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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깨닫는 자의 열매 (마13:18-23)

운영자 2004.06.11 20:19 조회 수 : 1095 추천:168

http://www.headstone924.net/07_receive_JESUS/reception/theGospel/matthew/matt_13_18_23.htm

 

깨닫는 자의 열매


- 마 13:18~23 -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피조물된 인간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데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깨닫는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받는 일이 없이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니, 그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이제 깨닫는 자의 열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감정적으로 각오한 자의 생활 (20-21)

감정적인 사람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에는 감정으로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할 때에 자기의 인격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하고, 좋게 된다는 그 말만을 감정적으로 받는 자의 생활은 뿌리 없는 꽃과 같다. 땅에서 자라는 꽃과, 병에 꽂힌 꽃이 같은 시간에 아름답게 피었다 하여도 꽃병에 꽂힌 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잠깐 후에는 시들어 버릴 것이다.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린 씨와 같은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에 끌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돌밭에 뿌린 씨는 비가 올 때에는 그 수분을 흡수하여 싹이 나서 자랄 수 있지만 위에서 오는 수분이 없는 가뭄이 올 때에는 그 땅 자체에 수분이 없으므로 말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때 그 때에 부딪히는 환경에 따르고 어떤 사람의 힘에 끌리는 인격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감정에 끌리는 피동적인 인격에서 일생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2. 유혹에 끌리는 자의 생활 (22)

유혹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생활을 하는 자이다.

첫째 : 보는 일에 있어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끌리는 대로 생활하는 자이며,
둘째 : 먹는 일에 있어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끌리는 대로 생활하는 자이며,
셋째 : 육적 정욕에 끌려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대로 생활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보는 대로, 먹는 대로, 육의 정욕이 발생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유혹에 끌린 자의 생활이다. 이런 자의 생활은 아무런 주관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가시덤불에 뿌린 씨는 자라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자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말씀을 믿으면서도 말씀을 통하여 오는 역사를 받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과 그 마음 사이에 유혹의 역사가 가리워있는 증거이니, 이러한 자는 자유로이 활동을 하지를 못하게 된다.

 

  3. 깨닫는 대로 열매를 맺는 자의 생활 (23)

이 사람은 깨닫는 자체가 인격적인 체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되므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서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구분을 지을 수 있다. 정신 작용으로 깨닫는 일도 있고, 기술적인 방면으로 깨닫는 일도 있고, 영적 체험으로 깨닫는 일도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적 체험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깨달음이라는 것은 정신 작용이나 인간의 노력을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체험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자력에 국한된 세계에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게 되는 데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말씀대로 체험하는 인격을 가지는 동시에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생활에 들어갈 때에 초인간적인 열매를 맺으므로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이 열매로만 최고로 발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 작용이나 인간 노력에 국한된 생활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없고, 오직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으므로 만족한 생활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바로 깨닫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은 완전한 열매를 맺은 사람으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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