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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협의회(KNCC) 8번 <동국대강연 전문>에 대한 순복음 측의 변명

운영자 2005.01.13 19:10 조회 수 : 3629 추천: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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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FGTV

날짜 :

2005-01-13  오전 8:51:46

IP : 220.64.92.165

조회수 :

9

운영자가 동국대 강연 전문 내용을 순복음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후 임한 답변
(2차례 일방삭제 당하고 3번째 올렸을 때 온 답변임)

성도님이 올린 전문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므로 
삭제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조목사님이 작년
주일예배(5.16)때 말씀하셨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카테고리에 있는 조용기목사님과의 만남이라는 코너에  ‘공개란 공지’를 통하여 직접 올린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실 것입니다.
조목사님이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복음’을
전하며 성령운동 하신 것을 아시면 잘 분별하시고 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하는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조 목사님의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 강연에 대하여 본교회 ‘국제신학연구원’에서
게시판에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아래에 옮겨 실었습니다.
(국제신학연구원 게시판 : iti.fgtv.com)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 강연에 대한 신학적 입장
-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

조용기 목사의 금번 동국대 불교대학원 강연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복음전도자 입장에서의 강연

조용기 목사의 강연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의 복음을 증거 하는 메시지였다. 조용기 목사의 강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한 마음으로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조용기 목사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즉 조용기 목사는 기독교와는 상이한 종교인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와 닿도록 매우 실제적으로 증거 하였다. 그 중에서도 조용기 목사 자신이 아무리 부처를 믿고 부처에게 빌었어도 고침 받지 못했던 폐병에서 예수님을 믿어 고침받았다는 간증은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불교적 신앙에 대해 기독교신앙의 우월성을 전파한 복음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조용기 목사는 그 뿐만 아니라 불광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여의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목회 일화를 통하여 병을 고치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증거 하였다.

그리고 간간히 불교적인 용어와 불교에서의 가르침을 인용해서 복음을 증거 하였다. 이는 사도 바울이 원래 히브리 문화권에서 태동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헬라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증거 하기 위해 헬라 철학의 사상 체계를 빌려서 복음을 증거 한 것과도 같은 방법이다.

복음 전파 사역은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율법주의 이데올로기로 살았던 여호수아 시대에서는 타종교인들을 전쟁으로 진멸하고 우상종교라고 박멸하였다. 이 방법으로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율법이다. 여호수아 시대는 율법시대였기에 하나님은 그 일을 승인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은 은혜와 복음의 시대다.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인간의 자발성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이 강제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믿음, 즉 인간의 자발적인 감격과 감사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 인간 자신의 죄를 위하여 고난당하셨다는 기가 막힌 복음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믿고 섬기게 되는 까닭이다.

남과의 갈등과 대립은 나를 위한 남의 자발성을 결코 태동시키지 못한다. 남에게 우리 기독교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도 남의 자발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미움과 대립과 전쟁의 방법은 남의 자발성을 오히려 막는 걸림돌이기에 복음 증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중세의 십자군 운동이 왜 실패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마리아인들을 불로 멸하기를 諫하였던 요한과 야고보를 꾸짖으셨다(눅 9:51-56 참조).

기독교의 진리를 향한 타종교인의 자발성을 갈등과 대립과 투쟁으로써는 유도하거나 키워 낼 재간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불교신도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며, 불상을 시뻘건 페인트로 십자가 칠 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한다고 믿는 것은 무지와 착각의 수준을 넘어선 일탈 행위다.

진정으로 우리가 불교도들에게 전도하기 원한다면 일단 불교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불교 나름대로의 진리체계, 구원체계를 인정하되 예수님의 진리와 구원의 영원성 및 우월성을 당당하게 알리는 대화의 방법을 써야 한다. 이와 같이 나아갈 때 불교인들도 예수님과 우리 기독교에 대해 마음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투쟁은 영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영적인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종교인들에 대한 포용이 영적 차원에서의 투쟁마저 배제하는 것은 절대 아닌 까닭이다. 강연에서 조용기 목사는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선의의 경쟁도 하자고 하였다. 이러한 경쟁에서의 승리는 바로 영적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금번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 과정에서의 강연은 이러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효과적인 복음 증거 사역이었다.

2. 한국의 종교지도자 입장에서의 강연

현재 한국 사회는 이념, 계층, 노사, 지역, 세대, 남북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마저 연출된다면 이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때 한국의 주된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며 공존하는 상생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갈등구조를 개선하고 위대한 국가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될 것이다. 한 나라의 주요 종교가 서로 상생하면 종교의 지배를 받는 문화가 상생의 문화로 탈바꿈하게 되며 이는 곧 평화와 생명의 역사를 그 나라에 창출하게 된다. 그러나 주요 종교들이 서로 갈등하고 싸우면 이는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국가와 세계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파멸을 교회사에 나타난 십자군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북 아일랜드에서의 신, 구교 갈등과 분쟁, 인도네시아에서의 종교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테러,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배경이 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종교적 문명충돌 현상 등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조용기 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기독교계의 거목이며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이다. 75만 성도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용기 목사는 한국 사회의 명실상부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는 다원화되어 있는 사회의 제반 구성세력들을 상호 이해와 공존 및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사회 통합적 리더쉽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하며 그 언행은 예의바르고 신중해야 하고 때로는 외교적일 수도 있다. 조용기 목사는 금번 동국대 불교대학원 강연은 일개 목사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의 종교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초청받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용기 목사는 지도자적 리더쉽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금번 강연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의 두 종교 세력이 공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대화의 새 장을 열었던 것이다.

대화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대화의 상대가 종교적 실체인 限 그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교리와 진리체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강연 후 “불교에는 구원이 없고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느냐?”는 식의 돌출 질문에 대해 “불교 나름대로의 구원이 있다.”고 조용기 목사가언급한 것은 대화를 위해 불교라는 종교적 실체와 불교 나름대로의 구원과 진리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조용기 목사는 불교 나름대로의 구원과 진리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것들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동의한 적은 결코 없다. 조용기 목사가 종교간 구원체계의 차이성을 언급한 것 자체가이를 증명하고 있다. 所謂 사마르타, 파니카, 폴 니터, 변선환 등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란 ‘神 중심의 다원주의’(theocentric pluralism)로서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마호멧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같은 본질의 구원(이 구원은 神이 주는 것이다)을 얻는다는 것인데 조용기 목사의 말은 이와는본질적으로 다르다. 종교다원주의는 하나의 구원을 상정하고 이 구원에 이르는 여러 길과 가르침으로서의 종교들을 말한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그 구원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이번 강연에서 질문자는 종교다원주의를 유도하는 입장에서 질문하였으나 조용기 목사는 각 종교들의 구원체계들이 지닌 차이성을 언급하였다. 이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방법과도 같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의 상황을 전제할 때에 국한해서 “내 것만의 絶對 진리는 없다.”고 피력한 것이다. 왜냐하면 ‘絶對’란 무엇인가? ‘對’를 끊는다는 것, 즉 남을 相對하지 않고 남과 對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조용기 목사는 '나만의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아예 남과의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의 상황 안에서 언급된 “내 것만이 절대 진리라 할 수는 없다.”란 말이 종교다원주의적 구원관에서의 “절대 진리가 없다.”는 주장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말이란 사상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상황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문장의 말이라도 이 말이 상황적 배경에서 언급되었는지 아니면 사상적 배경에서 언급되었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함은 상식이다. 종교다원주의적 구원관에서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말은 다원주의적 사상적 배경에서 주장되는 것이지만 조용기 목사가 언급한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말은 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구원관이 오직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유일성과 절대성에 그 본질이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왜 대화해야 하는가?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은 상생과 공존을 추구해야 할 우리 사회의 정황상 용인되기 어렵다. 종교 간의 대화는 일차적으로는 사회 통합을 위해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각 종교의 속성이 진리와 구원 문제를 다루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차적으로는 신념체계나 교리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대화란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차이를 거론하여 상호간에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운데서도 발견해 낼 수 있는 공통점을 부각시켜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 ‘내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나 ‘내 마음에 계신 부처’라는 표현이 서로 같은 뜻이다.”라는 조용기 목사의 말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계율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하는 禪불교 신앙의 공통적 요소를 언급한 것이다. 종교적 신념 체계들의 상호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비교종교학이나 신학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조용기 목사의 사회 지도자적 입장에서의 사회통합을 위한 발언이 성도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에서 타종교인들에게 전도할 때 종종 말하게 되는 배타적인 종교관을 정죄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천들이 일상생활에서 타종교 신도들에게 전도를 하다보면 그 종교에 대해 어떤 근본주의적인 적대감과 배타성을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절대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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