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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선교회

[re] 예레미야

dPfpaldi 2005.10.29 03:22 조회 수 : 2096 추천: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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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레미야]


3-1. 이 뢰자 목사님이 덮은 책  렘, 겔, 단에 대하여


이 뢰자 목사님 당시에 제자들이 렘, 겔, 단에 대하여 물으면 “렘, 겔, 단은 아직 전할 말씀이 아니다. 시기를 말했는데 때가 되면 전해야 한다! 지금 전하면 위험하다. 다림줄이 아니다. 복음화 안 되고 참고서다”라고 하셨다 한다.

 

1.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

그것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렘, 겔의 내용은  결국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탄다는 것인데 성전을 건축하기위해서 모인 여호수아, 스룹바벨 단체에게 너희가 성전을 건축하더라고 앞으로 성전이 불타는 일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미리 말한다면 제자들은 모두 낙심해서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전할 시기가 있다. 성전이 불타는 일은 동방역사에서 반드시 두 번 있을 것인데 망하는 과정에서도 있고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있다. 성전이 불탄다는 것은 성전건축한 모든 사람들이 망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중에서 거짓선지와 타협한 자들이 망한다는 뜻이다.

2. 왜 참고서라고 하였는가? 

이사야, 미가, 아모스, 호세아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불탈 것을 예언했다. 그런데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서는 그 예언이 응할 때에 바벨론 환난을 피부로 겪으면서 기록해 놓은 성경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시대에 가서는 앞서 예언한 선지의 예언이 무슨 뜻인지 설명을 안 해도 자연히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참고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에도 초막절에 앗수르를 승리한 이후에 바벨론 환난이 온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자라면 렘, 겔, 단은 읽기만 하면 그 뜻을 알게 되는 참고서와 같이 될 것이다.


3. 동방역사를 하는 종들이 명심해야 할 일.

인간 종말에 유다는 새일 교회다. 성전건축이라는 것은 몸에 성결을 이루는 일이요, 완전개조요, 신 창조다. 그러나 아무리 성전을 건축했다 하여도 바벨론(러시아)의 거짓선지와 타협하게 되면 그 성전은 더러워지게 되는 것이므로 구약 때 성전이 불탄 것처럼 종말에는 타협한 새일 교인이 바벨론 러시아에 의하여 불에 사름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짓선지의 궤휼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의 과정에서 밝아진 말씀으로는 렘, 겔의 내용을 분명히 알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전이 불탈 때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전건축을 통하여서 몸에 받은 성결을 어떻게 거짓선지에게 더럽히지 않고 신랑 주를 영접할 것인가 하는 일은 성곽건축을 통하여 밝아지는 비밀이다. 담(성곽)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겔42:20).


성전을 건축하면 몸에 성결을 받는 것이요, 거짓선지에게 속지 않을 때에는 바벨론을 때려 부수라고 새 힘과 철장권세를 주시는 단계가 또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불 성곽이다.



3-2. 예레미야, 에스겔에 기록된 재앙과 저주가 우리 유다 새일 교단에 응하는 예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환난이 시기적으로 임박했다는 의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범죄 하므로 망할 것과 또한 회복 될 것을 미리 예언 했다.(신28:-30:)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로 예루살렘 성전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시야 왕 때에 가서야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여선지 훌다(왕하22:)에게 물어보니 그 재앙과 저주가 아들시대에 가서 곧 응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이 응하는 시점에 가서 율법 책이 발견되도록 하신 것이고 또한 그 해석도 주신 것이다.


이 뢰자 목사님이 해석을 주시지 않고 덮은 책 예레미야, 에스겔을 우리는 지금껏 안다고 생각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우리는 은혜시대 교회가 망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재앙과 저주의 말씀은 우리 새일 교단에 응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도 성전을 건축한 예루살렘에 응하는 재앙과 저주다.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각성하는 자는 임박한 진노에서 남은 자가 될 것이고  반대하는 자는 반드시 거짓선지에게 먹힘을 당할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한다.


요시야 당시에 여호와의 율법 책이 발견되고 나서 곧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환난이 왔다. 지금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이 불탄다는 내용이 밝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앞에도 환난과 재앙이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곽을 건축한 후에야 재앙이 올 것이다(암7:7). 2-3년을 앞에 놓고 직장과 농장을 떠나서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3-3. <말씀의 칼 249> 만국위에 세운 예레미야에 대하여

예레미야선지는 유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을 눈물 흘려 외쳤다.


서론에 보면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이 말기를 당하여 바벨에게 먹힘을 당할 일을 앞에 놓고 눈물의 선지 예레미야를 부를 때 너를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무너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하시었다. 이것은 예레미야 한 사람을 가르친 말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이 바벨 화 되는 심판 기에 사명 자를 가르친 예언 적인  표증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명령할 때 하신 일은 우리에게 해당된 것임을 뜻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결론에 보면 “예레미야는 육적성전이 황폐될 것을 슬퍼했지만 말세 종은 영적 교회가 황폐될 것을 보고 슬퍼해야 할 일이다”했다.

영적 이스라엘이 바벨화가 된다는 말씀과 영적 교회가 황폐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새일 교인이 거짓선지에 의해서 음녀가 되므로 바벨론 러시아에 의해서 불타고 남은 자가 적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영적 이스라엘은 천주교, 기독교, 새일 교회가 있다. 천주교 기독교는 사마리아인데 그들이 망하는 것은 앗수르 소련에 의해서다. 마지막으로 유다 예루살렘은 새일 교회인데 그들이 망하는 것은 바벨론 러시아의 거짓선지와 타협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서는 이 일을 경고한 글이다.


북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모두 망하고 출 바벨론 하면서 다시 복구되었듯이 종말에도 5개월 환난에 애굽에 들어간 상태에서 다시 재건되는 촛대교회(성전)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예레미야서는 정확하게 응할 것이다.


앞으로 새일 교회는 세계적으로 크게 확장 될 것이다. 초막절에 앗수르를 승리한 것은 몸이 성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마리아에는 없고 유다에만 있는 성전이다. 그러나 바벨론은 성전을 불사르고 황폐화시키기 위해서 오는 더 무서운 대적이다. 청황 색 말이다. 거짓선지는 용처럼 말한다고 했다. 속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외치는 자는 모두가 예레미야의 사명을 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7.15-8.24에 될 일이다.



3-4. 렘 1:11 살구나무 가지에 대하여.


출 25:31-40 에 보면 정금등대가 있는데 살구나무가지 모양으로 만들고 살구꽃 형상으로 잔과 꽃받침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에 어두움을 밝히는 성물(聖物)이었다. 순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슥4:의 순금등대다. 계시록에서는 일곱 촛대 교회라고 하셨으니(계1:), 종말에 일곱 영의 역사가 빛으로 임해서 마귀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가는 역사를 말한 것이니 이것이 살구나무가지의 역사다.


그러므로 렘1:11에서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다는 것은 어두움이 올 때에 흑암 권세를 물리치고 양떼를 살리는 촛대교회를 말한 것이요, 끓는 가마란 사망권세의 바벨론을 말한 것이다. 청종하면 아름다운 땅의 소산을 먹고,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킨다는 사1:18-19의 대 전제와 동일하다.



3-5. 렘3:6-10 배역한 이스라엘과 패역한 유다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영혼구원을 받은 은혜시대 교인을 말한다. 배역했다는 것은 종말에 영, 육을 구원해 주는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을 순종치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앗수르 소련을 의지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아람과 에브라임의 환난을 당할 때에  아람과 에브라임을 멸망시켜준 앗수르에게 친 앗수르 적인 태도을 취하고 환영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오홀라의 행음이다.


유다는 새일 교회다. 패역했다는 것은 몸에 성결까지 받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도 거짓선지와 타협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5:처럼 들 포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오홀리바의 행음이다.



3-6. 렘 4:5-10,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고 여호와께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다는데 대하여.

성전건축을 통하여 앗수르를 승리한 일이 완전승리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앗수르 소련에서 바벨론의 러시아로 전환된 상황에서 그들이 가져온 것이 예물이라고 생각하고 환영한다면 반드시 속는 일이 될 것이다.


거짓선지가 친구인줄 알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보니 거룩한 강단에 까지 서게 되었다. 용의 말을 하는데 분별하지 못했다. 거짓선지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제는 완전승리요, 환난이 없다는 것이다. 성곽을 인정하지 않는 선지자들은 그 상황에서 평강을 외칠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맹약을 파하고 들어와서 불사르게 될 때에는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겔21:18-23같이 바벨론이 들어 올 때 당한다. 이것은 성곽건축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는 비밀인데 성곽척량을 받지 못하면 하와 같이 속는 일이 있을 것이다.



3-7. 렘6: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든다는 것과 정오에 올라가고자 했으나 밤에 올라가서 그 전각들을 헐자는데 대하여.

바벨론의 1,2차 침입은 그래도 불사르고 전멸시키는 환난이 아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을 불사르기 위한 마지막 환난을 말한다. 바벨론의 3차침입이 정오에 계획되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밤으로 연기되었다는 뜻이다. 아니면 낮에 에워싸기를 시작해서 밤에 공격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시드기야도 밤에 도망가다가 붙들렸다(렘52:7-8).


나는 예루살렘이 계룡산을 중심하여 대전 혹은 요즈음에 거론되고 있는 충남 연기, 공주의 행정 신도시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먹고 자고 할 거처가 필요하므로 아무리 계룡산이 예루살렘의 본부이지만 마지막 때에 도시에 운집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에워싸인다는 소문이 들리게 될 때에는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든다고 하신 것은 반드시 도망가라고 경고하고 외치는 일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때에는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겨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는 말씀이다. 아이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말씀은 이 때에 육적으로도 응한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십리 밖의 산으로 도망가는 일인데도 주님이 경고하신 것은 바벨론의 3차 침입이 시작된다는 소문이 들릴 때에는 에워싸이느냐, 아니면 벗어나느냐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에워싸이기 전에 계룡산으로 도망하면 살길이 있다는 것이다 (마24:16이하, 눅21:20-24참고, 렘52:7, 사30:29). 그곳에 가면 유월절과 같은 보호와 승리가 있을 것이다.


3-8. 렘7:4에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는 것과 12-15에 실로에 행함 같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행한다는 것과 32에 살육의 골짜기라 칭한다는데  대하여.

몸에 성결 받은 새일 교인은 여호와의 전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그러나 거짓선지와 타협한 새일 교인은 이미 여호와의 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실로에서 엘리 제사장과 그 가족이 망한 것 같이 망하고, 시드기야 때 성전이 불탄 것 같이 몸이 불에 탄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룡산 앞과 대전 혹은 행정신도시는 성전건축하고도 타협한 자들이 죽는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다.



3-9. 렘 8:11-12 평강 하다 평강 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심과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아니했다는데 대하여.

이에 가장 정확한 짝은 겔21:19-23, 사28:14-15, 18이다. 반드시 성경을 찾아서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짝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거짓선지와 평화조약을 맺고 안심했지만 죽게 된다는 것이다. 거짓선지가 가증한 미운물건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망한다.



3-10. 렘9:11-16,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하심과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 한 자가 누구냐 하심에 대하여.

미3:12, 렘10:22와 동일하다. 러시아의 거짓선지로 인하여 새일 교인이 졸지에 불에 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광포하는 자가 지혜자라는 것이다. 광포하는 자는 반드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 받는 야곱의 도다.



3-11. 렘11:16-17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꺽였도다”에 대하여.


이것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짝은 슥4:~5:이다. 성전건축의 과정을 통하여 뼈골 속에 박힌 죄악이 소멸되고 몸이 성결한 자들이 생산되는 것은 인간 6,000년 역사에 없던 일로서 인간종말에 와서 이러한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순(싹)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는 푸른 감람나무가지인데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촛대 교회가 되는 것이다.


촛대 교회라고 하는 것은 어둠이(마귀의 역사) 올 때에 불을 밝히는 사명인데 몸이 거룩해진 자에게 일곱 영의 성신님께서 등불같이 역사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순금등대라고도 한다. 몸이 거룩해지면 앗수르를 승리하는 열매가 있다.


그러나 몸이 거룩해졌다고 완전 승리자가 된 것은 아니다.

순금등대로서 최후까지 등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거짓선지와 타협치 말아야 한다.


몸이 거룩해진 자를 거짓선지로 다시 한번 시험 해보고 절개를 지킨 자라야 신부로서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람나무 가지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슥5:4처럼 망령된 맹세를 했기 때문이다. 거짓선지와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다. 결국 시날 땅에  가서 머물게 된다고 했다. 바벨탑을 쌓다가 저주 받은 땅이 시날 땅이다.


거짓선지와 타협하면 성결이 더러워지므로 한 때는 푸른 감람나무 가지였지만 바벨론 러시아에 의해서 불에 사름을 당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푸른 감람나무가지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성전이 불탄다는 것이다.



3-12. 렘 13:1-11, 예레미야의 베띠에 대하여.


유브라데는 바벨론 땅을 흐르던 강의 이름이다. 예레미야의 베띠를 유브라데에 감추어 썩게 하신 비유는 유다 예루살렘을 바벨론으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새일 교인에 대한 심판은 러시아에 의해서다. 소련이 아니다. 렘13:21에 친구 삼았던 자를 수령으로 세운다는 말씀은 거짓선지와 타협할 때까지는 동등이었지만 결국 러시아가 자기들을 죽이는 수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3-13. 렘14:13-18,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는 것이 거짓예언이라는 데 대하여.

성곽건축을 하지 않은 선지자들은 거짓선지와 평화협상을 맺고 평강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바벨론(러시아)에 의해서 먹힘을 당하고 보니 거짓예언이라는 것이다.



3-14. 렘 19: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오지병을 깨뜨린 비유와 도벳과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게 된다는데 대하여.

예루살렘 성의 우편을 감싸고 흐르던 골짜기를 기드론 골짜기 또는 여호사밧 골짜기라 한다. 남편을 감싸고 흐르던 골짜기를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한다. 이 둘이 합하여 동(東)으로 흐르던 골짜기가 도벳 골짜기인데 여리고로 흐른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오지병을 깨뜨린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를 파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룡산을 중심으로 해서 대전과 앞으로 충남 연기, 공주의 행정신도시가 형성된다면 그 주위를 흐르고 있는 금강에서 새일 교인의 많은 피가 흐르는 심판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거짓선지와 타협하고서 자기를 죽이려 3차 침입이 들오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산으로 도망가지 않은 자들이다.

예레미야의 외침의 대상은 새일 교인이지 은혜시대의 천주교, 기독교인이 아니다. 유다의 멸망 즉 새일 교단이 황폐화되는 사건은 반드시 있다. 타협한 자는 망한다.



3-15. 렘 24: 좋은 무화과와 악한 무화과에 대하여.

2차포로 때 붙들려간 여호야긴 단체를 좋은 무화과, 멸망하기 까지 남아 있던 시드기야 단체를 악한 무화과라 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거짓선지와 타협치 않으므로 쫓겨나서 3차 침입이 들어오기 전에 계룡산으로 도망간 자들은 권세의 새 힘을 받고 인을 받고 아름다운 소식을 증거 하는 좋은 무화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북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짓선지와 타협하고 형제를 쫓아낸 자들은 시드기야 단체처럼 성읍에 남아 있다가 에워싸인 후 불에 사름을 당하는 악한 무화과라는 것이다.

   


3-16. 렘25: 70년 회복에 대하여.


법적인 기간동안에 최 대광 목사님께서는 이 기간이 1905~1975년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환난이 들어오는 실천적인 시대에 예루살렘이 불타고 다시 재건되기까지 이 기간이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애굽에서 총리가 된 인간종말의 다니엘 또는 요셉 사명자의 깨달을 바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7.15-9.24까지가 71일이다. 그 일은 그 때 사명 자가 알아서 할 것이다.



3-17. 렘 31:38-40 이 성을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에 대하여.

이 말씀은 BC 445년에 3차 귀국한 느헤미야에 의해서 응했다(느3:). 인간종말에 성전건축은 5개월 환난가운데서 1차 귀국하는 여호수아 스룹바벨 단체에 의해서 재건되는 역사이지만 성곽건축은 2차 귀국하는 에스라와 3차 귀국하는 느헤미야 의해서 건축되는 일이다(느3:).


이 일 조차도 스룹바벨이 한다고 하면 성경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신앙양심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 것이라 하면서 손을 놓지 않고 울고불고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자기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자기 할일만 분명히 하면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다.


말로만 성곽을 건축했다고 하지 말고 명실상부하게 거기에 걸 맞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선지자이므로 환난이 오기 이전에 이루어질 말씀을 밝혀야 한다. 주님도 사61:2절의 은혜의 해까지만 읽으시고 이 일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했다 하시면서 책을 덮으셨다. 같은 절의 신원의 날을 읽지 않으셨다. 우리도 자기의 사명의 한계를 분명히 아는 자이기를 원한다.

종말에 대한민국이 러시아에 의해서 황폐되고 미국에 들어가는 일이 있는데 그들의 영적 후손이 1,2,3차 귀국해서 성전성곽을 재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최후에 돌아오는 느헤미야 단체에 의해서 1.14 유월절에 성취될 것이다. 재건하는 성곽이란 불성곽인데 거룩한 것은 보호하고 속된 것은 불사르는 일이다. 그들이 철장권세를 받고 북진하는 것이 진정한 동북의 소문이다.



3-18. 렘 50:17-18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뼈를 꺽도다”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에 대하여.


이 말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과거 구약 때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 새일 교단의 역사가 그렇게 될 것이다. 가감 없이 그대로 인정해야 신앙의 정로가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놓고 내가 말씀에 순복해야지 나의 주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다 붙이려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다. 하나님의 진노를 자취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앗수르 환난 뒤에 반드시 순차적으로 바벨론 환난이 온다. 앗수르 왕을 벌하신다 함은 사37:36과 슥4:7이다. 바벨론 왕을 벌하신다 함은 욜3:2와 겔38:10-23 등이다.   

 

1) 앗수르에 대한 초막절의 승리를 북방에 대한 완전승리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사37:36).

2) 또한 초막절의 승리가 바벨론 군대에 대한 승리인데 바벨론 군대 속에는 앗수르 군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도 안 된다.   


둘은 엄연히 시간적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환난이다.

앗수르 환난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멸망케 하는 환난이다. 남을 자는 유다(새일 교회)에 돌아온 자이다. 바벨론 환난은 유다(새일 교단)를 황폐케 하는 환난이다. 남을 자는 성곽을 건축하고 거짓선지의 미혹을 이긴 자들이다.  앗수르 환난 뒤에는 반드시 바벨론 환난이 있다. 그래서 붉은 말이 있고 청황색 말이 있는 것이다. 흑마와 백마가 서로 다르듯이 붉은 말과 청황색 말도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다.



3-19. 렘 52:에 대하여.

시드기야 때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했다. 성전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역사이면서 예언이다. 새일 교단은 러시아에 의해서 반드시 황무하게 되는 일이 있다. 성전 된 새일 교인의 몸이 불에 사름을 당하는 무서운 환난이다.

 

이사야(사63:18. 64:10-11)와 미가(미3:12), 아모스(암2:4)와 호세아(호5:12-14)같은 선지자는 이것을 미리  예언했다.

종말에도 이것을 알고 예언하는 자라야 참된 선지자라 할 것이다. 그들이 모인 단체를 말세복음 부흥단 이라고 한다. 2-3년을 앞에 놓고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자들이다.



3-20. 애1:, 이방인이 성소에 들어갔다는데  대하여.

  

초막절의 승리로 한 때는 열방 중에 공주가 되었고 높임을 받았으나 바벨론에 의해서 황무하게 되어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되었다.

  

이방인이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모압과 암몬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방인이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거짓선지가 거룩한 성전의 강단에까지 올라간 일이 있은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러시아)이 성전을 불사르기 위하여 들어갔다는 뜻이다. 인간종말에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는 일이 있다.  그들이 주장은 변질된 말씀과 평화공존인데 이를 용납하는 새일 교인들은 반드시 불에 사름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시79:1-2에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했다. 

초막절 이후에 러시아의 거짓선지와 타협하는 일로 말미암아 새일 교인이 불타는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에서즉 음녀의 멸망이다.



3-21.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시고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 하셨다는데 대하여(애2:1).

이 말씀에 대한 답은 사 66:1-4에 있다. 또한 다윗은 대상28:2에서 하나님의 발등상을 전이라고 했다. 겔43:7 상 반절에도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고 하셨다.

 

인간종말에 성전건축하고 몸에 성결을 받아 여호와의 전이 되었다. 그러나 말씀에 떨지 않는다면 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지 않는다는 것은 망한다는 것이다. 가증한 것을 기뻐하므로 유혹을 받아 멸망한다. 바벨론 러시아가 와서 불사른다.



3-22.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다는 것과(애 4:1)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시고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갔다(4:11-12)는데 대하여.

성전이 무너지고 불에 사름을 당한다는 것이다. 원수가 성문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성곽이 보호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 멸망 후 회복이다. 타협한 새일 교인의 멸망을 말한다.



3-23. 애 4:20에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 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에 대하여.

사37:과 사39:이다. 그 결과 시온 산이 황무하게 된다(애5:18). 미3:12에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는 미가의 예언이 예레미야 시대에 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