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예레미야 애가 2장

제목 : 고난 중의 기도



  1.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대 고난
: 1~10

『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

"처녀 시온"이란 예루살렘 모리아산의 언약을 인하여 400년 후에 야곱 12 지파에게 찾아 주신 축복의 칭호인데, 이들을 "구름으로 덮으셨다" 함은 이들이 범죄할 때 공의의 법대로 70년간 심판하신 일을 이름이다. 죄가 무겁기에 심판도 "하늘에서 땅에 던지듯이" 심하게 내려진 사실에 대하여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다. 시온은 하늘의 임금이 직접 관리하며 아껴주셨으나 범죄하여 패열할 때 땅의 짐승에게 70년을 붙이신 것이다. '후 3년 반'이 바로 이런 곳이다.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기독교가 아무리 성령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2,000년간 사랑을 받아왔더라도 종말의 흑암을 분별 못하여 범죄하면서도 살려주려고 한 제단을 들어 "회개하라! 종말의 법인 계시록과 예언서 앞에 순종하라" 외치게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예레미야와 같이 홀로 다시 예언하는 '새 일의 제단'을 배척 멸시하므로 애가서대로 유다 민족과 동일한 운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혼인잔치를 앞둔 "처녀 기독교"가 새 일을 멸시하면 '후 3젼 반' 짐승 세계로 던지움 당함을 잊지 말라!

"그 발등상"이란 사랑받던 주님의 성전 곧 시온산 예루살렘을 가리킨다(시 99:5, 시 132:7).


『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 

선지자는 유다가 당한 전쟁의 참상을 또다시 진술한다. 특히 본 구절의 말씀은 유다 나라가 소유한 모든 "견고한 것들"이 무너지는 화를 당했다는 것을 부각한다. 든든했던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항상 뜻밖에, 경각간에 나타난다. 선지자는 이렇게 유다 민족에게 임한 환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번번이 증거하고 있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야곱의 목장들'이란 뜻으로 방위가 없는 유다 지방들을 가리키고, "견고한 성이 헐림"은 나라의 방백이 수욕에 처할 것이란 뜻이고, "모든 뿔을 자르셨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파괴시키셨다는 의미이다.

"오른손을 거두시고" 오른손은 중요하다. 시 78: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 그러나 백성이 그를 떠나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은 오른손을 거두신 것이다.  시 78: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고로 이제 살려면은 다시금 주의 오른손에 붙들리는 길밖에는 없다. 다음을 깨달으면 주의 오른손에 의지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종말의 생명책인 요한계시록 곧 원수를 심판하며 택자를 구원해 낼 일곱 인 봉해진 책이 성부의 '오른손'에 있으니(계 5:1,7), 원수를 쳐부술 손을 여호와의 '오른손'이라 하심과(출 15:6),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실 때 그 '오른손'에 불 같은 율법이 있음은 일맥상통하는 진리의 말씀이다(신 33:2). 말일의 동방역사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때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꼭 붙들어 버리지 아니하신다 약속하셨으니 살 자는 성부의 '오른손'으로 달려나가게 된다(사 41:10). 다윗도 대적을 피하여 주께로 나아오는 자를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해 달라 기도하였고(시 17:7, 18:35, 20:6, 44:3, 60:5,8, 73:23), 주의 '오른손'은 정의가 충만한 손이라 하였다(시 48:10). 주의 '오른손'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손이라 하셨으니(시 77:10~), 출애굽보다 더 큰 역사인 종말의 동방역사는 주의 손에 붙들린 자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우리는 주 예수께 접붙은 포도나무 가지들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찍혀져 나가는 법이다(요 15:1~6). 시 80: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이키사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소화되고 작벌을 당하며 주의 면책을 인하여 망하오니 17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온 세상이 흑암이 덮이고, 교회까지 졸며 잘 대가 된 지금 우리가 살 길은 주의 우편에 있는 자 인자 예수(계시록)께 다시금 달려나가 소생케 되는 것뿐이다.  

구약과 똑같이 오늘날의 세계 교회는 현실 바벨론의 물질문명에 도취되어 물량주의, 기복적 신앙주의로 치우치고 있는 실정이며,
다시 예언하라는 재림 예수님의 명령(계 10:7~11)은 매우 등한히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예언서에 순종하면(사 1:19~20) 새 시대에서 1000년 안식을 얻게 된다는 진리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포도나무)이다. 하나님은 구약 때 자세하게 보여주시고 보여준 그대로 종말을 사는 세계 교회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내리셨는데, 이 명령에 불순종한다면 다시 한 번 아담같이 땅에서 쫓겨나 육체가 썩은 채로 천년간 옥에 있어야 할 줄을 오늘날의 교회성도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예수님의 피를 믿었다고 모든 것이 완전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빼앗긴 세계는 이 지상이지, 천국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천년을 누리라고 주신 법에 불순종하는 인간은 예수님의 재림 후 이 땅에 천년의 축복이 임하는 동안 어두운 옥에 갇혀 있다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들어가는 무궁세계(천국)에 들어가는 시기인 마지막 부활 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길 수 있는 심판 방법이다(벧전 3:18절 이하를 참조하라).

살리는 권능을 가지신 주의 '오른손'이 자기가 심으신 이스라엘 포도원을 훼파하는 진노의 '오른손'이 되게 한 것은 백성의 패역이다.


『 4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육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
 

하나님은 성도들의 애호자신데, 이렇게 "원수같이 된" 모양으로 나타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인즉 교회 안의 악(패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시므로 징계하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도라도 아직 완전치 못한 인간일 뿐이기에 그가 징계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이 노하시는가'를 생각하기보다도 '하나님은 무자비한 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원망하기가 쉬운 법이다(사 8:20~22).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히 12:6). 살육과 진노와 훼파로 성도를 향해 몽둥이를 드셨어도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에게 영원한 형벌은 있을 수 없다. 약속한 70년만 지나면 그 후에는 귀국하여 회복된 고토에 다시 살게 해주시는 것이다(렘 25:11).

살 자들은 택자들의 피난처인 주의 '오른손'에 귀의할 것이나(예언의 말씀), 멸망케 될 자들은 주님의 '오른손'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마와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기에 바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애가서에 나타난 모든 저주가 실행되는 '후 3년 반'에 떨어져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하게까지 되는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된다(사 8:20~22). 이렇게 될 교회들은 지금 모두 궁과 같은 교회, 견고한 처소에서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금은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예배는 하늘에서 받지 않으신다. 영적 궁, 영적 견고함은 계시록을 받아들이는 교회만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교회가 1958년 3월 19일 내려온 세계 유일의 계시록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이 형성한 교권에 의지해서 인간의 견고함만을 더해가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끝까지 예언을 깨닫지 못하면 그들이 쌓은 모든 궁과 견고함은 심판의 날 애통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새일성가 38장6절)


『 6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성막은 주님의 법궤가 안칙된 공간이다. 거룩한 시설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법궤에 기록된 하나님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보다 성막(성전)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히 여겨 그것(예루살렘 성전)을 소유하고 있는 한 자신을 해칠 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외친 것이다. 렘 7:4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처럼 인간이 종교의 본의를 망각하고, 육안의 눈에 보이는 성막(교회)을 우상화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막일지라도 서슴치 않고 폐기처분하신다. 고로 구약 예루살렘 성전은 "초막같이" 여김 받아 무참히 헐려 버린 것이다. "공회 처소"는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전해주기 위한 시설물을 가리킨다. 성막, 성전, 회당과 같은 것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시설물을 잘못 사용하였다. 이 공회 처소가 종교적 외식을 위한 도구로만 쓰였음이 분명한 건, 진리가 선포돼야 할 그 곳이 오히려 참 선지 예레미야를 비방하고 때리고 쫓아낸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증거해 준다.

이 땅의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것이 제 본위를 이탈하여 사용될 때 여호와께서는 그것들을 서슴지 않고 폐지하신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왕하 18:3~4).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심"도 역시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유대 교회가 '안식일'이라는 제도만 의지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맡긴 예언서를 무시하며 선지를 죽인 것은 그들의 허례허식을 잘 드러내준다. "왕과 제사장"은 백성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사람인데, 그들이 옳지 않게 행하므로 그 자격을 상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폐하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시드기야 왕의 눈알이 뽑혔다면, 유다 정권, 유다 교권의 행보를 그대로 걷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방백과 종교 방백 역시 그렇게 될까 두려워하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 길은 있다. 예레미야가 되든지, 그를 돕던 바룩이나 에벳멜렉과 같은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다니엘이 되든지, 그 옆의 세 친구가 되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밖의 세력은 바벨정치, 바벨교회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벨의 자식이 되면 바벨론이 와서 죽여 버린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이다.


『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날과 같이 하였도다 』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인테리어에 투자하여 번들번들한 교회를 만들어 놓아도 그곳은 예배드리는 처소일 뿐 성소는 아니다. 성소냐 아니냐는 진리가 함께 하느냐 아니냐로 판단 받는다. 종말에도 화려한 대형교회의 신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헐릴 가능성이 높다. 종말의 성소는 순금등대 촛대교회로서 예언의 말씀을 꿀같이 먹은 144,000명의 몸 자체가 순금등대 촛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의 손에 붙들려 주와 동행하는 자들이니 자신도 살 뿐 아니라 세계를 살리고 남음이 있게 된다. 살리는 것이 성소이지 헐려 버림받는 것은 성소가 될 수 없다. 계시록과 예언서가 없는 헛된 제단은 원수에 손에 붙여지게 될 뿐이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 준다. 유대 민족이 종교적 절기를 오용하였으므로 이제 그것들은 폐지되고, 그 자리에 도리어 이방 군인이 침략하여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떠든다는 것이다. 지금도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 등 수많은 절기행사가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계시록도 없이 절기행사에만 치중하는 대형교회들은 원수 손에 붙이워질 "제단, 성소, 궁장"이니 북방 군대가 들어오는 날, 말갛게 벗겨지고 말 것이다(욜 1:6~9).


『 8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

"줄을 띠고"란 심판의 범위와 한계와 정도를 결정하셨음을 뜻한다. 종말에도 다림줄(암 7:7~9, 슥 4:10, 왕하 21:13) 말씀에 의해 공의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멸망은 너무도 처참했으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이 모습이 생시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측량(다림줄=심판)이었음을 기억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약 예언 속에는 인간종말을 사는 우리를 겨냥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다. 그런데 현재 교회는 구약 성민이 당한 이 일이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줄 알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슥 4:1절처럼 선구자를 선택하여 잠을 깨우시고 잠자고 있는 교회에 외치게 하기 위하여(마 25:6) 학 2:10~23절에 기록된 성전을 지으시되 정한 날짜 9월 24일에 순금등대 촛대교회의 지대를 놓게 하시어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할 준비를 갖추신 것이다(사 46:10, 히 10:1~).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성과 곽은 생명이 없는 시설물이다. 그것들이 "통곡"한다 함은 당시에 임한 멸망의 비참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역시 성전이 여지없이 함락된 사실을 드러낸다. 구약 성전이 우상숭배죄를 범할 때 이꼴이 되었다면, 인간 종말에 우상국가인 북방 무신론 사상에 대해 싸워 이기지 못하고 협상을 한다면(W.C.C.) 그 단체는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꺽여 훼파될 것"이다. 협상에 앞장선 교파, 교단, 총회가 영영 망해 버린다는 예언이다. 이렇게 되므로 이 땅의 거대한 협상교회가 10절의 말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2. 시온의 비애와 적들의 조소 : 11~16

『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

북방 군대의 침략 때에 기근으로 인해 어린 것들의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비극은 '구약으로서 끝'이 아니다. 바로 이 시대에 재연될 것이다. 이제 '후 3년 반', 대 환난이 오면 짐승정권(계 13장)이 정치와 종교를 장악할 것인데, 순금등대 촛대교회가 전하던 계시록과 예언서로 양식을 삼지 못한 자들이 '후 3년 반' 짐승통치에 들어가 위와 같은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서는 계시록과 일맥상통한다. 바꿔 말하면, 계시록을 알아야 구약 모든 예언서를 읽을 때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언제나 현재를 말하고 있다. 구약 때의 역사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0:6,11). 거울을 보고도 제 모습을 파악 못하는 종들을 일컬어 성경에서는 '소경'이라 칭했다(사 29:9~, 42:18~22). 이 소경되고 벙어리된 무익한 종들을 하나님은 '개들'이라고 하셨는데(사 56:10),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인류종말의 영적 추수기 때에 계시록을 멸시하고 예언서를 알지 못하는 이 '개들'을 다음의 말씀대로 심판당할 것이다.

사 18:5~6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하리라 하셨음이니라" 여기 독수리와 들짐승들은 바로 '후 3년 반'을 통치할 짐승정권과 열 뿔을 가리킨다.


『 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
 

"내가 무엇으로 비유할꼬"란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당한 참상이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비극의 참상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눈물은 곧 예수님의 눈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유대인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벌하셨을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보여주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선민의 존재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으니, 그 일을 잘못할 때는 공의의 벌을 받는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1차적으로 공의의 징계를 내리심으로, 종말에 이 일을 다시 읽고 전하여 만방에 주의 영광을 드높여야 할 영적 유다와 영적 이스라엘 전 지파가 확실한 교훈을 갖게 하셨다. 이제 '한 제단'을 통하여 공의의 교훈이 선포되고 있으니 행한 대로 상급과 보응을 얻게 될 것이다(눅 12:47~48). 교훈을 멸시하는 자는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하신 대로 '후 3년 반'으로 떨어져 파멸을 당케 될 것이다.


『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
 

유다민족이 이와 같은 큰 환난을 당한 이유는 유다에 기생하는 거짓 선지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높은 곳에 서서 멀리 보는 파수꾼의 자리에 서지 않았으며, 민족의 죄악을 지적해서 고쳐주는 의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민족에게 비극이 온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오히려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를 계속적으로 핍박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평강하다 평강하다" "거짓 경고와 미혹"만을 외쳤는데(렘 8:11), 이는 100%짜리 거짓말로서 귀신의 말이다.

지금의 세계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평화공존', '세계 복음화', '종교 간의 대화와 타협'이라는 간판 아래서 듣기 좋은 말만 외쳐대고 있지 않는가? "끝까지 전쟁이 있다"(단 (;26)고 외치는 스룹바벨 한 제단이 있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정치와 종교가 앞장서자"라고 외치는 다수의 제단이 있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북방이 온다고 밤낮 외치다 구덩이에 갇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던 예레미야 한 명과 그를 때리고 "평강, 평강"을 외치던 다수의 무리 중 어느 쪽이 옳았는가? 2,600년 전과 지금의 종교상태는 완전히 일치한다.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 예언할 수 없게 되니 (외롭고 고되지만) 옛 선지와 일치된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사 46:10).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이 땅에서  평화를 이뤄보자는 것은 사단의 속임수이다. 옛날 에덴동산을 추억해 보자! 뱀이 하와에게 무어라 말했던가? 선악과만 먹으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류는 슬픔과 질병과 저주와 사망과 전쟁 속에서 오늘날까지 허덕이며 신음하고 있다. 이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예레미야를 보내시고 그 책을 우리 손에까지 전달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끝까지 불순종하므로 대적할 것인가? 아니면 무릎 꿇어 순종할 것인가? 알파를 보고 오메가를 깨닫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된다.


『 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

본절에서는 선민의 패망한 참상을 또다시 묘사하고 있다.

① 행인들도 유다의 참상을 보고 비웃으며
② 유다를 멸망시킨 원수들은 기뻐하며 더욱 힘을 내어 유다 민족을 힘껏 파멸시킨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바로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이 말은 바벨론 원수가 유다를 짓밟고 포악한 행위를 더하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얻었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만났다, 발견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딸이 적으로부터 "이것이 '아름다움의 완성'이요 '온 세상의 기쁨'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던 성읍이냐?" 하는 비소를 들으며 심하게 훼파되는 모습은 계시록 17장에 기독교의 탈을 쓰고, 평화와 협상을 추구하며 양떼의 생명보다는 돈과 세상 영예만을 추구하던 음녀가 16절에 가서 짐승에게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멸망하는 모습에 비길 수 있다. 우리는 계시록과 예레미야서를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해야 산다.

 

  3.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고 기도함 : 17~22

『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 

본절은 유다가 당한 처참한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언하신 대로 성취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레 26: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신 28:49~57절도 참조하라. 유다의 참상이 옛날에 명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예레미야 입을 통해 다시 예언서에 기록되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언성취 사건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 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누구나 고난을 받을 때에는 기도해야 한다(약 5:13). 그들이 해야 할 기도의 모습은...

① 눈물로써 기도해야 한다.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될 것"은 그들의 회개가 뜨거워야 하겠기 때문이다.
②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밤 초경"이라는 말은 밤을 다섯으로 나눈 부분 중 첫째 시간을 의미한다(저녁 7~9시 - 갑야()라고 함).
"마음을... 물쏟듯 할지어다" 마음을 쏟아 기도해야 한다(삼상 1:10~16).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렘 29:13).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내어 바쳐 전적으로 의지하는 표시이다.

 
『 20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샬육을 당하오리이까 21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육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

유다가 당한 참상을 다시 진술한다. 비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① 여인들이 그 어린 자식을 먹는 일(왕하 6:28~29).
②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살육을 당한 일.
③ 남녀 노소와 연령의 차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일.
④ 두려운 일들 곧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피할 수 없게 된 일.
⑤ 젖 먹는 아기들도 죽임을 당한 일.

이와 같은 참변들은 그 배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악독한 죄악을 연상시킨다. 모든 성경은 선민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니, 특히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강한 경고장이 된다.

원죄의 악질이 뼛골 속에 박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할 수가 없는 줄을 잘 아시고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쳐서 변화체를 만드시겠다는 것이 큰 구원이요, 동방역사요, 초막절기요, 새 일의 역사다(사 42:9~, 43:1~5, 57:18~. 렘 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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