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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문주의자의 창세기 비판

운영자 2004.03.05 15:09 조회 수 : 783 추천: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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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문주의자의 창세기 비판


창세기와 히브리 신화


-설화 문학으로서의 성서 읽기-


석동신 지음


머리말


신화 혹은 설화를 역사적 사실로 맹신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설화 문학의 보고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서 중 정사인《삼국사기》보다는 야사인《삼국유사》에 가까운 성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틴 지방을 유랑하던 유목민 시절부터 신정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왕국을 세웠으나 내부의 분열과 외세의 침략으로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유랑민이 되기까지의 그들의 역사를 윤리적 일신론의 사상 위에서 해석한 종교서로서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문학적 상징성으로 인해 인류의 고전이 된 지 수천 년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고 곧 구름을 타고 천군 천사와 함께 영광 속에 재림할 예수(마태 24:30-31, 테살 후 1:8-10)를 맞이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선교사가 되겠다(로마 11:25-27)는 엉뚱한 희망을 품고 나는 1980년 신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현재 상지대 총장으로 계시는 김찬국 교수님의 구약개론 강의를 들으면서 교회에서는 전혀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의 문헌 비평을 통해 사제 문서니, 야베 문서니 하는 말을 처음 들은 나는 약 6년간 무비판적으로 성경을 신의 무오한 거룩한 말씀으로 맹종했던 것에 크게 놀라면서, 성서에 깊은 회의가 드는 한편 "그 동안 내가 믿어 온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신약개론, 공관복음서 대조 연구, 예언서 연구, 교회사, 조직신학, 한국 문화와 기독교 등의 강좌를 들었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불트만의 비신화화론,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틸릭의 존재의 신학, 판넨베르크의 역사신학, 몰트만의 정치신학, 신 죽음의 신학, 오토의 대화의 신학,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등 실로 다양한 20세기의 신학 사조를 접하면서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신학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뭔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거나,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학 이외에 종교학, 철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마침내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모든 종교 및 그 사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심지어 신조차 인간이 인간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신이나 악마라든가,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면 바로 나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인데, 신은 바로 이 인간 정신을 표현하고 인간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도구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성서에 무수히 나오는 소위 신의 말씀은 어떤 저 세상에 존재하는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가공의 신의 입을 빌어 말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신의 말씀 혹은 신의 계시 운운 하는 사람은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 놓고 자신의 생각과 말을 신격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신이나 종교를 그저 심심풀이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삶과 역사의 위기의 순간마다, 즉 삶에서 어떤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한계 상황에 부닥쳤을 때, 역사에서 미래의 전망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 우주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부딪혔을 때, 인간적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구원과 해방의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그 해답으로, 다시 말해 그 해답의 체계로 종교와 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해답의 체계로서의 종교가 과연 기존의 모든 세계관이 붕괴해 버린 현대에도 아직 유효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인식은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도 지내지 않았던 내가 다시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동양의 고전인《사서오경》,《불경》,《리그 베다》,《꾸란》 등 다른 종교의 경전들도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습니다. 또 나는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더 이상 성서를 신의 무오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더 이상 예수를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무하마드처럼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요, 성인이면 족했습니다. 예수는 더 이상 신인 동시에 인간인 별스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15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이러한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성서는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신론적 신화론에 입각하여 쓴 인류의 한 고전입니다. 그 속에는 원시 권위주의와 파벌 부족주의에서부터 인간의 자유와 형제애를 부르짖는 급진주의적인 자유 방임 사상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만한 정신의 발전 과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류가 죄악에 빠져 멸망할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의 신 야베가 인류를 구원할 목적으로 그들을 선택하였고 인류의 역사를 그의 뜻에 따라 섭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에 바탕하여 옛 이스라엘이나 고대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 오던 신화나 설화들을 수집하여 일신론적으로 재해석하고 수정 보완해서 편찬한 것이 바로 성서입니다. 때문에 나는 성서를 "신의 말씀"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서는 오늘날의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을 모릅니다. 성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구절이 수없이 많으며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전합니다. 한 마디로 성서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막스 베버가 말한 바, "마술의 정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성서는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것과 같은 사실로서의 역사를 보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삶과 역사의 이면에 감춰져 있다고 생각되는 역사의 의미와 가치인 것입니다. 성서를 맹신하지 말고 성서의 문자 배후에 있는 근본 정신을 살펴 보십시오. 그것은 진리와 사랑과 정의와 평화로 세상을 변화시켜 인간을 널리 유익케 하자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성서를 글자 그대로 무오한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은 엄청난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진리보다는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해야 하고 거기에서 밥을 먹고 사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성서를 그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성서는 거룩한 신의 말씀이니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자기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지적으로 성실한 태도로 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성서를 가르쳤다면, 아마 오늘날의 한국의 종교적 상황은 훨씬 나아졌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성서를 학문적으로 신화니 설화니 하면서, 교회에서는 이러한 말을 절대로 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고 하니 이런 모순과 위선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목회자들은 성서가 거룩한 신의 말씀으로서 절대 오류가 없다고 호도하면서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만을 신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 상황은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땅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성서의 실체에 대하여 침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궤변을 늘어 놓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위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이를테면 각종 부흥회, 은사 집회, 1000일 기도회 등에 열을 올리며 무조건적인 절대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동안, 신앙의 자유를 미끼로 각종 사이비 종교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시한부 종말론, 휴거, 치병 기적의 조작 등으로 무지몽매한 신도들을 현혹하여 헌금 갈취는 물론, 집단 앵벌이, 집단 자살, 성 폭행, 청부 살인 등을 심심치 않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불황을 모르는 일종의 서비스 산업이라는 것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은 가난, 질병, 파산, 이혼, 삶의 무의미, 죄 의식, 죽음 등 한계 상황에 부딪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그럴 듯한 신의 위로와 축복의 설교로, 기복 신앙으로, 내세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낚아 챈 뒤 빠져 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옭아매 교회에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과 돈을 바치게 만듭니다. 신자들은 십일조, 감사 헌금, 건축 헌금 등 각종 명목으로 축복을 사기 위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교회나 사찰에 돈을 갖다 바칩니다. 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무맹랑한 일입니까! 각종 교회, 사찰, 불상을 건립할 비용으로 고아원, 양로원, 도서관을 짓고, 우리의 물질 및 정신 생활을 풍요롭게 할 문화관 등을 지어 적극 활용한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물론 필자도 한 때, 즉 정신적 성숙기에 기독교에 많은 빚을 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 성서의 곳곳에 나타나는 자기 초월의 의지, 한계 상황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불의한 권력에 대한 단호한 항거, 고아·과부·억눌린 자 등 사회적 약자에의 배려, 타협 없는 선과 정의의 추구, 죄사함, 사해 동포주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뜨거운 형제애 등은 나의 인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기독교가 관념론적 공리 공론과 형식주의에 빠진 노쇠한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하던 조선 말기에 이 땅에 전래되어 서양의 앞선 여러 가지 문물을 전해 주고, 도탄에 빠진 민중들이 믿고 의지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큰 힘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성서의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닌 신화론, 즉 소설적 허구에 바탕한 것이니, 성서를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위험한가 하는 것을 나는 몸소 겪은 바입니다. 문학은 문학이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읽고 감동을 느낀다든가,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든가, 성서의 근본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몸소 실천한다든가 하면 족한 것입니다. 굳이 신화 내지 설화를 목숨 걸고 신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결국 우리는 성서를 비판적 안목으로, 즉 성서에서 산 것은 무엇이고 죽은 것은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읽고 거기에서 삶의 영감과 삶과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창조적 비전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여, 성서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란 성서에 대한 지식과 해석을 독점한 특권층으로서 복음("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종교 상품을 판매하여 기존 체제와 기득권을 옹호하고 이에 안주하며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종교 지배 엘리트들에 다름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목회는 일종의 수지맞는 사업인 것입니다. 그들은 국회의원이 부럽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주변에 수도 없이 생겨나는 교회들을 보십시오. 이제 교회는 동네의 약방이나 비디오 가게보다 더 많게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 우리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다미선교회, 승리재단, 만민중앙교회, 국제크리스천협회(JMS) 사건 등을 보십시오.

우리는 인생의 위기에 빠졌을 때, 종교적 신앙의 힘으로 안이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한 의지와 이성을 신뢰하는 가운데 인생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이웃을 신뢰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며 이웃과 기쁨 및 슬픔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를 맹신하지 말고 건전한 상식과 이성의 눈을 가지고 보십시오. 성서를《사서오경》,《우파니샤드》,《불경》,《향연》,《도덕경》 등처럼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고전으로 읽으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는 성서 속에서 우리 문화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새로운 힘과 지혜와 비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요한 3:16)



단기 4332(1999)년 8월 24일

새 천년의 문턱에서

석동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