔, 요한, 바울 등 한결같이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러므로 세습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권한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결국 세습제를 허용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나쁜 나무요, 거짓 교회인 것이다.


2) 직업 목사 양성소, 신학교

"목회자 과잉배출 한국교회 위기초래"

"신학대 정원 조절·정년 단축 시급 … 범교단차원 대책 강조"

"고신 목회자 수급 문제 세미나, 교회 질 저하 등 문제점 지적"

오래 전부터 목회자 수급 불균형이 한국교회의 상당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열린 '한국교회 수급조절 세미나'에서는“한국교회의 무분별한 목회자 양산으로 목회자의 질이 저하되고 목회자 수급의 균형도 깨어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총신대 교수는“예장 합동교단의 경우 지난 한해 교회를 담임하지 않는 목사의 수가 4,350명으로 전체 목사의 4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목회자 실업율이 일반 실업율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왜 하나님의 종이란 목회자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가? 사실 교회의 영적 상태는 목회자의 영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무나 목회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이 세운 종이어야 되는데,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실력(?)에 치중하고 있다. 실례를 들어보면, 아래는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신입생들을 받기 위한 모집 요강에 나온 응시 자격이다.

① 고등학교 졸업자 및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②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한 자
③ 법령에 의하여 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 이상의 자격이 인정된 자
④ 위 항에 해당된 자로서 세례를 받고 당회장의 추천을 받은 자

일반 대학의 신입생 모집 요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네 번째 항목이 추가된 것인데, 그것도 세례와 추천 정도로 가볍게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과정이 너무나 세상적이며, 어느 정도의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은 조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골 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딤전 1:1)


하나님이 쓰신 바울은 늘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신학교의 학생 모집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 동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보면 "일반 대학에 들어갈 점수가 모자라서" "목사인 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그냥 오고 싶어서" 등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교회 교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학교의 교과 과정에 있다. 목회자 전담 양성과인 신학과의 학점 이수 과정을 보면, 100여개의 과목이 있는데 그 중 직접적으로 신앙과 관계된 것은 불과 10여개의 과목 뿐이었다. 헬라어, 히브리어, 신구약배경사, 교회사, 교의학개론, 설교학, 헌법, 설교실습, 계약신학, 교회행정, 선교신학, 비교종교학, 교리사, 구약사, 변증학... 대부분이 신앙에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들이다. 거기다가 영어 및 수학 등 일반 교양과목도 추가되니 실제 신학교에서 신앙을 배우거나 키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은 한 분야의 학자로 만들기에는 적합할지언정 교회를 믿음으로 이끌어야 되는 목회자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렇게 신앙과 거리가 먼 분위기 속에 있어서 그런지 신학생들 상당수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나이트클럽에도 종종 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신학생들의 신앙 상태는 일반 교인들보다 더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죽했으면 그런 신학생들에 대해 "1학년 때는 목사, 2학년이 되면 장로, 3학년이 되면 집사, 4학년이 되면 평신도, 졸업하면 타락"이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그렇기에 나름대로 소명을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타락하는 순수파(?)들도 많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신학교의 하나님의 종이 되는 입문과 훈련 과정이 성경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로 인해 참된 하나님의 종보다는, 목사란 하나의 직업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와 직업인으로서의 목회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실제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종들을 보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이 어떠한 과정을 통과했고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가?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장 중요했고, 말씀의 인도만을 받았다. 말씀이 없는 마음을 타락된 마음으로 여겼기에 하나님의 종들마다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을 세우는 일에 주력했다.

종교개혁을 한 마르틴 루터가 가장 중요시 여기고 행한 일은 평신도들도 성경을 쉽게 대할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다. 요한웨슬레는 성경 외에는 다른 교리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고, 디엘무디 역시 성경 하나만으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이루었다. 특히 5만번 이상 기도응답 받은,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죠지뮬러는 성경을 100번 이상 통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종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필요한데, 현재 한국의 신학교는 오히려 말씀을 멀리하게 만든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은 매우 유식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지혜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만을 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단상에 오르는 한국의 수많은 설교자들의 입에서는 심오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온갖 세상 지혜와 정보들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인들이 세상 일에는 밝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너무나 어둡다. 마치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는 말씀처럼, 말씀에 갈한 교인들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런 부분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목회자는 교인들의 개인적인 신앙 상태보다는 교회의 외적 성장에 치우친다. 그로 인해 직분 남용과 헌금 과다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직분 남용을 보면, 신앙과는 상관없이 직분을 주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나이롱집사'가 그 열매이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전 교인의 반 수 이상이 집사란 직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직분을 교인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왕상 13:33,34)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세우셔야 되는 제사장을 누구든지 자원하면 보통 백성으로 세운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악이었다. 거짓 제사장들로 인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릇된 신앙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목회자 양성소인 신학교 역시 이와 다름 없이 목회자들을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있다. 그로 인해 목회자 실업율 증가란 희한한 열매와 그 외에 수많은 나쁜 열매가 맺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가장 존귀한 직분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줄 수도 취할 수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3)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쉬워진 부자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부분에 대해 질문함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청년은 처음에는 영생을 얻고 싶어 했지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나눠주라."는 말씀 앞에서 결국 등을 돌리고 돌아갔다.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말씀으로 저울질했을 때 영생보다 재물을 더 귀히 여기는 마음이 드러났다. 청년이 돌아간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재물이 많은 부자면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같은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 돈을 사랑하며"(딤후 3:1,2)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3,14)


돈에 관한 위의 말씀들을 보면, 단순히 돈이 나쁘고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좋아하는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우리 마음이 돈이나 재물을 좋아하고 밝히는 것은 하나님과 마음이 멀다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참된 하나님의 종과 교회는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선이 분명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반대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과 상관 없는 거짓 종들과 교회는 금전에 관해서 많은 문제가 있다. 오늘날 금전에 관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많은 부분에 나쁜 열매가 맺혀져 있다.

첫째로 헌금의 종류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교회를 나가긴 나가야 되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못 나가겠어요. 돈 좀 벌어놓고 나갈께요."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들이 제시하고 있는 헌금의 종류를 보면, 십일조, 월정헌금, 주정헌금, 생일감사헌금, 예배헌금, 부활절헌금, 성서주일헌금, 맥추절헌금, 추수감사절헌금, 교회상납금, 전도헌금, 전도회헌금, 선교헌금, 부흥회헌금, 금요구역헌금, 심방헌금, 건축헌금, 신년헌금, 찬양대헌금, 그리고 각종 회비 등 30여 종류가 된다. 심지어는 '대학 합격 기원 헌금'도 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았다고 하지만,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혹자는 '교회 주식회사'란 말도 사용한다.

문제는 헌금 자체보다, '헌금을 많이 해야 복을 받는다'는 믿음과 전혀 상관 없는 심리가 교인들 속에 흐른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바쳐지는 부흥회 헌금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부 부흥사들은 공공연하게 "이번 집회에 복을 받으려면 집회 시간 때마다 감사의 제물을 지참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헌금을 모집하다 보니 "헌금 액수 = 축복의 크기"라는 이상한 논리가 교회에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중세 카톨릭 때 성행했던 '면죄부 판매'와 다를 바 없다. 그때는 돈이 있어야 죄가 사해졌기에 가난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웠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헌금을 많이 하는 부자는 교회 안에서 인정을 받지만,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신앙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헌금에 대한 명단 공개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 때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다. 물론 대형교회는 일일이 이름을 부를 수 없기에 주보에 누가 십일조나 헌금을 했는지를 명시하고 있다. 또 헌금을 거두는 방식도 공개적이다. 헌금 시간이 되면 소위 '잠자리채'라고 불리는 헌금채를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야 더 많은 헌금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런 방식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경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4)


한국 교회 상당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보다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헌금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부분에서 금전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 그래서 교단의 총회장이나 대표 선거 때는 수억원이 거래된다고 한다. 항간에는 "장로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떠돈다.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교회의 높은 직분은 신앙보다는 재력 있는 사람들이 주로 발탁되고 있다. 돈에 의해 교단과 교회 안에서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재력으로 인해 세워진 직권자들이 중심에 서 있는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운영되겠는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는 아래와 같이 높지만 문제는 실질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각 교단 노회장과 총회장 선거시 막대한 금품이 오가고 향응이 베풀어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교권을 사는 행태가 교회의 쇠퇴를 초래했음을 교회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자행되는 금권선거는 교회를 죽이는 일이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각 교단은 금권선거를 중단할 것을 촉구 합니다. 금권을 내세워 총회장과 부총회장에 출마한 사람은 반드시 낙선시켜야 하고 이 일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사람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한 기독잡지 사설에서)

또한, 금전 문제는 목회자 인사 이동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전임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들 세계 안에는 "교인 몇 명 이상은 얼마"라는 비공인 교회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기가 마친 전임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를 고를 때 권리금(?)을 톡톡히 낼 수 있는 돈 가진 목회자를 고른다고 한다. "어떤 목회자가 이 교회에 합당한가?"하는 것은 전혀 거론이 안된다. 돈이 있으면 자신이 가고 싶은 교회로 갈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니 목회자들이 돈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더 심각한 문제는 예산 운영의 불투명이다. 한 통계 조사에 의하면 연간 한국 교회가 헌금 수입을 통해 확보하는 액수는 약 3조 8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물질이다. 그런데 먼저도 이야기했듯이, 헌금 모집 때는 그렇게 공개적이면서도 헌금을 쓰는 부분에는 불투명하다. 목회자들이 교회의 예산 운영은 성역(聖域)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교인들은 물론이고 교회의 직분자에게도 비밀시 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담임 목회자만 지출 내역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횡령 및 부정 사용 등 끊임없는 잡음이 교회들마다 들려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전에 관한 한국 교회의 열매 역시 나쁜 열매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상당수가 하나님도 믿지만 부유하게 살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그러한 욕망을 문제로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그러한 욕망을 더욱 부추킨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마 19:23)는 말씀들은 한국 교회 대부분의 교인들의 마음 안에는 머물지 못한다. 그렇기에 "물질축복"을 강조하는 서울의 한 교회에 가장 많은 교인들이 모여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재물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는 2천년 동안 변함없이 선포되고 있음을 기억하라.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