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스룹바벨선교회

문서설교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 (엡 4:25~32)

운영자 2010.05.21 13:01 조회 수 : 4885 추천:871

extra_vars1  
extra_vars3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

- 엡 4:25~32 -


  서 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교제적인 생활이 있으므로 구속의 날까지 교회는 활동하는 동시에 승리를 이루는 열매 있는 성도가 될 것이다. 성도는 독립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의 한 가지가 독립할 수 없고, 몸의 지체의 한 부분이 독립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교제적인 인연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시아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썼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이냐 하는데 대하여 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참된 것을 말하여야 된다 (25)

만일 우리 성도가 성도를 속인다는 것은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도의 교제는 어떤 물질이나 또는 사업적인 것에 국한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양심적인 교제니 참이라는 것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2. 분을 내어도 해지도록 품지 말 것 (26)

우리는 신이 아니요, 사람이니 만큼 혹 감정 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을 오래 품고 있을 때 성도의 교제를 깨지게 하는 마귀는 틈을 타는 것이다. 무엇이나 우리 성도의 목적은 서로 합심해서 마귀와 싸워 이기라는 것을 목적한 것이니 이해를 막론하고 서로 오해를 풀고 속히 합심되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성도의 교제는 마귀에게 파탄을 당할 것이다.
 

  3. 손으로 수고하는 일 (28)

우리는 서로 수고하는 봉사 없이 성도의 교제는 있을 수가 없다. 만일 어떤 신자가 자기는 일하지 않고 형제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된 정신을 떠났다고 보게 된다. 우리는 천국에 보물을 쌓아 두고 생활하는 정신에서 각자가 노력하며 남을 돕고자 하는 정신에서 형제의 교제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4.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할 것 (29)

우리는 말할 때에 성도의 위신을 세워 주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다. 만일 형제에게 누명을 씌우는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면 정신병자가 자기 몸을 망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형제에게 은혜가 되도록 해보려는 목적 밑에서 말하는 것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5. 성신을 근심케 말 것 (30)

성도의 교제란 성령을 통해서 영적으로 되는 교제니 아무리 서로 육적으로는 친분이 있게 나가도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성도적인 영적 교제는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육에 속한 교제가 아니요, 성령에 속한 교제이니 성령을 근심케 하는 자와 사귀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6. 서로 불쌍히 보고 용서해 주는 것이다 (32)

예를 들면 어느 지체가 괴로울 때 그것 하나를 위하여 온 몸이 고통을 당하게 될 때 전력을 다하여 그 지체의 괴롭게 하는 것을 없애 보려고 하는 것이 지체된 자의 자동적인 행동이다. 이와 같이 어떤 형제가 죄를 짓고 괴로워 할 때에 불쌍히 보고 서로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교제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완전한 몸이 없이 싸울 수도 없고 완전한 몸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도의 지체적인 완전 교제 없이 교회에 들어오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또는 목적지가 되는 새 시대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니 성도의 교제적인 생활로 이루어진 교제는 신령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새일성가 40장 (2022년 5월 15일) 2022.05.15 259 0
공지 1975년도의 승리 2007.02.23 11015 1038
공지 기도 생활에 있어야 될 원칙 2006.12.07 6763 1093
공지 70년 회복 : 스가랴 1장의 성취 2004.12.02 7571 1240
공지 7교회, 7인, 7나팔, 7대접 2005.02.14 8652 1219
151 에돔에 관한 상고 2005.06.18 5212 980
150 야곱이 받은 축복 (창 28:10~22) 2011.04.20 4904 758
149 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눅 1:26~33) 2006.05.11 4913 766
148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 (미 4:1∼3 2011.06.08 4643 593
147 야곱의 도(道) 2007.02.16 6359 1155
146 알곡으로 이루어지는 다윗 왕국 2011.01.16 4450 780
145 안정처에 대하여 (사33:20) 2004.09.13 5893 1077
144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사 51:1∼3) 2011.07.19 5934 999
143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 (시 8:1∼9) 2011.05.22 4643 708
142 아름답게 하는 역사 (사 4:2~6) 2011.05.04 4531 807
141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사40:9-11) 2005.01.06 5047 986
140 아라랏 산에 걸린 방주와 감람나무 새순 (창 8:1∼19) 2011.04.20 4937 842
139 아들의 영화와 아버지의 영화 (요 17:1∼7) 2011.04.24 4638 806
138 아담의 가정의 종교 싸움 (창 4:1∼12) 2011.04.23 4646 737
137 아는 것을 예배할 때가 이름(요 4:1~26) 2006.10.27 4898 916
136 실상은 부요한 자가 되자 (계 2:8∼11) 2011.04.18 4816 768
135 신앙의 복된 가정 (창 18:1∼33) 2011.04.14 4909 777
134 신앙 노선의 차이점 (마 2:1-13) 2010.10.30 4645 839
133 시험이 올 때 인정받는 자가 되자 (약 1:12∼18 2011.04.15 4616 797
132 시험을 통해 오는 온전(약 1:1~4) 2006.09.11 4897 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