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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말자(골2:8-23)

운영자 2007.03.29 08:05 조회 수 : 1580 추천:199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말자

-골2:8-23-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생활이니 그리스도인이 그 위력을 상실할 때에 아무런 열매 없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이 있어야 한다.


 1. 인간 철학을 초월한 데서 충만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8-11)

 오늘날 기독교인의 큰 실패는 기독교 신앙 세계의 산 체험이 없이 인간 철학으로 신앙 세계를 움직여 보려는 것이다. 이것은 조갑지로 바닷물을 되려는 사람과 같으니 인본주의적인 철학에 노략을 당할까 주의할 것이며 인간의 초등 학문적인 철학적 세계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한 것을 체험하여야 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은 인간 철학으로는 감히 그 세계를 도달할 수 없고 육적의 몸을 벗어나서 신의 세계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는 단계로 들어가야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를 이루셨으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의 역사로 인격을 완전히 개조시키는 일이 있게 된다. 이렇게 되므로 철학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세계라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신학자라 하는 자들이 철학을 초월한 신의 세계의 충만을 체험치 못하고 철학적 세계에 노략을 당한 상태에서 신학을 연구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예를 들면 대학생을 앞에 놓고 강의할 사람이 소학교 학과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나 같다.


 2.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생활에서 율법을 초월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12-17)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가 되고 함께 일으킴을 받은 생활이다. ‘나’라는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니 율법을 따라서 행하는 역사가 아니고, 율법에 대한 죄의 세력을 완전히 도말 하고, 십자가의 승리로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받았으므로 그림자가 되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우리를 변론할 필요조차 없고, 율법과 율례를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받으므로써 그리스도의 생활의 위력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역사가 없이 신앙 생활을 한다면 이 사람은 아직까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아니요, 죄인의 생활이라고 본다. 과거에 죄를 진 인간들에게 몽학적인 교훈을 한 것이 율법과 계명이다. 우리는 죄인 된 인격을 그대로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죄인 된 인격은 장사한 바 되고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지배하므로 그 역사 아래서 살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육의 사람을 완전히 벗어나 영의 사람으로 움직일 때에 과거에 받지 못하던 하나님의 역사를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이라는 것을 체험하여야만 될 것이다.


 3. 일부러 겸손한 자에게 지배를 받지 않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18-19)

 소위 인간 도덕적 겸손이라는 것은 일부러 겸손하게 태도를 취하는데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일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이것에 끌린다면 아무런 상을 받을 수 없이 되므로 자동적으로 영적은 메말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항상 공급을 받아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로 나날이 자라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위력이라고 한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이 아니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 자라나게 하는 역사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생활의 위력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4. 사람의 명한 것과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20-23)

 어떤 사람이 의식이나 필요 없는 숭배나 모양을 내려는 방면으로 치우칠 때에 성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6:1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중심에서만 그 역사를 받게 될 때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이라는 것은 철학적이나 율례적이나 도덕적이나 인간의 어떤 숭배적인 것을 초월해야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