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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전국방장관 김동신의 좌익행위

운영자 2004.06.19 01:58 조회 수 : 1845 추천:438

extra_vars1 http://www.systemclub.co.kr/bbs/zb4pl5/view.php?id=new_jee&page=2&sn1=&divpage=1&sn=on&ss=on&sc=on&keyword=김동신&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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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김동신 국방장관은 1996년8월 강릉에 잠수함이 들어왔을 때, 함참 작전본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여 적으로 하여금 알아서 도망하도록 했습니다. 3명의 간첩을 가두어 놓은 포위망을 갑자기 풀라고 강요하여 현지 지휘관과 다투었습니다. 결국 김동신의 강요에 의해 포위망이 풀렸습니다. 포위돼 있었던 간첩 3명이 바로 그 자리 에서 민간인 3명을 죽이고 이어서 오대령과 표일병을 죽이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이 얼마 나 수상한 행동입니까?

2001.8.11일, 그는 전국 지휘관과 국실장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김정일 총비서를 호칭하거 나 표기할 때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려 김정일을 존칭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 후 군에서는 누구도 감히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그는 6.25때 부터 지금까지 군에는 간첩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무사에 간첩을 잡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인 것입니다.

6.25때에 군에 간첩이 없었습니까? 육사교장을 지내고, 정전위 남측 대표였으며, 외무부장관까지 한 최덕신이 간첩으로 덜미를 잡히자 1975년도에 또 다른 간첩 해군참모차장 이용우와 같이 월북을 했습니다. 6.25전사를 다시 읽는 분들은 한결같이 6.25때에 간첩이 한국군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이형근 회고록"(중앙일보사) 제55족-57쪽에 군수뇌부에 숨어있는 간첩을 의심하는 10대 불가사이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6.25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이를 지적함으로써 향후 국가방위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그것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나는 6.25 초전의 전후 사정을 종합 판단할 때 군 내외에서 좌익분자들이 긴밀하게 합작, 국군의 작전을 오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통적(通敵) 분자가 과연 누구냐?  나로서는 수상하다고 느껴온 사람이 있지만 심증만 갖고 꼭 집어 거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확증을 제시할 것으로 믿으며 바로 이런 증언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 믿는다. 풀려야 할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선 부대가 전쟁 징후에 대한 적정보고를 계속적으로 보냈지만 군 수뇌부에서 묵살했다.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에,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에 대해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에는 누가 부하인지도 모르고, 지형조차 낯선 상태에서 우왕좌왕했다.

셋째, 6.13-6.20일에 걸쳐 전후방부대를 모두 이동시켜 낯선 지역으로 부대를 배치했다.

넷째,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을 6.23일 0시에 해제하고 전 장병의 50%에게 휴가를 주어 내보냈다. .

다섯째, 6.24일 저녁 대대적인 댄스 파티를 열어 전후방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기다 곤드라졌다.  

여섯째, 우리 병력을 조금씩 나누어 소부대 단위로 전투에 투입함으로써 힘도 써보지 못하고 죽게 만들었다.  

일곱째, 서울이 점령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군 방송은 이기고 있다고 거짓 방송을 했다. 승전보만 믿고 수만 명의 애국자들이 피난하지 않고 있다가 살해됐다. 서울에는 인민군을 환호하는 인파가 의외로 많았다.

여덟째, 병력과 군수물자의 대부분이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서둘러 한강을 폭파했다.

아홉째, 한강교를 폭파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조기에 사형집행했다. 최대령은 육군참모총 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김동신은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을 "호국영령들의 넋을 모독하는 글"이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2002.9.2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송됐습니다.
김동신은 판문점에가지 가서 그들에게 꽃다발을 걸어주었습니다. 김정일에 충성 보이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2001년 기무사 대공처장 염준장이 1년여에 걸쳐 "좌익세력의 대군침투 실상"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조성태 장관은 이를 전국 지휘관에게 배포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이유 없이 국방장관이 경질됐습니다. 빨갱이가 이 나라를 요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2001.3.26일, 김동신이 국방장관이 되었습니다.
김동신은 2001.6.30일 염준장을 해외출장 중에 보직해임 시키고 이어서 예편을 시켰습니다. 막가파식 조치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2002.5.24일, 주적개념을 땅에 묻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에겐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서해사건에서 병사들은 인민군을 적으로 보지 않다가 당한 것입니다. 북한이 주적인지 아닌지는 휴전선이 말해줍니다. 휴전선에는 우리 병사가 밤잠을 자지 못하며 적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총사령관인 국방장관이 김정일을 존칭하라 합니다. 김정일이 무서워 국방백서라는 책에서까지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국방일보가 2001.3.22일자 9면에 북한의 피바다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북한의 피바다를 극찬한 국방일보에 대해 기무사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기초자료 조사에 착수하다가
김동신의 분위기에 눌려 수사를 그만 두었습니다(주간조선 2001. 4.25). 군에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간첩이 없다고 공언하는 김동신이 간첩조사를 방해한 것입니다.  

여론이 빗발치자 국방홍보원장이 교체됐습니다.
김동신 장관이 이 때 무슨 궤변을 늘어놓았는지 아십니까? "문제의 선전문은 예술작품을 통해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에 치중하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한 것"이라 말했습니다(주간조선 2001. 4.25). 피바다에 대한 선전이 정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북한을 철저히 감쌉니다.

조선일보는 "여순반란 사건에서 좌익 반란군을 정당화 및 미화시킨 영화 "애기섬" 제작에 군이 트럭, 헬기, 소총, 군복 등을 지원했다해서,
김동신 장관을 책임지고 물러나라" 했습니다(2조선일보 001.9.18)

"김남국 예비역 대령이 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풍사건'을 조작하는 데
김동신 전 육군 참모총장이 관여됐다고 주장했습니다.(조선일보 2000.6. 16). 이 엄청난 명예훼손에 대해 김동신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기어가는 소리만 냈지 소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툭하면 소송을 하는 사람입니다. "군 수뇌부에 간첩이 있을 수 있다"라는 당연한 글에 대해서까지 소송을 냈다가 검찰로부터 거절당한 적도 있습니다.

"한총련이 긴급수배전단 일제히 살포했습니다. 조성태 전장관을 '주적개념을 유지하는 주한미군의 졸병'으로 표현했습니다"(월간조선 2001. 2.21). "주적개념을 확실히 밝힌 조성태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북으로부터 반통일 세력이라는 흑색선전을 당했지만,
김동신 장관에 대해서는 흑색선전이 별로 없습니다"(월간조선 8월호 심층취재 특종).

지난 6월1일 철원에서 새로운 땅굴을 발굴하여 제보했지만 그는 조사해보지도 않고 땅굴이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 2001. 6. 1).

그 이외에도
김동신 장관의 수상한 행적은 더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손에  국가안보를 의탁해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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