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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시온의정서

운영자 2005.03.24 20:46 조회 수 : 1690 추천: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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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정서



시온의정서1

제1의 의정

우리들은 알맹이 없는 말의 유희를 버리고 사상의 본질을 탐구하며 비교와 추리로써 사태를 밝혀 보자. 이 방법으로 우리들의 사상이 유태인의 입장과 비유태인의 견지에서 보아 어떠한 것이 되는가를 분명히 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양선한 인간보다 저속한 본능에 사는 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학자의 논의 같은 것이 아니고 ‘폭력’과 ‘공포’인 것이다. 어떠한 인간일지라도 권력을 지향하고 될 수만 있다면 독재자가 될 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반 다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

인간이라고 일컫는 잔인한 짐승을 오늘날까지 억누르고 묶어 온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인간 사회를 형성한 원시 때는 사나운 폭력에 복종했고, 그 후에는 법률에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법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폭력에 지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 미루어 ‘정의는 힘’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정치적 자유라는 것은 하나의 사상일 수도 있어도 현실의 사실은 아니다. 다만 어느 당파가 현재 정권을 쥐고 있는 자를 타도하고자 할 때는 민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 자유의 사상을 잘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때 정권 담당자 측이 ‘자유’의 이상에 즉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기라도 한다면 일은 제대로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들의 소설은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권력의 고삐를 놓치게 되면 반드시 자연의 법칙대로 다른 손이 그것을 쥐게 된다. 왜냐하면 맹목인 민중이라는 것은 하루라도 지도자 없이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은 자유주의에 내쫓긴 구권력에 대신하여 들어앉은 것뿐이다. 현금에 있어서는 ‘금권’이 자유주의에 대신하여 있다. 옛날에는 ‘신앙’이 세계를 지배한 시대도 있었다.

자유라는 개념은 원래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이 자유를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만 인민에게 자치를 허락해 보라. 반드시 자치는 방종으로 돼 버릴 것이다. 그 순간 날카로운 싸움이 일어나고 의회 투쟁이 펼쳐지며 드디어 국가는 불길에 휩싸이고, 그 권위는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어떤 국가가 내부적인 혼란으로 약화되건, 그 내란을 틈탄 외적에 먹히든지간에 어쨌든 그렇게 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드디어는 그 국가는 우리들 유태인의 손아귀에 굴러 들어온다. 즉, 우리들이 독점하고 있는 자본의 손을 내어 밀게 되면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에도 매달린다’는 말과 같이 좋든 싫든 살기 위해 달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자유주의적 정신에서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다음과 같이 반문할 것이다.

“국가에는 내외 두 개의 적이 있다. 그것이 외적이면 어떠한 적대 수단이라도 허용되고, 부도덕이라고는 비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공격 계획을 숨기고 야습을 걸거나 우세한 병략으로 격파해도 좋다. 그런데도 더욱 악질인 내적 - 질서와 평안을 어지럽히는 자 - 에 대해서 같은 수단을 취하는 것이 어떻게 부도덕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민중은 어떤 일이건, 표면밖에 모르며 비논리나 모순에 홀리기 쉬운데 이러한 자를 상대로 하여 이성적인 조언이나 설득, 계몽이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그들은 천박한 감정, 미신, 습관, 전통, 감상적인 말에 동조하기 쉽고, 당파 근성에 빠지기 일쑤이다. 이 당파 근성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논리적인 합의일지라도 단번에 부서져 버리고 마는 따위의 것이다. 민중의 결의는 모두가 우연이거나 형식상의 다수결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정치의 이면 거래를 모르기 때문에 뻔히 보면서도 이치에 어긋난 결의를 시키는 대로 하게 되고 정치 속에 무정부주의의 싹을 움트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은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모랄에 제약을 받는 정치가는 정치가로서 실격이다. 그래 가지고서는 도저히 권력의 좌는 유지될 수 없다. 정치가인 자, 마땅히 책모와 위선을 써야만 한다. 민중에게 있어서는 미덕이 되는 성실이나 솔직함은 정치에 있어서는 오히려 죄악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덕목은 최강의 정적보다도 더욱 확실하게 정권을 뒤엎어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덕은 비유태인의 특징이면 바람직한 것이지만 우리들 유태인은 결코 그것을 배워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권리는 ‘힘’에 있다.

‘권리’라는 말은 추상적 개념이며 아무런 구체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의 뜻은 “나의 원하는 바를 나에게 달라. 그는 나야말로 너희들보다 강함을 입증하기 위함이니라”라고 하는 것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권리는 무엇에서 시작되고 무엇으로 끝나는가. 조직이 약한 국가에 있어서는 자유사상 때문에 법도 행해지지 않으며, 정부 권력도 취약하므로 거기에 새로운 권리가 대두된다. 즉, 일체의 기존 제도와 질서를 파괴하고 법을 무시하고 모든 체제를 변혁하여 스스로의 자유 사상에 의해서 포기한 구권력을 우리들 유태인이 획득하는 것이다.

현재 각국의 정치 권력이 동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들의 힘은 무엇보다도 뛰어나게 무적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권력은 어떠한 술책에 의해서도 넘어지지 않게끔 강하게 되기까지는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시적인 부정은 확고한 정치라는 선사를 가져 올 것이다. 그 정치는 현재 자유주의 때문에 형편없게 돼 버린 민중의 생활 기능을 평상으로 회복시킬 것이 틀림 없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우리들의 계획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선이라든가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라든가 유효라든가 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당면하는 전략 전술의 계획이 있다. 이 노선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이어온 노력의 결과를 무로 돌리고 말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중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비열하고 경건이 없고 경박한가를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그 얼마나 자기의 생활과 행복의 조건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에 있어서 부족한가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민중의 자질이 맹목적이며 비이성적이고, 판단력이 없이 좌우 어느 쪽이건 쉽사리 움직이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맹인이 맹인을 유도한다면 반드시 깊은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민중 속에서 뛰어올라 출세한 자는 그가 비록 천재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에는 자질이 없고 반드시 전인민을 망하게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정치 훈련을 받은 자만이 이 정치의 요체를 해득할 수가 있다.

스스로가 정치를 맡은 인민--.
즉 민중 가운데서 뛰어오른 자에게 지배를 맡긴 인민은 권력과 명예의 쟁탈에 의해서 생긴 당파싸움과 이어서 발전되는 소란 때문에 자멸한다. 민중이 냉정하게 질투도 하지 않고, 개인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국정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또, 그들은 외적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답은 노이다. 왜냐하면, 민중의 제나름대로의 의견이란, 계획이란 통일성을 잃게 하고 흐지부지 실행 불능의 것으로 만들고 말기 때문이다.

다만, 독재 전제자만이 위대하고 명확한 계획을 실행하고 정치 기능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로서도 가장 유효적인 형태는 책임 있는 일개인에게 정치 기능의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다. 절대 전제 없이는 문명은 존속되지 않는다. 정치는 민중의 업적이 아니며, 아뭏든 지도자의 위업인 것이다. 민중은 모든 기회를 통해서 스스로의 야만성을 발휘한다. 민중이 자유를 손에 넣어보라. 단번에 무정부 상태가 출현된다.

이 무정부 상태야말로 야만의 진상이다. 알콜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고 스스로를 죽여 버린 저 짐승들을 보라. 자유가 그들을 고주망태로 만든 것이다. 물론 우리들 유태 민족은 그러한 상태에 빠지게 되어서는 안된다. 비유태인은 강한 술에 녹아 떨어져서 바보가 되어 있다. 그들의 청년은 고전의 과도한 연구로 머리가 멍청해져 버렸고, 거기다 우리들의 앞잡이 - 즉 부자에게 고용된 가정교사, 메이드, 가정부-나 , 오락 시설에 있는 여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악덕에 홀린다. ‘사교계의 귀부인’도 이와 동류로서 방탕이나 사치의 흉내에 바쁘다.

힘과 위선이 우리들의 표어이다. 정치에 있어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은 오직 힘뿐이다. 특히 이 힘이 정치가에게 필요한 재지 속에 숨겨져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권력이 정치의 근본 원칙이며, 새 권력의 대표에게 따르려 하지 않는 정권에 대해서는 기만과 간계를 쓰는 것이 좋다. 이러한 악은 목적인 선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 라면 뇌물도, 사기도, 배신까지도 조금도 꺼릴 것이 못 된다.

정치에 있어서 상대를 굴복시키고 권력을 뺏는 데 유효하다면 조금도 주저말고 타인의 재산마저도 탈취해야 한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서 평화적인 정복을 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정부는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효과를 지니는 사형이라는 벌을 줄 수가 있다. 즉 이로써 민중에게 공포를 주고, 맹목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다. 바르고 거기다 조금도 용서하지 않는 엄격함은 국가의 위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기둥이며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즉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폭력과 위선을 계속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타산주의는 그 주의를 구체화한 수단과 마찬가지로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수단에 따를 뿐만 아니라 엄격한 주의, 그 자체에 따라 승리를 얻고 모든 국가의 정부를 우리들의 초정부에 무릎 꿇게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모든 반역의 숨통을 끊기 위해 우리들이 용서 없이 전진한다는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 자유,평등,박애를 민중에게 외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들 유태인이다. 이 말은 그때 이래 미끼에 홀려서 몰려드는 어리석은 앵무새들에 의해서 싫도록 거듭되었다. 이 말은 세계의 평화, 즉 그 옛날에는 민중의 압력으로부터 보호되어 있던 참된 개인적 자유마저 파괴하고 말았다. 교양 있고, 분별 있어 보이는 비유태인도 이 말의 그늘에 숨겨진 모순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연이라는 것에 평등이나 자유가 있을 수 없음을 알지 못했다.

자연, 그 자체가 오성, 지능의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자연의 법칙에 따르도록 해둔 것이다. 그들은 민중이 맹목의 폭력이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 그들이 뽑아 형편없이 낮은 데서 출세하여 올라선 선량이라는 것도 민중과 마찬가지의 장님임을 알지를 못했다. 정치의 비결을 받은 자는 비록 바보라고 하더라도 정치를 할 수 있지만 비결을 알지 못하면 제아무리 비범한 재능이 있다손 치더라도, 정치의 요체는 지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비유태인은 모두 다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군주 정치의 원칙은 부친으로부터 자식에게 정치의 비결을 전하는 것이며, 왕가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알았고, 그 밖의 통치를 받는 인민에게는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후 정치의 참된 요체를 그와 같이 왕통으로서 계승하는 뜻은 차츰 없어지고 우리들의 성공에 알맞고 손쉽게끔 되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의 기수 - 동조자의 열성스러운 노력으로 지구의 구석구석에까지 알려지고, 수 많은 인간을 우리들의 편에 끌어 넣었다. 그리고 이 말은, 비유태인 사회의 안정을 좀먹고, 도처에서 평화, 질서, 협동을 갉아 먹었고, 그들의 국가의 기초를 뒤엎었다. 그리고 귀족의 특권 폐지라는 최후의 으뜸마저 손에 넣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한다면 우리들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의 국가와 인민을 지키는 유일한 비방으로서의 귀족 정치를 이 말이 때려부수고 만 것이다.

자연적 세습의 귀족 정치가 파괴된 폐허 위에 우리들의 지식이 풍부한 계급과 금권의 귀족 정치를 건설했다. 이 새로운 귀족 정치를 우리들은 우리들이 지배하는 부와 우리들의 현자의 지도하는 과학 위에다 쌓아 올렸다. 우리들이 이용한 민중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들이 언제나 인간성의 가장 쉽게 느끼는 측면에 작용을 한 것도 우리들의 승리를 보다 쉽사리 이룩하게 한 것이다. 즉, 타산, 탐욕, 끝없는 물욕과 같은 것에 작용을 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약점은 그 어느 것이나 인간의 독창성을 죽이고, 인간의 의지를 매수자의 뜻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라고 하는 알맹이 없는 관념은 민중을 몰아세워, 통치자 같은 것은 국가의 소유자인 인민으로부터 위임된 관리인에 불과하고, 쓰다 헐어 빠진 장갑과 같이 언제건 새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인민의 대표자라는 것이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된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들의 원하던 바인데 그것은 실제로 대표자의 임명은 우리들이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시온의정서2

제2의 의정

우리에게 있어서는 전쟁이 될 수 있는 대로 영토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안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전쟁은 경제라고 하는 영역에서 청산되는데, 이 영역에 있어서라면 각국은 우리들의 힘의 우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쌍방 교전국은 어떠한 땅의 끝에까지라도 흩어져 있는 우리들의 에이전트의 하자는 뜻에 따르게 된다.

이 에이전트는 무수의 눈을 밝히고 있어서 어떠한 국경도 이 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의 법은 각 국가의 법률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고 마치 국가의 법률이 그 나라의 인민을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법이 각국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각국의 통치자는 우리들의 노예와 같이 순종하고 우리들이 인민 가운데서 뽑아 준 것이며, 정치 능력 같은 것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곧 장기의 ‘졸’의 역할로 떨어지게 되고 어릴 적부터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육된 우리들 전문가의 장 중에 들어오고 말 것이다.

제군도 잘 알다시피 우리들 전문가는 우리들의 정치적 계획에 따라서 지배에 필요한 지식을, 역사적 연구나 사회적 관찰에 의해서 몸에 지니고 있다. 비유태인은 역사적인 사실의 공정한 관찰에 의하지 않고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으며 결과만을 얻으려고 하는 기계적인 이론에만 치우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기회가 찾아 들 때까지는 그들을 즐기게 하고 새로운 환희나 과거의 추억에 젖도록 내버려 둔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불어 넣은 과학의 법칙을 믿게 하고 의심하지 않도록 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매스컴을 사용하고, 이론에 대한 그들의 맹목적인 신앙을 높이는 것이다.
비유태인의 인텔리는 그 학식을 자랑으로 삼고 이론적 증명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들의 에이전트가 모아 둔 사실도 모르고 모든 학설을 우리들의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실행할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만들어 낸 다위니즘, 마르크시즘, 니체이즘이 어떠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가 보라. 이들 학설이 비유태인에게 준 유해한 영향은 제군이 명백히 인정하는 바와 같다. 우리들이 정치를 행함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각국 인민의 근대 사상, 성격, 경향 등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의 방식은 각국 인민의 성정의 차에 순응시키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적용은 과거의 경위와 현상을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대 국가는 인민 속에 세론을 불러 일으키는 큰 힘을 쥐고 있다. 즉, 그것은 신문이다. 신문의 사명은 민중의 요구를 분명히 하고, 인민의 불평을 표현하고 불만을 선동하는 것이다. 언론 자유의 승리는 신문이 가지게 됐다. 각국 정부는 그 위력을 사용할 방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우리들의 수중에 빠져 들었다. 우리들 자신은 신문의 배후에 몸을 숨기고 우리들의 세력을 신장시켰다.

신문에 의해서 크게 황금의 산을 쌓았다. 그것은 피와 눈물의 바다에 있어서 이루어졌다. 우리들의 많은 동족도 희생이 되었지만 우리들 동포 한 사람의 희생은 신 앞에 있어서는 비유태인 천 명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한 것이다.


시온의정서3

제3의 의정

바야흐로 우리들의 목적이 달성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군 앞에 고할 수 있다.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유태 민족의 상징인 - 뱀의 양단이 서로 이어지고, 완전한 환상(環狀)이 될 것이다. 이‘환’이 이루어지면 전유럽 제국은 강한 힘으로 졸리게 되고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현재의 헌법 제도의 밸런스는 무너지고 이윽고 뒤덮어지게 될 것이 틀림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우리들은 저울이 안정될 수 없게끔 미리 못쓰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즉, 저울의 지점이 마찰 되어 닳아질수록 동요를 계속하도록 장치를 해 두었는데도 비유태인은 이 저울의 지점은 아무런 고장도 없고 곧 평형을 되찾을 것이라고 하염없는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저울의 지점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은 무비판, 무책임한 권력을 휘두르는 민중의 대표에 의해서 불안에 흔들리고 있다.

거기다 그들의 권력은 궁정 내에 스며들려는 공포 정치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다. 지배자는 인민의 마음을 휘어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인민과 힘을 합쳐서 권력의 약탈자를 막을 수가 없다. 우리들이 주권자의 선견의 명에 의한 위신과 인민의 맹목적인 힘을 서로 따로 떼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쌍방 모두가 어쩔 수 없게 돼 버렸다. 즉, 어느 쪽이건 한쪽만으로는 막대기를 잃어버린 장님마냥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로 하여금 권력의 남용을 하게끔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모든 세력들을 제멋대로 독립케 하여 서로 상쟁케 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은 모든 책동을 권하고 모든 당파를 밀어주며 권력을 얻는 것을 모든 야심가의 목표로 삼게 했다. 우리는 비유태인 국가를 소란의 경기장으로 만들었다. 이제 조그만 더하면 폭동과 파탄은 도처에 일어날 것이다. 수다쟁이 변론가는 국회와 행정 회의의 자리를 토론회 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뻔뻔스러운 신문 기자나, 철면피한 칼럼니스트는 매일 정부 당국을 공격하는 데만 정신을 쏟는다. 권력의 남용은 최후로 모든 제도의 와해를 가져오게 하고 모든 것은 선동에 놀아나는 민중의 압력으로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인민은 노예제도나 농노 제도 때보다 더욱 비참한 노력을 강요 당하고 있다. 그들은 노예 제도나 농노 제도로부터는 도망을 쳤지만 빈곤으로부터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우리들이 헌법 속에 써 넣어 둔 인민의 권리라는 말은 허구의 것이며 결코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수다쟁이에게는 언론의 권리 신문 기자에게는 진실의 보도와 아울러 테마를 써댈 권리가 주어졌다고 한들 괴로운 노동이 강제되고 그 운명에 억눌려 버리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있어서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헌법은 노동자에 대해서 우리들의 대표를 선거해 주는 사례로서 우리들 식탁의 빵 부스러기만한 권리밖에 주어져 있지 않다. 공화국에 있어서 인민의 권리란 가난한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까닭은 그들은 매일 고된 노동으로 날을 지새고 있을 뿐 인민의 권리라는 것을 써 볼 틈조차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그들은 우두머리나 동료가 조직하는 파업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은 확실한 소득의 보증도 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민은 우리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 본래의 보호자이며 스스로 양육의 어머니이며 그들의 행복과 안정에 있어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귀족 정치를 파괴해 버렸다. 귀족 정치를 부수어버린 뒤부터는 인민은 그들을 이용한 무자비한 벼락 출세의 지배자로부터 억눌림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벼락 출세의 압제자로부터 노동자를 구한다는 말하자면 구세주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그들에게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의 전열에 들도록 권한다.

우리들은 프리·메이슨에 의해서 규정된 ‘박애’의 원칙과 인류 보편의 의무에 따라 그들을 돕고 있는 듯이 보이도록 한다. 우리들의 권력은 노동자를 만성적인 영양 실조와 무기력한 상태에 두는 것으로써 보전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들은 우리에게 반항할 힘도, 용기도 없어져 버리고 우리들 눈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굶주림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인바, 그 힘은 그 옛날 제왕의 정통한 권력이 귀족에게 주었던 힘보다도 훨씬 큰 것이다. 빈곤과 이로부터 생기게 되는 질투에 의해서 우리들은 민중을 조종하고 우리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우리의 ‘세계 왕’의 대관식의 때가 오면 같은 방법으로 우리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것, 모든 것을 일소할 것이다. 비유태인은 우리들의 과학적 조언이 없이는 사물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들의 세계 지배가 이룩될 때까지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보전하려고 애쓰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때가 오면 학교에서 유일한 진실의 .학문, 인간 생활과 사회 조직의 연구 즉 분업과 계급, 종족에 의한 유별의 필요가 가르쳐져야만 한다. 일의 성질이 제각기 다른 까닭에 평등과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법률에 대한 책임도 제각기 같을 수 없다. 그 행위로써 계급 전체를 손상케 하는 자와 스스로의 명예를 손상케 할 뿐인 자와는 책임의 무게도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에 대한 진실의 학문은 비유태인에게는 가르치지는 않으나 두뇌 노동과 육체 노동과의 구별이 없어서 아니 된다는 것을 알려 둘 필요는 있는바 그렇지 못할 경우 교육과 직업의 불일치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학문을 받아들이게 되면 민중은 자진하여 권력과 정부에 봉사하게 된다.

다만 우리들이 의식적인 방향 유도를 한 현재의 과학의 영향으로 인민은 맹목적으로 활자로 된 서적과 그 속의 허망한 허깨비를 믿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보다 상위의 계급의 모든 것을 미워하게끔 되었다. 이 증오는 상공업을 제자리 걸음에 머물게 하는 경제 공항의 도래와 더불어 더욱 심하게 된다. 우리들은 모든 음모와 우리들이 쥐고 있는 돈의 힘으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을 불러 일으키고 전유럽의 가두에 수없이 많은 노동자의 떼거리를 내동댕이쳐 버릴 것이다. 이들 민중은 그 무지로 인해서 어릴 적부터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그 재산을 약탈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에게는 해를 주지 않는다. 어째 서냐 하면 우리들에게는 습격의 시기가 미리부터 알려지도록 돼 있으므로 사전에 보호책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자유주의가 ‘이성이 지배하는 정치에의 길’이라고 비유태인으로 하여금 믿게 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전제 정치는 그 이성의 엄격함으로써 모든 폭동을 진압하고 각 제도 속의 자유 사상을 떼어 없애 버릴 것이다. 인민은 자유의 이름에 의하여 여러 가지 권리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스스로가 주인공이라고 잘난체하며 권력을 잡으려고 다툰다. 하지만 그들은 장님마냥 수많은 장해에 부딪치게 된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들은 옛날의 제도로 되돌아설 수도 없게 되고 우리들 발 아래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제군, 우리들이 대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프랑스 혁명을 상기해 보라. 이 혁명의 준비의 비밀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바 그것은 저 혁명이 우리들의 손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들은 각국 인민을 실망에서 실망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우리들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우리들이 준비하고 있는 시온의 피를 이어받은 왕을 받들게 될 것이다. 현재 국제적 세력으로서 우리들은 불패이다. 왜냐하면 만약 어느 일국이 우리들을 공격한다면 다른 여러 나라가 우리를 지원해 주는 식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비유태인의 끊일 줄 모르는 비열함은 우리들의 입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들은 권력 앞에는 무릎을 꿇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하며 타인의 과실에는 엄격하고 스스로의 죄에는 관용하다. 자유의 모순은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러면서도 대담스러운 전제의 폭력에는 순교자 마냥 인내를 한다. 그들은 오늘의 전제자인 수상을 인정하고, 참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간의 권력 남용이라도 있는 날이면 군왕 20명이라도 죽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겠는가. 바로 같은 사상에 대해 민중은 어째서 모순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일까. 즉 독재자들은 그 앞잡이를 내세워 민중을 이렇게 설득한다. 자기네가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 나라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보다 더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다. 그것은 인민은 번영, 박애, 국제적 연대, 그리고 평등을 위한 것이다. - 물론 이러한 사상의 결합 통일은 우리들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룩될 수 없지만 민중에게는 그것은 알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중은 정의를 벌주고 부정을 사하며 차츰 우쭐해 지면서 제멋대로 놀아나게끔 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사회의 밸런스를 깨고 한걸음 한 걸음 무질서로 나아간다. 자유라는 말은 사회를 모든 권력에 대해서 항쟁케 한다. 자연이나 신의 힘에도 반항케 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을 적에는 인간을 피비린 내 나는 짐승으로 바꿔 버리는 폭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말을 사전에서 말소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맹수도 피에 배부르게만 되면 잠을 자고야 말기 때문에 쇠사슬에 붙들어 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다만 그들은 피를 빨아 먹지 못하게 해두면 잠을 자려고 하지 않고, 서로 투쟁을 하는 것이다.


시온의정서4

제4의 의정

모든 공화국은 몇 가지의 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제 1단계는 장님이 되어 버린 사나이가 아무 데나 가리지 못하고 부딪쳐서 좌로 우로 비틀거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 2단계는 민중 선동의 시기로서 여기에서 무정부 상태가 생기고 이윽고 필연적으로 독재 전제 정치에 이른다. 이 독재 전제는 공적, 합법적인 것은 아니며 은밀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 이것은 무대 뒤의 비밀 결사가 무대 위의 탤런트를 조종하여 춤을 추게 하는 것이며 진상을 숨기기 위해 때때로 탤런트를 바꾸게 된다. 그것은 탤런트의 개런티란 장기 출연이면 비싸게 먹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대체 누가 어떤 자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권을 타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정권의 특징인 것이다. 프리 메이슨 결사의 세속적인 활동은 우리들의 힘과 목표를 얼버무리게 하는 가면이다. 비밀 정권의 전략이나 그 본부의 소재조차도 민중에게는 알 수 없게끔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신에의 신앙과 이웃 사랑을 설교하고 있는 것 만이라면 자유도 인민의 안태와 행복에는 해를 주지 않으니까 상관없지만 ‘평등’은 예속을 필요로 하는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것인 까닭에 이것과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이 있으면 인민은 신부의 정신적 지도에 따라 신이 이 세상에 내린 법칙대로 조용히 평화스럽게 생활하여 나갈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신앙을 파괴하고 비유태인의 마음으로부터 신과 성령의 사상을 빼앗고, 그 대신 수학적인 타산과 물질적인 욕망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비유태인으로 하여금 사색과 관조의 틈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들은 그들의 관심을 상공업에 기울이게 끌어대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인민은 자기의 이익 쪽으로 정신을 쏟아 공동의 적을 놓치고 말 것에 틀림없다. 자유가 비유태인 사회를 드디어 와해케 하도록 하기 위해서 공업을 투기적 기초 위에 두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공업이 대지로부터 끌어낸 부는 비유태인의 손에서 투기꾼을 거쳐 모두 우리들의 금고에 들어가게끔 된다. 경제 생활에 있어서 우월을 얻기 위한 격렬한 투쟁과 시장에 있어서의 끊임없는 투기는 인정이 메마른 사회를 출현 시킬 것이다.

그리고 고상한 정치나 종교에 대해 혐오감을 품게 되고 돈벌이에 대한 집념만이 유일한 삶의 보람으로 알게 된다. 그들은 돈으로 얻어지는 물질적인 쾌락만을 찾게 되고 돈을 우상시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들 비유태인의 가난뱅이들은 고매한 목적을 위한다든가 스스로 재화를 저축한다든가 하기보다는 다만 상류 사회에의 질투에 불타게 되고, 우리들에게 붙어 따르고, 우리들의 경쟁자인 특권적인 비유태인에 대하여 반역하게끔 된다.



시온의정서5

제5의 의정

부패가 구석구석까지 퍼진 사회! 교묘한 속임수나 사기에 가까운 방법이 아니면 부를 얻을 수 없는 사회. 뇌물이 활개를 치고 도의는 겨우 법률의 제재에 의해서만이 유지되며 마음으로부터는 지켜지지 않는 사회, 국제주의가 조국애와 신앙을 죽여 버리고 만 사회, 이러한 사회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어떤 정치 체제를 주면 좋을까. 이와 같은 사회에는 지금부터 설명하는 바와 같이 전제 정치 이외에는 없다.

우리들은 아주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만들고 모든 권력을 우리의 손에 쥔다. 그리고 새로운 법체계 따라, 인민의 정치 생활을 기계적으로 다스려 간다. 이 법률은 이제까지 비유태인이 허용하던 관대나 자유를 하나하나 없애 버린다. 이러한 훌륭한 전제로 대처하기 때문에 어떠한 때, 어떠한 곳에서도 우리에게 불만을 품는 비유태인의 저항은 미연에 으깨어 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제 정치는 근대의 진보에 알맞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라는 것을 증명하여 보기로 하자.

인민이 아직 그 추장을 신의에 따른 것으로 믿고 있던 시대에는 그들은 제왕의 전제에 불평도 없이 따랐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들 자신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상을 불어넣은 다음부터는 그들은 제왕을 여느 인간으로서 보게 되었다. 신의 은총은 제왕에게서 꺼져 없어졌다. 우리들이 인민의 마음에서부터 신에의 신앙을 뺏어 버렸을 때 왕관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시궁창에 버려졌고 거기서 우리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살필 까닭이 없이 습득물로서 그것을 손에 넣게 되었던 것이다.

궤변이나 허어를 사용하고 사교 의례를 내세우며 혹은 비유태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서 민중이나 개인을 뜻대로 조정하는 기술을 두고 말한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천재이다. 우리의 지배는 날카로운 관찰과 분석, 비길 데 없는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누구도 우리와 맞설 수는 없다. 연대적인 공동 행동이나 정치 활동에 있어서도 누구도 어깨를 맞댈 수 없는 바 겨우 이 점에 있어서 제스이트 교단만이 우리와 필적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무지한 민중의 신용을 잃었다. 그것은 우리들이 비밀결사로서 언제나 그늘에 숨어 있는 데 비해서 제스이트 교단은 공공연하게 눈에 보이는 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가톨릭의 교황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나 시온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의 왕에게 지배되는 것이나 그것은 마찬가지 일일지는 모르나 그러나 신의 선민인 우리들 유태인으로서는 그것은 마찬가지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비유태인에 의한 세계 동맹이 우리들을 뒤지게 하는 일이 있게 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는 빼어 버리기 힘든 강한 압력에 의해서 우리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들은 2천년이나 옛날부터 비유태인들 사이에 개인적, 국가적, 민족적, 종교적인 대립과 증오를 더하게 되게끔 행동해 왔다.
그러니까 어떠한 국가도 다른 자로부터의 지원을 얻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반항하는 동맹이 불리하다고 각국 모두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너무나 강력한 까닭에 그 누구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다. 어떠한 국가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숨은 승낙 없이는 비록 사소한 협정이라 하더라도 맺을 수 없지 않은가.

나의 힘에 의하여 모든 왕들은 통치하느니라. (구약 잠언 8장)
우리의 예언자들은 우리들이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신으로부터 뽑혔다는 것을 가르쳤다. 우리들이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신은 우리들에게 천부의 재능을 주셨다. 비록 우리의 적에게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이 신출내기가 고참인 우리들을 당해낼 까닭이 없다. 우리들의 싸움은 전에 없이 잔혹하고 그들의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늦다.

국가 기관의 모든 부문은 우리 장 중의 힘, 돈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 우리들의 현자에 의해서 창조된 경제학은 오랜 옛날부터 이 황금의 탁월한 위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받지 않는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상공업을 독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전세계에 걸쳐 실현하기 위해서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의 공작이 시작되고 있다. 일이 제대로 잘되면 정치는 자본에 종속하게 되고 인민은 그 아래 짓눌러 신음하게 된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제국민을 전쟁으로 몰아대는 것보다는 무장해제를 시키는 편이 필요하고, 격정을 가라앉게 하는 것보다 이용하는 편이 득책이다. 또한 타인의 사상도 덮어놓고 배척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편리하도록 빌어 역용 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의 주요 과제는 모든 사건을 파괴적으로 비판하고 세론의 힘을 약화시키고 우리들에게 대한 반항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사색의 습관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정신력을 알맹이 없는 수다쟁이로 바꿔치기 하는 일이다. 어떠한 시대에 있어서도 민중은 1개인도 그러하지만 언론을 실상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감정에 맞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공약이 실천되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할 생각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겉보기가 근사한 특별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고 얼마나 진보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있는가를 알리도록 한다.우리들은 각 정당 정파의 강령이나 사상을 긁어 모아 우리들의 탤런트로 하여금 시부렁거리게 한다. 민중이 미사여구의 장광설에 싫증을 내고 어떠한 탁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도록 만든다. 세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각 방면으로부터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발표케 하고 비유태인의 판단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어 결국 정치에는 아무런 의견도 갖지 않는 것이 더욱 낫다고 생각하게끔 되게 한다.

즉, 정치는 그것을 직접 다루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민중에게는 아무래도 알 수 없는 것으로 깨닫게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첫째 비책이다. 정치를 성공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둘째 비책은 민중의 결점, 악습, 욕정을 조장하고 사회 생활상의 여러 가지 규범을 복잡 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면 그 혼란 속에서 모두들 무엇이 무엇인지 까닭을 모르게 되고 인간 상호간에 서로 이해를 하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화의 씨를 뿌리고 아직도 우리들에게 따르지 않으려는 집단을 교란하며 개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을 가로막는 자는 쓸모없는 무골호인으로 만든다.

창조적 정신만큼 위험천만을 것은 없다. 그것이 천재적인 작용을 하게 되면 애써 우리가 불화하게 만들고 무력화하게 만들어 둔 비유태인의 1백만 명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비유태인 사회의 교육을 지도함에 있어서 그들이 창조적 정신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마다, 실패하고 절망해 버리도록 작용해야만 한다. 개인의 자유를 발휘하여 행하는 시도는 타인의 자유와 충돌하여 맥을 추지 못하게 된다. 이에서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환멸을 느끼고 실망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비유태인을 맥이 빠지게 하고 피곤에 쓰러지게 한다. 이윽고 그들은 국제적인 지배권을 우리들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국제적인 지배권이란 것은 일부러 세계의 제국가를 때려 부셔 버리지 않고도 그 위에 포괄하여 초월적인 주권을 세우기만 하면 일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은 현재의 지배자 대신에 초국가적 정부라고 나 일컬을 괴물을 만든다.

이 초국가적 국제 기관의 손은 각 방면으로 뻗어 강대한 조직을 형성하고 모든 인민은 그 밑에 예속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다.


시온의정서6

제 6의 의정

불원간 우리들은 거대한 경제의 독점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이 독점은 막대한 부를 이루어 비유태인의 대자산도 우리들의 독점에 종속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공황이 일어나는 다음날에는 그들의 전재산도 정부의 채권과 함께 우리들의 독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열석한 경제 학자 제군, 이 계획의 의의를 신중하게 생각해 주시오.

우리들은 모든 방법을 다하여 우리들의 초국가 정부의 인기를 드높이고, 자진하여 우리들에게 따르려 하는 자에 대해서는 이 정부야말로 보호자이며, 돈벌이를 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귀족은 오늘날 이미 정치 세력을 잃고 있으므로 크게 문제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귀족은 아직껏 지주로서는 존속하여 있고, 아직 우리에게는 장해물이 된다. 그 까닭은 토지로부터의 수익에 의해서 우리들로부터 독립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그들로부터 토지를 뺏을 필요가 있다. 그 최상의 방법은 지세를 올리고 토지를 저당으로 잡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토지로부터의 소득은 적어진다. 그런데, 그들은 부조 전래의 사치 취미를 버릴 수 없으므로 출비의 절감은 어려울 것이고, 불원간 파산하고 말 것에 틀림없다. 이와 동시에 우리들은 전보다 더욱 상공업에 대한 보호를 더하여, 특히 투기를 장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투기의 목표는 공업의 개량에 도움이 되며, 농업 은행이 지주에게 대부한 모처럼의 채무를 반제 받게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업이 토지에서 얻어진 부를 빨아들이고 투기를 통해서 전세계의 재화가 우리들의 수중에 들어오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유태인은 무일푼이 되고 다만 살아남 기 위해서 우리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들의 공업을 파괴하기 위해 우리들은 투기 이외의 또 하나 대담하게 사치를 권장해야 한다. 즉 화려한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 재력을 모두 허비하고 말 격렬한 욕구를 북돋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노동 임금을 인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농산물의 수확이 좋지 못하고 목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구실을 붙여 생활 필수품의 가격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임금 인상도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득도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노동자에게 무정부주의의 사상을 유행시키거나 술주정의 버릇을 갖도록 만들거나 하여 생산력의 원천을 고갈시킨다. 비유태인이 미리 이런 일의 진상을 깨닫지 못하게 잘 숨겨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 노동 계급의 경제 상태를 개선하고 경제 원칙에 따르고 있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경제학설은 쓸모가 있다.


시온의정서7

제7의 의정

군비 확장과 경찰력의 증강은 이제까지 설명한 계획의 실현에 필요하다. 어떠한 국가도 우리들 이외에는 많은 무산 대중과 우리에게 충실한 한 줌의 부자들과 그 밖에는 모두 군대와 경찰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들은 유럽 대륙과 다른 각 대륙에 있어서 소란, 논쟁, 불화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 그로써 우리들은 이중의 이익을 얻게 된다.

첫째, 각국 모두 우리들의 손가락 하나로써 폭동이건, 진압이건 뜻대로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들을 얕잡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존재를 필요악으로서 인정하는 일에 익숙해 질 것이 틀림 없다.

둘째, 우리들의 정치적 수단, 혹은 경제상의 계약, 채무 관계에 있어서 각국 정부 기관에 미리 둘러쳐 둔 그물을 사용하여 음모에 의해서 뒤엉키게 만든다.

이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회의나 교섭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교활함과 간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표면적인 공식의 이른바 외교 사령에 있어서는 전혀 반대로 극히 정직하고 이해성 있게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비유태인의 정부 당국자나 인민에게는 이러한 표면적인 것만 보일 수 있게 해 두었으므로 언제까지나 우리들은 은인이며 구제자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에게 반항하려는 국가가 있게 되면 우리들은 곧 그 인접국에 전쟁을 일으키게끔 만든다. 그 인접국마저 서로 동맹을 하여 우리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려고 한다면 우리들은 세계 전쟁을 발발 시켜야만 한다.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뱃속을 감추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교관은 언행 불일치라야만 한다.

우리들의 원대한 계획은 결승점에 거의 이르게 되었지만 비유태인 정부로 하여금 이에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세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같이 보일 필요가 있다. 실은 그 세론이라는 것도 매스컴이라는 위대한 힘에 의해서 우리들이 남모르게 만들어 둔 것에 불과하다. 두 세가지 예외는 있지만 신문은 모두 우리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다. 유럽의 비유태인 국가 정복책을 간단히 말한다면 어느 한 나라를 테러로써 공포에 떨게 하고 우리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동일 보조를 취하여 우리에게 대어들 때에는 미국, 중국, 혹은 일본의 대표로써 이에 답을 할 것이다.


시온의정서8

제8의 의정

적이 우리에게 대하여 사용할 만한 무기는 우리도 또한 준비를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지나치게 특출하여 올바르지 못해 보이는 결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정당화되어 해석될 수 있도록 6법 전서의 미묘한 점이나 번잡한 수속까지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결정이 매우 도덕적이며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닌 것같이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부는 모든 문명의 동맹군에 둘러싸여 그 속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동맹군이란 것은 신문기자, 변호사, 행정관, 외교관, 그밖에 우리들의 특수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의 뒤안길을 알고 정치적 언어를 알아들으며 인간의 심층 심리와 급소를 쥐고 있다. 이 급소란 것은 비유태인의 정신 구조, 경향, 결점, 죄악, 도덕 및 계급이나 종족에 따른 특질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 동맹군에 비유태인을 집어 넣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정치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목적이 무엇인가도 모르며 서류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는가 하면 돈이나 야심에 사로잡혀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부에는 수많은 경제학자가 모여 있다. 그것은 경제학이 유태인 교육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은행가, 공장 경영가, 특히 중요한 백만장자들도 둘러싸고 있다. 어째 서냐 하면, 실제 만사가 돈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두드러지게 중요한 정부의 요직에 유태인 동포를 앉히는 것이 아직도 위험한 동안은 다른 인간 즉, 과거의 경력으로 보아서 인민과의 사이에 크나큰 거리가 있는 자를 대신 앉혀 둔다. 또한 만일 우리들의 지령에 따르지 않을 것같이 보이면 사형이나 추방을 받을 위험성을 지닌 인물을 갖다 앉힌다. 그러면 이들 인물들은 임종의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시온의정서9

제9의 의정

우리들의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서는 제군이 현재 거주하고 활동하고 있는 나라의 민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들 식으로 교육 개혁이 되어 있지 않은 인민에게 우리들의 원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한들 성공은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하기만 하면 어떠한 완고한 민족성도 겨우 10년쯤이면 변해 버리고 벌써 우리들에게 굴복해 버린 한 무리의 일원에 끼워넣을 수 있게끔 될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가 닥쳐오면 이제까지 프리 메이슨에 의하여 널리 알려진 자유,평등,박애의 슬로건을 자유의 권리, 평등의 의무, 박애의 이상으로 바꾸고 사나운 소의 뿔을 새로 길들게 해야 한다.
법적으로는 아직 몇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의 정권 이외의 것은 이미 넘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우리들에게 반항하는 국가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형식상의 일일뿐, 실은 우리들의 희망과 명령에 의해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반유태주의에 의해서 보다 하층의 우리 동족을 일치 단결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들 사이에 여러 번 논의가 거듭되어 왔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 실제 우리들에게는 이제 아무런 장해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초국가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존재이며 독재, 전제라는 말의 형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자신을 가지고 단언한다. 우리들은 현재 입법자이며, 법의 판결자이며, 법의 집행자인 것이다.

처형도 할 수 있고, 사면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전군을 통할하는 총사령관과 같이 마상에 있으면서 사방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강력했던 정당도 우리를 따르게 되었다. 우리들은 끊임없는 야심, 불타는 탐욕을 가지고 잔혹한 복수, 깊은 증오를 끓게 하고 있다.

세계 중에 퍼져가는 공포는 바로 우리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의 주의, 주장을 가진 인물들이 우리들에게 고용되고 있다. 혹은 왕정 부활을 꿈꾸는 자, 선동 정치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거기에다 각종의 공상가들이다. 그들은 제각기의 선 장소에서 잔존하고 있는 세력과 체제를 뒤엎으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해서 모든 정부는 이들, 우리의 게릴라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평화를 원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여도 좋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의 초국가적인 세계 정부를 그들이 공연하게 인정하여 따를 때까지는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인민은 국제 협조에 의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여러 당파로 분열되어 하나로 뭉쳐지지 않고 결국 우리들의 포로가 된다. 그 까닭은 당파싸움에는 돈이 소용되고, 돈은 모두 우리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비유태인 정부의 통찰력과 민중의 맹목적인 힘이 단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도록 예방 조처를 마련해 두고 있다. 두개의 세력 사이에 벽을 쌓게 하고, 서로 두려워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민중의 맹목적인 힘은 아직껏 우리들의 편이 되고 있다. 우리들은 그들을 동원하여 우리들의 목적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맹목의 민중이 우리들의 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은 때때로 그들과 접촉을 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할 수 없을 때는 보다 더 충실한 우리들의 한 무리를 가운데 세워서 하여도 좋다. 우리들의 정권이 공인되게 되면 우리들 자신이 직접 거리나 광장에서 그들과 담화하고, 국정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의 방향으로 유도하게 될 것이다. 지방 학교 교육의 실상을 어떻게 해서 조사할 수가 있겠는가. 정부 당국자나 대표가 이야기한 것은 단번에 입에서 입으로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것이니까, 이것을 따라 파악하면 된다.

비유태인의 모든 제도를 섣불리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은 매우 부드러운 태도로 일을 꾸몄다. 먼저 이제까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태엽에다 세공을 가하고 이에다 자유주의자적 방종을 장치하여 부정맥을 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재판, 선거, 매스컴, 개인의 자유, 특히 참된 자유의 기초가 되는 교육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우리들은 그것이 거짓임을 뻔히 알면서도 무슨 주의, 학설 같은 것을 비유태인의 청소년에게 가르치게 했고, 그들을 속여 우둔하게 만들고 썩게 만들었다.

현행의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조문을 정반대로 해석하게 함으로써 법의 의미를 왜곡하여 놀라울 만한 성과를 올렸다. 먼저 다양한 법 해석으로 법의 진정신이 뒤엎히고 결국 정부까지도 혼미하여 법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여기에 법은 법전이 아니라 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론이 나오게끔 된 것이다.

제군은 비유태인이 사전에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리게 되면 무기를 가지고 우리들을 습격할 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여 우리들은 어떠한 용기가 있는 자라도 벌벌 떨지 않을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다. 불원간 세계의 모든 수도에는 지하철의 그물이 펼쳐지게 되지만 만일의 사태에 부닥치게 되면 여기에서 수도의 건물은 물론 문서까지도 모두 폭파하고 말 것이다.


시온의정서10

제10의 의정

우선, 이제까지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거듭하기로 하자.‘정부도 인민도 사태의 표면밖에 볼 수 없다.’라고 한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참으로 그들의 대표하는 자들이란 노는 것을 제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사물의 진상 같은 것을 꿰뚫어 볼 까닭이 없다. 이것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의 분화, 언론, 출판, 종교, 집회의 자유, 법률상의 평등, 재산, 주거의 불가침, 간접세의 징수, 법의 소급하는 효력 등에 관해서 토론을 하게 될 때, 앞서 말한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인민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논의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무래도 논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경우에는 각론의 세목은 피하고 일반론으로서의 근대법의 원칙만을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말이 적은 자 칭찬을 받을지니라.’ 즉 우리들이 민권에 관해서 너무 지나치게 자세하게 시부렁거리게 되면 꼼짝 달싹도 못하게 되지만 원칙론에 있어서의 동의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은 정치적 천재에 대해서는 특별한 부러움과 존경마저도 보이는 것이다. 비록 그가 강압 정책을 행하더라도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저 자는 약삭빠르고 염치가 없지만 정말 잘 해치운단 말이야. 아주 사람을 얕잡아 보는 짓이기는 해도 그만큼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거든.’우리들은 전인민을 옛날부터 계획해 온 우리들의 전당 건설에 찬동하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지도자는 참으로 남다른 대담함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전도에 있는 어떠한 장해도 물리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쿠데타를 성취했을 적에는 민중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만사가 막히어 여러분은 곤고에 짓눌려 왔지만 이제는 그 고난의 씨앗을 없애 버리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적, 국경, 국별의 화폐를 없애는 일이다. 물론 여러분이 우리들을 심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우리들이 제군에게 주려고 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과연 올바른 심판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이로써 그들은 미칠 듯이 좋아하고 우리들을 떠받들어 줄 것이다. 우리들이 지배권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 시작한 보통 선거에 의해서 인류의 가장 하층 계급 인간까지도 집회나 조합을 조직하는 일에 익숙하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최후의 역할을 다하여 주게 될 것이다. 즉, 우리들을 심판하기에 앞서서 우리들을 좀더 알아보려고 하는 동의가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들은 계급이나 빈부의 구별이 없는 보통선거를 실시하고 유지 계급에게서만은 얻을 수 없는 ‘다수의 독재 전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을 개인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자립하는 사상에 물들게 하고 우리들은 비유태인의 가족제도와 그 교육상의 가치를 파괴한다.
우리들 자신은 물론 영걸이 출현하게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지만 우리들의 지도를 받은 민중들 자체가 영걸의 대두를 방해할 것이며, 그 발언권마저 봉쇄해 버릴 것이다.

민중은 우리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만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들과 친해지고 순종하면 언제나 담뿍 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세력을 만들어 내는데 그들은 우리들이 배치한 두목의 지시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따위의 짓은 도무지 할 줄 모른다. 그들은 모두 수입도 이득도 이 두목의 가슴 한치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방식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의 계획은 다만 한 사람의 두뇌에서 생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다수의 두뇌가 협력하게 되면 계획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실시될 계획 내용을 아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토론, 심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계획의 창의나 각 부분의 관련, 요점의 비밀을 손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계획을 보통선거와 같은 방식으로 토론하고 투표하게 한다면 많은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 까닭은 아무나가 계획 전체의 깊은 의미와 전후의 관련까지 알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획은 공고하게 그리고 목적에 알맞도록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까닭에 우리들의 지도자의 천재적인 구상을 민중은 물론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까지 이러니 저러니 하고 참견을 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계획은 현행의 제도를 당분간은 뒤엎지 않고 우선 하부 구조인 경제만을 변혁하고 이에 따르는 발전 계획을 새로이 손을 댄다는 정도에 그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현행 제도의 발전은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의정서의 지침에 따라 나아갈 것이다. 각국에는 명칭이야 각각이지만 거의 같은 것들이 있다. 중의원 각 부처 청, 참의원, 내각, 혹은 입법부, 사법부 등을 제군을 충분히 알고 있을 터이므로 새삼 각 기관의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다만 잊어서 안될 것은 이들 각 기관이 모두 국정상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는 것은 기관, 그 자체가 아니라 기관이 다하는 작용, 기능인 것이다. 각 기관은 국정의 기능을 행정, 사법, 입법으로 분장하고 있다. 마치 인체의 제기관과 같은 작용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국가 기관의 하나를 상하게 만들면 국가는 인체와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 사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들이 국가 체제 속에다 자유주의라는 독액을 주사한 이래 각 기관은 모두 변화하였다. 이제는 어떠한 국가도 죽음에 이르는 병인 괴혈병에 걸려 버렸고 단말마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자유주의는 비유태인에게 있어서 건전했던 전제정치를 폐기하게 했고 입헌 정치를 낳게 했다. 제군도 아시다시피, 헌법이란 것은 투쟁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국가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개성적 가치를 뺏는 무익한 것이다. 의회도, 신문도, 국가의 행동력을 빼앗고, 지배자를 무용화하고 만다. 그래서 많은 국가에 있어서 원수는 폐함을 당했다. 그리고 공화제에의 길이 열리고 우리들은 전통 있는 제왕 대신에 허수아비 대통령이란 것을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민중 속에서 그것도 우리들에게 노비와 같이 봉사할 자를 뽑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들이 비유태인이 국가의 모든 지하에 매설한 폭약이었던 것이다.

불원 우리들은 대통령의 행동에 관한 책임 규정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책임은 모두 우리들의 앞잡이에게 덮어 씌워지고 우리들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계획 추진에 전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는 자가 적어지더라도 상관 없고 후보자만이 되더라도 좋다. 어차피 동란이 일어나서 국가는 파멸될 것이니까. 우리들의 각본대로 일을 밀고 나가기 위해 파나마 운하 독직사건과 같은 어두운 과거를 지닌 대통령을 뽑도록 공작을 한다. 구악이 폭로되는 데 대한 공포, 권력욕, 즉 특권과 명예를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누리고 싶다는 소망에서 그는 우리들의 지령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다.

의회는 대통령을 뽑고, 옹호하고, 감시하겠지만 우리들은 법률의 제정이나 수정의 권리를 의회로부터 뺏고, 우리들의 허수아비인 책임 있는 대통령에게 그것을 맡기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대통령이 여기저기로부터 몰매를 맞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자위를 위해 대통령에게 의회를 해산하고 민중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도록 한다. 민중은 거의 맹목적으로 우리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므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우리들은 책임 있는 대표자로서 새로운 헌법을 옹호하고 민주국의 자유를 지킬 의무가 있으므로 국군을 통할하고 언제든지 그것을 동원할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해서 국정의 열쇠는 우리들이 쥐게 되고 우리들 이외에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없어져 버린다. 신헌법을 시행할 때 우리들은 국가 기밀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의회가 국정에 대해서 질문하는 권리를 뺏고, 의원수도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이렇게 해서 정치에의 열정이나 충동을 약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소수자기 반항한다면 민중에게 호소하여 의회를 전폐하고 말 뿐이다.

대통령은 중,참 양원의 의장, 부의장에 의해서 임명된다. 국회는 항시 열지 않고, 1년에 수 개월만으로 한다. 그리고 대통령을 집행 기관의 장으로 하여 의회 소집이나 해산의 기능을 갖게 한다.
다만 우리들의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는 이러한 강제적인 방법 때문에 대통령이 책임 추궁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 주변의 장관이나 보좌관에게 그들이 제멋대로 대통령 훈령을 잘못되게 행하였다는 것으로 하여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그렇기는 하지만 될 수만 있다면 그 역할을 개인에게 시키지 않고 참의원, 중의원, 내각과 같은 기관으로 하여금 하도록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대통령은 몇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법률에 대해서 언제나 우리들이 소망하는 해석에 따르게 된다. 또 그는 우리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법률을 폐지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시한적인 임시법도 만들며 국가의 기본적인 헌법의 개정까지도 제의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반드시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라고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들이 초기의 단계에서 부득이하게 헌법 속에 넣지 않을 수 없었던 모든 것을 야금야금 차례로 없애 버린다. 그리고 어느새 완전히 알맹이를 빼버리고 모든 권력을 우리의 독재 하에 집중해 버릴 것이다.

헌법 폐지에 까지 몰아가기 이전에라도 우리의 독재를 확립 시킬 기회는 있다. 그것은 민중이 다년의 등란에 고통을 받고 정부의 무능에 배알이 꼴려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경우이다. ‘놈들을 내쫓아 버려라. 영원한 싸움의 원인이 될 국경이라든가 종교라든가 국채라든가 하는 것을 없애 버리고, 평화와 안녕을 되찾자. 이 정부나 국회를 가지고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들 모두를 통일하고 구제할 세력의 왕이여 오라.’

인민을 이러한 절규에까지 이끌기 위해서는 제군도 알다시피, 오랜 세월의 공작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모든 나라에 있어서 정부와 인민의 관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민중을 증오, 투쟁, 결핍, 기아에 직면케 하고 악역의 전염으로 비틀거리게 하며 결국 우리들의 금력과 권력의 지배하에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몰아대는 것이다. 만약 인민에게 조금이라도 한숨 돌릴 짬을 주게 된다면 이 기회는 마침내 놓치고 말 것이다.


시온의정서11-15

제11의 의정

참의원은 정부 권력을 아무도 모르게 돕는 것이다. 외관은 훌륭하지만 실은 정부를 위한 법률이나 정령의 자귀를 정비하는 위원회인 것이다. 우리 신헌법의 원칙도 따라서 법을 만드는 것도, 집행 하는 것도 모두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그 실시의 방법은,

제1로 입법 기관에 우리들의 지령을 내린다.
제2에 대통령이나 정령, 혹은 의원 입법에 의한 것
제3은 때가 오면 쿠데타에 의해서 달성될 것이다.

우리들의 행동 계획의 대요를 말했지만 이하 우리들의 승리에의 길을 세부에 걸쳐 검토하기로 하자. 쿠데타의 다음날에는 언론의 자유, 집회의 권리, 신교의 자유, 보통 선거권, 그 밖의 여러 가지는 인류의 사전에서 말소되든가 근본적으로 그 의미가 바꿔져야만 한다.

쿠데타의 때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헌법을 일거에 성립시키는 유일의 기회이다. 그러나 그 후에 법 개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까닭은 개정이 엄격함을 더하게 되면 인민은 차츰차츰 또다시 법률이 엄하게 되고 생활이 악화하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여 절망할 것이다. 반대로 개정이 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인민은 우리들이 오류를 범했던 것이라고 느끼게 되고 신뢰가 흔들리게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우리가 두려워서 양보한 것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어 조금도 감사해 하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양보를 강요해 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쿠데타 후 신헌법이 일단 공포된 다음에 있어서의 변개는 권위의 실추를 가져 오게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들은 쿠데타로 민중이 혼이 나고 머리가 혼란 되어 있는 동안에 통일성 있는 신헌법을 그들에게 강제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그 어느 무엇에 대해서도 보다 더 강하고 불패이며 민중의 콧김을 엿볼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투르게 반항이라도 하는 날이면 곧 탄압을 받고야 만다는 인상을 깊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전권력을 장악하고 비록 그 어떠한 이유라 할지라도 절대로 그들에게는 권력의 한 토막의 몫도 주지 않을 것이다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공포에 떨며 눈을 감고 사태를 방관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비유태인은 양 떼이며 우리들은 이리다. 이리가 양 떼가 있는 목장에 침입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제군은 잘 알 것이다. 양은 눈을 감고 만다. 비유태인 민중도 마찬가지로 단념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평화의 적을 평정하고 적대하는 당파들을 타도해 버리기만 한다면 빼앗은 자유를 모두 되돌려 준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제군에게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좀처럼 깨달을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이러한 전략 전술을 세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 유태인은 세계에 이산해 있고 도저히 직선적인 이른바 정공법으로서는 세계 지배의 목적을 이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번거로운 우회 작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지하에 숨은 유태인만의 프리 메이슨 결사(브나이.브리스=성약의 형제)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며 비유태인들은 그 목적은 물론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신은 선민인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우리를 전세계에 분산 하시었다. 유태 민족의 이산은 표면적으로는 곤액 고난으로 보이지마는 실은 깊으신 신의 뜻이며 세계 지배에의 포석인 것이다. 이렇듯 기초는 구축되어 있고 다음은 그 위에 건물만 세우면 되는 것이다.

제12의 의정

자유라는 말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우리들은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것을 행할 권리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의해서 자유는 전혀 우리들만의 것이 된다. 그 까닭은 법률은 모조리 우리들의 희망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고 폐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의 신문의 역할은 민중의 격정을 선동하거나 파당적인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거나 하여 우리들의 이익이 되고 있다. 신문은 원래 빈 껍질이어서 불공평하고 거짓말쟁이이지만 민중의 대부분은 그것이 누구의 지배하에 있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다.

신문은 알고 보면 우리들이 타는 말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며 우리들은 그 등에 안장을 놓고 고삐를 꽉 잡고 있다. 신문 이외의 출판물도 마찬가지다. 애써 우리들이 신문을 교묘하게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출판물로 공격을 받게 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된다. 세론 지도에는 제법 밑천을 들이고 있는데 검열 제도에 의해서 이것을 우리들의 정부에 빨아올리도록 해서 역으로 재원으로 삼는다.

특별한 인지세를 붙여 신문사나 출판사를 시작하는 자들에게 보증금을 쌓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그들의 공격을 아주 막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공격을 일삼는다면 가차없이 벌금을 받아내도록 한다. 인지세, 보증금, 벌금은 정부의 중요한 수입이 된다. 정당 기관지 같은 것은 벌금을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발행 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할 것이다. 우리의 정부의 무료성을 그 누구도 비판하는 것은 허락되지 못한다. 발행 정지의 이유는 언제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쓸데없이 세론을 선동했다고 하는 것이다.

제군에게 특히 주의하기 바라는 바는 우리가 창설한 신문도 우리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의 방향이 실은 우리가 예정해 놓은 정책 변경의 방향으로 향해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정보도 우리들의 눈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표되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의 뉴스는 몇 개의 통신사에 의해서 수집되고 거기서 정리되어 비로소 각 신문사, 제관청에 주어지게 된다. 현재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머지않아 모든 통신사가 우리의 지배하에 있게 되고 우리들이 허락하는 뉴스만이 전달되도록 될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도 거의 비유태인의 사상계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의 사건을 우리들이 맞춰 준 색안경을 통해서 보게끔 되어 있다. 불쌍한 그들이 ‘국가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모두 우리에게 알려지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세계의 왕으로서 군림했을 때야말로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한 번 더 신문의 장래에 이야기를 되돌려 보기로 하자. 신문, 잡지, 서적과 같은 이른바 저널리즘은 모두 허가제로 하고 어떠한 사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위반하면 즉시 인가를 취소해 버린다. 이렇게 하면 저널리즘은 우리들의 정부가 쥐는 교육 수단이 되고 인민이 하염도 없는 진보의 백일몽에 들뜨게 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제군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러한 백일몽 때문에 인민끼리 혹은 인민과 정부와의 사이의 모든 규율과 질서가 파괴되어 버렸던 것이다. 진보, 정확하게는 진보의 사상은 무제한하게 각종 해방 운동을 낳게 했다. 자유사상의 진보주의자는 행동의 면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지만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혁명가이다. 그들은 모두 자유의 환상을 뒤쫓고 체제에 대하여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하며 드디어는 무정부주의자적인 상태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다시금 신문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을 해 보자. 우리들은 신문을 비롯해서 모든 출판물에 지면 수에 따른 인지세를 건다. 30면 이하의 소책자에는 2배의 세를 과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출판물로서 안이하게 간행되기 쉽고 가장 해독을 끼치는 잡지의 수를 제한 할 수가 있다. 저작가는 저작자로서 두께 있는 책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며 이렇게 하여 값은 비싸게 되고 싫증이 나서 별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 측에서 내는 출판물은 우리의 방향으로 세론을 형성시키려는 것이므로 책 값도 싸게 함으로써 날개가 돋힌 듯 팔려 버린다. 세금으로 저작에의 욕구를 억누르고 처벌의 위협으로 저작가를 우리들의 슬하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반역을 꾀하는 자가 있겠지만 그러한 저서를 맡는 출판사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 하면, 출판사도 인쇄소도 허가제로서 발행 전에 출판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대한 비난도 미리 알아낼 수 있고 적이 출판하기에 앞서 선수를 쳐서 반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판과 신문은 둘 다 가장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부는 이들 거의 모두의 정기 간행물의 소유권을 획득한다. 이로써 정부는 민영 신문의 해를 배제하고, 민심에 계속적인 영향을 준다. 반대파의 신문,잡지 10에 대해서 이편은 30으로 맞선다.
물론 이러한 일이 공공연하게 행해진다면 그것은 본전도 이자도 못찾게 된다. 우리의 신문 잡지는 표면상 다종다양한 경향을 가지는 듯이 보여야 한다. 즉, 어용 신문, 잡지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여 민중을 속이고 이편의 함정에 빠지도록 해서 그들을 우리에게 무해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먼저 관보 혹은 정부 홍보, 그 임무는 언제나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 때문에 도리어 영향력은 적고 약한 것이다. 다음 반관적인 것 그 역할은 무관심한 비정치계나 중립파를 우리들의 편으로 흡수한다. 세 번째로, 뚜렷한 야당적인 색채의 신문, 이것도 적어도 지면의 일부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정면으로 반대한다. 그러면 진짜 반정부파는 이것이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비밀까지 발설해 주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귀족주의, 공화주의에서 혁명적인 무정부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신문을 경영하지만 물론 그것은 지금의 헌법이 존속되고 있는 동안만의 일인 것이다. 1백 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비슈누신과 같이 이들 신문은 제각기 그 어느 사상 조류를 쥐고 있다. 어떤 조류가 격화될 듯 한 때에는 재빠르게 그 흐름을 우리의 수도에 도입할 것이다. 흥분하여 이성을 잃은 인간만큼 이끌어가기가 쉬운 것도 없다.

그들 얼간이들은 자기들의 당 기관지의 주장을 떠벌리고 있는 셈으로 있지만 실은 우리들의 의견, 아니면 적어도 우리에게 유용하게 될 의견을 PR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 당의 신문에 좇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는 우리의 깃발에 따라 행진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계획을 지휘하기 위해 우리는 주의 깊게 조직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신문 중앙 협회와 같은 명칭으로 언론인의 협회를 만들고 거기에 우리들의 숨은 동지를 두어 우리의 표어 보급에 힘쓰게 한다.

우리들의 신문이 이편의 정책 비판을 하거나 공격을 하거나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표면만의 일로서 핵심에 미치는 것과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 기관지와도 공공연하게 화려한 논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부 기관지가 제일보에서 충분히 뜻을 펴지 못했던 것을 보다 자세하게 보완하여 보도 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필요하고 유리한 경우에만 하게 한다. 신문으로 하여금 우리들에 대한 공격을 하게 하는 것은 인민에 대하여 아직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믿게 하는 것도 된다.
또한 반대파의 신문은 얼토당토 않은 엉터리의 반대를 주장하게 한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실상의 근거는 없지 않은가 하고 우리들의 동지가 PR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계략은 일반에게는 알 수 없고 우리 정부에 대한 인민의 신용을 높이는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들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국정에 대한 세론을 자극하거나 진정하게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어떤 때는 진실, 어떤 때는 허위를 유포시키고, 설득하거나 역용하거나 한다. 그것은 민중이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고 대응하는 것이며 사실에 바탕을 두고 설명도 하고 또한 사실을 부정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단번에 땅 위에 뛰어내리거나 하지 않고 발로써 살짝 디디어 보고 지상을 굳게 밟는 셈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이러한 조처로서 우리들은 확실하게 적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적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신문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에게 애써 반론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앞서 제3에 든 야당적 신문에 얹혀지는 우리들의 관측 기구의 기사도 필요한 경우에는 반관적 신문을 통해서 부셔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신문계에 있어서는 현재 이미 프리 메이슨 결사에 의한 밀접한 연대가 성립되고 있다.

모든 신문은 직무상의 비밀을 서로 엄수한다는 것으로써 서로 맺어졌다. 메이슨의 선서에 의해서 결의에 따라 공표해도 좋다고 하지 않는 한, 어떠한 기자도 정보의 비밀을 밝히지는 않는다. 어째서냐 하면 우리들은 꺼림칙한 과거로 떳떳하지 못한 형편에 있는 기자만을 메이슨에 넣는 까닭에 위반하기만 하면 그것을 폭로하고 말기 때문이다. 과거의 오점이 숨겨져 있는 한 그의 명성은 외국에까지 넓혀지고 많은 민중은 그의 붓에 따르게 된다.
우리의 계획은 지방에 대해서도 중시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 도시에 대한 희망과 반대를 선동하고 거꾸로 도시 편에 있어서는 지방에 대립하는 경향을 더욱 조장시킨다. 쌍방 모두 그 출처는 우리들이다. 우리들이 완전히 권력을 쥐기까지에는 우리들의 앞잡이가 선동한 지방의 세론이 수도를 제압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때가 닥쳐오면 이제는 지방의 대다수가 인정해 버린 기정 사실로서 굳어 버려 수도 측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못하게끔 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권력 확립 전의, 말하자면 과도적인 신체제 시대가 되면 신문에 사회적인 스캔들은 취급하지 못하도록 한다. 새로운 체제하에서 모든 인민이 만족하고 범죄도 그림자를 감추게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믿게끔 한다. 범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자와 우연의 목격자 이이에는 아무도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시온의정서의 정의(2)


제13의 의정

나날의 빵 결핍 때문에 비유태인은 묵묵히 우리의 유순한 심부름꾼이 되어 버린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신문에 쓸 만한 적당한 자를 뽑는다. 그리고 우리들이 정부 기관지에서 직접 어필 할 수 없는 문제를 그들에게 시키는 것이다. 논쟁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그 혼잡한 틈을 타서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고 기정 사실로서 인민에게 제시한다.

이것은 구폐의 개선이다라고 말하면 누구도 결정된 법을 폐기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신문은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들고 나와 일반의 관심을 그 쪽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들을 끊임없이 신기한 것에로 흥미를 쏟게 되도록 버릇을 들여 왔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어리석은 운명의 인간들은 그들이 논전하고 있던 것의 본질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또다시 새로운 문제를 가지고 입가에 침을 튕기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치의 문제는 그것을 몇 세기에 걸쳐 연찬 해 온 우리들에게만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제군은 이미 알겠지만 우리들이 세론 조작을 하는 것은 우리 계획을 아무 탈없이 달성 시키기 위한 것 뿐이다. 우리들이 세론에 찬동을 구하는 것은 다만 말뿐이며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의 소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 물론 이 행동은 일반의 행복에 도움을 주겠다는 희망과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PR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정치에 너무 열심인 자의 관심을 딴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새로운 문제로서 경제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대도 좋다. 원래 비유태인 정부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우리들이 교육을 하여 그들을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한 것이니까 그들은 새로운 직을 얻는다는 조건에 의해서 이제 정치 활동으로부터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직업 가운데 정치에 대신하는 즐거움을 그들에게 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기에 더하여 매스 레저를 성행시킨다. 이윽고 우리들의 신문에 예능, 스포츠 등이 크게 취급되고 퀴즈도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오락은 우리와 정치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될 인민의 관심을 완전히 방향 전환시키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차츰 독립하여 스스로 사색하는 능력을 잃고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바대로만 생각하게 되도록 되고 말 것이다. 그 때 표면적으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것을 통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제공한다. 우리의 권력이 확립되면 자유주의적 공상가의 역할은 종말을 고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들은 매우 우리들의 도움이 된다. 우리들은 그들이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는 공상론에다 인민의 생각을 끌어들여 왔다.

즉, 우리들은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는 비유태인의 두뇌를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질상의 발명에 알맞을 뿐 그 이외에는 진보라는 말은 진리를 덮어 버리는 것이라고 깨닫는 비유태인은 한 사람도 없다. 원래 진리는 다만 하나일 뿐이며 이 세상에 진보의 여지와 같은 것이 있을 까닭은 없는 것이다. 신의 선민인 우리들에게만이 인식되는 진리를 이 잘못된 사상인 ‘진보’가 덮어 감추어 버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가 왔을 때 이제까지 세계를 요란에 빠뜨리고 드디어는 신성한 율법에 복종케 한 큰 문제를 우리의 웅변가가 설명할 것이다. 모든 일이 몇 세기나 걸쳐서 우리들의 계획으로 꾸며져 왔던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야말로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다. 

제14의 의정

우리들의 세계 지배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일신교 이외에는 어떠한 종교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 유일의 신과 계약하여 그 선민이 되고 이 신에 의하여 우리의 운명이 세계의 운명과 마주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다른 종교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문에 일시적 현상으로서 무신론, 무종교 시대가 나타나게 될 지도 모르나 그것은 과도적인 것이며 우리의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세의 종교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알맞은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가르침에 따른 예언은 그들을 납득시키고 이 종교의 깊고 강함에 따르게 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사람을 신종케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공도 이 가르침의 신비에 의한 것이며 일체의 인류에 미치는 교육의 힘도 여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들은 모든 기회에 우리의 성스러운 체제의 은총과 과거의 폐해를 비교한 논문을 공표한다. 수세기에 걸치는 소란 이후 겨우 얻게 된 평화이고 보면 더욱 더 우리 지배의 은총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비유태인의 정치 결점을 남김 없이 그려내고 악정에의 강한 혐오의 정을 북돋운다. 이로써 인민은 명목만의 자유의 권리로부터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노예의 편이 더욱 낫다고 생각하게끔 된다. 사실 자유의 권리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민을 고생시키고, 생활의 길을 빼앗고, 스스로의 죄를 모르는 엉터리 꾼들이 착취를 제멋대로 할 수 있게끔 했었다.

우리들이 비유태인의 국가를 뒤엎어 버리기 위해서 몇 번인가 그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무의미한 혁명에 대해서 그들은 이제는 싫증을 느끼고 있으므로 그들은 무엇이건 참고 견디게 된다. 그래서 우리로부터 아무리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더라도 투쟁이나 폭동의 잔학함만은 제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몇 세기나 거치면서 비유태인 정부가 참된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지도 못하고 허수아비 같은 사회 복지를 뒤따라 인민을 고생시켜 온 역사적인 오류를 적발한다. 실제 그들의 과거의 정책으로 해서 사회 관계는 보다 더 좋게 되기는커녕 악화 일로를 걸어왔었는데 그것을 놓치고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책은 그러한 퇴폐한 구체제에 대해서 명료한 대조로써 보여 주게 되므로 더욱 광채를 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학자는 비유태인의 종교의 모든 결함을 지적하겠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종교의 진리는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들 이외에는 유태교를 근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고, 우리 동족은 우리의 종교의 비의를 결코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른바 선진 제국에 있어서 부도덕하고 열악한 사이비 문학을 만들어 두었지만 우리들의 세계 지배 후에도 당분간은 그대로 내버려둘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숭고한 이상과 그 추악과의 대비를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비유태인의 지도를 위해 교육해 둔 우리의 현자들은 연설, 계획, 회상록 같은 것을 쓸 것이다. 그것으로 민심에 세력을 부식하고 우리의 학문과 사상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제15의 의정

우리들이 세계 각국에 혁명을 동시에 발발 시키고 현재 정부의 무력함이 결정적으로 되었을 때부터 우리의 시대는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까지에는 아직도 상당한 세월 아마도 거의 1세기는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력이 확립되었을 경우에는 우리에게 대해서 반역이 일어나지 않게끔 경계를 단단히 해야만 된다.

무장봉기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모두 죽여 버린다. 새로이 비밀 결사를 만드는 자도 마찬가지로 사형에 처한다. 현재의 비밀 결사는 우리가 승인했고 우리의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이것도 모두 해산해 버린다. 결사원은 유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벽지에 추방해 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정을 잘 알고 있는 비유태계의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 대해서는 먼저 처치를 한다.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용서를 해 주었던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국외 추방을 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위협을 해 둔다. 어쨌든 이제까지 비밀 결사에 속해 있던 자는 우리 정치의 중심인 유럽으로부터 내어 쫓을 신법률을 시행할 것이다.

우리의 정부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으로서 공소도 탄원도 허용될 수 없다. 우리들이 불화와 소란의 뿌리를 깊이 심어 두었던 비유태인 사회에 평화와 질서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준엄한 힘에 의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반항할 수 없다는 것을 철권에 의해서 보여 주어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자를 내게 되건 조금도 꺼릴 필요는 없다.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은 특권의 옹호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따라서 행복을 확보하는 의무를 위해서라면 학살도 감히 불사해야 한다.

정부가 기초를 굳히기 위해서는 권력의 위광을 강화해야만 한다. 그런데 신비적이며 흔들림이 없는 권력의 지각이 가장 드높아지는 것은 이를테면 ‘신의 선민’과 같이 그 원천이 신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경우일 뿐이다. 로마 교황청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그러한 위력을 지니고 있던 것은 제정 러시아였고 따라서 츠아는 로마 교황과 더불어 우리의 최대의 적이었다.

제군 고대 로마의 독재관 스라를 상기해 보라 그는 이태리를 피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이태리인들은 스라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스라가 학대한 인민은 그를 신과 같이 떠받들었다. 그것은 그가 비할 바 없이 완벽한 권력을 확립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화려하게 이태리에 돌아왔을 때 인민은 그를 불가침의 것으로 만들었다. 용기와 침착으로 인민을 위압해 버린다면 그 누구도 반항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는 앞서 말한 바와는 반대로 세계의 어느 곳에나 프리 메이슨 결사를 더욱 늘여야만 한다. 이 결사에는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자, 혹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가입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주요한 정보 수집 기관이며 이것을 가지로 해서 크나큰 영향력을 사회에 미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결사는 우리들만이 알고 있는 현자들의 지하 사령부에 통할 된다. 각 결사의 대표 한 사람만이 지하 사령부 즉 유태의 현자들과 비밀의 연락을 보전하고 표어나 계획을 받게 된다. 결사에는 모든 혁명적, 자유주의적인 요소가 모이고 사회 각층의 대표가 모인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적인 비밀 계획도 곧 우리가 알게 되고 우리의 지도 하에 들어오게 된다. 국가 경찰, 국제 경찰의 스파이들도 결사의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아제프 사건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불가결의 존재인 것이다. 경찰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 수단을 강구해 주며 우리의 행동을 숨기고 불평의 구실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비밀 결사에 들어오게 되는 자는 대개의 경우 야심가가 아니면 엉터리, 사기꾼, 일반적으로 경박한 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우리들의 계획에 동조케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세계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그것은 비유태인 국가의 강한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그 배후에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간부에는 반드시 우리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끼어 있다. 프리 메이슨을 지도하는 것은 우리들 유태인뿐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은 우리들뿐이기 때문이다. 비유태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야말로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자그마한 야심을 일시적으로 만족시키는 것만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 행위가 우리에게서 암시를 받은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호기심에서 프리 메이슨에 든다. 또한 어떤 자는 결사의 도움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희망한다. 그 가운데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 보려는 충동에 쫓기어 가맹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성공과 박수를 주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는 않다. 그것은 성공했을 때에 그들의 만족을 우리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 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이 우리의 속삭임을 받아들이고 거기에다 그것이 그 자신의 생각해 낸 창조적인 사상인 것처럼 착각하기가 쉽다. 또한 그들은 조그마한 실패가 있으면 곧 깊이 낙심을 하는데 이럴 때 새로운 성공을 약속해 주기라도 할지 면 노예와 같이 우리에게 복종을 해 오는 것이다. 우리들 유태인은 자그마한 성공으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고 소기의 계획을 관철하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이와 정반대로 외면적 성공에 취해서 핵심인 계획은 잊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우리들의 틈탈 바, 빈틈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바깥 모양은 호랑이와 같지만 마음은 양과 같은 것이다. 거기다 머리 속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뇌에다 어느 망상을 주입했다. 즉 개개의 개인은 전체라는 개념에 몸을 담가야 한다는 집단주의의 꿈이다.

그들에게는 이 사상이 자연 법칙에 배리 되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천지 창조의 처음부터 자연은 여러 가지 능력이 다른 것을 만들고, 개성에다 의미를 지니게 하였다. 이러한 것도 모른 대서야 도저히 그들의 지능은 우리의 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상한 이상을 이룩하는 데 수단을 망설이지 말라. 희생을 아끼지 않을 때만이 그것은 이룩될지니라.’

이것은 선견의 명이다. 우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우리의 가축에 불과한 비유태인의 희생을 헤아려 보기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동족으로부터의 희생도 많이 내었다. 그 대신 그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터전을 지금 쌓아올렸지 않은가. 우리 동족의 희생은 적고 우리 민족은 멸망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창시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죽음이 찾아 드는 것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우리들의 성업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재촉해 주는 편이 낫다.

우리가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게 사형을 가할 때 누구에게도 알 수 없게 하며 본인 자신도 그 죽음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차례 차례로 죽이는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평안한 자연사와 같이 숨을 거둘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되는 결사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이의는 내세우지 않는다. 이러한 엄벌주의로써 우리는 결사 내의 반항을 모조리 싹이 트기 전에 잘라 버렸다.

우리들은 비유태인에게는 자유주의를 불어 넣지만 우리 동족과 결사의 한 무리에게는 철의 규율로써 절대 복종을 강제한다. 우리들은 비유태인 법률의 시행을 최소한의 것으로 막아 버렸다. 법의 권위는 우리들이 불어 놓은 자유주의적 해석이란 물건으로 땅에 떨어졌다. 가장 중요한 헌법상의 의의, 그 밖의 근본적 문제의 다툼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생각대로 재판소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재판소에만 한한 일은 아니다. 행정 관청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중립적 인물이나, 신문 논조를 이용하는 것이다. 양식 있는 참의원의 높은 양반들도 고급 관료마저 우리 뜻대로 된다. 비유태인의 동물적 두뇌에는 사물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능력은 없다. 하물며 결정된 사실이 어떠한 광범한 영향을 가져 올 것인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은 도저히 예견할 수 없다. 유태인과 비유태인에는 이렇듯 천성의 자질에 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에게 뽑힌 백성’인 것이 분명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사물을 볼 뿐 예견은 못한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명할 능력도 없다.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서도 우리의 세계 지배는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들이 공공연하게 세계의 지배권을 확립했을 때에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삼고 우리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일체의 법률을 변혁할 것이다. 우리들의 법률은 간결, 명료, 그리고 확정적이어서 이것 저것 해석에 골치를 앓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누구라도 이 법률을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라 누구나가 예외 없이 최고 권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고 모든 권력 남용을 파악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하급 관료에 의한 직권 남용에도 극히 엄격한 처벌을 하게 되므로 누구도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우리들은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꾀해야만 될 관료의 행동을 가장 엄중하게 감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패는 연쇄적으로 넓혀지고 사회 일반의 풍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자그마한 법률 위반, 부패 행위도 철저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 가혹한 처벌을 보기만 한다면 관료의 태만이나 서로가 부패를 묵인하는 짓은 없어지고 말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권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리사욕으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특히 최고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느껴지겠지만 그는 국가의 정치라고 하는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와 같은 것이다. 개인적 이익을 공공의 생활에서 꾀한다는 것은 지배자 측이라고 하더라도 허용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재판관은 피고에 대한 어리석은 관대함이 국법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재판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징계적인 본보기를 위한 것이며, 그 무슨 재판관의 너그러움을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 법률의 가장 분명한 특장은 우리 권력에의 절대 복종이다. 너그러움이라는 덕성은 가정 생활에는 어울리는 것이 되지만 공적 생활에는 끌어넣어서 안된다. 재판관은 55세 정년으로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칫 노인은 선입관을 굳혀 새로운 체제에 순응하기를 싫어한다. 둘째, 인사 쇄신을 자주 할 수 있어 우리의 명령을 잘 듣는 자로 교체시킬 수 있다. 즉 지위를 보전하고 싶은 자는 유유낙낙하며 따르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재판관은 그 임무가 벌을 주는 일이며 법을 적용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저들 비유태인 재판관 모양으로 국권을 있으나 마나 하게 여기어 스스로의 자유주의 사상을 반영하려는 따위의 짓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 자에 한하게 된다.
또한 인사 이동을 몹시 하는 것은 관료들의 결속을 깨기 위한 것이다. 그로써 그들은 1계급의 대표가 아니며 국가의 대표로서의 감각을 지니고 그의 운명을 나라의 성쇄에 직결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재판관은 인민 상호의 질서를 흐트리는 직권 남용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교육된다.

현재의 비유태인 재판관은 그 직책에 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떠한 범죄에도 정상 참작을 보탠다. 이것은 정부가 재판관을 임용했을 때 그들에게 의무와 책임의 관념을 착실하게 불어넣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이 먹이를 찾기 위해 그 새끼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것과 같이 그들은 직무의 설명도 않은 채 다만 부하에게 높은 지위를 던져 준다.

그 결과 그들의 정부는 그 지배하의 관료 놈들에게 발등을 밟히고 거꾸로지고 만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계율로서도 잘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들의 정부는 행정 조직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사상을 내쫓아 버릴 것이다. 그것은 민중을 교육하고 우리들의 체제에 짜넣기 위한 제일선이기 때문이며 이들 자리에는 우리가 양성한 신뢰할 수 있는 자만을 임명한다.

노후 관료를 그만두게 하고 은급을 내어 주는 것은 국고의 부담 증가를 자초한다는 항의가 있을지 모른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그들을 그만두게 하기에 앞서서 민간 기업에서 직을 찾아 두면 된다. 거기에 세계의 금력은 모두 우리들이 지배하고 있는 까닭에 중요 시책을 위해서라면 너무 구두쇠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들은 절대적인 독재 전제를 행하겠지만 그 권력 발동에는 언제나 엄격한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들의 단호한 의지는 어떠한 때나 장소를 불문하고 존중되고 말썽 없이 실행될 것이다. 어떠한 불평 불만도 무시하겠지만 행동에 의한 반항에는 엄격한 제재로써 임해야 한다. 우리의 재판에 오판이나 부정이 있다는 염려를 없애기 위해 공소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만일 그러한 판결이 있을 경우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취소하고 담당 재판관은 직무 위반의 이유로 엄벌을 한다. 그렇게 하면 그러한 과실은 두 번 다시 거듭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금 말해 둔다.

인민이 우리의 정치에 만족하게 되도록 우리들은 관료의 행동을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빼놓지 않고 감독한다. 인민에게는 선한 정치와 아울러 좋은 관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계 지배자, 우리의 정부는 인민의 화복에 대해 가장과 같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여질 것이다. 우리의 인민은 지배자를 부친과 같이 보고 그야말로 모든 일에 마음을 쓰고 어떠한 궂은 일도 돌보아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고 인민 서로간의 다툼이나 정부와의 세로의 관계, 무엇에서 무엇까지 자애 깊게 지켜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인민들은 안태와 행복의 생활을 바라는 한 이 지배자의 어버이와 같은 자애 없이는 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우리 왕의 절대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거의 신격화된 존경의 눈길로 유태인을 우러러 볼 것이다. 특히 우리의 관료들이 권력 남용도 못하고 오로지 지배자의 명령을 받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더욱 더 외경의 염을 깊게 할 것에 틀림없다.

마치 현명한 양친이 자녀들을 의무와 복종의 규율로써 버릇을 들이는 것과 같이 그들을 다스려 주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정치의 비밀에서 본다면 인민도 관료도 세 살짜리 젖먹이 유아와 마찬가지다. 제군이 알다시피 우리의 전제는 권리와 의무 위에 쌓여진다. 의무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권리는 인민의 어버이인 정부에 부과된 제일의 책무이다. 정부에는 강력한 권리가 부여되지만 그것은 자연의 법칙, 즉 복종에 입각한 사회 체제에로 인민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모두 그 무엇인가에 종속되어 있다. 그것이 만일 다른 힘이 아니라면 환경, 혹은 스스로의 충동, 어쨌든 자기 이상의 강한 것에 따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욱더 강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확립된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희생으로 삼아야 한다. 악에 대해 응징의 벌을 내리는 일은 본보기로서 교육상의 큰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유럽이 받들어 든 왕관을 그 신성한 머리 위에 얹게 될 때 그는 전세계의 수장이 된다. 그때까지는 수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도 비유태인 정부가 서로 수세기에 걸쳐 과태망상적인 싸움으로 흘린 피의 희생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왕은 인민과 더불어 끊임없이 접촉하고 그 앞에서 연설하겠지만 그것은 전광과 같은 속도로 전세계에 넓혀질 것이다.


시온의정서 16-20

제16의 의정

대학은 우리들 이외의 힘을 결집시키는 제1의 장소이므로 이것을 폐지한다. 그 다음 새로운 강령에 바탕을 둔 신대학을 창설할 것이다. 학장이나 교수는 정밀한 비밀 계획에 의해서 양성하고, 이 계획의 테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 둔다. 그들의 임명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정부에 완전히 종속시킬 것이다.

정치나 국법의 문제는 모두 교육 과정에서 제외된다. 이들 과목은 우수한 인물 가운데서 뽑아낸 극히 소수에게만 가르친다. 대학은 비극이나 희극의 문학이라도 쓰는 셈으로 헌법 초안을 만지작거리거나 그들의 부친조차도 알지 못했던 정치 문제에 참견을 하는 것과 같은 풋내기를 그 문에서 내어놓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리석은 민중이 천박하게도 정치 문제를 연구하게 되니까 공상가나 불평 분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교육이 그 자녀를 어떻게 길렀는지 제군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기는 과거에 있어서는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들 자신이 그들의 교육에다 혁명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권력을 쥐게 된 마당에 있어서는 파괴 활동의 요인을 만들게 될 만한 교과 과목은 모조리 없애 버린다.

우리들은 청소년을 당국에 대해서 유순하게 기르고 지배자를 경애하며 평화와 안녕의 기둥으로 신뢰 하도록 만든다. 우리들은 고전과 역사의 연구를 폐하고 미래 사회의 연구에 눈을 뜨게 한다. 우리들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우리에게 알맞지 않은 역사 사실을 말살하고 비유태인 정부의 결점을 분명히 밝힐 수 있게 그런 것만을 역사로서 남겨 둔다.

현실적인 생활, 사회적 체제, 인간의 상호 관계, 제악의 근본인 이기주의를 던져 벗어버릴 의무와 그 밖의 교훈이 우리들의 교육의 제1의가 되는 것이다. 다만 교육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이 계획도 직업별로 달라질 것이다.
교육 제도의 이러한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의 각 계급은 그 고유의 목적과 직업에 따라 정연하게 통제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특별한 천분이 있는 자는 높은 계급이나 별다른 직업으로 나아갈 수가 있고 장래도 그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소수의 예외가 있다고 해서 소질이 없는 인간을 다른 계급으로 바꾸어 넣고 혈통이나 천직에 의해서 얻은 위치를 뺏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합리가 비유태인 사회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던가. 제군은 잘 알 것이다. 인민을 우리의 왕에게 심복 시키기 위해 학교에서도, 공회당에서도 그의 위덕과 인애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들은 모든 사학을 폐지한다. 학생은 학교에 있어서나 클럽에 있어서나 부형과 함께 회합하는 것이 허용된다. 휴일에는 교수들이 공개 강좌라는 형식으로 세계에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신학설의 원리 같은 것을 강의 하게도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원리를 신앙 교리에까지 높여 그들을 우리 유태교에의 개종에까지 이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행동 강령을 발표한 후 이 원리의 근거를 제군에게 설명하겠다. 수세기의 경험에 비추어 인간은 사상에 의해서 행동하고 사상은 교육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계급이나 연령에 차가 있더라도 그에 알맞은 방법만 있다면 교육이 똑같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교육으로써 그들의 창조력은 근절된다. 이제까지 오랜 세월 그들의 창조력을 우리의 목적에 필요한 방면으로만 끌고 왔지만 그 창조력의 최후의 잔광마저 꺼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색력을 예속화시키는 것은 이미 ‘시청각 교육’이라고 일컫는 방법에 의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시청각 교육의 주된 목표는 비유태인 모두를 뇌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사물을 생각할 수 없고, 그림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유순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에 있어서는 이미 우리들의 좋은 동지 레온.부르즈와가 시청각 교육에 바탕을 둔 완전히 교과 과정을 만들고 있다.

제17의 의정

변호사라는 일은 인간을 냉혹, 잔인, 완고, 무주의하게 만들고 언제나 인정미가 없는 법률 지상주의의 사나이가 되게 한다. 그들은 사건의 사회적 의의 같은 것은 생각해 보기조차 하지 않으며 변호를 위한 변호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의뢰일지라도 거부하지 않으며 법의 맹점을 찔러 어떻게 해서든지 무죄로만 만들려고 버둥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법정의 위신을 손상케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변호사의 활동에 엄격한 틀을 끼워 그들을 국가의 공무원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변호사는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피고와 교섭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재판소에서 사건 기록을 받아 조서를 검토하고 법정에 있어서의 심문으로 분명해진 결과에 따라 변호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변호사는 변호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똑같이 봉급을 받도록 한다.
재판은 단축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공정한 변호가 행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법조계의 부패도 없어지고 돈을 많이 내지 못하면 재판에 이길 수 없다는 현재의 폐해도 없어져 버릴 것이 틀림 없다. 기독교 신부나 목사의 권위는 우리들에 의해서 땅에 떨어지고 민중에 대한 그들의 세력은 날마다 저하되고 있다. 신교의 자유는 어디서나 인정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완전한 붕괴도 불원간 시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다른 제종교는 보다 간단하게 없애 버릴 수 있겠지만 아직 그것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

당국이 기독교 성직자를 더욱 압박하여 그 감화력을 옛날과는 비할 바도 되지 않도록 몰아대게 하는 것이다. 로마 교황의 권력을 궤멸시키는 시기가 이르게 되면 숨은 손이 바티칸을 가리키고 민중이 밀어닥치게 될 것이다. 민중이 바티칸에 쇄도했을 때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교황의 보호자로서 등장하여 유혈의 참극을 허락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책략으로 우리들은 바티칸의 속 깊이 침입하고 교황의 권력을 내부로부터 잠식하여 완전히 공동화하기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윽고 세계의 참된 수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아직 청년들을 유태교에 이끌기 전의 과도기 단계에 있어서는 현존 제종교를 공공연하게 직접 배격하는 것은 피하면서 내부 분쟁을 조장시키거나 교리 비판을 하거나 하여 파멸에의 길을 걷게 한다.

현재 우리들의 신문의 임무는 국정 문제, 종교 문제의 모든 국면에서 비유태인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악질적인 테마 증상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게 되지만 이것은 천재적인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다. 우리들의 권력은 마치 인도의 비슈투신과 같은 것이다. 백 개의 손은 각기 사회의 각 기관을 쥐고 있다. 경찰의 도움 같은 것을 빌지 않고서도 모든 정보를 캐치할 수 있다. 경찰은 지금에 있어서는 비유태인 정부가 사회를 탐지하려고 하고 있는 눈을 도리어 흐리게 하는 역할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우리 인민의 3분의 1이 의무의 염에서 자발적으로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여 나머지 인민을 감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를 위해 스파이하고 밀고하는 것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되지 않으며 크게 상을 받는 미덕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도 남용을 막기 위해 허위의 밀고는 엄벌에 처해야만 한다. 우리의 동지는 사회의 최하층에서 최상류의 계급에 이르기 까지 걸쳐 있다. 놀기 좋아하는 관리를 비롯해서 출판, 인쇄 업자, 서점, 상인 노동자에서 운전사, 나이트 클럽의 보이에 이르기까지 포함된다.

그들은 비공식의 존재로서 스스로 행동하는 이른바 집행권은 없기 때문에 주로 스파이나 밀고를 할 뿐이다. 드디어 체포라는 경우에는 헌병이나 도시 경찰의 손을 빌린다. 정치의 영역에서 중시한 전문을 보고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은닉이나 공범의 죄를 묻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동포는 현재도 유태인의 신앙이나 도덕의 계율에 배반한 자를 모두 장로 회의에 신고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미래의 우리들의 세계 왕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전인류에겐 범인 고발의 명예 있는 의무를 지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들이 의식적으로 비유태인 사회에 넓혀 둔 직권 남용, 증수회와 같은 계약을 절멸한다.‘그러한 폐해를 스스로 보급하여 두었으면서도’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 이외에 그들의 정치, 사회를 혼란 시키는 어떠한 유효한 수단이 있었겠는가. 혼란 조장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질서 유지를 다해야 할 고급 관료들을 그들의 악력 즉 편협성과 권력의 남용 특히 수회를 성행 시켰던 것이다.

제18의 의정

경찰의 경비력을 강화하는 일은 정부 권력의 위신을 도리어 약화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사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인공적인 폭동을 일으키고 아지테이터하게 인민의 불만을 선동시킨다. 수많은 군중이 떠들어대고 폭동의 성행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이것을 구실로 삼아 가택 수색을 하거나 감시를 심하게 하거나 하면 될 것이다. 수색이나 감시는 비유태인의 경찰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동가라는 것은 지껄이기 위한 지껄임, 호언장담을 좋아하니까 행동으로 옮기게 되기까지는 비밀 경찰을 잠입시키는 것으로 내 버려둔다. 제군이 기억해 두기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정부가 음모를 적발하게 되면 도리어 그 위신의 손상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부의 무능 보다 더 악화 되면 마치 실정이 있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들은 이제까지 비유태인 지배자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몇 번인가 흉행을 꾀하여 왔다.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기만 하면 눈먼 양과 같은 우리의 앞잡이들은 곧 유도당하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유태인 정부는 당황한 나머지 어마어마하게 경비력의 강화에 주력하고 스스로의 위신을 손상시켜 버렸던 것이다.

우리 유태의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호위만으로 지켜진다. 우리의 왕이 음모를 두려워하여 몸을 숨긴다는 생각조차도 인민들로 하여금 품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한다면 비유태인 지배자와 조금도 다름이 없고 왕 또는 그의 후예에 대한 가까운 장래의 사형 선고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의 왕은 위엄에 넘치고 그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만 인민의 복지를 위한 일뿐이며 결코 왕 자신이나 그 왕조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하여 왕의 권위는 더욱 더욱 높아지고 인민에게 존경 받고 지켜질 것이다. 그리고 인민은 왕을 신격화하게 되겠지만 그것도 왕의 권위가 인민의 질서와 안녕을 보증한다고 모두가 확신하기 때문인 것이다. 왕을 외면적인 경비력으로 방위하는 것은 그 권위의 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의 왕이 인민들 가운데를 순찰할 때, 우리들은 우연히 거기에 있었던 구경을 좋아하는 군중으로 가장하여 슬며시 왕의 주변을 둘러싸고 이른바 군중은 너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모범을 보이게 되면 인민도 이윽고 조용히 삼가하는 태도를 취하게끔 될 것이다. 하기는 누군가가 사람들의 틈을 빠져 나와 왕에게 청원서 같은 것을 내려고 한다면 앞줄에 선 자가 그것을 받아 들고 사람들이 보고 있는 면전에서 왕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민은 청원서가 왕에게 전달되고 왕 스스로가 국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권력의 위신은 인민이 ‘왕은 아시고 계시다’라든가 ‘왕이 알아주실 것이 틀림 없다’라든가 하는 말을 하게 됨으로써 보다 더 강력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너무나 눈에 띄는 경비를 둘러치는 일은 도리어 지배자의 신비적인 위광을 흐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엄하게 한들 그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는 경비의 둘레를 부셔 버리려고 하는 대담한 자를 자극시키고 오히려 자신마저 갖게 하여 테러의 찬스를 엿보게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비유태인에게는 이것과 정반대의 것을 가르쳐 주었다. 너무 지나치게 과대한 과잉 경비라는 것이 그 어떠한 나쁜 결과를 자아내게 되는가. 제군들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 하에서는 조금이라도 의심쩍은 자는 재빨리 체포를 한다. 혹시 잘 못잡을 염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치범의 용의자를 놓치게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주 엄격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사법에 있어서 범죄 동기의 해명에 도움이 될 듯한 자가 있더라도 직권을 가진 검찰관 이외에는 사건에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정부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과오가 없는 정책만을 하게 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제19의 의정

우리들은 인민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경제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한 청원이나 제안은 환영한다. 이래서 우리들은 문제의 소재를 알 수 있게 되며 개혁해야 할 것은 개혁하는 일이 우리들의 가장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공상, 무지에 기인되는 경우에는 사실에 의해서 반론하고 제안자의 잘못을 지적하여 각하하면 된다.

경찰력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즉 인민들 속에 뿌리를 넓힌 권력은 반란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아지가 코끼리에게 짖어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코끼리의 위대함을 모르는 까닭에 짖어대지마는 한번 코끼리의 힘을 보여만 주게 되면 두 번 다시 짖어대지 않고 코끼리만 보면 꼬리를 흔들게끔 되는 것이다. 정치범이 영웅시 되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들은 그를 절도, 살인 등 파렴치 죄의 자들과 한자리에 앉힌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특별 취급을 하지 않고 경멸의 눈으로 보게끔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비유태인이 우리의 앞잡이에게 같은 수법을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갖은 고심을 다하였다. 신문이나 공개의 연설, 혹은 교묘하게 편집한 역사 교과서에서 그들 혁명가를 인류의 복지를 위한 순교자로서 찬미케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유사상의 신봉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무엇이든 우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거세된 양 수천 명을 한 우리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제20의 의정

이것은 가장 난해한 것이며 우리의 계획의 최종적인 결론이 되는 것이므로 이 의정서의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다. 그것은 화폐 경제와 세제에 관한 제 원칙이다. 이것은 또한 최종 결론인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이제까지 설명해 온 문제의 성패가 모두 집약적으로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앞서서 암시해 둔 것이기는 하지마는 ‘우리의 계획은 모두가 모든 계수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권력을 뺏은 다음 우리의 전제 정부는 인민에 대해서 과중한 세금을 매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정부는 인민의 부친이며 보호자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국가 행정에는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그것을 위한 재원은 당연히 징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문제는 그 모으는 방법에 있다. 즉 세금을 각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할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원칙은 모든 것은 왕에게 귀속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어떠한 사유 재산에도 손을 댈 수 있다. 통화의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현행 통화를 모두 몰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세의 최선의 방법은 재산에 대한 누진세이다. 그렇게 하면 재산고에 따라 아무런 조작도 없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부자는 국가가 그의 재산의 안전을 지키고, 정당하게 부를 늘리는 것을 보증해 주고 있는 것이므로 당연히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바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된다. 여기서 ‘정당하게’라고 일부러 지적한 것은 소득의 수단이 합법을 가장한 수탈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회 개혁은 시대의 필연인 추세이며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보전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상층 부류의 계급으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이다. 빈곤한 계층에 대한 과세는 혁명의 움이 되고 국가에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국가는 하잘 것 없는 적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민심이라는 크나큰 수확물을 놓쳐 버리게 된다.

누진적인 재산세는 개인의 부의 지나친 증대를 막을 것이다. 우리들의 현재 부를 자본가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비유태인 정부의 힘이 너무 강하게 되지 못하게끔 국고의 재력에 대항시키기 위한 것이다. 누진세는 현행의 할당세에 비해서 굉장히 많은 수입을 가져 올 것이며 이에 반하여 할당세는 인민들 사이에 불평과 소요를 일으키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왕의 권력의 기저는 힘의 밸런스와 평화의 유지로써 성립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자산가가 소득의 일부를 나라에 바치고 국가 기관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남은 돈이 있는 자, 낼 돈이 있는 자에 의해서 공공의 경비가 충용 되는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자는 국가 재정의 지주이며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키는 것으로써 빈민의 질투, 반감을 해소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국비의 거의 대부분이 유산자의 부담이며 그것이 공공 복지를 위해 지출된다는 것을 무산자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식 계급의 납세자가 새 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지 않게끔 하기 위해 국비의 지출에 대해서는 세목의 숫자까지도 공표하도록 한다. 물론 왕실비나 정부 관청비는 발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왕의 소유’라는 원칙이므로 왕은 개인적 재산을 일체 가지지 않는다. 만일 왕이 개인적 재산을 갖게 되면 국가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고 모순을 낳게 된다. 왕실 가운데서 국비에 의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왕통 계승권자 뿐이며 그 밖의 사람들은 공무에 종사하든가 다른 직업을 가져야만 된다.

왕의 혈통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국고로부터 돈을 얻을 특권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매매, 소득, 유산 상속 등에도 누진적 세금을 부과한다. 동산, 기타의 양도에 있어서 신고를 태만히 했을 때에는 탈세가 발각된 날로부터 양도의 일시까지 소급하여 일정률의 벌금을 특별히 지불케 한다. 모든 양도에는 신구 소유자의 주소,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만들고, 매주 그 지역의 세무서에 제출케 한다. 또한 거래 액이 어느 일정액을 넘을 경우에는 거래 당사자의 성명 신고의 의무를 지운다. 일상 필수품의 구매는 극히 저율의 인지세만으로 그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에 의한 세수가 비유태인 정부의 현재의 세수에 비하여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제군, 생각을 해 보라. 국고는 일정액의 예비금을 보유하며 그 이상의 것은 유통시킨다. 잉여 자금으로 국가는 공공 사업을 일으키는데 이 사업을 행하는 일로써 노동 계급이 윤택하게 되고 국가의 이익이 도모되며 왕에의 신뢰는 높여진다. 또한 나라의 자금은 산업상의 발명이라든가 생산 진흥의 장려에도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고에는 정밀한 계산에 의해 연차 계획의 자금 이외에 여분의 돈은 한 푼도 남겨서는 안 된다.

원래 화폐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며, 기름이 끊어지면 기관은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다. 화폐의 일부를 유가 증권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금융 정체가 일어났다. 이 정체의 결과는 이미 주지되고 있는 바와 같다. 우리들은 회계 검사원을 설치한다. 그리고 왕은 언제든지 전월까지의 국고의 수지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왕만이 국가의 재산을 약탈하는 일에 흥미를 갖지 않는(자기의 재산을 자신이 뺏을 필요가 없다.)유일의 인물이다. 즉, ‘사’가 없는 왕이 감사를 하시게 되면 국비의 손실이나 낭비는 면할 수 있다.

또한 왕에게는 예의적인 알현이라든가 나라의 대표라고 하는 무수한 습관이 있는 법이지만 그러한 것은 귀중한 시간의 낭비가 되므로 전폐된다. 그리고 본래의 사명인 국정의 통할, 신방침의 발의와 같은 것을 충분히 사색하는 여유를 만들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그만큼 한편에서는 왕의 주변을 이른바 ‘측근’이 둘러싸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궁정을 화려하게 하려고 하기 쉽다.

그 결과 국가의 안녕은 돌보지 않고 소홀하게 되기 쉬우므로 그런 측근의 간신이 생기지 않도록 엄격히 경계를 해야만 한다. 비유태인을 파탄 시키기 위해 우리들은 경제계에 정체 현상, 공황을 일으켰다. 우리들은 가능한 한도의 유통화폐의 회수를 강행하여 거액의 돈을 퇴장 시켰다. 결국 비유태인 정부는 자금이 고갈되고 할 수없이 우리들에게 국채의 인수를 부탁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액의 이자 지불의 의무를 짊어지게 되고 국가 재정에의 중압을 자초하여 이윽고 정부 그 자체가 우리의 자본에 종속케 되었다. 중소 기업이 대자본에 종속되고 인민의 힘도 뺐었으므로 인민도 국가도 모두 우리가 흡수하게 되었다.

현재의 화폐 발행고는 인민 명목의 소비에 수응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노동 계급 전부의 요구를 채워 줄 수가 없다. 신화폐의 발행은 인구 증가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화폐 유통의 요인이 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계산에 넣어야 된다. 어쨌든 화폐 제도의 개혁은 전세계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제군도 알다시피 금본위제는 이것을 채용한 국가로서는 그야말로 사약을 안은 셈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금을 금융계로부터 회수하고 말았기 때문인데, 정부는 점점 화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우리의 국가에 있어서는 노동의 가치에 바탕을 둔 신용 본위제를 채용한다. 통화는 나무이건 종이이건 무엇이라도 좋다.

우리들은 전인민의 수요를 산정하고 한 사람이 태어나면 증발하고 한 사람이 사망하면 회수한다. 인구의 증감은 각 지방 관청으로 하여금 조사하게 하면 될 것이다. 공공 지출이 멎지 않도록 일정한 지불일을 정한다. 재무부와 다른 관청과의 정실 관계 같은 것도 일소해 버리고, 특별한 관청만이 우대되고 다른 관청이 심술을 받게 되는 따위 폐풍도 없애 버려야 한다.

세출 세입 예산은 병렬되어 제출되므로 비교 대조되며 국가 재정이 위태롭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재정 개혁안은 발본적인 것이지만 너무 당돌하게 발표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충격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재정의 혼란 된 상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잘 설명하고 그 결점을 가르쳐 주도록 한다.

먼저 예산인데, 매년 팽창해 가는 데도 예측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통상 예산의 편성으로 시작된다. 언제나 그 연도의 예산은 상반기의 마지막쯤에는 모두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추가 예산을 짜게 되지만 이것도 3개월쯤 지나면 다 써 버린다. 차례 차례로 추가하여 결국 꼼짝달싹도 못하게 된다. 다음 해의 예산은 전년의 총지출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되므로 추가의 분만으로도 50%난 달하게 되어 2년마다 당초의 3배나 불어나게 마련이다.

비유태인 정부가 방만하게 계속해 온 이 습관으로 인해서 국고는 언제나 비어 있다. 다음으로 공채 발행에 의한 둘러 맞추기가 시작되어 완전히 파산 상태에 전락된다. 이러한 재정 방법은 사실은 우리가 가르쳐 준 것이지만 결코 우리들 자신은 본받아서 안 될 것임을 제군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국채는 정부가 잘못된 행정을 행하고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명이다. 즉, 스스로의 약체, 무능의 고백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이 국채는 언제나 지배자의 머리 위에 겨누어 늘어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민에게 임시세를 부과하면 될 것을 우리들 유태인 자본가에게 탄원을 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외채를 모집하게 되는데 이 외채라고 하는 것은 국가에 달라붙은 거머리와 같은 것이므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거머리를 떨어뜨리는 힘은 이미 비유태인 정부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드디어는 수많은 거머리에게 피를 빨려서 빈혈사하고야 말 것이다.

국채, 특히 외채는 흡혈 동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알기 쉽게 풀이하면 국채는 이식을 지출할 약속으로 발행한 국가의 차용 증서로서 그 이율은 조달하고자 하는 원금의 액에 따라 변동한다. 가령 5부 이자로 한다면 20년으로 원금과 동액의 이자를 지불하게 되고, 40년이면 원금의 2배, 60년이면 3배, 그런데도 원금은 그대로 남아 있는 계정이 된다. 이러한 계산을 하면 국가는 가난한 납세자로부터 마지막 한 푼까지 빼앗고도 그것을 외국의 자본가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이식이 없는 돈, 즉 처음부터 인민에 과한 세수에 의해서 얻는 돈이 가장 득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채가 내채라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 까닭은 가난뱅이의 푼돈을 모은 돈의 이식이 부자의 호주머니에 흘러 들어 간다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이것도 우리들이 정부 고관을 매수하여 시킨 것이지만 외채 모집을 하도록 꾀인 것이다. 그 결과 각국의 부는 강물이 흐르듯 우리의 품속으로 흘러 들었다. 그리고 비유태인은 우리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공물을 받들어 바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국가의 화폐 경제 조세 대책의 모든 면에 있어서의 비유태인 정부의 경솔함과 예견력의 허약함, 그리고 이에 더하여 고급 관료의 수회와 무능함은 비유태인 국가 그 자체를 우리의 노예적 채무자로 만들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도저히 자유의 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마는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있어서 우리들이 지불한 노력과 비용은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일각이라 할지라도 금융의 정체는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률 이식의 장기 국채는 모두 폐지하고 1분 이자의 단기 증권만을 허가한다. 이 정도의 저리라면 국력을 거머리 즉 대자본가에게 빨리게 할 까닭은 없다. 하기는 장기채의 발행은 대공업 회사에는 허가해도 무방하다. 그들이라면 이익금으로써 쉽게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이윤 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빌린 돈을 필요성에 따라 소비하게 되므로 그렇게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 자신이 산업채를 사는 것은 전혀 무방하다. 현재와 같이 국채를 발행하여 이자 지불에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산업채에 투자하여 이익 배당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 정체는 없으며 기생적 생활이나 나태함도 없어질 것이다. 비유태인의 머저리짓은 정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원금과 동액이나 된 고리를 갚으면서도 우리에게 머리를 숙인다. 필요 금액을 무이자로 어째서 인민으로부터 받아내지 않았는가. 그 편이 훨씬 간단했을 텐데. 이것은 실은 유태 민족의 천재적 지능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채의 이야기를 귀뜸했을 때 그 얼마나 그것이 득이 되는가 감쪽 같이 속였던 것이다.

때가 이르러 우리가 나라의 재정을 맡게 되면 몇 세기 동안이나 비유태인 정부를 사용하여 실험해 온 경험에 의해서 훌륭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예산은 분명하며 결정적이어서 새로운 체제가 더욱 훌륭한 것임을 똑똑히 알게 할 것이다. 국비를 낭비하는 것은 이제까지 그들의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재정 제도를 확립하고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하급 관료와 마찬가지로 계획 이외의 예산 지출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제도로 만든다. 확고한 재정이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어떤 영웅, 기사라 할지라도 한 푼 없이 원정한다면 실패를 보게 될 뿐인 것과 같다.

우리들은 비유태인의 왕에게 호화스러운 축연을 베풀고 의례적인 알현이나 하며 환락에 지새우도록 하여 정무를 돌볼 틈이 없게 유혹을 했다. 이것은 우리의 지하 정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왕에 대신하여 국정을 보고 있던 현관들도 아무 것도 몰랐으며 우리의 스파이들이 이것저것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에는 장래는 ‘흑자 재정’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을 얽어 매어 그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흑자를 낼 수 있는가. 세제 개정인가---- 하고, 누구나 곧 의문을 가지게 될 것임에도 그들은 누구 한 사람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제군은 인민의 놀라운 근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낙천성이 어떠한 결과를 자아내었는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정 붕괴는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시온의정서 20-24

제 21의 의정

앞의 의정에 계속하여 내채에 관해서 좀더 자세하게 말해 보기로 하자. 외채는 그들 정부의 돈을 우리들의 금고에 채우게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원래 외국이고 뭐고 없는 것이다. 고급 관료의 부패나 정부 수뇌의 태평스러움에 틈타서 그들에게 소용도 없는 돈을 빌려주고 2배, 3배 아니 더욱 많은 돈을 울궈 올렸다. 하지만 도대체 그 누구가 우리에게 대해서 욕심쟁이라고 욕을 하겠는가. 물론 있을 까닭이 없다.

공채 발행에 있어서는 먼저 구입의 신청을 받게 되지만, 일반의 누구 나가 살 수 있도록 액면을 싸게 하여 백 원에서 천 원까지도 한다. 최초의 응모자에 대해서는 대개의 경우 할인을 한다. 매출의 다음날에는 신청이 쇄도했다는 구실을 붙여 인위적으로 가격의 인상을 행한다. 수일 후에는 발행고에 이르고 재무부의 금고는 꽉 차게 되어, 이제는 돈을 간수할 장소도 없다고 발표하게 한다.

그러면 ‘그렇다면 어째서 신청을 받았는가’하고 따질 것이다.
물론 ‘신청액이 발행 예정액을 수배나 상회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로써 인민이 정부의 채권을 얼마나 신용하고 있는가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극을 상연하는 것은 좋지만 그 다음에 채무란 잔뜩 남게 된다. 우선 이자 지불의 도망 길은 으레 새로운 공채의 발행이 된다. 채무와 이자 부담이 더욱 증가된다. 그리고 공채 발행 능력이 한도를 넘게 되면 이번에는 새로운 세금을 울구어 내야 한다. 그래도 겨우 이자 지불을 할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고 공채의 원금 상환까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추가세도 차입금을 위한 차입금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공채 환서 즉, 이율의 인하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자 부담을 가볍게 한다는 것뿐이며 채무 그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거기다 이 조치는 공채 소유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액면 가격은 갚아 주어야 한다. 만일 전원이 반불을 요구하기라도 한다면 정부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버리게 마련이다. 실제 전액 반불 같은 것이 가능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비유태인은 다행스럽게도 재정 문제에는 그렇게 밝지 못하니까 신규 사업에의 투자와 같은 모험은 하지 않고 환서에 동의하고 이자 체감을 승낙한다. 이렇게 해서 뻔히 알면서 정부로 하여금 수백만의 이자 지불분 을 득보게 해 준다.
하지만 외채의 경우는 그렇게 엿장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는 날이면 단번에 우리들이 전액 반불을 요구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파산이 일어나고 인민과 정부 사이에 씻을 수 없는 불신이 생기게 된다.

이상의 사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것에도 주의하기 바란다. 현재 내채는 지불 기한이 비교적 짧은 단기 공채라는 것으로 정리 되어 있다. 이것은 국립 은행이나 저축 은행에 예탁되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외채의 이자 지불로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 후는 동액의 정부 공채로써 구멍이 메워진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그들의 국고는 채무의 산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지배가 완성되면 이러한 재정의 속임수는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으므로 흔적조차 없애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권력의 위신이 채권 가격의 변동에 의해서 흔들리게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권에는 가격이 오르내리지 않도록 법정 강제의 환율을 매겨 고정화 시켜 버린다. 무릇 가격 상승이라는 것에는 하락이라는 요인이 처음부터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활동의 초기에는 비유태인의 증권에 대해서 그러한 조작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증권거래소 대신에 국립의 신용금고를 만들 것이며, 여기서는 국가의 지시대로 산업 채권을 평가하고 그것을 담보로 하여 자금 융자를 한다. 이를테면 하루 5억 원이나 산업 채권을 시장에 매출하고 또 매입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적 기업을 좌우하게 되지만 국가가 그 얼마나 큰 힘을 경제계에서 점하게 될 것인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제 22의 의정

이제까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이 세계에서 생긴 비밀의 진상을 백일 하에 드러냈다. 시기는 다가왔고 가까운 장래에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과 비유태인과의 관계를 다루는 비밀 계획과 우리의 재정 정책도 설명했고, 이제 거의 더 말할 것은 없다.

우리들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돈’을 가지고 있다. 불과 이틀 만이면 우리들은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갖다 보일 것이다. 우리의 세계 정복이 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위대한 부, 이것으로 이제까지 몇 세기에 걸쳐 거듭해 온 악을 깨끗하고 말끔하게 씻어내리고 이것을 인류의 참된 행복과 질서를 위해 도움이 되게 한다. 다소 폭력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질서는 확립한다. 우리의 율법에 따르기만 한다면 이 고통 많은 지상에 참된 행복과 자유를 가져 오게 하고 평화와 질서를 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유란 물론 방종은 아니며 종교의 자유, 평등의 권리 같은 구호로써 평화가 도래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존엄이 보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군중들 앞에서 선동 연설이나 하고 자신도 타인도 소란 속에 끌어넣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참된 자유란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규율을 올바르게 틀림없이 지킨다는 전제에 선 '인간의 불가침성’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도 자기의 권리와 아울러 자율의 정신이 병존하여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결코 제멋대로의 자아를 자기 마음대로 뻗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권력은 강대하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광휘에 넘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통치와 지도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공상을 휘두르는 종래의 정치가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질서를 갖추고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인민은 우리 권력의 위광을 엎드려 바라보게 될 것이다. 참된 지배자는 모든 권리를 가지지만 신권마저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구 한 사람도 이 권력을 넘겨다 보고 그 한 조각마저 뺏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제23의 의정

인민에게 복종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우리들은 검약 질서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는 사치품의 생산을 될 수 있는 대로 제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풍속이 순박하게 되고 사치 경쟁과 같은 악습이 고쳐질 것이다. 우리들은 손으로 만드는 가내 공업을 오히려 장려하고 대공업에 타격을 준다. 대공업가라는 것은 의식하고 있든 않든 그것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쉽사리 민중을 반정부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내 공업에는 동맹 파업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체제에 순응하며 반정부적이 아니다. 현재 활개를 치고 있는 대공업제는 동맹 파업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서 생기는 사회 불안으로 정부는 언제나 위협을 받는다.
물론 이러한 것은 우리들의 공작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시대에는 동맹 파업은 있어서 아니 된다.

술주정이라는 것도 법률로써 금하고 엄격하게 처벌한다. 알콜은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술에 취하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다. 거듭 말하지만 인민은 그들과는 격절된 강력한 권력에 대해서만 복종하는 법이다. 이 강력한 힘이야말로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들은 왕에게 천사와 같은 부드러움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불굴의 권력의 화신이다.

현재의 비유태인 정부를 둘러싼 사회는 우리들로 인해서 퇴폐 되었고 ‘신’까지도 상실했으며 어디에서나 무정부주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먼저 우리들은 이 맹화를 꺼야만 한다. 이에는 이 사회를 스스로가 흘리는 피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한 다음 잘 훈련된 군을 부활하여 국가 조직을 파괴하는 자들과 싸우게 해야 할 것이다.

왕은 신이 뽑아 주시는 것, 상천이 명하여 주신 바이다. 그의 사명은 인간적 이성이 아닌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맹목적인 혁명 세력을 쓸어 없애는 것이다. 현재 그러한 맹목적인 여러 힘들은 권리와 자유의 이름 아래 약탈, 폭행을 일삼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 힘은 모든 기존의 사회 체제를 파괴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실은 기다리고 바라고 있었다. 즉, 모조리 파괴되어 버린 폐허 위에 이스라엘의 왕의 왕좌를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이스라엘 왕의 왕좌에 앉는 순간, 이제까지 폭위를 다하고 있던 모든 힘은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그 무엇도 없도록 그 길목은 깨끗이 비로 쓸고, 비록 작은 돌의 한 조각이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모든 인민에게 고할 것이다.

“신에게 기도하라. 신을 찬양하라. 그리고 신의 표적을 지닌 왕의 앞에 무릎을 꿇어라. 이 왕이야말로 신 스스로 나타내신 지도의 별을 머리에 얹으셨다. 이 왕이 아니면 너희들을 여러 악과 죄에서 구하지는 못하리라.”

제 24의 의정

이제 세계의 종말까지 끝없이 이을 다윗의 왕통을 어떻게 하여 굳힐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리들은 시온의 현자들이 이제까지 모든 장해를 넘어서 전세계의 문제를 처리하고 인류의 사상을 지도하여 온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후예의 몇 사람인가의 현자가 왕과 그 후계자에게 교육을 한다. 왕권의 상속은 세습이 아니며 개인의 소질, 능력에 바탕을 두도록 한다. 뽑혀진 자에게 정치의 요체를 가르치게 되는데 그때 그 누구에게도 그 비밀이 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정치는 그 비결을 알게 된 유일인의 왕에 의해서만이 행해진다는 원칙이 보전된다.

몇 세기 동안이나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정치, 경제의 원리나 자연 그 자체가 인간 상호의 관계에 대해서 정한 모든 법칙이 전수되는 것이다. 그러나 왕위 계승의 직계라고 하더라도 학습 기관에 경솔하거나 마음이 약하거나 정치에 알맞지 않거나 한다면 서슴지 않고 왕위에서 멀리 된다. 그것은 왕의 권위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현자로부터 왕관이 받들려 진 자는 잔혹하리만큼 힘세고 활동적이고 단호한 통치를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왕이 된 자는 정신 박약이 되거나 능력을 잃게 되면 법에 따라 다른 적임자에게 그 지위를 물려 주어야 한다.

왕의 현재 및 장래 계획은 그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것은 왕 자신과 왕에게 정치의 요체를 가르친 세 사람의 현자에 한한다. 확고한 의지로써 스스로를 율하고 인류를 지도하는 왕인 만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운명의 신비를 깨치고 있는 것으로 해서 만인의 숭앙을 받는다. 왕이 명령을 발할 때, 그 누구도 그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므로 그 누구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 물론 왕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고매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어떠한 왕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우리들의 현자에 의하여 그 정신적 자질을 테스트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민이 왕을 알고 왕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왕은 공공의 장소에 때때로 모습을 나타내고 부드럽게 그들과 담소를 해야 한다. 현재 테러에 의해서 부드럽게 그들과 담소를 해야 한다. 현재 테러에 의해서 격리되고 있는 두개의 힘은 이렇게 해서 조화되고 결합된다. 이제까지 이것을 이간해 둔 것은 두 개의 힘을 제각기 우리들의 세력하에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결코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특히 정욕에 빠져서는 안된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일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욕은 정신적 능력의 최악의 적이므로 명민한 관찰력을 흐리게 하며 어떠한 천재라도 더러운 동물적 본능을 채우는 일만을 생각하게끔 하고 만다. 다윗의 신성한 후예인 세계의 왕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모든 개인적 향락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의 왕은 일 점이라도 잘못이 없는 만인의 광휘 있는 모범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