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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북한의 테러 행각과 미래(일본월간지 정론)

운영자 2004.03.14 08:01 조회 수 : 950 추천: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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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테러 행각과 미래(일본월간지 정론)
 


"테러 주모자" 김일성·김정일의 죄상과 다가오는 비상사태

일본월간지 『정론』 2002년 3월호

박 갑 동(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상임의장)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했을 때, 세계의 이목은 오사마 빈라덴에 집중됐다. 격앙된 부시 대통령은 단호히 테러의 근절을 선언하였으며, 테러 지원국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무력공격을 단행했다. 빈라덴이 관여된 것으로 생각되는 미국에 대한 테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 1993년 2월에 이미 발생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지하 주차장이 아랍의 테러로 폭파되어 6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했다.

• 1995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아드에 있는 국가경비훈련센터에서 트럭 폭탄이 폭발되어 미군 병사 5명을 포함한 7명이 사망했고, 미국인 34명을 포함한 60명이 부상했다.

• 1996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하란 근교에 있는 킹 압돌 아지스 공군기지내의 미공군시설에서, 트럭폭탄이 폭발하여 미군병사 19명이 사망하고, 약 400명이 부상했다.

• 1998년 10월, 케냐와 탄자니아에 있는 미국대사관이 동시테러를 당해, 2백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 2000년 10월, 예멘의 아덴항에서 미해군 구축함에 자폭보트가 격돌하여, 미군병사 17명이 사망했고 39인이 부상했다.

만일 클린턴 정권이, 이러한 반미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 빈라덴 일파와 지원국가·단체에 대한 철저한 추적을 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굴욕적인 테러를 당하고 있다. 빈라덴 등 이슬람 원리주의 그룹으로부터 도발을 받기 수십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미국은 북한의 김일성 도당으로부터 굴욕적인 테러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 1968년 1월, 미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나포되어 승무원 1명이 살해되었고, 다른 승무원은 포로가 되었다. 포로는 후에 석방되었지만, 함선은 지금도 억류되어 반미의 구경거리로 되어 있다.

• 1969년 4월, EC121 미정찰기가 격추되어, 31명이 사망했다.

• 1969년 7월, 비무장지대 남쪽 경계선에서 미군병사 4명이 살해되었다.

• 1976년 8월, 38도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하고, 경비병 8명에 중상을 입혔다.

• 1978년 9월, 대구시에 있는 미문화원에 북한스파이가 시한폭탄을 설치하여 폭파했다.

• 1995년 5월에는 전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를 북한으로 파견했다. 그는, 「북한은 붕괴되지 않는다. 안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소련도, 루마니아의 챠우세스크도 「붕괴된다」고 말해서 붕괴된 것인가.

• 2001년, 부시 정권이 시동될 때까지의 미국 당국의 김정일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인권 대통령이라 불리는 카터 전대통령은 김일성과는 술잔을 주고받았고, 동맹국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이상한 것은 미국이나 국제연합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미얀마 등의 국가에 대해서는, 인권문제를 운운하고 있지만,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해서는 인권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국제연합도 마찬가지다. 나는 비엔나와 방콕에서 열린 국제연합의 인권회의에 두 번 출석한 적이 있는데,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의제로도 되어 있지 않았다. 부시 정권이 되고부터 처음으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번의 동시다발 테러에 대해서 부시 대통령은, 「특정의 테러리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의 모든 테러 조직과 지원국에 대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김일성·김정일 세습정권은, 국가적 정책으로써 사활을 걸고 미국과 그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을 노리고 있다.

김일성은 만주의 마적의 부하에서 중국공산당의 게릴라 고용병, 소련정보부의 고용병이 되었다.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하자 괴뢰로 되어, 서른세살이 되던 때에 21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왔다. 그 때는, 소련군 소좌의 군복을 입은 위험분자였다.  

국내에는 한 사람의 동지도 없고, 독립전쟁도 하지 않은 자가 조선공산당을 탈취하여, 간부들을 차례 차례로 암살하고,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후원으로 1946년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제공산주의 특공대원으로서 북한을 "혁명기지"라 칭했다.

그들의 "혁명기지"란, 바로 "테러기지"이다. 김일성으로부터 교육 훈련을 받은 오사마 빈라덴의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 조직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의용병을 받아들여서 훈련시키는 장소를 "기지(알카에다)"라 칭한 것도 김일성을 쏙 빼닮았다.

1959년, 재일조선인을 귀국시키기 시작하여, 일본으로부터 공짜로 외화가 대량으로 호주머니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미국본토에 테러를 도발하려는 발상을 시작한 것은, 1964년부터로서 실제로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테러분자들을 북한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혹은 테러 교관들을 각국으로 파견하여 훈련시키기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였다.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남침전쟁을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에 그의 꿈은 실패했다. 그래서 김일성은 미국을 궁극의 적으로 간주했다. 반미반제 국제전선을 구축하여, 반미공동행동추진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술을 1964년 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로부터 미제국주의를 구축해서 민족해방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혁명력량이 단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북조선의 혁명력량이고, 둘째로는 남조선의 혁명력량이며, 셋째로는 국제적 혁명력량이다. 국제적 혁명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혁명력량의 연대성을 강화하고, 미제국주의를 고립시켜 그 침략정책을 파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문에 제국주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투쟁을 하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그들과 단결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쩨로는 우리들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세계의 모든 인민과 단결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들의 반미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68년 1월의 당군사위원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위전과 함께 후방종심에 제2전선을 형성하여 배후를 쳐야한다. … 이번의 푸에블로호 사건을 보면 미국놈들은, 죽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는 비겁한 자들이다. 미군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전쟁이 의외로 빨리 종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68년 11월, 과학원 함흥분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으로부터 미국놈들을 내쫓지 않으면 안 되는데, 놈들은 절대로 조용히 철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젠가는 놈들과 한 번 더 싸울 각오를 가지고 전쟁준비를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단계에서 전쟁준비를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긴급한 것은 미국 본토에 타격을 줄 수단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전쟁 역사에는 수백, 수천건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지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이 없고, 그 모든 전쟁이 타 지역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 본토에는 포탄 한발도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러했던 미국 본토가 포탄의 세례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에는 상황이 바뀐다. 미국내에서는 반전 운동이 일어날 터이고, 거기에 제3세계 등의 반미 공동 행동이 가세한다면, 결국, 미국은 남조선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지들은 하루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우리들이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일조선인의 귀국 사업이 시작된 1959년, 김일성은 소련과 원자력에 관한 협정을 맺고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1968년 10월 8일, 체 게바라 전사 1주기를 맞이하여,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인민단결기구의 기관지 「스리콘티넨탈」 8호에는 이런 글이 있다.

「… 혁명적인 인민들이 함께 달려들어 미제가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모든 곳에서 미국의 왼팔과 오른팔을 잘라내며, 왼쪽다리와 오른쪽다리를 잘라내고 마지막으로는 머리를 잘라 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미제국주의자가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세계의 혁명적 인민들이 달려들어 수족을 잘라 내버리면, 미제국주의는 힘을 쓸 수가 없으며, 결국은 뻗어버리고 말 것이다…. 작은 나라들이 달려들어 미제국주의의 머리와 다리를 각각 절단함으로 보복해야 한다.」


북한과 제3세계의 위험한 관계

김일성 부자는 이와 같은 세계 전략(미국의 팔과 다리, 머리를 잘라내는)에 따라, 노동당과 인민무력부에 해외 공작 기구를 설치했다. 제3세계의 테러 요원들을 북한에 데려가서 교육 훈련시키고, 또는 테러 교관들을 이들 나라들에 파견하여 교육 훈련을 시켰다. 동시에 무기와 마약의 밀매까지 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테러분자의 교육훈련에 대하여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제3국의 테러분자들의 교육훈련장소는, 평양시 삼석구역에 있는 15개소의 특별초대소, 그리고 평안남도 강동군 문흥리의 15개소의 특별초대소이다. 특별초대소란 북한 국민도 접근 할 수 없는 특별 훈련 병영 즉 캠프인 것이다.

교육 훈련 기간은 단기는 3개월부터 6개월, 장기는 18개월이다. 교육 내용은 미제의 팔, 다리, 머리를 각개로 잘라내는 기술과 전술. 비합법 침투, 잠복, 게릴라 활동, 대적투쟁전술, 통신술, 살인폭파술, 기동훈련 등이다.

1966년부터 김일성이 죽은 94년까지 북한으로 초빙하여 교육 훈련을 시킨 인원수는 5,800여명이다.

대상이된 국가 내지 반국가단체들은 멕시코, 브라질, 페루, 칠레, 볼리비아, 우루과이, 과테말라,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알제리, 수단, 리비아, 남예멘, 케냐, 콩고, 차드, 우간다, 중앙아프리카, 앙골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인민동맹(케냐), ELF(에티오피아), 소말리아, 팔레스티나, 자이레, 타이, 포리사리오, 쿠바, 엘살바도르, 구라타나, 적도 키니아 등 40여 개에 달하는 국가 및 단체 등이다.

북한의 특수부대 및 테러 교관 파견 상황에 대하여, 각 연도의 사안을 아래에 열거한다.

• 1966년도
시리아    제3차 중동 전쟁 때에 1500명 파견.(조종사 25명 포함)
가나 군사 쿠데타 당시 다수파견

• 1967년도
베트남 2개 비행 연대 파견. 2001년 8월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 김영남이 베트남 방문시, 그는 전사한 북한병사 묘에 참배하고 있다.

• 1970년도
시리아 전차병 200명. 조종사 53명. 미사일 요원 140명 파견.

• 1971년도
브라질 폴토·아레구레 게릴라 기지 설치. 게릴라 교관 13명 파견.
칠레 산체코에 게릴라 훈련소 설치. 게릴라 교관 파견.

• 1972년도
베트남 심리전 교란 요원 다수파견.
남예멘 게릴라 교관 20명 파견.

• 1973년도
팔레스티나 게릴라 교관 70명 파견.
캄보디아 군사 교관 50명 파견.
이집트 미사일 요원 30명. 조종사 및 정비사 50명 파견.
아르헨티나 사파에 게릴라 기지 설치. 게릴라 교관 파견.

• 1974년도
이집트  테러 교관 5명 파견.

• 1975년도
자이레  군사 교관 125명 파견.
시리아  공군 교관 75명 파견.

• 1976년도
알제리아 게릴라 교관 파견.
레바논 레바논 내전에 특공대 파견.
가이아나 게릴라교관 파견 800명 양성. 볼리비아, 우루과이, 콜롬비아에 침투.
로데이지아 흑인 게릴라 훈련 지도.

• 1977년도
토 고 게릴라 교관 50명 파견.
라오스 게릴라 특공대 파견.
페루 테러 조종 지도 교관 파견.
에티오피아 군사 교관 파견. 민병 훈련.
리비아 군사 교관 파견.

• 1978년도
탄자니아 타보라에 군사 혁명 학교 설립하고, 게릴라 양성.
페루 게릴라 교관 파견.

• 1979년도
인도 반군 게릴라에 교관 파견하여 4명 체포됨.

• 1980년도
이란 군사 교관 파견.
알제리아 게릴라 교관 파견. 인민 해방 전선 훈련 지도.
파키스탄 전차 교관 15명 파견.

• 1981년도
니카라과 게릴라 교관 50명 파견.

• 1982년도
레바논 게릴라 교관 300명 파견.
PLO 및 이슬람교 지역에서 12000명 게릴라 양성.
이란 군사 교관 90명 파견.

• 1983년도
짐바브웨 게릴라 교관 130명 파견.

• 1984년∼86년도    
팔레스티나 게릴라·살인 테러 훈련 교관 75명 파견.
시리아 군사 교관 50명 파견.

• 1987년∼89년도
볼리비아 게릴라·살인 테러 훈련 교관 40명 파견.

• 1989년∼91년도
키네비사와 군사 교관 48명 파견.
수단 군사 교관 60명 파견.
베닌 군사 교관 20명 파견.

• 1990년도
시리아 군사 교관 30명 파견.

■ 자금원조에 대해서

• 1966년도
베네수엘라 전국 해방무장군에 5만 달러 지원.

1969년도
케냐 정부 전복 활동 자금 지원.

1970년도
브라질 해방 혁명 투쟁대에 5만 달러 지원.

1971년
인도 공산당 총선거 자금 150만 달러 지원.
스리랑카 반정부 게릴라에게 자금 원조로 북한 대사관 강제 철거.

1973년도
볼리비아 좌파 세력에 28만 달러 지원.
파라과이 좌파의 보스 로하스에게 18만 달러 지원.
우루과이 사회당 좌파에 34만 달러 지원.
아르헨티나 인민 해방군 등 2개의 좌익 단체에 70만 달러 지원.

1979년도
팔레스티나 PLO게릴라에게 10만 달러 지원.

■ 무기지원에 대해서

1969년도
차드 반란군 지도자 알바시·타쿠에 다량의 무기 제공.
이집트 대공포 100문 제공.

1970년도
파키스탄 소총, 탄약 3500만 달러 지원.

1971년도
파키스탄 중포 30문, 포탄 3500만 톤 지원.
에티오피아 엔토리아게리라(분리 독립파)에 무기 제공.
스리랑카 반정부 게릴라에게 무기 제공.

1973년도
쿠멜 크메르 루주군에 75mm포100문 지원.

1975년도
자이레 콩고 내란의 때, 어뢰 정3 척, 소총 280정, 탄약, 고사포 지원.
T72형 탱크 30대 제공.
나이 비어 인민 단결 기구에 무기 지원.

1976년
시리아 미그 조종사 40명 파견.
북 예멘 대전차포 50문, 자동 소총 2000정 지원.

1977년도
카본 AK소총 60정, 경기관총 52정, 대공기관총 2500정, 박격포8문 제공.

1978년도
시리아 무반동 총포, 대공포 300문 지원.

1979년도
파키스탄 130mm포 20문, 포탄 15,000발 제공.

1980년도
이란 전차, 대전차 유도탄 제공.

1983년도
가이아나 무기 및 탄약 6000 톤 제공.
이란 이란:이라크전쟁 발발시, 8억 달러 상당 무기 지원.

1984년∼87년도
팔레스티나 AK자동 소총 3200정, 탄약 20톤
이라크 고사 기관총 800 문, 방사 포200 문.
카나 AK 자동 소총 1000정, 탄약 4톤

1988년∼92년
파키스탄 고사 기관포 450문, 포탄 30톤.
시리아 각종 폭탄 20톤.

2000년도
필리핀 대공 병기와 포탄 제공.

■ 미사일에 대해서

1985년∼1999년도
리비아와 이라크 등 중동 여러 나라에 600기 판매.

■ 생물·화학무기에 대해서

6000톤 보유, 세계에서 제3번째 보유국

이상과 같이 김일성은 미국본토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 위해서, 전세계적 범위에서 테러 요원을 양성하고, 무기나 자금을 제공하여왔다.

북한과 아랍 반미주의자들의 결부

2001년 4월에 미국 국무성이 발행한 보고서 「패턴·오브·글로벌·테러리즘 1999」에도, 「북한이 오사마 빈라덴과 그의 네트워크와 유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명기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오사마 빈라덴은 이미 20대에 북한의 테러 교관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북한과 아랍 반미주의자들과의 결부는 비밀이 아니다. 예를 들면, 뉴욕 거주의 저널리스트 다바다 마미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것이 보도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의 화평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던 95년, 나는 PLO 아라파트 의장과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취재는 오후 1시로 약속되어 있었습니다만, 저녁때까지 4시간 정도 기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여기자가 신기했던 것일까, 무장한 팔레스티나의 위병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서투른 아라비아어로 응하니까, 한 위병이 『조선어를 할 줄 아는가』고 물었습니다.

나는 한국의 연세대학에 유학한 경험이 있었기에, 한국어로 말을 하니 그들은 나의 한국어보다도 어려운 용어를 알고 있는데 놀랐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당신들은 한국에서 공부하였는가 하고 물으니, 『아니다. 북조선에서 공부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위병들이 재미있다고 웃으면서 몇 사람이 모여들어, 전원이 유창한 조선어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 전에 공동의 군사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파견되어, 1년 남짓 평양과 그 근교의 군사 시설에 체재하면서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중동 주재가 오랜 저널리스트도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자선단체에 소속된 의사 로베르트 폴로첸(Norbert Vollertsen)씨는 1999년 여름부터 2000년 말까지 북한에서 의료활동에 종사했는데, 나는 2001년 10월, 동경에서 그와 만났습니다. 그는, 평양시내의 특별지구에 있는 외국인 전용 맨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하 좌우의 방은 모두 아랍인으로 보이는데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출신국은 리비아, 예멘, 팔레스티나, 이라크, 수단, 이란 등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의 출신국의 대다수가 미국이 지정한 테러 지원국이었습니다.

그들 아랍계 군인들은 입국할 때부터, 국빈급의 대우를 받고, 북한에 도착하면 특별한 세레모니로 영접을 받게 됩니다. 경호도 특별하여, 국내의 이동도 전용차로 했습니다. 군 시설에도 들어갈 수 있고, 시설내에도 전용 숙박소가 있는 듯 했습니다 라고」

아라파트의 측근이 북한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조선어를 유창하게 말한다는 것은, 아라파트와 김일성이 보통 사이가 아닌 관계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라파트는 때때로 김일성을 방문해서 동지적 관계를 다졌다. 1990년 5월 10일, 아라파트 자신이 PLO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여 환영연석에서 한 말이 1990년 5월 11일자 노동신문에 다음과 같이 게재돼어 있다.  

「우리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고, 세계 제국주의와 그들의 앞잡이들에 반대해서 같은 전호에서 싸우는 전우인 투사이기 때문에, 큰 위협과 곤난한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타개하여 공동투쟁을 계속하기 위한 최량의 방법과 방도를 고안하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하여 전투적인 귀국을 방문한 것이다」

김일성 - 아라파트 - 후세인 - 빈라덴은 대미테러의 계열이다.

북한의 공군 사령관 조명록은, 30 수년 전부터, 반미전쟁을 목표로 미국의 함선과 서울의 중추부에 대한 자폭 돌격 특별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그 공적으로 현재 국방 위원회 제일부위원장이 되었다. 9월 11일의 미국 중추 동시 테러는 조명록의 발상 전술이며, 북한의 테러 교육 과정에 따른 실습이었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의 맹방 러시아와 왕래해 왔던 옴진리교가 1993년, 도쿄에서 지하철 사린 테러를 감행하였다. 소련 체제가 붕괴된 후, 북한은 러시아에서 바이오와 케미컬 무기의 제조 기술을 어렵지 않게 입수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 옴진리교는 황궁의 상공에 사린을 뿌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일본적인  발상이 아니다.

한국에 대한 테러 사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5년 후, 1950년은 세계적으로 평화로운 해였다. 그런데 이 해 6월 25일, 돌연히 김일성은 38도선(이것은 한반도에 있어서 미국과 소련이 설정한 국제적 평화 유지선이었다)을 침범하여 남침 전쟁을 도발한 것이었다. 이것이 한국에 대한 테러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 후, 아래와 같은 테러라든가 사건들이 계속되어 왔다.

• 1958년 2월   KNA 민간 항공기 납치 사건.

• 1965년 4월   미그 전투기2기 미국의 RB-47 정찰기 공격 사건.

• 1968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31명의 무장 특공대 서울시내 침입,
대통령 관저 기습 미수 사건. 동년 10월 울진, 삼척에 130명의 게릴  라 침투 사건.

• 1969년 3월   주문진에 무장 간첩 침입하여, 경찰 1명 살해.

• 동년 6월   서해안 흑산도 무장 간첩 침입 사건, 15명 살해.

• 동년 7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미군 병사 4명 살해.

• 동년 12월  KAL YS-11 여객기 납치 사건, 승객과 승무원 51명 납치.    

• 1970년 6월   한국의 포정 나포, 승무원 20명 납치.
동년 동월  국립 묘지로 참배하는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현충문 위에 폭발물 설치중 조작 실패로 오발하여 테러리스트 1명 폭사, 2명 도주.

• 1974년 2월   어선「수원32호, 33호」격침 및 납치 사건, 어부 30명 억류.

• 동년 8월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빗나가 대통령 부인 살해당함.

• 동년 11월  남침용 터널 발견

• 1976년 6월   간첩 3명이 비무장지대 남쪽에 침입, 3명 사살됨.

• 동년년 8월   제3 신진호 납치 사건.

• 1978년 2월   영화 배우 최은희, 영화 감독 신상옥 부부 납치 사건.

• 동년 11월  무장 간첩 민간인 5명 살해.

• 1979년 10월  비무장 지대 침투 간첩 3명중 1명 사살.

• 1980년 1월  어선 해왕6·7호 납치 사건.

• 동년 3월   한강으로부터 침투 한 간첩 3명 사살.

• 동년 11월  전라남도 횡간도 무장 간첩 3명 사살 사건.

• 동년 12월  경상남도 해안에서 간첩 3명 사살.

• 1981년 6월   충청남도 해안에 간첩선 침투 사건, 9명 사살, 1명 체포.

• 1983년 6월  임진강으로부터 문산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 간첩 3명을 사살. 1100  여점의 간첩 장비품을 압수

• 동년 10월  미얀마의 랭군 아웅산묘 폭파테러 사건. 전두환 대통령 폭살 목적이  었지만, 전 대통령은 모면하고, 17명의 고위관리 폭사. 이 사건으로 미얀마는 북한과 외교 관계 단절.

• 1985년 10월  간첩선 부산 근해 침투 한 것을 격침함.

• 1986년 9월 김포공항 폭탄 테러 사건, 15명 사망, 30명 이상 부상.

• 1987년 1월 서해상에서 제27 동진호 납치, 12명 납치.

• 동년 8월 미국 MIT대학 유학생 이채환 유럽 여행중 납치. 북에서 사망.

• 동년 10월 서해상에서 제31 동진호 격침당함.

• 동년 11월 KAL858기 공중 폭파 사건. 승객 및 승무원 115명 전원 사망.
범인 김현희는, 서울올림픽 방해를 위해서였다고 자백.

• 1989년 1월 제37, 38 태양호 납치 사건.

• 1992년 5월 무장 간첩 3명 남침하는 것을 DMZ내에서 사살.

• 1994년 3월 전 남조선로동당 중앙간부 박갑동(본인)을 암살하기 위해 이복헌을  서울로 파견하여 체포당함

• 1995년 5월 북한 군함  한국 어선에 발포 3명 사망.

• 동년 10월 임진강에서 경기도 파주 지역으로 침투 한 무장 간첩 1명 사살하고,   M16소총 등 67종 564점의 간첩 장비 몰수.

• 1996년 9월 강원도 강릉에 북의 잠수정과 무장병 침투 사건.

• 동년 10월 러시아의 우라지브스토크에서 한국의 영사 암살 사건.

• 1997년 2월 북한에서의 귀순자 이한영이 서울에서 북의 공작원에게 살해됨.

• 1998년 6월 북한의 소형 잠수정 속초시 근해에서 남쪽의 그물에 걸려 발견.

• 동년 12월 남해안에 침투한 북한의 고속 반잠수정 1척과 교전 격침.

일본에 대한 테러 및 불법행위

현재 일본 국내에는 남북 조선인 합쳐서 약 68만6000명이 있다. 그 가운데 36%인 24만7000명이 친북한의 재일조선총연합계인데, 그 중 약 5만6000명이 조직에 가맹하고 있다. 조선총연합은 지금까지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에 충성을 서약하고 불법행위를 한 일이 있기 때문에, 현재도 파괴활동방지법에 의한 감시 지정 단체로 되어 있다. 조선총련은 지금까지 다액의 송금을 하여 북한의 국가재정을 뒷밭침해 왔다 한다. 성실한 조선총련 동포들에게는 성가신 일일 것이다.

북한의 대일공작 활동을 일본 당국이 알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전쟁도발 1년전인 1949년 8월부터였다. 일본 관헌은 1950년 9월 9일, 북한의 허길송 소좌를 체포했다. 이것이 제1차 북한 스파이 사건이다. 허길송은 징역 10년, 벌금 5000달러의 중형에 처해졌다.

1953년 9월 제2차 북한 스파이 사건. 김일곡, 징역 1년. 그 외 7명 구속.

1955년 6월 제3차 스파이 사건. 범인 한재덕(중앙 통신사 사장)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4년.  

북한의 대일 첩보 활동에서, 일본 관헌에 검거된 건수는 44건에 달한다. 스파이 사건 외에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7건의 10명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납치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테러 행위이며, 인권 문제이다.

1993년 5월, 일본의 노도반도 외해에 대하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그 후도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일본 영토 너머로 태평양에 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1970년 3월, 일본의 항공기 요도호를 공중납치하여 북한으로 간 적군파의 문제인 것 같다. 북한은 국제법상, 당연히 공중납치 범인들을 추방해야 되는데도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어, 반일, 반미운동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2000년 3월, 북한에 대하여 「요도호 공중납치범들에게 더이상 피난처를 제공해 주지말고 추방하라」고 요구하였다. 북한은 이에  거부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1950년 6월, 조선전쟁 도발이래,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하여 무수한 불법 테러 행위를 범하여 온 것은, 내가 열거한 바와 같이 분명하다. 누가 보아도 틀림없이 테러 당사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일본도 한국도 김정일 정권을 테러국이라 말하지 않는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 일부러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친우로서 악수를 하여, 「김정일 장군은 견식이 있는 지도자」라고 세계에 소개했다.

미국의 클린턴 정권은 대미 테러 전쟁의 직접 사령관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고 차수인 조명록을 수도에 초청하였으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김정일의 소굴에 파견하여 악수를시켰다. 일본은 자국민이 10명이나 북한에 납치돼 있고, 하이잭 범을 몇 십년이나 보호하고 있는 북한에, 여당의 간사장, 정부의 관방 장관을 지낼 정도의 유력 정치가가 일곱 번이나 방문했다. 뿐 아니라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쌀을 95년에 50만 톤, 97년에 60만7000톤, 2000년에 60만 톤 합쳐서 170만7천 톤을 공짜로 지원했다. 이것으로는 테러 국가 지원국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북한은 언제 어떻게 나올까.

김정일은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으로 하여금 베를린에서 북한에 대하여 경제 원조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다. 6월 13일 평양으로 불러서 두 사람만이 차내에서 무엇을 약속했는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부시 미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견식이 있는 지도자」라고 말하자, 부시 대통령은 「나는 김정일을 신용하지 않는다. 포괄적 검증을 해야한다」며 가로막았다.

부시 대통령에게 거부당함은 물론 국내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일방적으로 뇌물을 갖다바칠 뿐이라는 여론이다. 반대급부가 없다. 김정일의 요구에 의하여 국가보안법까지도 없애려고 한다는 여론의 반발을 초래하여, 지난 10월 25일의 국회의원의 보궐선거에서 완패를 당하였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사당이나 다름없는 여당의 총재까지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레임덕은 너무 빨리 시작되었다.

김정일은 빈라덴의 미국 중추 동시 테러로 해서, 대미 교섭도 대일 교섭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맹방으로 믿었던 러시아도 중국도 모두 반테러로 미국과 동조하고 있다. 목숨을 부지할 길이 없다. 12월 9일 노동신문은 「… 부시 정권의 새로운 군사전략의 기본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조선반도이다. … 최근 미국의 호전세력은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폭언마저 숨김없이 하고 있다. 그들의 실력행사란 즉 군사적 선제공격, 전쟁을 의미한다. … 조선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우리들은 방어에 있어서도, 공격에 있어서도 준비는 모두 되어 있다. 우리들의 타격력과 타격권에는 제한은 없다」며 선제공격을 암시하고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 반테러의 전쟁을 하고 있을 때인 작년 12월 21일, 로케트포로 무장한, 일본에서 말하는 "불심선", 즉 북한 공작선이 아마미오-시마의 근해에 나타났다. 일본의 해상보안청의 함선이 찾아 나가서 22일 교전한 결과, 북한의 공작선은 침몰하고, 승조원들은 바다에 표류하면서도 구조를 구하지 않고 전원이 죽음을 선택했다. 자폭해서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 북한테러의 특징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조선 중앙통신은

「… 침몰한 국적불명의 선박이 "북의 스파이 선"일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여론을 퍼뜨리는 일본 반동의 반공화국 적대시정책이 초래한 것이 지금의 하나의 중대한 도발이라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 타국의 해역을 침범해서 행한 일본의 범죄행위는 국제법도 모르는 일본사무라이 집단에 의한 불법적인 해적행위이며, 용서받기 어려운 현대판 테러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일본을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이들에는 쌀을 얼마를 증정한다 해도 대화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다. 2002년 원단의 정례 노동신문·조선인민군·청년전위 등 3개지 공동사설(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신년사도 발표하지 않고 3개지로 대변시키고 있다)의 특징(작년도에는 없었던 것)은,

(1) 북한을 주적(가상적국)으로 하는 주적론의 철회,

(2) 국가보안법의 철폐,

(3) 남한으로부터의 침략군(주한미군)을 즉시 철수할 것」

그리고 또 「반테러의 명목 밑에 감행되고 있는 미제와 남조선 호전분자들의 반공화국, 반통일 책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긴장상태가 격화되고 있다. …

새 전쟁의 위험이 날로 커가고 있는 정세하에서는 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 제국주의 침략자에 대한 인민군대의 입장은 단호하며, 우리 총대는 무자비하다. 만약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감히 불질을 한다면 덤벼드는 침략자들은 무주고혼이 될 것이며, 적들의 침략적 아성은 지구상 그 어디에 있건 무사치 못할 것이다.」라며 더이상 평화도 통일도 안중에 없으며 섬멸 뿐이라며 허세를 부리고 있다.  

마지막 간두에 선 김정일은 언제나 이러한 허세를 부려서 한국과 일본을 위협해왔다. 이 이상의 허세는 없으므로 그도 역시 최후의 단계에 선 것 같다.

2002년 말,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종료와 함께 김정일의 종말도 가까워오고 있다. 김대중은 대통령을 그만두더라도 신변에 위험은 없겠지만, 김정일은 다르다. 부모대로부터의 전쟁도발, 테러, 인민학살, 기아의 지옥 등 갖가지 죄악으로 세계적인 고립에 빠져있어서 도망갈 곳이 없다.

김정일은 악수를 한 우인인 김대중 대통령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상당한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추종자들을 늘였다고 해서 1950년의 조선전쟁과 같이 군대로서 기습하여 전쟁을 거는 일은 피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즉시 미군의 대반격을 받을 것이다. 북한에는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폭 테러리스트가 상당수 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일시에 수만, 수십만의 인명을 빼앗는 생물·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김정일의 수중에는 생화학 무기가 6000톤이나 있다고 한다. 하려고  생각한다면 서울이나 도쿄의 인구를 전멸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북한의 공작원이 지금에는 한국 출입이 자유자재이다. 요수년 이래, 한국도 일본도 북한 공작원을 체포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생물·화학 무기는 부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운반이 간단하다. 이미 한국과 일본의 어느 지하에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에서는 그와 같은 장소를 암호로, "우편함"이라 하는 것 같다. 김정일이 언제 결의할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월드컵 축구 개최 중일까, 혹은 12월 한국 대통령 선거 때일까. 그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전쟁은 그래도 발발하기 전에 긴장상태라든가, 무언가 위험한 분위기 같은 것이 있어서, 대처할 수가 있다. 그러나, 테러라는 것은 전혀 예기치 않은 때,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발생한다. 또 지금까지의 테러는 수단으로서 총기나 폭탄 등으로 어느 개인을 살해한다든지 혹은 건물을 폭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미국방성에 대한 동시 테러는, 지금까지의 테러와는 그 규모와 목적·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전쟁의 형태이다. 이것을 막는 데는 사전의 예방전쟁 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이름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대탈레반 보복의 공중폭격조차도 민주주의나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테러는 보복할 경우 제2의 테러가 발생한다」고 반대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테러분자를 방치해두어도 되는가. 그러나, 역사는 히틀러를 타도하면 제2의 히틀러가 아니라, 아데나우아가 출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작년 12월 6일, 노벨평화상 제정 100주년 기념집회에 출석해서 「빈부의 격차 해결없이는 21세기의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빈부의 격차, 즉 가난한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원한 또는 반항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독일의 히틀러는 체코나 폴란드보다 가난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인가.

1950년의 김일성은 이승만의 한국보다 가난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인가. 당시는 북한 경제는 남한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발전소와 비료공장은 북한에만 있었다. 김일성이 전력 공급선을 절단했기 때문에 당시 한국은 전력부족으로 수도 서울의 밤도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쟁과 테러의 책임을 빈부의 격차에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 빈라덴은 빈궁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김정일은 돈이 없어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인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기념집회에서의 발언은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빈부의 격차는 인간 생활의 숙명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소련공산당이 1당 독재와 수천만 명을 처형하면서 빈부격차를 없애려다가 실패하여, 도리어 해체되고 말았다. 공산 중국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과 한국은 현재,
김정일 공포증과 평화병에 걸려서 김정일에게의 GIVE Only로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확실히 아름답다. 분명히 화장한 미녀처럼 보인다. 평화헌법이, 화장한 미녀가 테러에 대해서, 도발에 대해서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진정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특히 일본국민이 자랑하는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서도 일본국민은 테러분자에 대해서, 불법적인 도전자들에 대해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하여,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질서에 공헌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폴포트 사망후, 캄보디아는 개방민주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 김정일정권만 타도 숙청되게 되면, 북한도 개방민주화가 되어 동북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가 구축되어 전쟁과 테러의 불안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김정일에 의해서, 한국과 일본의 중추부가 동시 기습공격을 당하여 수천만의 인명을 잃게 된다면, 아무리 강력하고 충실한 주일, 주한미군이 있다 해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비극이다. 더욱 비극인 것은, 테러리스트에게 쌀 같은 뇌물을 보내서, 그것으로 순간순간을 모면해보려고 하는 위정자들의 자세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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