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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설교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사 59:14∼21)

운영자 2011.04.01 20:22 조회 수 : 4192 추천: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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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zion924.com/09_dataRoom/LeeLewaeJa/GoodTidings/GoodTidings_71_03_ser_isa59_14_21.htm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 사 59:14∼21 -


이사야 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護心鏡)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루어 놓았지만 사람이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므로 범죄를 하게 되어 타락했지만, 다시 그 영광을 주고자 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40:5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이 이루어진 시대가 은혜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강권 역사이다 (14∼18)

 

강권 역사가 없이는 원수를 갚는 날에 영광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부패될 것을 말했다(14∼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날에 하나도 쓸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하였다. 이것은 강권을 뜻한 것이다. 택한 자를 강권으로 붙들어서 쓰시되 하나님의 의로써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이 날을 원수 갚는 날이라고 했다. 강권 역사에 대해서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 택한 자를 들어 쓰되 여호와의 도구로 쓰는 일,

  둘째 : 열심을 주되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

  셋째 :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완전 개조를 시켜서 남은 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수를 갚는 날이니 만큼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므로 아담의 가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로부터 이날까지 순교자의 피 값을 갚는 일이니 만큼 그들의 기도가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계 6:10과 같이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계 7:2∼3같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역사를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급할 때에 강권으로 용사를 붙들어다가 싸우게 하듯이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는 종말의 역사는 강권이 없이 안 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강권으로 역사할 때에 쓰여지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원수에게 억울하게 쓰러져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 쓰여지는 종은 원수를 짓밟고 나가기 때문이다(사 41:25).

 

 

  2. 해 돋는 편에 나타날 영광 (19)

 

금일에 서방에서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그 영광에 도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동방 사람은 서방의 문명을 받아들여 그 지도를 받고 있다. 심지어 풍속까지라도 서방 풍속을 받아들일 때에 동방의 예의까지라도 서방의 풍속에 물들고 보니 이것이 동방 셈의 민족의 영광이라고 볼 수가 없다. 또는 소위 공산주의라는 침략적 정책이 동방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다 점령하고 가장 아름다운 산까지도 메말라 붉은 산이 된 남한만 남았다는 것은 현재로 보아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이 나라에서 출생하여 57년 생활에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첫째 : 고아의 쓰라린 생활 15년

둘째 : 일본 제국주의 정치 아래서 압박을 받던 생활,  공산 정치 아래 무서운 박해를 받던 생활

셋째 : 6·25 동란의 피난민 생활

넷째 : 깊은 영계의 생활에서 심령적으로 쓰라린 영적 전쟁에서 군대 마귀와 싸우는 영계, 대장 마귀와 싸우는 영계, 붉은 용과 싸우는 영계에서

 

억울한 말을 많이 듣는 피해를 당하게 된 금일에 1971년 새 봄을 맞이하는 입춘 절기를 맞이하여 간곡히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 나라에 나타나 세계를 깨우치는 선지 국가가 될 것을 믿는 바이다.

 

 

  3. 성결한 자로 입에 말씀이 임하는 일 (20∼21)

 

이날까지 많은 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들은 다 완전 역사라는 것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날의 남은 종에게는 완전한 역사가 임할 것을 가르쳐서 죄과를 떠난 자라 하였고(사 59:20), 여호와의 신이 같이하는 자로 여호와의 말씀이 입에 있으므로 이것으로 영원한 새 시대를 이룬다고 했다. 이날까지에 모든 선지는 영광스러운 일이 두 번 있을 것을 말할 때에

 

첫째는 갈릴리 해변을 가르쳐 말했고

둘째는  해 돋는 편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동방 땅 끝에 있는 우리를 가르친 말씀이다.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부족한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같이 해서 얼마든지 받아서 기록하는 대로 내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일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왜냐 하면 내가 연구한다는 것은 조금도 영광이 못되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나려 수많은 책자가 내 입을 통하여 계속으로 나릴 때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에 한 자 글도 쓸 수 없이 되기 때문이다.

 

언약의 말씀이 묵시로 나타난 나라(육적 이스라엘)는 적군에게 먹힘을 당해서 이날까지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지만, 그 묵시의 말씀이 햇빛같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그 나라(대한민국)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나라라고 이사야 60장에 가르쳤으니 역사상 큰 영광은 해 돋는 편에서 원수를 갚는 날에 나타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인간들이 영광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하나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원수를 갚는 날에 큰 화가 될 것'을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흑암으로 본다. 정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물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심지어 교회라 하면서 까지도 교권을 잡으려고 한다면 부패된 세상에 원수 갚는 일이 심판으로 오게 될 때에 (그 영광이 오히려 심판당할 조건이 되는 것이니) 영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원수를 갚는 날에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에게만 본문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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