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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성 일본군 출신 日교수 '살인훈련' 고백

운영자 2008.08.14 08:31 조회 수 : 1408 추천: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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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출신 日교수 '살인훈련' 고백>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8.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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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大 명예교수 "총검으로 中포로 살인훈련"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나는 총검으로 중국인 포로를 찔렀다."
2차대전 당시 구(舊)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에서 복무를 했던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의 한 명예교수(83)가 13일 석간 아사히(朝日) 신문에 익명을 전제로 중국인 포로를 대상으로 살인훈련을 했던 당시 상황를 고백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가 징병된 것은 19세이던 1944년이었다. 그는 그해 11월 일본을 떠나 12월에 중국 산시(山西)성에 도착했다. 이듬해 1월 그는 평소 훈련 장소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곳에는 통나무가 2개 세워져 있었다. 잠시후 수명의 병사들이 뒤로 손이 묶인 중국인 포로 2명을 끌고 왔다. 한명은 중년이었고 다른 한명은 20대였다. 일본 병사들은 두사람의 상의를 벗긴 뒤 통나무에 묶었다. 20대 중국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토(刺突)훈련, 즉 살인훈련이었다. 이는 신병들을 상대로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실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신병들은 2개조로 나뉘었다. 중대장의 '돌격' 명령에 따라 '전방에 있는 적'에게 달려가 총검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찔러야 했다.

그가 속한 조는 20대 청년이 대상이었다. 그는 10여번째 순서였다. 그에게 돌격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그 청년은 총검에 난자당해 무릎이 굽혀진 채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돌격 명령에 따라 달려갔지만 그는 이 청년 앞에서 멈칫했다. 가슴에 수십군데 칼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찔러'라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총검을 휘둘렀다. 당시 감각은 아직도 그의 손에 남아 있다.

그는 이후 치른 전투에서 단 한발의 총도 쏘지 못했다. 일본이 패전하고 귀국한 뒤 그는 여러차례 꿈을 꿨다. 자신이 적이 되어 총검에 찔리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는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 등을 포함해 40여년간의 기억을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살인훈련도 포함돼 있으나 아직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제자들의 손에 의해 유고집으로 발표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인도적인 죄를 범했다"며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이런 일들을 알리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명예교수는 청년기부터 외국문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번역서와 저서도 다수 펴낸 저명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15년 전에 현역에서는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