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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선교회

[re] 사데 교회에 대하여

운영자 2005.02.14 21:39 조회 수 : 3460 추천: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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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순서는 편의상 운영자가 바꿨습니다.

질문 1

A,  계시록의 일곱교회가 어느 국한 된 한 교회를 지명하여 예언하신 일곱교회에게 보내신 편지입니까 ?
B,  일곱교회란 ,  완전 숫자의 일곱을 가르켜 세계 모든 교회에게 주신 경고입니까 ?

당연히 완전 숫자의 일곱을 가리킵니다. 계시록은 예수 피로 거듭난 세계 교회에 주신 경고입니다. 선지자(예언자)는 주님의 백성에게로 파송받아 그들을 회개시켜 살게 하는 대언자이기 때문에, 만일 주님게서 선지자를 시켜 계시록의 말씀을 국한된 교회에게만 외치게 하신다면 주님은 책임(사랑) 없는 농부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선인, 악인의 밭에 골고루 비를 주시는 분이시니, 추수기의 영원한 복음 역시 열국 민족으로 듣게 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가 확보됩니다. 미가 5:7~8을 보면 "수풀 속의 사자" 같고 "여호와께로서 내리는 이슬" 같은 철장권세 종들이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로 계시록의 7교회는 귀 있는 144,000명이 속해 있는 세계 교회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수신자는 무조건 피로 산 세계 교회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이므로 "다시 예언"을 함에 있어서도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가 공존하는 20억의 기독교계를 상대로 시행됨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듣는 자는 144,000명 뿐이니, (흰무리를 제외한) 나머지 교회는 그대로 '후 3년 반'으로 넘겨져 예레미야 '애가'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2. 

A.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

외형적인 방면으로는 그럴 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열매가 없는 상태, 죽은 나무의 상태입니다. 겉으로만 요란스럽고 형식, 외식, 의식적인 면에 치우쳐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세 때 로마가톨릭 때를 생각해 봅니다. 가톨릭을 박차고 나왔다 하면서 (모양만 개신교를 취할 뿐) 근본적으로는 로마가톨릭의 구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가 바로 오늘날의 사데 교회와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주 재림 직전에 될 일이므로, 오늘날로 친다면 루터의 종교개혁 계통에서 중생 받고 은혜 받아 여러가지 은사 열매도 맺어 세계적으로 확장된 기독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죽었다고 하시는가?

그것은 주님의 일곱 영의 명령인 "다시 예언하라"는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는 종류가 많은데, 영원한 복음(계시록, 새일)을 접해 놓고서도 양 떼를 살릴 불타는 사랑도 없고, 전도도 안 하고, 세상 경제권에 얽혀 근심만 한다면 그들도 사데 교회입니다. 체면과 세상형편에 묶여 말씀만 받았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진리를 자기 속에 감춰두고 기회를 엿본다면 그것도 열매 없는 교회이므로 '사데' 입니다. 

현재 계시록을 듣고 실천하지 않고 그냥 흘려 넘기는 교회, 은사 방면에는 출중하지만 계시록을 들을 귀조차 없는 교회는 전부가 사데 교회입니다.

B.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 뜻은 "남아 있으나 죽어가는 것들에게 힘을 돋우어 주라"는 KJV 구절이 가장 합당하다고 보여집니다. 중생의 씨앗은 받았으나, 회개할 것과 말씀을 지켜야 된다는 조건이 붙었으므로 다시 열심을 내어 회개하고 말씀을 지킨다면 촛대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장로교 고신파를 예로 들면, 그들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옥중에서 주 예수와 동행하며 신앙을 지켜낸 대한민국 제1의 정조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내세우며 신사참배 교단을 비판하며 오히려 계시록을 먹고 증거하는 일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은 때와 시대적인 요청을 분별 못하는 잠든 영계가 되므로 결국은 다시 장로교 '통합측', '합동측'과 연합하며 교파 통합 운동에나 열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회색분자, 캬멜레온 같은 기회주의자를 예수님은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생명이 있는 자이니, 철저히 회개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 상태로 나아가면 결국 죽은 나무와 같이 아무 열매도 없을 것이니(천년왕국 못감), 붙어 있는 생명력을 소멸시키지 말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여 반드시 살라는 생명의 경고입니다.

C.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라오디게아 교회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에 비해, 사데 교회란 나름대로의 열심도 갖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자세히 듣고,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지키는 것(온전한 행위)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시대가 가깝고 계시록의 완성이 다가올 수록 그들의 열심은 지표(목적) 없는 헛된 열심이 되는 것이요, 살아보고자 하는 몸부림은 있으나 뜨거웠다 식었다를 반복할 뿐, 아무런 영계 발전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켜 회개해야만 정상적인 열심도 오고 영계도 상승합니다. 그러나 처음엔 열심이 있다가 마지막에 식어진다는 것은 끝에 가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의 특성이므로 살았다 하여도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걸 두고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율법 교회에서 은혜 교회로 넘어 온 자들을 살펴 보면 큰 열심과 참된 회개가 있는 자들이었습니다(바울), 마찬가지로 새 언약(천국복음)에서 새 일(영원한 복음)로 넘어오는 자들도 은혜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며 통회, 겸손하던 자들입니다. 또한 이미 말세 복음을 접한 교회라 하여도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해산수고가 없다면 신앙은 또 잠자게 되어 있으므로 도리어 계시록을 모르는 교회보다도 못한 형편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는데,다 사데 교회의 잠든 신앙인 것입니다.

은혜 교회들 중에도 사데 교회의 영계가 있고, 스룹바벨 선교회 안에도 사데 교회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질문 3.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것이 계 1:3절과 관련이 있는가?

계 1:3절과는 무관합니다. 계시록은 피로 산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므로 어떻게 받고, 들었는지 생각하라는 것은 그들의 첫사랑, 첫열심, 첫순수를 떠올려 마지막에 변질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각 기독교파들(10처녀)이 신랑을 기다리던 중 흑암이 강해지자 졸며 잘 때(5째 나팔), 여분의 기름이 있는 자들을 지혜롭고, 없는 자들은 미련하다 하셨습니다. 흑암은 사단의 미혹이요, 빛은 말씀입니다. 기름은 말씀을 밝혀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2000년간 기독교를 부흥시킨 힘은 처음 들고 나간 기름의 힘입니다. 기독교는 그 시초부터 성령을 받고 신랑 예수의 재림을 고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2000년간을 기다리다 보니 신앙과 믿음이 퇴락하여 세상 복락으로 기울며 음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때 "여분의 기름", 즉 "예비한 기름"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게 되며 이것은 바로 말세의 7영이 인도를 받는 자들만 갖추는 지혜의 상징입니다(계시록과 선지서를 읽는 자들). 그냥 만민에게 역사하던 일반적인 성령(영혼구원)으로서는 이 깊은 밤중을 이겨낼 필요성도 못느낄 분더러 기름 예비를 하지 않습니다(천년왕국의 존재와 첫째 부활에 대해서도 모르니까요). 아무리 같은 성령님이시지만 종말에는 종들(군사)에게 역사하는 7 영의 성령이 함께 해 주셔야만 영육구원(천년왕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를 향한 메시지의 첫 구절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인 것은 사데 교회가 일곱 영과 관계없는 잠든 상태라는 것이죠.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신 것은 중생받고 여러 은사의 열매로 치장했더라도 그 상태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새 시대에 못 갈 뿐만 아니라 '후 3년 반'의 대환란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시킨 성령께서 말세 복음까지 듣고 살라며 재촉하시되 불꽃같은 7영의 눈으로 사데 교회를 꿰뚫어 보시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네가 기독교 사랑의 복음을 어떻게 받았으며(예수님의 값없는 십자가 사랑으로 받았다), 어떻게 들었는지(중생받을 당시의 열정과 순수)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즉, 처음 주신 복음 안에 종말론이 다 들어 있는데(마 24장, 눅 17:21~, 21장), 너희는 어찌하여 예수 피를 사모한다면서 그 피로 산 말씀(종말론)에는 그토록 무지하느냐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1 이레에는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 대항하여 계시록을 무기로 들고 싸워 승리하여야만 신랑주를 만난다는 것이 법입니다. 혼인잔치에 참예할 자는 누구든 중생받고 장성하여 성결받고 역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이 없으면 역사하지 못하고 도리어 마귀에게 잡혀 먹고 만다는 것이 종말의 법입니다. 은혜와 종말은 서로 다른 2가지 역사가 아니라, 쭉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구절은 계시록 1:3절과는 무관하며(즉 이미 계시록 들은 자들을  말함이 아님) 예수의 보배로운 피, 곧 복음 듣고 중생 받은 자들에게 거듭날 때를 기억하여 시작처럼 마지막도 잘 마무리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 씨로 출발하여 막판에 쭉정이가 되지 말라는 것이죠.

사데 교회에 대한 책망은 이미 "읽고 듣고 지키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읽고 듣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피로 산 모든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질문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A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
B,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인데 아무리 열심이 있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말씀을 지켜서 회개하는 것이 없다면 쓰러지고 마는 종교입니다. 사울이나 솔로몬과 같이..... 회개는 열심을 냈다거나 울었다는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 하나를 바로 생각해서 그것을 지키려는 영혼과 육신의 작용입니다. 회개가 되면 말씀이 뒤틀려져 들리지 않고 올바로 들리는 영계가 되므로 주님 뜻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회심(回心)과 회심(悔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아무리 울며 불며 회심(回心)하였더라도 옳은 행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회심(悔心)은 행동의 변화를 동반하므로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계시록을 알아보고, 먹고, 증거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듣기는 듣지만 증거하지 못하는 소심한 자들은 왜 그런가 하면 회개치 못하므로 주님 앞에 합당한 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파와 교권의 압력이 있더라도, 또 끊임없는 이단시비에 말리더라도 "말씀이 정녕 그런가" 하여 상고해 보고, 옳다면 몸으로, 입술로 나가서 증거하는 삶이 따라주는 자들은 주 앞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C, 일곱 교회에게 주신 여러가지 사상 지킴의 경고의 메세지가  절대적으로 우리 모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인지요 ?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보면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을 에스겔 47:3~7절에 나오는 4천척의 척량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꼭 4천척을 척량하여 내 몸 전체가 물(말씀)에 잠기게 해야 됩니다. 성경 예언서와 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한 절도 빠짐없이 다 새겨야 할 내용인 것은 그 모든 예언의 말씀은 내 속에 살아 숨쉬는 억만가지 패역을 사진처럼 찍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D , 만약 ,영 ~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어찌 되는것인지요 ?
이러한 사상을 습관적으로 쫒아가면서 ,  지속적으로  행하면서 ,
깨달은듯 하나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에는 결국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질문하신 이러한 상태가 바로 사데 교회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라오디게아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천년왕국 못가고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양 떼 살려 주기 위한 순교자 동무, 일어나자 봉화불 들고 흑암 속에 잠든 영혼 깨우치러 나서보자" 하는 새일성가 가사처럼 사랑무장, 말씀무장, 능력무장을 어서하여 우리가 쓰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5, 사대 교회의 ( 사데 )  의미에 대하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데(Sardis)라는 명칭은 '남은 자'라는 뜻입니다.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교회이며, 서머나 교회와 대조되는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죽은 것 같으나 실상 살아 있는 교회고, 사데 교회는 산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에게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로 말씀을 시작하셨고, 사데 교회게는는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을 피할 수 없으니 속이지 말고 어서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사데 교회는 예수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꾸미는 신앙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화려하나, 내부적으로는 죽어 있습니다. 이것을 깊은 속까지 살피시는 '일곱 영'의 눈을 가지신 예수께서 발기발기 파헤쳐 드러내 놓고 "자 이게 네 모습이니 인정하여라" 하시는 것입니다. 

식물인간이 겉으로는 심장도 뛰고 산 것 같으나 실장은 죽은 자이듯이, 사데 교회에는 그런 자들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대로 '남아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들도 그대로 두면 다 죽겠기에,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일깨워 살게 하라 하신 것입니다. 깨어 있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결국 죽을 것 같은 것들을 강건하게 하라는 의미가 '사데'(남은 자)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입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신앙이 변질 안 될 수 없고, 바벨화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데 교회의 남은 자들이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닌다는 것은 그들이 날마다 회개하므로 그 옷을 더헙혀진 채로 두지 않고 넘어지면서도 날마다 생명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앟으면 불가능합니다.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니 날마다 읽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주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고로 애굽 땅 중앙제단에 영적으로 연합됨 없이는 계시록과 예언서 말씀으로 한절 한절 고침받는 역사가 있을 수도 없고, 그 결과로 회개도 할 수 없어 결국 형식적인 회개만 반복되어 겉으로만 산 자처럼 되는 것입니다. 애굽 땅 중앙제단에 영계적으로 연합되지 않으면 이 땅의 모든 기독교가 7교회가 받은 책망상태에서 더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사데 교회에 그 옷을 희게 한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쓰여진 것이 지워질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라,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역설적 표현입니다.


2005년 2월 14일 <스룹바벨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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