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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언론계 한겨레, 북한 핵무장 은근슬쩍 찬성하는 논리

운영자 2005.03.15 05:42 조회 수 : 2973 추천: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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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씨는 <오마이뉴스> 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께 드리는 공개편지'에서 북한은 핵무장으로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고, 때문에 '북이 오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정욱식씨의 글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북한의 붕괴나 정권교체는 미국의 일관된 전략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는 미국의 일관된 대북정책이다. 분단 이후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대북전략은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따라서 이것은 부시 정부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다. 만약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가 신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라면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발생한 2차례의 한반도 전쟁위기-93·94년, 98·99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클린턴 정부는 90년대 말까지 '북한붕괴론'에 매달려 집요하게 북한을 압박했다. 집권 마지막 해인 2000년까지 경수로 건설의 20%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중유공급을 제외하곤 북미기본합의를 대부분 이행하지 않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온 것은 98년 8월 북한의 광명성 1호 발사 이후의 일이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클린턴 정부는 윌리엄 페리가 이끄는 '북한정책 검토팀'을 구성하고, 페리는 99년 9월 대북정책지침서라 할 수 있는 페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99년 말 워싱턴과 베를린에서 북미대화가 재개되었고 이는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뮤니케'의 채택으로 이어져 북미관계 정상화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만약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지 않았다면 클린턴 정부 역시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를 지속적으로 추구했을 것이다.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는 북한의 핵무장과는 무관하며, 누가 집권하건 미국의 일관된 대북정책이었다. 대화냐, 대결이냐는 북미간의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되었지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이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았다.


북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지 않았다면?

정욱식씨는 '부시 행정부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왜곡하면서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본질이고, 미국의 생리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건 없건 미국은 '정보를 왜곡'해서라도 자신들의 정치, 군사적 목표를 실현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가 실현될 때까지 결코 대북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방어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이라크처럼 북한을 공격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북의 붕괴나 정권 교체를 유도'하고 있었다. 북한은 미국이 '북의 붕괴나 정권교체를 유도'하려 하기 때문에 핵무장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북한 핵무장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원인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북한 핵무장의 원인이다. 북한은 이미 80년대 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1980년 7월부터 5MWe 원자로 설계에 착수하여 86년 10월 5MWe 원자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95년과 96년 완공 목표로 2기의 대용량 원자로 건설을 추진하였다.

북한의 핵능력이 증대되자 88년 말 미국은 북미대화를 재개하였고, 북한의 동시사찰론에 밀려 91년 말 한반도에서 전술핵무기 철수를 선언하고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은 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협정에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93년 집권한 클린턴 정부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력을 강화하자 북한과 미국은 위기와 대화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94년 6월 전쟁직전 상황에서 극적인 합의로 북미기본합의를 채택했으며 북한은 모든 핵시설을 동결하였다.

그 후 96·97년에 다시 위기가 왔다. 이 해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압력이 최고조에 이른 해다. 생존을 위해 북한에는 핵무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제네바합의와 미국의 선의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핵동결을 유지하였다. 이것은 핵무장이 북한의 목표가 아니라 미국의 체제보장이 북한의 목표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북한 핵무장의 원인

핵위기의 '악순환'은 여기서 종결되는 듯했지만 새로 당선된 부시 정부는 지난 10여 년 간의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상황을 원점으로 회귀시켰다. 백악관의 신보주주의자들은 9·11사건을 계기로 2002년 핵선제공격전략을 채택하고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였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9월 '부시 독트린' 혹은 '럼스펠드 독트린'로 불리는 선제공격전략을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였고 이때부터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2003년 2월에는 노무현 정부에 제한적 북폭 의사를 타진하기도 하였다.

2003년 3월부터 한미연합전시증원·독수리 훈련을 통합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시작되었고, 8월에는 을지포커스 렌즈 훈련을 실전훈련으로 전환하여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2004년에는 휴전선 인근에서 미 해병대 8000여명이 참가한 '프리덤 배너 04'가 진행되기도 했다. 또 미국은 작전계획 5026, 5027, 5028, 5029, 5030 등 선제공격 시나리오를 연일 쏟아놓으며 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다. 부시 정권은 막후에서 북한침공계획을 추진하면서 2002년 10월 북한과 첫 대좌를 갖는다.

당시 켈리는 '고농축우라늄방식 핵개발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하였고,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탄도탄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주변국에 대한 위협, 테러 지원, 북한 주민에 대한 비참한 처우 등과 같은 현안에 대해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꾼다면'이라는 단서를 대화의 전제로 달았다. 켈리의 강압적인 요구에 강석주 부상은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맞받아 쳤다.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하였다며 2002년 12월분 대북중유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였다. 미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94년 합의는 완전히 파기되었다. 결국 한반도 핵문제는 원점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북미기본합의가 파기된 조건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요구대로 무장해제를 하고 굴복하든지 아니면 핵무장으로 자국의 안보문제를 해결하든지 둘 중 하나뿐이다. 적대국가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무장해제는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만약 북한이 무장해제를 선택하였다면 이라크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재연되었을 것이다.


부시 정권의 등장, 원점으로 돌아가다

북미기본합의가 파기되자 결국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2월 영변핵시설 재가동, 3월초 폐연료봉 교체작업 시작, 6월말 폐연료봉 교체작업 완료까지 핵공정을 진척하며 매 단계마다 이를 미국에 통보해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였다. 2003년 4월말 베이징 회담, 8월말 1차 6자 회담이 개최되었지만 미국은 일방적인 무장해체만을 거듭 주장하며 회담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다. 결국 대화와 협상을 위한 노력이 무산되자 북한은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억제력 강화'를 선언하고 2003년 10월 20일 플루토늄의 용도변경 작업이 성과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선언하였다.

북한은 12월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이 동시행동 일괄타결 방식에 합의한다면 '핵무기를 더 만들지 않으며 시험도 하지 않고 이전도 하지 않으며 평화적 핵동력 공업까지 멈춰세우는 동결'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핵무기 보유를 시사하였다. 북한이 '핵억제력 보유'를 거듭 천명하자 미국은 비공식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였다. 로스 알라모스 국립핵연구소 전 소장 핵커 등 미국의 핵물리학자들은 2004년 1월 6일부터 10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영변의 핵시설을 참관하였다.

북한은 미국 인사들에게 자신의 핵억제력을 공개함으로써 핵보유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루이스 교수 일행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잭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는 자신은 1월 8일 영변에서 '8천 개의 연료봉이 모두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며 지난 1년 동안 북한의 '핵 비축량은 4배가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확인되자 2004년 2월 미국은 다시 2차 6자 회담에 나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이 임박해지자 마지못해 회담장에 나왔지만, 협상할 준비도, 의지도, 대안도 없었다. 또다시 회담은 공회전되었고 참가국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 갔다.

결국 미국은 참가국들의 여론에 밀려 2004년 6월 3차 6자 회담에서 '말 대 말'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 뒤엎고 말았다. 3차례의 6자 회담 과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6자 회담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북한은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부시 2기의 출범을 지켜봤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은 올해 1월 방북했던 미 의원단에게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가라고 선언했다. 웰던 상원의원은 이 같은 사실을 부시 행정부에 전달했지만 오히려 신임 라이스 국무장관은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으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갔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역시 국정연설에서 대북발언 수위를 낮추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결국 북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핵무장선언이라는 수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4차례 이상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지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것을 거부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핵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패권정책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미국의 '악의적인 무시'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정욱식씨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를 압박'하는 동시에, '대미 억제력의 확보도 염두'에 두는 '양면 전략'을 취해왔지만 북한의 전략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욱식씨의 전망과는 다르게 북한의 대미 전략은 이미 성공하고 있다. 2002년 하반기부터 북미관계가 크게 악화되면서 거의 매달 전쟁위기설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금지선'을 넘어 '임계점'에 도달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한반도 전쟁 위기를 논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장선언 직후인 지난 2월 1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른 상황'이라면서 북핵문제를 '우방 및 동맹국들과 협의해 공동으로 대처'해나갈 때라고 말했다.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함에 따라 미국은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수단이 확보되기 전까지 군사적 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욱식씨는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북을 붕괴시킬 수 있는 군사적·비군사적 수단을 차곡차곡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것은 북한의 핵무장 이후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감소하였다는 점을 인정한 부분이다.

이것만으로도 북한으로서는 커다란 성공이다. 미국이 '악의적인 무시'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의 군사적 카드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북한이 핵무장으로 얻어낸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성과다. 다음 문제는 미국의 '악의적인 무시'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정욱식씨는 '미국은 북한이 핵 물질과 기술을 외부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해 이를 봉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억제할 수 있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실보다 득이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금지선'을 유지할 수 있는가다. 정욱식씨의 분석처럼 미국의 '봉쇄와 억제' 전략 중 억제전략은 일시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봉쇄는 문제가 다르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핵 물질과 기술을 외부로 이전'하려 한다면 과연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제2의 쿠바 위기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악의적인 무시' 전략을 지속할 수 없다. 북한과 협상을 하든지, 전면전을 하든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2기의 대용량 원자로는 2005년 중 완공이 가능하다. 늦어도 2006년부터 북한은 연간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장거리미사일시험을 재개할 경우 2005년을 고비로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게 되며, 미국의 비확산 정책은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될 것이다. 정욱식씨는 부시 행정부가 '위협을 필요로 하는 정권'이라고 했지만, 부시 행정부가 필요로 하는 위협은 '실질적 위협'이 아니라 제압이 가능한 '가상의 위협'일 뿐이다.

만약 북한이 '실질적 위협'으로 등장하여 미국의 비확산 정책을 위협한다면 상황은 지금과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의 '악의적인 무시' 전략이 성공하려면 더이상의 상황악화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군비경쟁 문제도 북한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부담이 크다. 정욱식씨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실질적인 대미 억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면서 '이러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첨단 기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엄청난 돈'과 '오랜 시간'은 개발 초기 단계의 부담일 뿐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분야에서 모두 초기 개발단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추가 비용부담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핵억제력의 보유로 재래식 군비감축이 가능해 60년대부터 대폭 증가한 군비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구나 방어를 목적으로 한 북한의 핵능력이 선제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과 '대칭적 균형'을 이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초과학적 선제공격 수단-MD, 지하관통소형핵무기 등-을 개발해야 하는 미국에 비해 비용 면에서 오히려 부담이 적다.

미국의 첨단무기 개발계획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반면 성공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때문에 오히려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미국의 늪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더라도 성공가능성은 미지수다. 현재 북한 경제의 최대 약점은 에너지와 식량문제다. 그러나 2기 대용량 원자로가 완공되면 북한은 연간 약 1000MWt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 정도의 전력이면 에너지 문제를 대체로 해결할 수 있다. 식량 문제도 대체로 위기 상황은 넘어선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90년대 말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토지개조사업이 완결되면 근본적인 타개가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라도 95~97년의 '고난의 행군'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최악의 위기상황을 견뎌낸 북한 체제가 그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봉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경제적 취약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더라도 큰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미국은 소련이 대륙간 탄도탄 실험에 성공한 이후 소련과 대화를 시작하였고, 64·67년 중국이 핵과 수폭 실험에 성공한 이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 결국 대만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1979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전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은 대화의 명분이 마련되는 시점에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정욱식씨는 핵무장으로 북한이 군비경쟁의 '악순환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북한의 핵무장 외에 위기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안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리비아식 해법 또는 이라크 방식을 따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한반도를 더 큰 위협으로 몰아넣는 무책임한 주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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