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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2004년 북한 신년 공동 사설 분석 (월간조선 2月)

운영자 2004.03.03 07:46 조회 수 : 865 추천: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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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북한 신년 공동 사설 분석
 
「수뇌부」표현 10회… 金正日의 후계자 확정 의미
 
● 북한이 신년사에서 10차례 언급한 「수뇌부」는 당 중앙위원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金正日의 후계자 1명을 지칭하고 있다. 북한이 金正日을 金日成의 후계자로 확정하고 나서 「당 중앙」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방식의 표현이다.
● 金正日의 후계자인 「수뇌부」가 김정철인지, 김정운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정 성 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경희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북한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경남大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한신大 강사 역임. 저서로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체제」, 「김정일 체제의 역량과 생존전략」(공저) 등이 있음.

후계구도 확정의 기미들
  

  2004년은 金正日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黨 중앙위원회에 들어가 黨 사업을 시작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며, 수령 金日成의 후계자로 결정되어 본격적으로 권력 장악에 나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金日成이 사망함으로써 명실상부한 金正日 시대가 개막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에는 정치 문제, 특히 북한 내부의 권력승계 문제가 비교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全黨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강령이 선포된 30돌이 되는 올해에 주체사상 교양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은 金正日 시대에 북한이 주체사상을 폐기하고 주체사상을 강성대국론이나 先軍사상으로 대체하였다는 국내 일부 연구자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보여 주는 것이다.
 
  全黨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강령을 선포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에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74년 金正日이 후계자로 결정된 직후에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강령을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이 강령의 선포는 사상 분야에서 후계자의 절대적 지위 확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黨 중앙委 전원회의나 정치국 회의를 개최 당시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례들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黨 중앙委 정치국 회의나 전원회의 소집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 회의들이 소집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은 金日成 死後 북한에서 黨 중앙委 정치국 회의가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金正日 선집」 13권은 1994년 10월16일 정치국 회의가 소집되었다고 밝히고 있고, 그 후에도 정치국 회의가 소집되었다는 정보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 가운데 현저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金正日의 후계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많은 부분이 은유적인 형태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북한에서 金正日의 후계자가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되었거나 올해에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이는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代를 이어」의 의미
 
  후계구도 확정의 첫 번째 징후는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충직하게 계승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金日成 동지의 위업을 代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다』라는 金正日의 지적을 인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에서 혁명위업을 「代를 이어」 계승해 나갈 것을 강조할 때, 「代를 이어」라는 표현이 단순히 「계속」이라는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은 역사가 입증한 사실이다. 金日成이 1970년대 초 『혁명위업을 「代를 이어」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직접 강조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후계자 지명이 이루어진 점을 상기한다면, 북한에서 이 표현이 결코 중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올해 신년 사설에서 조선노동당이 「수령」 金日成의 위업을 「代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金正日이 직접 지적한 것은, 당이 金正日뿐만 아니라 그의 후계자의 영도를 받아 金日成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좀더 주목을 끄는 두 번째 징후는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수뇌부」 또는 「혁명의 수뇌부」에 대해 전례 없이 강조하고 있으며, 「수뇌부」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金日成 사망 이후 발표된 신년 공동사설을 분석해 보면, 1995년과 1996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수뇌부」라는 표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1997년과 1999년에 두 차례 표현이 나타난 것을 제외하면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신년 공동사설에서 「수뇌부」라는 표현은 단 한 번 등장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사설에서는 「수뇌부」라는 표현이 10회나 나타났다.
 
  게다가 이 「수뇌부」라는 표현이 2003년 신년 공동사설까지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 주목된다. 2003년까지는 대체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맥락에서 「수뇌부」 또는 「혁명의 수뇌부」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영도 및 영도체계, 유일적 영도와 관련하여 주로 언급하는 부분에서 「혁명의 수뇌부」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1974년에 북한에서 金正日이 「수령의 후계자」로 결정되고 나서도 1980년경까지는 공개 문헌에서 金正日의 활동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에 일반적으로 당 중앙위원회를 의미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을 의인화시켜 사용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령 金日成 사망 이후 북한에서 「혁명의 수뇌부」라는 표현이 서서히 과거의 당 중앙위원회라는 표현을 대체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 첫 언급
 
  1960년대 후반부터 「金日成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 주위에 굳게 뭉칠 것을 주장한 것처럼, 「金正日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옹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1970년대의 「당 중앙」이라는 표현처럼 「수뇌부」라는 표현을 이중적 의미, 즉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수뇌부라는 의미와 최고지도자 및 최고지도자의 후계자에 국한시켜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은 『우리 혁명의 수뇌부는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한 올바른 지도사상과 전략 전술을 제시하고 당과 군대와 인민을 하나로 굳게 묶어 세워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는 先軍혁명의 위대한 향도자이며 천만군민의 심장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주체사상에 의하면 올바른 지도사상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수령」과 「수령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혁명의 수뇌부」가 金正日을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와 동일시된다고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신년 공동사설은 『우리의 先軍혁명대오 안에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 밑에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규률(규율)과 질서를 더욱 튼튼히 세우며 당 정책을 결사 관철하는 혁명적 기풍이 차 넘치게 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가 지금까지 북한 문헌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이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유일적 영도와 관련해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만을 이야기해 왔을 뿐이다.
 
  최고지도자의 무제한적 절대 권력을 보장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당 중앙위원회 또는 당 상층부의 집체적 지도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이는 지금까지 강조해 온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금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복수의 의미를 가지는 「수뇌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金正日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그의 후계자에 의한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이외의 다른 해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1970년대 권력승계 경험의 반복
 
  1972년 金日成이 환갑이 되었을 때 비록 그가 건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노동당 내에서 후계자 문제가 제기되었고, 金正日과 그의 삼촌 김영주 사이의 경쟁에서 金正日이 승리한 것은 북한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金正日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74년에 金日成의 후계자로 黨內에서 결정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金正日이 환갑이 된 2002년에 黨內에서 후계자 문제를 제기하고, 2004년에 후계자를 지명하는 순서를 밟게 될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후계 문제는 1970년대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金正日 은 청년시절 사랑하여 동거까지 하였던 사실상의 첫 부인인 성혜림이 사망한 직후인 2002년 8월에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발간한 대외비 자료에서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부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를 허용하였다.
 
  2002년 8월에 발간한 강연자료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충신 중의 충신이시다」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가장 몸 가까이에서 보좌해 드리시며 충성 다해 모셔 가는 존경하는 어머님은 항일전의 그날 어버이 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우리 혁명의 대를 굳건히 이어 놓으신 항일의 녀성 영웅 김정숙 동지와 꼭 같으신 분, 우리 모두가 따라 배워야 할 충신의 위대한 귀감이시다』라고 하면서 고영희에 대한 숭배를 조장했다(고영희 우상화를 시작한 이 자료는 2003년 3월호 月刊朝鮮에 의해 특종 보도됐다─편집자 注).
 
  이는 고영희와 金正日 총비서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 또는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조치이다.
 
  2003년 9월에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된 강연자료에서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는 믿음의 정치로 력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 내고 언제나 승리만을 떨치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다』라고 강조하면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先軍혁명령도를 총대로 충직하게 받드는 길에서 대를 이어 누려 가는 수령복, 어머님복을 더욱 빛내여 나가야 한다』고 끝을 맺음으로써 金正日과 고영희 사이의 아들에 의한 권력 승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였다.
 
  외부의 연구자로서 金正日의 후계자가 이미 결정되었는가를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올해 신년 공동사설은 『지난해에 혁명의 수뇌부를 핵으로 하는 일심단결과 우리 식의 국가정치체제가 더욱 억척같이 다져졌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북한 당 상층부에서 金正日의 후계자가 결정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金正男은 가능성 적어
 
 
 
  「혁명의 수뇌부」가 金正日과 그의 후계자를 통틀어 일컫는 표현이라면, 1974년에 金正日을 金日成의 후계자로 지명하고 나서 「당 중앙」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 점을 고려할 때 이미 작년에 북한에서 후계 문제가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金正日이 아직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지명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아들들 사이에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거나, 당 간부들이 金正日의 장남인 김정남이나 차남인 김정철에게 줄서기를 함으로써 당 간부들 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金正日의 후계자로는 그동안 국내에서 金正日의 장남인 김정남과 차남인 김정철이 주로 거론되어 왔다. 黃長燁 前 노동당 비서가 지적한 바와 같이, 金正日이 아들 대신 다른 인물 가운데 후계자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남은 만 32세(1971년생)이고, 김정철은 만 22세(1981년생)로 알려져 있다.
 
  金日成이 1974년에 金正日을 그의 후계자로 결정한 데에는 金正日이 그의 장남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탁월한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김정남 역시 뛰어난 정치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증언들이 많이 나왔다.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은 국내에서 출판된 「등나무집」이라는 책에서 『정남이는 예민하고 어려서부터 정치적이고 조숙하였다』고 술회했다. 성혜랑은 또한 『김정남은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빠르며, 어머니 성혜림의 예술적인 재능을 이어받아 사람을 잘 웃기는 쾌활한 남자』라고 했다.
 
  김정남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북풍사건」의 주인공 윤홍준은 김정남이 후계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주 똑똑하다고 평가하면서, 金正日처럼 말을 아주 빠르게 하고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윤홍준은 김정남의 말하는 스타일과 걸음걸이가 아버지 金正日을 빼다 박았다고 기억했다. 김정남과 접촉 경험이 있는 인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그가 金正日의 성격과 자질을 상당한 정도로 이어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남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정치적 감각, 나름대로의 인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모의 문제로 인하여 후계자로 지명되는 데 결정적인 흠을 가지고 있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은 1970년부터 金正日과 비밀리에 같이 살기 전에 소설 「땅」으로 유명한 월북작가 이기영(前 문예총 위원장, 1984년 사망)의 장남 이평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던 유부녀였다.
 
  유교적·보수적 문화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북한에서 성혜림을 「國母」로 내세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혜림은 金正日의 사랑을 많이 받기는 하였으나, 1973년부터 병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에 자주 체류하면서 金正日의 부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200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사망한 사실도 성혜림을 國母로 내세우는 데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혜림의 조카 이일남(이한영)과 언니 성혜랑 등이 남한 또는 외국으로 망명한 사실도 김정남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金正日이 북한 유도의 창시자인 고태문의 딸 고영희와 동거하면서 낳은 김정철이 金正日의 후계자로 유력하다. 김정철은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유학한 후 현재 노동당 선전부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성혜림처럼 國母로 내세우기에 치명적인 결격사유(이혼경력, 해외 거주 등)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金正日이 현재 누구보다 고영희를 사랑하고 있으며, 김정철이 태어나면서 金正日의 김정남에 대한 사랑이 김정철에게로 옮겨 갔다는 증언들이 많다.
 
  1989년경 김정남의 이모인 성혜랑은 『正日 비서가 이미 집에서 떠났고, 그토록 사랑하던 정남이마저 버리고 마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金正日이 김정남에 대한 「눈물의 애정」을 김정철을 비롯한 새 아이들에게 옮겼다』고 밝혔다.
 
  현재 북한의 상황에서 김정남은 庶長子에, 김정철은 적자에 비유될 수 있다. 과거 왕조시대의 역사를 보면 庶長子는 적자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사랑을 받으나, 적자가 태어나면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金正哲을 「총회장」으로 불러
 
  김정철이 태어나면서 金正日의 마음이 김정남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으므로, 김정남이 1997년부터 후계수업을 받아 왔다는 주장은 金正日의 김정남에 대한 배려를 과장 해석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對北 경협에 관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2002년 1월 필자에게 『金正日의 후계자는 김정철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면서 『김정철을 북한에서 「총회장」으로 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북한의 권력 엘리트 중에서 김정남을 지지하는 세력이 15% 정도에 불과하다면 김정철을 지지하는 세력은 약 85% 정도이며 그 세력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면서, 『빠르면(2002년을 기준으로 하여) 3년 후 늦어도 5년 후쯤이면 후계자가 공식화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최근에 와서는 김정철의 동생이자 金正日의 3남인 김정운(만 20세)이 후계자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김정철이 예술적 재능은 金正日을 닮았으나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金正日이 그에 대해 『그 녀석은 안 돼, 여자 같아』라고 얘기했다거나, 고영희가 자신의 둘째 아들인 김정운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黨과 軍 고위간부들로 하여금 그를 「샛별대장」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증언들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구체적 정보가 없기 때문에 「김정운 후계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신중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