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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北 “300만 명보다 더 아사했을 것”

운영자 2004.05.21 07:29 조회 수 : 1053 추천: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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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300만 명보다 더 아사했을 것”

1,000명 인구지역에서 1996년 5월 한달 동안 사망진단서 49장 발급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모습

1,000명 인구지역에서 1996년 5월 한달 동안 사망진단서 49장 발급

나는 북한에서 의사였다. 북한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남한에서도 그러하겠지만, 매우 존경받는 상층계급에 속한다.

남한내 탈북민이 4,500여 명에 이르고 있지만 직업이 의사였던 사람은 드물다. 그것이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나의 신상파악을 용이하게 할 것이고 아직 남아 있는 내 가족들을 추적하여 복수할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에 대한 개인적 신상과 북한내의 주변상황을 세세히 밝히지 못하는 것을 독자들은 용서하길 바란다. 북쪽에 남겨둔 나의 직계 가족들은 이미 죽음을 포함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내가 1996년에 탈북하였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때가 ‘고난의 행군’ 초기였는데 의사라는 좋은 직업으로 96년 정도도 버틸 여력이 없었느냐” 라는 질문을 한다. ‘고난의 행군‘이 1996년에 시작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당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대규모 기근상태를 넘기기 위해 96년을 행군의 시작이라고 선언한 시점일 뿐이고 인민은 그전부터 굶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그래도 발전되었다는 우리 지역도 김일성이 죽은 1994년 4월이 지나고 10월부터는 배급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김일성의 죽음이 경제 파탄의 직접적 이유라고 볼 수 없다. 북한은 훨씬 전부터 망해가고 있었는데 단적인 예로 함경도에서는 이미 1990년부터 배급이 없었다. 배급이 있었던 시기도 배급의 70%가 옥수수였고 쌀은 30% 정도 밖에 안 되었다.

북한에는 개인 개업의가 없으니 의사들도 정부에서 주는 월급과 배급에 의존하여야 한다.

하지만 월급도 배급도 사라졌다. 상황이 이러하니 의사들도 출근을 안 한다. 아니, 할 수 없다.

매주 ‘간부강연회’라는 것이 있는데 나 역시 간부였기에 불려 다녔다. 이 곳에서 상황의 심각함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역경의 시대를 이겨 내야 하기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고 강사들이 교육을 한다. 그러면서 식량 500만 t 생산계획을 설명하며 현재의 생산량을 숫자로 보여준다. 절대로 가망이 없는 숫자였다.

내가 96년까지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이 의사였기에 여권발급담당 관리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에 1년에 두어 번 드나들 수 있었다. 중국에 들어가 친척들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 온다. 그리고 여권을 발급해준 쪽에 한 몫을 떼어주고 먹고사는 것이다. 하지만 원조물량이 떨어지면 또다시 굶주릴 정도가 된다. 그러면 다시 들어 갔다와 몇 달을 먹고산다. 그런 와중에 집안 물건도 하나 하나 내다 판다.

대규모 탈북이 생기기 시작한 96년부터는 나 정도의 ‘연줄’로는 더 이상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었다. 북한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교통수단이라는 자전거도 내다 팔고 TV도 내다 판다. 나중에는 내 옷가지도 다 팔고 더 이상 내다 팔 것이 없어진다. 왕진이나 고위관리 특별 치료 등으로 생기는 것이 많은 의사였지만 ‘고난의 행군’ 초기라 불리는 96년에 북한이라는 곳에는 미래가 없고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사는 병원에서만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담당 구역 내 인민의 건강관리 책임을 맡는다. 그 말은 담당지역의 방역, 검진, 접종들을 담당한다는 말이다. 나는 5~6개 정도의 ‘인민반’을 맡고 있었다. 1개의 인민반에는 15~30여 가구가 있다. 1가구 당 5인 가족이라고 하면 1개 인민반에는 100~150여 명이 있고 나는 약 800~1,000여 명이 나의 담당 숫자였다.

‘담당 구역제’ 이다 보니 한 달에 몇 번씩 자기 구역을 돌아 다닌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영양 상태, 질병 그리고 사망 진단서 발급을 담당하는 나로서 그달에 몇 명이 죽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제 회진 시 별 문제가 없이 보이던 사람이 오늘 굶어 죽는다.

이렇게 죽음은 영양실조 상태에서 갑작스레 온다. 또한 영양실조는 다른 병을 악화시켜 사람을 죽게 한다. 예를 들어 북한에 만연하는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영양보충을 잘해야 하는데 굶게 되면 그냥 죽는다. 위염 등도 마찬가지이다. 거친 옥수수껍질은 위점막을 헐게 하고 그것도 못 먹으니 더욱 악화된다. 치료약이 없는 상태에서 나중에는 음식이 있어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러 죽게 된다.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못 믿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사실보다 오히려 더 적을 수 있다. 만약에 다른 질병과 관련해서 사망한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 수 있다고 본다. 남한의 사망률은 1년에 1,000명 당 5~6명이다. 이는 중진국 또는 선진국 수준이다.

북한의 사망률은 얼마나 될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는 의사로서 정확하게 기억하는 숫자가 있다. 내 담당지역, 즉 1,000여 명이 살고 있던 지역에서만 1996년 5월달에 정확히 나는 49건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하였다. 1년이 아니고 한 달 동안에 죽은 사람이 49명이라는 말이다.

5월은 북한에서는 겨울이 끝나는 시기이다. 겨울에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사망자가 속출한 것이다. 분주소(파출소)에서는 나의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공민증 삭제 등 사망건 대한 행정 처리를 하는데 내가 하도 자주오니 일이 많아져 나만 보면 질색을 하곤 하였다.

결혼을 할 희망, 아이를 낳을 희망, 집을 지을 희망 등이 꺼지고 내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기약도 할 수 없는 곳이 1996년 북한이었고 탈출만이 단하나 살길이었다.

정리/강인구 기자  ikktrue@

미래한국  2004-05-13 오후 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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