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예레미야 애가 3장

제 목 :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망


 

  1. 재화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 : 1~20

차꼬에 메인 죄수의 모습
예레미야와 유다 민족의 처지가 이와 같았다 - 3:7

『 1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 2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 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을 대표한 처지에서 자기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의(意義)를 보여주고 있다. 당한 고난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암담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1) "흑암"과 같은 혼돈(2절).
2)
"종일토록" 구타를 당함과 같은 괴로움(3절).
3)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는 것" 같은 고통(4절).
4)
"담즙" 곧 쓸개즙과 같이 쓴 것과 수고로 사방이 에워싸이는 절망과 답답함(5절). 70년간 고난을 벗어날 길은 없게 됐다.
5)
"죽은지 오랜 자"같이 된 절망(6절). 시 143:3참조.
6)
"결박" 당하여 꼼짝할 수 없는 부자유(7절). 욥 19:8, 시 88:8참조.
7)
"기도응답"은 커녕 상달조차 되지 않는 것 같은 버림받은 느낌(8절). 70년간은 아무리 괴로워도 응답을 주실 수가 없다. 합 1:2. 그러나 진노기간이 끝나면 응답하신다(합 2:1~3, 시 91:15, 시 102:2, 잠 18:10, 사 65:24, 욜 2:32 참조).
8)
"다듬은 돌을 쌓아" 길을 막아 놓은 것이 절대자의 간섭임을 깨달음(9절).
9) 하나님의 징계가 대기(待機)하였다가 달려드는
"곰과 사자"의 공격같이 느껴짐(10절).
10)
"몸을 찢는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짐(11절).
11)
"적막한 처지"에 빠져 희망의 서광을 찾아볼 수 없는 처지(11절).
12)
겨누어 쏜 "활"에 맞은 것처럼 괴로움(12~13절).
13)
"조롱거리"가 된 듯한 수욕감(14절, 렘 20:7 참조). 에스겔 선지자도 자기 백성에게 속담거리가 되었었고(겔 12:22), 노아도 산 위에 쓸모 없이 큰 배만 짓는다고 모든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었음. 말세 종도 같은 길을 가야 함.
14) 먹지 못할
"쓴 것"을 억지로 삼켜야 하는 고통(15절).
15)
"돌" 섞은 식물을 먹다 "이"가 부러지게 된 자의 고통과 허탈함(16절).
16)
"재로 덮은 자"와 같이 비천케 된 처지(16절 하반).
17)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므로" 복은 자취도 찾을 수 없게 된 절망(17절).

  이와 같이 비참한 형편들은 그 환난 당한 자로 하여금 절망케 했다(18절).


『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
 

선지자는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라고 아뢰며 낙심 중에 기도하지만 21절 이하에 소망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성실을 앙망 : 21~23

『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시다(찬송가 82장 / ). 알곡에게는 그분의 초림도, 재림도 최고의 살아생전 최고의 소망이 된다. 구약 교회가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갔으나 70년(렘 25:11, 렘 29:10)이 지나면 스룹바벨 총독의 인도로 귀국하여(에스라 1:8, 세스바살=스룹바벨 총독)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슥 8:9)대로 성전을 재건함이 그들 최후의 소망이었듯이... 기독교 종말에도 다시 예언하라(계 10:7~11) 하신 재림 예수님의 명령을 패역한 자들은 반대하다가 북방 칼에 잡혀가 죽게 되지만, 순종하는 스룹바벨 단체 144000 명에게는 이 명령이 새 시대를 향한 최후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예수님이 순종한 144,000과 더불어 지상강림하심으로써 새 천년 안식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렘 31:15~22절에 기록되길 야곱의 부인 라헬이 자식이 없어 울 때 최후의 소망은 :22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신 말씀이었다. 이는 "큰 이적"으로서 바로 계 12:1~5절에 나타난 내용과 동일하다.

 

  3. 환난을 참고 하나님을 대망할 것 : 24~33

『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   

여호와는 우리의 기업이시다. 렘 51:19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 사 19:25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나님은 창 13:14~17, 22:15~18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다 주셨다. 주시되 400년 후에 (유월절이 성취되므로) 주신다고 언약하셨다(창 15:13). 구약 때의 표면적 400년은 출 12:40~ 430년 만에 이루어진 모세의 출애굽역사로 이루어졌고, 이면적 400년은 마태 27장에서 이루어졌는데, 말라기 1:10절의 말씀대로 성전 문을 닫은 지(예언자가 끊긴 지) 430년 만에 예수님이 양의 문, 성전의 문(요 10:7,9)으로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유월절 양으로 화목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우리의 소망은 성취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행 1:8절같이 "땅 끝까지" 전하느라고 2000년이 걸렸고, 이 은혜의 기간동안 양의 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구원을 주셨다(벧전 1:9).

반면, 육체구원은 70년 만에 이루어지는 출바벨론 역사인데 표면적으로는 B.C. 606~536년까지의 70년 세월이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순 같은 스룹바벨 단체가 귀국해서 성전을 재건한 역사가 70년 회복이었는데(순의 역사), 이것이 이면적으로 성취될 사명의 장막이 영적 유다인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1905~1975 / 70년 회복이다. 슥 1:12). 일본을 들어 이 나라를 노하실 때로부터 70년이 차매, 학개서에 기록된 날짜 9월 24일날에 지대를 놓아 제단을 세우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인 맞은 종들 144000명을 불러모을 다림줄, 머릿돌의 권세가 장전된 것이다.

우리가 이 동방역사에 기록된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하면 세계의 선구자적 동무 종들(144,000)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모이되 무신론, 이방종교, 정치협상, 종교통합 운동 등의 비진리 세력에 성경대로 맞서 죽기까지 싸워(다시 예언)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전 세계의 흰무리들이 회개하고 쏟아져 나오도록 역사하게 된다. 이들이 해산수고를 다할 때 천녕왕국이 건설되어 아담이 빼앗긴 땅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 세계 알곡들에게 선포할 사명이 동방 유다나라의 선구자적 종들과 전 세계의 144,000명에게 있는 것이다. 이들은 황충떼가 일어나 인 맞지 못한 자들을 괴롭히는 5개월 동안 세계적으로 강하게 외치다가 3차대전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순교할 것이다. 수를 채운 순교자의 동무 종들이 역사를 마치면 예수님은 이들을 불러 올리시기 위해 공중에 재림하신다(계 11:1~12).

구약 유다를 통해 보여주신 400년과 70년이라는 1차, 2차 역사가
새 언약, 새 일의 실질적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신약과 종말의 역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3대절기 중 유월절, 초막절에 해당하는 역사이다. 기독교가 영혼구원으로 시작하여 완전한 영,육 구원으로 마무리된다는 데에는 이러한 두 가지 연대(400년, 70년)와, 두 가지 약속(새 언약, 새 일), 그리고 3대절기라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순교자와 변화성도라는 1차부활 받은 자와, 이 땅에서 육체가 살아 들어가는 백성들(예비처 흰 무리)로 이루어지기에 몸의 구속, 육체구원, 육체보호는 더 이상 이단적 내용일 수 없다. 오히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적 내용이 된다. 핵심을 말할 때가 되니 마귀가 총동원되어 망해하고 있다. "기업"이라는 것은 몸을 가진 인간이 받아누리는 재산이자 터전인데, 왜 이 시대의 기독교는 기록된 피조세계의 참다운 회복인 천년왕국을 간과하고 곧바로 영체가 누리는 무궁안식시대(천국)부터 가려고들 하는가? '제7천년기'로 작정된 땅의 안식을 거쳐 '제8천년기'인 무궁안식 세계로 이전하여 주님과 영원토록 동거 동락하라는 것이 성경이 명하고 있는 구원의 정로(正路)이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통하여 공부 못하는 학생이 꼭 '영어' 시간에 '수학' 책을 펴놓는다는 진리를 안다. 지금은 '천년왕국' 수업시간이다. '천국' 수업은 이전에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흑암이 와서 덮어 버리니 다음 시간 수업교재도 펴놓지 못하고 졸며 앉아 있는 것이다. 선생님(재림주)은 이런 학생을 교실 밖 복도로 내쫓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으라" 하실 것이다(마 25:12, 26~30).

하나님은 저주가 삼킨 땅에서 저주를 물리쳐 주시어 에덴이 다시금 회복되도록 역사하시려 한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한 땅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셔야만 물질계를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시게 된다. 그 때 다시 한 번 웃으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실 것이다. 계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창 1:31 "보시니 심히 좋았던" 알파 때의 기쁨을 종말에 "되었다" 하심으로 다시 맛보시는 때가 바로 천년왕국이다.

창조목적은 물질세계인 천년왕국이 마무리되고 영원무궁세계가 펼쳐짐으로써 마감되는데, 이 거대한 역사는 완전한 안식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는 것이다. 성경 모든 말씀이 다 사랑이되 이 사랑을 압축할 때 나오는 엑기스가 바로 '새 언약'과 '새 일'이라는 축복된 단어이다(렘 31장).

새 언약 = 렘 31:31~34, 눅 22:20, 히 9:15절의 유월절 양의 역사이다(고전 5:7).
새 일 = 사 42:9, 사 43:19, 사 48:6, 렘 31:21~22절의 예언으로 출바벨론 역사, 철장권세 역사이다. 영육구원, 가족구원, 세계통일의 역사이다.


『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 
  

"기다림(25~26)" 하나님의 언약인 70년을 기다림이다. 단 9:1~3절에 다니엘은 바벨론 속에서 하루 3번씩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연수를 깨닫고 유다의 회복을 보았다.

"멍에를 메는(27~29)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의 특별한 사명(렘 1:5, 겔 1:3)을 말하는데, 시대마다 이 멍에를 메야 하는 대표자가 있다. 율법은 모세에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요 1:17). 환난시대에는 학 2:23절에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印)으로 택하셨다.
"혼자 앉아서(28절)"란 대표적인 종은 항상 홀로될 수밖에 없음을 보이시는 말씀이다(사 11:1~의 한 가지, 사 19:19~의 한 구원자, 사 45:1~의 고레스의 역사는 인간 종말의 큰 구원을 이룰 때 동방역사 대표적 사명자가 등장하여 일할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다).


『 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

사명 국가가 예수님 나라를 건설하는 대역사에 불리움 받아 일을 하다가 약하여 범죄함으로 징계나 핍박을 받을 시에는 달게 받는 자세,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영적 지혜가 유망하다는 뜻이다.

① 주님의 때리는 매는 그 끝이 정하여져 있으므로 그 매를 순히 맞으라고 함(30~32, 욥 5:17~18, 미 6:9 참조).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주님의 "본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고난을 당케 하시는 것은 주님 보실 때 그것이 필요하므로 내리시는 사랑의 징계라는 고백이다(33절).

 

  4. 재난 중에서 반성하고 회개할 것 : 34~41

『 34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3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38 화(禍), 복(福)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    

 ① 선민의 억울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참을 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하신다(34~36).
 ②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주의 명령"에 의하여 되는 것이니만큼 인간은 그것을 잘 참아야 된다고 하신다(37~38).
 ③ 선민이 고난받는 것은
"자기 죄로 벌을 받음이니" 그것을 원망치 않는 것 역시 지혜라고 하신다(39절).

원죄로 인해 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어 연단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 담긴 모략이다. 기독교 생명의 근원인 새 언약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자범죄를 용서하는 것이지, 원죄까지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원죄가 사라진즉 육체의 죽음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믿고도 모든 육체가 풀과 같이 쓰러지는 것은 믿음의 법(롬 3:27)에 의해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을 주시겠다는 공의의 법인 것이다.

하지만 천년왕국을 앞에 두고 까불어보는 이 시점에서는 십자가의 도만 전해서는 참 종이 될 수 없다. 만일 십자가의 도만 전파하는 것으로써 기독교가 끝을 올바로 맺을 수 있다면, 또다시 예수님이 계시록 5장에서 당신의 피값으로 책을 사서 사도요한에게 계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문턱에서는 반드시 (쭉정이의) 육체를 심판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육체구원을 위하여 새 일 교훈을 주신 것이다. 육체를 개조시켜서 변화체로 만드시는 일이 없고서는 마지막 주의 종들도 마귀의 손에 의해 다 전멸될 것이다. 그러면 이 땅은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기독교 종말에 영과 육을 당신의 몸과 같이 변케 하는 마지막 역사를 남겨두신 것이다(빌 3:21. 롬 8:23. 엡 4:30. 계 14:4). 사 42:9~ 새 일을 고하고, 43:1~ 육체를 신창조시켜서, 43:19~ 새 일을 행하므로 새 시대에 들여보내 주신다는 약속이 있다. 사 57:15~21절에도 거듭난 백성의 탐심의 죄악을 고쳐서 완전케 하신다는 예언이 있고, 또한 사 25:6~8, 슥 3:9절에도 새겨야 할 말씀을 다 새겨서 하루에 죄악을 제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 모든 예언들은 십자가 피로 인한 '믿음의 법'을 이루려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의 서신에는 위 구절들 중 적어도 하나는 인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계통의 어떤 종도 위 구절들을 인용치 못했다. 피로 산 '예언의 법'이 집행될 시기에 성취될 예언은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이 인용한다. '피'를 흘리시고는, '피로 산 말씀'을 받아서 구원 얻은 기독교회에 "읽고, 듣고, 지키라"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영을 죽이는 자범죄뿐만 아니라 육체를 썩게 하는 원죄악까지 굴복시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현 기독교계에
육체구원이라는 단어는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생소해 한다고 주께서 기록된 말씀을 가감하실 수 있으랴! 지금은 비록 많은 사람이 믿지 않고 핍박하므로 이 새 일의 일꾼들이 고난의 길을 걷고 있지만, 시 119:67~74절에
"고난이 유익"이라 하신 것은 새 일의 역사를 통하여 모두가 웃으며 "할렐루야"를 돌릴 수 있는 아름다운 추수의 날을 이루시겠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당당히 믿고 전파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영혼구원'의 역사도 2000년 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을 경유하여 아시아 장막으로 들어와 동방 땅 끝의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 전해질 때까지 대적들로부터 얼마나 심한 중상모략과 핍박을 당해왔는지를 생가해 보라! 이 일을 상기해 볼 때, 새 천년 큰 축복을 앞두고 벌어지는 새 일의 동방역사에서 당신의 종들이 다시 한 번 낮아지고 멸시 천대 받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동방 새 일의 역군들은 성령님의 동행하심으로 모든 것을 견디며 넉넉히 이기고 나아갈 것이다. 아멘...


『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성민의 회복을 바라는 선지의 마음은 이 종말의 기독교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새 일 역사 앞에 돌아오라는 말로 다시 예언될 수 있다. "행위를 조사하라"는 말씀은 말씀 앞에서 시대를 분별하여 구체적으로 회개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회개나 고침을 이룰 수 없고 오직 여호와의 새 일 교훈으로만 뼛골 속 깊은 데까지 곪은 영적 부패를 치료하여 원죄의 질을 뽑아낼 수가 있다.

 ① 예수님의 피로는 자범죄를 씻김 받고(슥 13:1~. 사 53:1~12. 시 22장) - 성자의 유월절 역사.
 ② 성령님의 역사로는 영적 장성을 얻어 열매 맺음을 받으며(갈 5:22) - 성령의 오순절 역사.
 ③ 이제 마지막 초막절기 곧 여호와 성부의 새 일 교훈(피로 산 심판책)으로는 6,000년 묵은 선악과의 원죄 질을 고침받아
새 시대 에덴에서 축복을 누리며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이사야 42장 "하나님의 3대 역사" 참조.

 

  5. 죄로 인한 환난과 그에 따른 비애 : 42~54

『 42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

모든 죄악은 선악과의 원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데 이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주겠다는 언약서가 바로 성경이라는 책이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죄짐을 100% 맡아서 해결해 주심에 있어서, 요 19:30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다시 계 5:7절의 말씀을 이루셔야 한다. 곧 계 6:1~2절의 흰 말 타신 예수님이 "이기고"(유월절-영혼구원) "또 이기는"(초막절-육체구원) 백마 2차 승리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주장하기를 "흰 말은 마귀"라 하나 흰 말은 마귀가 아니요, 오직 '기독교 복음운동'인 진리 역사이다. 두 번 이겨야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하늘의 작정이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러한 하늘의 뜻에 대하여 땅의 인간이 "십자가 승리로 한 번만 하면 됐지 뭘 또 하냐" 한다면 참으로 당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성자 예수님은 이기고 올라가시어 당신 피값으로 성부 오른손에 든 책을 사서 그 인을 떼어 요한에게 계시하실 때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그런데도 그의 피로 산 백성된 자들이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라고 말하며 계 6:1~2절의 역사를 마귀역사라 한다면 이제 "또 이기시려는" 하늘의 예수님은 참으로 난감치 않으실 수 없다. 사명자로서 분명히 말하건대, 계 6:2~ 백마의 "이기고"는 기독교 1차 승리! 곧 어린 양 예수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을 뜻한다(골 2:15, 계 5:5, 요 19:30, 고전 15:20). 바로 뒤 백마가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것은 기독교 2차 승리! 곧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손에 있는 봉한 책(구약 모든 예언서의 비밀)의 내용을 열어보이심으로써 그간 감취어진 '하나님의 비밀'(계 10:7)이 인간 종말에 완전히 개시되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인 계시이다.

세계적으로 왕권을 누릴 종들(변화성도)과 백성될 자들(예비처 흰무리)을 모아 육체구원(보호)을 이루어 새 시대 들어갈 구원의 목록을 마련하는 역사가 바로 "또 이기려고 하더라"로 보여진 백마의 2차 승리 역사이다. 이것은 계 19:11~21절 아마겟돈 전쟁의 대 승리로 마무리되는데, 이 땅에 존재하는 원수 마귀(600)와 그 앞잡이 짐승 정권(60)과  그에 빌붙은 거짓 선지 교권(6)을 없이 하므로 끝을 맺는다. 잡히는 과정은, 먼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산 채로 유황 불못에 던져지고(계 19:20), 그 다음으로 용이 잡혀 무저갱에 던져짐으로 끝난다(계 20:1~3). 이렇게 되면 이 땅은 에덴으로 완전히 회복된다.

이제야 비로소 '눈물'과 '고통'과 '한숨'과 '질병'과 '슬픔'과 '탄식'과 '저주'와 '전쟁'이 사라지고, '사망'까지 사라진 완전구원, 영육구원, 완전안식의 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백마가 2번째 이기는 모습으로 보인 것이니 "백마는 마귀"라 설교하는 그 목사가 마귀이다. 만일 모르고 그랬다면 회개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확실히 알고서도 계속하여 "우리는 예수 십자가로 영혼구원 받았다" 말하며 계시록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여호와의 새 일은 이단이며, 계 6:1~2절의 역사는 마귀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43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

유다 민족의 역경과 곤란은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심", "군축하심(따라잡음)" "살륙하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심"(44절)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밑보이면 이리도 불쌍히 된다. "열방 가운데서 진개(티끌)와 폐물"처럼 천대와 조롱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주 앞에 다시 서기 위해 필수과정으로 치뤄야 하는 죄값의 결과이다(45~46).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47절) - 극도의 재앙을 뜻함인데, 마음이 강퍅한 죄인들은 이같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회개치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인정사정 보지 않고 이토록 여지없이 벌하신 것은 사랑과 더불어 지켜져야만 하는 공의가 무엇인지를 인간종말을 살고 있는 세계교회에게 일깨워주시기 위함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고도 죄의 삯을 치르지 않는다면 - 죄 지은 인간을 하나님이 거저 용서하여 주신다면 - 하나님 역시 마귀 앞에 고소를 당하여 꼼짝 못하시게 된다. 하나님은 깡패가 아니시라 공의의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마귀가 하나님께 허락 받은  한도 내에서 참소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일지라도 무턱대고 편들기만을 행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불법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자녀가 다칠지라도 당신 입에서 나간 공법을 진실하게 집행할 의무가 하나님께는 있다.

이스라엘을 땅 위에서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이렇게 고난의 풀무에 던져 단련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
"인간 사랑"에 기인한다. 내 자식인 아담(사람)이 아무리 잘못하여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부모의 마음... 동시에 마귀를 따라가 죄를 범하는 불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심판주의 공의(公義)...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간자, 참소꾼, 훼방꾼인  마귀! 마귀는 인간 중 범죄치 않는 자가 하나도 없는 사실을 카메라에 찰칵 찍어 주님 앞에 가져오는 것이다. 죄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날마다 허우적대는 인간들.... 마귀 참소에 걸리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이 사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사실은 한없는 사랑이심과 동시에
'눈이 정결하시어 죄악를 참아보지 못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합 1:13)을 난감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는, 정확하게 집어내어 고소하는 마귀의 참소권에는 더욱 힘을 실어 주는 반면, 인간을 살리기 위해 변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누를 끼치기에 충분할 만한 패역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멋있는 분이신 것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를 빌미삼아 인간을 사망으로 몰아가려는 사단 마귀의 참소가 아무리 섬세하고 날카로울지라도 당신의 자녀를 건져낼 수 있는 가히 '하나님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신 사실에 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사랑이 우리의 부족과 그 부족을 공격하는 방해꾼의 참소 앞에 소멸될 정도라면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主)시며 야곱의 허물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니 또한번 할렐루야! (민 23:21).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으려 손을 뻗던 그 순간부터, 아니 뱀이 인간을 속이려고 하와에게 다가가던 그 순간부터 벌써 인간이 패할 것을 아시고 인간을 살릴 작정을 세워 놓으신 것이다(창 3:15,21. 신 21:23. 시 40:7, 22:1~21).

혹시 시기 질투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8:44)인 마귀의 참소에 걸려 오늘도 양심에서 들려오는 죄의식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워 보려고 무화과 잎사귀 따기에 여념이 없는 중생받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길 주 앞에 간구한다. 마귀의 올무로부터 범죄한 자녀를 살려 내시려는 아버지의 작정이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리를 몰라 물없는 샘인 율법(유대교), 또는 이방 종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 속하여 생수를 얻어보려고 애쓰는 수많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택자라면 "누구든지" 먼저 자신의 더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조용히 떠올리며 자신이 죄인임을 주 앞에 고백할 때, 죄 없는 그분이 죄인을 달아 죽이는 사형틀에서 비참하게 피흘려 죽어 간 그 사실에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택자라면 "성경 속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해 볼 때 그분의 선물(엡 2:8)이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 확실하다.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행위로는 선(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인데, 수 많은 이방 종교와 유대 교회는 행위로써 사람을 꽁꽁 묶어두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해방(구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에서 오는 선물이란 바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세계에 내려오시어 인간의 죄를 떠맡아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빌 2:5~8). 이제 한 이야기를 들어보라!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누린 한 남자가 있었다. 성공으로 인해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그는, 이제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카지노 노름이었다. 돈에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여유를 가진 그였지만(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아담은 왕이었고 부요했다), 더 크게 한 탕 잡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유혹해오는 노름에서의 승부욕은(창 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는 날...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의 영적 눈을 가리우고 정욕의 눈만 밝아지게 만들었다(창 3:6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한탕주의라는 이름의 선악과를 따 먹은 그에게! 이제 점점 심각한 상황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가 벌거벗은 거지와 같이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한 김에 손 닿는 대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보다가 결국 '사채'의 수렁에까지 발을 디디게 되었다(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사채'라는 수렁은 늪이 되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급기야 낯짝을 들고 가족을 볼 면목조차 생기지 않게 된 그는 하루 이틀씩 외박을 하게 되었고, 그의 죄의식은  그로 하여금 자꾸만 사람들을 피하여 숨고 싶게만 만들었다(창 3:8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 노름(선악과)은 한 푼 두 푼 아껴서 장만했던 집과 수십 년간 땀과 눈물로 이룩해 놓은 회사를 먹어 치워 버렸다(창 3:17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오손도손 다정했던 가족관계도 다 파괴되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고독과 쓸쓸함과 쇠약함과 질병과 언제 당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였다. 카지노에서 고용한 조폭들과 사채업자(마귀)는 떠나간 처와 자식에게까지 찾아가 윽박지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지만, 가장으로서 위협당하는 가족을 보호할 방도는 전혀 없었고...  '이제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살을 시도하려고 강가에 앉았다. 그러나 자살도 쉬운 게 아닌지 그는 공포를 잊어보려고 소주를 연거푸 두 병이나 들이부었다. 얼큰한 기운이 올라오자 그는 준비한 면도칼을 집어들어 자신의 동맥줄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영상이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사업 핑계로 그간 한 번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던 80 먹은  아버지의 얼굴..... "죽기 전에 아버지 얼굴이나 뵙고 죽자" ..... 이렇게 다짐한 그는 칼을 접어 넣고 아버지의 집 앞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앞에 도달하였으나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업성공으로 부요를 누릴 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불효가 양심을 짓누르고 있었다. "쓸 데 없는 불효자식, 얼른 죽지 뭐하러 이곳은 찾아 왔는고!" 이렇게 되뇌이며 홀딱 망한 모습으로 아비의 집 앞을 얼쩡거리는 모습이란..... 비참 그 자체였다(
눅 15:17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렇게 몇 시간을 떨다 지친 그는 혈관과 뇟속을 휘감는 알콜 기운에 휘말려 쓰러졌고, 차디 찬 밤이슬은 그의 온 몸을 적시었다.

새벽녘, 신문을 가지러 나오던 그의 아버지는 노숙자 차림의 거지가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뻘 되는 남자가 술에 골아 집에도 못 가고 남의 집 대문가에 추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이란... "쯧쯧쯧..." 아버지는 한심하기도 함과 동시에 나이나 허우대가 얼굴 본 지 오래된 아들뻘쯤 되는 것 같아 딱한 생각이 들어 깨워 따끈한 차나 한 잔 먹여 보낼까 하는 심정으로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드는 생각이..... '설마 아들 녀석일까?' ..... 왜 이런 생각이 나는건지..... 아들일 리 만무한데 말이다. '닮긴 매우 닮았는걸...' 하면서도 '아닐거라' 다짐하며 한걸음씩 다가가 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설 수록 저 가슴 밑이 뭉게져 녹아내리는 듯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렇다! 아비의 본능은 그가 아들임을 분별하고야 만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무조건 등에 업어 방으로 들여놓고 보았다(눅 15:20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비는 아랫목 아직 개지 않은 이불 밑으로 아들의 몸을 뉘이고 그의 몸을 녹여 주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아들은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시는 아버지 앞에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눅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노름에 손을 댄 것부터 시작하여 사채업자의 협박, 가정불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한 데 이르기까지, 아들은 가슴 속 모든 응어리를 아버지 앞에 털어놓았다. 이미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된 일인지를 어림잡아 짐작했던 아버지는 그 모든 이야기를 화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차분히 들어주셨다.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깊은 한 숨을 쉬신 후, "걱정할 것 없다" 하시며 종이를 하나 꺼내 와서는 무어라고 끄적끄적 쓰셨다. 그리고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어 손가락을 강제로 펴시고는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게 하셨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사채업자 '○○○'에게 대출받은 일금 '○○○'원 총액에 대하여 父 '○○○'는 子 '○○○'를 대신하여 일체의 채무를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 父 '○○○'와 子 '○○○' 양방은 ○○년 ○월○일 부로 위 내용이 사실임에 동의한다. 금일 이후로 사채업자 '○○○'와 子 '○○○' 간의 채무관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은 父 '○○○'에게 영구적으로 이양되며, 만일 채무 불이행으로 빚을 갚지 못할시 동반되는 형사적 처벌까지 父 '○○○'이 담당할 것을 명히 계약한다"

채권자 : 사채업자 ○○○ (마귀떼  印)
채무자 : 죄인괴수 ○○○ (아들딸  印)
연대보증자 : 무소불능 ○○○ (성삼위  印)

○○○○년 ○월 ○일

아버지는 당신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를 생각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볼 재미는 다 본 사람이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이 일은 내 소관대로 처리하게 맡겨 두어라. 이 일에 관하여는 일체 간섭치 말고 이제 너는 내가 네게 주는 이 돈을 가지고 가서 새 출발을 하여라. 애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더 이상 아들로 생각지 않겠다.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어여 가 가족들을 찾아 다시 일어나거라"

이와 같다. 한 번의 실수로 사채업자에게 완전히 발목을 잡혀 죽게 된 아들은, 죄로 인해 사탄에게 잡혀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 우리 인간이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버리고, 아들의 인생을 부활시키는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다. 그러나 이 비유적 이야기로 어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로 전달할 수 있으랴! 세상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빚을 갚거나 대신 형을 살아줄  순 있어도, 도박계를 청소할 수 있다거나 법망을 피해 이익을 챙기는 악독한 사채업자들을 처벌할 지혜도 권세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모든 죄짓게 하는 것과 불의의 처사와 악인을 아울러 심판해버릴 권세를 갖고 계신다.

   지금의 세상은 악인이 득세하고 거짓된 자가 흥황하여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듯 느껴지는 세상이다.
• 시 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시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은 여지 없이 시행되고야 말 것이다.
• 욥 8:22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 시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 시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塗抹)하셨나이다"
• 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 시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시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시 104:35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철없는 못된 아들이 슈퍼마켓(화려한 애굽, 바벨론 마귀세상)에서 좋은 물건(선악과)을 훔치다가 걸렸다 하자. 아들을 법대로 반드시 감방에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못된 슈퍼주인(마귀)에 대하여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이 행한 절도에 대한 처벌을 자신이 대신하여 받겠다 나선다. 혹여나 슈퍼 주인이 후에라도 아들을 해꼬지 못하도록 처벌받음과 동시에 물건값까지도 다 지불하겠다는 것! 지불하되 아들이 밖에 나가서나 학교생활에서라도 혹여나 슈퍼 주인의 소문 퍼뜨림을 인하여 고개숙이는 일이 없도록 두 배나 넘치게 철저히 갚아주시겠다는 것이다. 슈퍼 주인은 아버지의 희생적이고 깔끔한 일처리로 인하여 그 아들을 참소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것이 아들을 위한 아비의 사랑이다. 사단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넘치는 아비의 사랑...! 사탄이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요, 아비의 처벌도 아니다. 오로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을 아비로부터 떼어내려는 이간이다. 아들을 흑암(사망)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원하고도 원하던 사탄의 소망이겠지만, 두 배나 갚아 버리고 친히 형무소생활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완전한 아버지를 슈퍼주인(마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 사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 슥 9: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保障)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그러므로 참되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참아들)은 하나님(참부모)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감사하게 된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방 종교의 구원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가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서부터는 이방종교의 구원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 W.C.C.도 8차까지의 총회내용을 살펴볼 때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방종교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진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슈퍼(화려한 바벨론) 주인(사단)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을 건드릴 수조차 없는 것이어늘(롬 6:9,14, 8:2. 히 11:28)... 이 시대의 처녀(기독교) 딸 시온은 이방 사상을 따라감으로써 다시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있는 것이다.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오늘 예레미야 애가서와 계시록의 내용은 날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찬미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복음서와 편지서의 메시지를 통하여 2,000년간 온 세계에 전파된 내용이다. 지금은 천국복음으로 씨 뿌릴 때가 아니고 계시록과 예언서로 알곡을 추스려야 할 때인 것이 분명한 만큼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는 진리를 선포할 때인 것이다(계 5:9~10). 죄 지어 죽게 된 인간이 어짜피 죽을 목숨 주를 위해 살아드려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죄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시되 '해를 입은 한 여자'를 통하여 '철장 든 아들 144,000'명을 해산케 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귀한 면류관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들(예수)의 몸을 율법의 요구 앞에 내어주심으로써 기독교의 모든 구원이 끝난 것이라면, 오늘날 예레미야 애가서는 우리 앞에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애가서는 택함받은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므로 당하게 되는 성민(이스라엘)의 심판임을 기억하라(기독교 심판 = 미련한 다섯 처녀 = 한 달란트 받은 자 = 마 25장). '십자가의 도'는 거저 베풀어 주시고는 한없이 기다려 주시면서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영혼구원 얻어 자녀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은혜시대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로 값없이 부르시는 시기를 접으시며 구약 백성에게 행하시던 그 공의를 들고 찾아오시어 세상의 악을 제하실 때(교회를 심문하실 때)이므로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자세로는 심판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다. 생명을 주고 산 아들 곧 피로 산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차고 이방종교와 협상하며 무신론과 손잡으며 참 선지를 핍박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리 당신의 아들 딸일지라도 공의에 의해 다시 파멸시킬 수밖에 없다 하신다. 하나님의 '이 아픈 마음'이 오늘 예레미야의 마음을 통해 슬프게 다시 외쳐지고 있는 것은 누구를 위한 교훈인가? ....... 바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다니는 종말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훈이 아니겠는가!  


 
 48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

이 말씀은 선지자의 슬픔을 보여 주심이다. 백성은 저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벌을 받았으나 선지자는 자신을 (때리고 가두던) 그들의 이 비참한 처지를 보고 고소해하지도 통쾌히 여기지도 않는다. 눈물로써 슬퍼한다. 오늘날도 참 선지자라는 것은 교파, 교단을 초월하여 이렇게 죄인의 패망에 대하여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므로 울며(겔 9:4) 다시 예언하는 것이다(계 10:11). 그 눈물은 소망 없는 사람의 슬픔 같은 단순한 인정(人情)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는 하나의 애도(哀悼)인 것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아니 바로 당신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들로 울고 있는가? 아니면 예루살렘 성읍의 모든 죄악을 조장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을 의미하고 종말로 볼 때에는 천주교를 포함하여 십자가로 세운 모든 개신교 교파들을 의미한다.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한다" 함은 예루살렘 멸망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울 수밖에 없는 선지자의 고통을 말함이다. 계시록과 예언서를 꿀같이 먹은 자는 이 고통을 갖게 되며, 이 고통을 가진 자에게는 예언서와 계시록이 꿀 같은 양식이 된다.

 
 52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 53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

또 다시 선지자는 유다 민족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그 당한 참상을 표현하고 있다. 선지자는 자신이 "새가 사냥꾼에게 쫓김같이" 되었으며, 원수들이 그를 "구덩이에 넣고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이런 비참하고 긴박한 처지에 떨어질 때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후 1:8~9).

 

  6. 하나님의 구원과 적에 대한 보복을 구함 : 55~66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60 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 61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파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63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

선지자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선지자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써 기도한다.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55절).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때에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
"과거에 도와주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56절).
욥 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③ 하나님께서 일찍이
"두려워 말라"고 약속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57절). 바닷물이 마를 수 없음같이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생명을 속(贖)하셨기" 때문에...(58절).
⑤ 하나님의 선민이 죄 값으로 벌을 받은 것이지만
"원수에게 억울하게 된 슬픈 처지를 다 감찰하셨기" 때문에(59~63), 하나님께 매를 맞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가 다시 임하는 날이 오게 된다.


 64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65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66 진노로 저희를 군축(窘逐)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

본 절은 유다의 원수를 벌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저의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함", "그 마음을 강퍅케 하심", 그들을 "저주하심", 그들을 "따라 잡으심", 그들을 "천하에서 멸하심"이다.

단 5:24~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던 날 분벽에 하나님의 글자가 나타나 심판을 단행했다. 바벨론 심판은 하늘에서 정한 뜻이니 땅에서 이루어질 때 동방 바사 왕 고레스의 칼이 그날 밤 성문을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목베임을 당하므로 유다는 귀국했는데, 바로 약속된 70년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렘 25:10~11).

율법으로 거룩히 성별한 백성이 우상숭배와 탐심으로 흘러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할 때 무시무시한 심판을 당하여 70년을 잡혀갔다는 것은, 종말에 예수의 피로 산 교회가 애굽(세상복락)을 바라보고, 강대국(미국)을 의지하며, 이방종교를 수용하면 다시금 북방 바벨론(러시아) 손에 잡혀가 '후 3년 반'을 살게 될 것을 미리 고하신 것이다. 스룹바벨 제단에서 울며 외치는 다시 예언의 다림줄을 멸시치 말고 남은 4~5장의 말씀으로 크게 깨닫기를 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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