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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北 생체실험 증명문건 최초공개

운영자 2004.02.13 16:58 조회 수 : 906 추천: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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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생체실험 증명문건 최초공개
피랍탈북인권연대…생체실험 전에 작성하는 ´이관서´ 원본공개
2004-02-12 16:24:53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사람들이 화학무기 실험용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또 이 문건을 확보하기 위해 참여한 탈북자들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고, 이들중 한명이 태국 방콕시내에서 은둔하다 북한 요원들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폭행, 납치될 뻔한 일이 일어났었다고 한 탈북자 지원단체가 밝혔다.

- 도희윤 필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좌)과 탈북자 이재근씨가 북한이 정치범을 생체실험에 이용하기 전에 작성하는 일종의 신병 인도서인 ´이관서´를 공개하고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는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정치범들을 생체실험에 이용하기 전에 작성하는 일종의 신병 인도서인 ´이관서´를 공개했다.

이 이관서에는 최00(53)라는 이름과 최씨의 출생지, 거주지 등이 적혀 있으며, ´상기자를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일용2호에서 화학무기 액체가스 생체실험에 필요한 대상으로 상대기관인 비날론 연합기업소 보위부에 이관함´이라고 써있다. 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가보위부 22호 관리소라고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은 "이는 2002년 2월 13일 국가보위부 22호 관리소에 수용돼 있던 최씨를 생체실험을 위해 함흥에 위치한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에 이관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납북어부 출신인 이재근씨는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는 함흥에 있으며, 이관서에 적힌 ´연합기업소 일용2호´라는 게 의문이 든다"며 북한에서는 일용1호는 보통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이고, 일용2호는 그외 국가에서 요구하는 화학무기 등을 만드는 공장이라 이곳에서 생체실험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1985년 덕산 닭공장에서 닭 대신 공장에 서식한 쥐들이 사료를 더 많이 먹어 골치를 썩다가 김일성이 이승기 박사(일본 동경대 졸업한 화학전문회사 출신)에게 쥐가 먹으면 죽는 사료를 연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두달 뒤 공장에서 죽은 쥐들이 몇 트럭씩 실려나가는 것을 봤다"면서 "두달만에 이같은 사료도 만드는 데 생체실험도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도희윤 사무총장은 이관서 입수경위에 대해 "지난 2001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강성국(32)씨가 지난해 8월경 북한의 화학공장 엔지니어로 있던 아버지를 중국에서 만나 건네받은 것을 제3자를 통해 확보했다"고 말했다.

강씨의 아버지 강병섭(59)씨는 화학무기 생체실험이 진행된 화학공장의 엔니지어였으며, 우연히 초대형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속에서 정치범들을 상대로 화학무기 생체실험이 진행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수년에 걸쳐 이를 폭로하기를 기획하고는 이관서를 한 웅큼 집어 주머니에 넣고 공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정치범수용소인 국가보위부 22호 관리소에 수용돼 있던 최씨를 생체실험을 위해 함흥에 위치한 2.8 비날론 연합기업소에 이관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관서 원본.
도 사무총장은 "강씨가 빼낸 이관서는 모두 3장이나 2장은 오늘 런던서 기자회견이 있어 그쪽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나머지 하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것"이라며 "이 이관서는 보자기에 쌓여 있었고, 두만강을 건널 때 물에 젖어 글씨가 번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씨의 가족에 대해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은 작년 9월 북한을 탈출했으나 올해 1월 3일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공안에 체포돼 북송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도 사무총장은 "강씨는 현재 태국 방콕시내에 머물고 있는데, 지난 2월 3일 북한요원들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폭행 납치될 뻔인 일이 있었다"며 "국제사회에 북한의 정치범들이 생체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했던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지 못한 게 너무도 아쉽다"고 밝혔다.


다음은 피랍탈북인권연대가 밝힌 탈북자 강성국씨의 납치미수 사건 증언 전문이다.

나는 현재 북한 탈북자이자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최근에 나는 북한에서의 생체실험에 관한 서류 증거를 획득하는데 적극 개입하였다.

2004년 1월 25일에 나는 태국의 방콕에 있는 모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7시경에 나는 거리를 건너고 L자 모양의 좁은 길에 있는 코끼리라는 한국 식당근처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거리는 넓이가 약 4미터쯤 되었고, 그 시간에 약간 어둡고 횡량했다.

나는 호텔에서 약 400미터쯤 떨어져서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뒤에서 경적 소리를 들었고, 돌아보니 작고, 어두운 회색의 벤츠 차량이 나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고, 그 뒤에 있는 택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택시는 마침내 벤츠를 지나쳐서 떠났다.)

벤츠는 그리고 나서 나를 지나쳐서 Post Box 193이라고 적혀있는 문 위에 싸인이 있는 집 근처에 있는 내 앞 약 5미터쯤에서 멈췄다. 반대편에 있던 집에서 7/152&7/153이라는 표시가 있었고, Soi Rohit Suk Yek 3의 작은 교차로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두명의 젊은 남자가 차의 뒷문에서 내렸다. 그들은 회색정장을 입고 체격이 건장했고, 짧은 머리였고, 키는 약 175센치나 혹은 그보다 조금 적어보였다. 그들은 내 뒤에 있었고, 나의 팔 양쪽을 잡으려고 하면서 말했다. "너 강성국 맞지? 너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

그들의 한국어는 분명히 북한 억양이었지만, 남한의 억양을 흉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두려워서 나는 본능적으로 싸웠고, 그들을 뒤로 밀친 후 할수 있는 한 가장 빨리 앞으로 달려갔다.

차의 운전자(역시 짙은 정장과 체격건장하고 평범한 얼굴에 비슷한 키를 가진)는 그러나 매우 빨리 자동차에서 내렸고, 그리고 무술로 단련된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에게 날아가는 모션으로 강하게 날카로운 옆차기를 했다. 나는 근처의 집 벽 쪽으로 세게 밀려졌고, 나의 왼쪽 팔에 상처를 입었다. 겁에 질려서 나는 다시 힘을 모아 그가 나를 찰 때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땅에 아주 심하게 부쳤고, 나의 얼굴과 오른쪽 팔꿈치에 상처를 입었다. 그런 다음 나는 반대편에서 두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고, 나는 최대한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주도로 달려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2004년 2월2일 월요일에 방콕에 있는 나의 파트너를 만날 때까지 숨어있었다. 나의 파트너는 당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그 장소로 돌아와서, 지금까지의 모든 세부사항들을 적고, 나의 부상 부위의 사진을 찍고, 나를 진찰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Bumrungrad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진단서에서 나의 오른쪽 8번째 갈비뼈가 부러졌고, 3달의 치료기간이 필요하다고 확인해주었다. 나는 진단서와 나의 상처를 보여주는 사진을 나의 보고서를 뒷받침하기 위해 첨부하고 있다.

그런 공격이 일어났을 때가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을 몽타주로 그릴 수 있다. 나는 키가 176, 몸무게가 90,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공격과 납치를 시도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4000명의 북한 탈북자 중의 하나일 뿐인데 하필이면 왜 나인가?

나는 내가 왜 그들의 목표물이 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나의 호텔을 알아낼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의 호텔방에서 나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단지 내가 가지고 있다고 그들이 믿는 어떤 서류를 되돌려 받기위해 필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고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2004. 2. 3
태국 방콕에서 강성국

[이혜원 기자] hwlee@independen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