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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힌두교와 불교

운영자 2004.03.05 15:06 조회 수 : 1946 추천: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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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전통적인 힌두교 교육의 목표는 2가지이다. 하나는 현세에서 의무를 수행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트만(Atman : '개인의 영')과 브라만(Brahman : '우주의 영')의 정체를 깨달아 현세의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승(guru)은 이 2가지 목표를 달성하도록 짜여진 전통적인 교육제도의 핵이다. 적절한 종교교육이 얼마나 중시되었는가는 힌두교 정통 교리에서 '학생'이라는 범주가 인생의 4가지 단계 가운데 첫 단계라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머지 3단계는 가장(家長)의 단계, 숲속의 은둔 단계, 종교적 출가 단계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첫번째 학생 단계는 '중생'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모든 힌두교도들이 거쳐야 할 단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힌두교도들'은 종교 공동체에 입문할 수 있는 3가지 상층계급, 즉 카스트(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전사]·바이샤[상인]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도의 베다 교육은 주로 브라만 계급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인도 사회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브라만 계급의 극소수에게만 실시되었던 것 같다.

베다 교육의 기준에 따르면, 브라만 소년은 8세에 학생 단계에 입문한다. 입문의식은 소년의 '중생'을 상징한다. 입문자는 가사(架裟)를 받아 평생 입고 다닌다. 머리카락은 특정한 양식에 따라 자른다. 그를 위해 선택된 스승은 공식적으로 그의 복지에 책임을 지며, 소년은 제의와 서원을 통해 그 스승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입문의식은 성인의식이 아니다. 다만 성인의 역할을 맡기 위해 준비하는 공부 단계에 받아들여진 것뿐이다. 소녀들이 공식적인 베다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심지어 금지당할 때도 있었다.

학생의 중요한 의무는 베다를 연구하고 스승을 섬기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었다. 스승은 거룩한 문서들과 진리를 입으로 전한다. 이러한 학습 상황에서 스승은 집중적이고 간결하고 때로는 암호 같은 어구들을 고안하여 최소한의 말로 최대한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보여주는 극치가 거룩한 한 마디 음절어인 옴(Om)이며, 이것은 자체 내에 의미의 세계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학생들은 스승이 전달하는 음(音)을 모방하고, 명상을 통해 보다 심오한 진리를 터득한다. 공부는 스승의 지도 아래 미리 규정된 특정한 제의를 수행하는 데 부수되는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 직책의 신성함과 중요성에 부응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스승을 섬긴다. 이리하여 거듭 태어난 학생은 자신의 의무를 신실하게 수행하여 신을 깨닫고 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아타르바베다(Atharvabeda)의 한 책은 이같은 브라만 훈련법에 우주적 중요성을 부여한다. 스승 전승은 가장 지속적이고 영향력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장 흔하게 실시되는 방법은 스승 한 사람과 제자 몇 사람이 스승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인(學人)들이 집단을 이루어 서로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들은 아슈람(ashram : '영적인 은거' 또는 '지적인 은거'라는 뜻의 asrama에서 유래)에서처럼 사회로부터 은둔하거나 무리를 지어 천하를 주유한다. 학생과 스승의 밀접한 관계는 인도 수도원 전통에서 유지되고 있다.

불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뒤 열반에 들어갈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처음에 그는 깨우침을 헌신적으로 구하는 사람들, 즉 초기 승려들을 가르쳤다. 그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다른 금욕자들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게 했다. 이 사람들은 승려가 될 성향이 없고 가정과 마을의 일상적인 일에 매몰되어 있던 평민들이었다. 불교교육사는 본질적으로 불교수도원제도 역사의 일부이다. 수도생활은 초기부터 자비, 청빈, 도덕적 규범을 동반했으며 이와 아울러 스승의 지도 아래 훈련과 배움에 정진했다. 명상과 연구는 불교 교육의 본질적인 방법이었다. 4체, 8정도, 다르마(dharma : '법')의 세목들로 알려진 원리는 반드시 연구해야 할 대상이었다. 부처의 말씀·이야기·전설들은 초기에 점차적으로 수집되어 경전이 되었다. 독경과 찬가는 깨달음을 얻은 창시자의 말씀과 그에 관한 말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교의에 대한 논쟁과 토론은 수도승 교육의 중요한 측면이었던 것 같다.

불교의 주요 종파들 가운데 테라바다 소승불교는 팔리 경전(팔리어로 씌어진 종교 문서)을 권위의 유일한 원천으로 주장했다. 대승불교가 발전하면서 부처가 제시했다고 하는 고등 교리들을 담은 수트라스(sutras : '문서들'이라는 뜻)가 별도로 작성되었다. 이 문서들은 중국·티베트를 거쳐 불교를 수용한 한국·일본·베트남 등지에서 불교의 가르침과 예배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전들이 확정되자 학승들은 개종자들을 찾는 한편, 종교적 진리를 주석하고 방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의 학습 범위를 확대했다. 수도승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주석 작업이 벌어지면서 BC 6세기에는 승가대학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북인도의 날란다대학교였다. 7세기 중국 저술가의 기록에 의하면, 날란다대학교는 여러 불교 종파들에서 수천 명의 승려들을 끌어들여 그들을 전담하는 승려들의 지도 아래 연구하게 했다고 한다. 평신도들도 날란다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상가(sangha : 수도승 교단)는 테라바다 불교가 침투한 실론·미얀마·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문자 문화를 전달한 주체였다. 예를 들면 실론에서는 BC 3세기에 불교가 소개된 뒤, 특히 불교 문헌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 발달하여 나름의 역사적 전통을 형성했던 것 같다. 사원과 관계를 맺고 있던 학교들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울 때까지 유일한 교육기관이었음이 분명하다. 서구문화가 침투하기 이전의 몇 세기 동안만 해도 거의 모든 미얀마인들은 파고다 학교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았다. 여승제도가 테라바다 불교의 한 측면이어서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들였지만, 소녀들은 정식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중국에서의 불교는 선진 문화와 만났다. 중국인 승려들은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가르쳤다. 중국인 승려들은 산스크리트 또는 팔리어 경전들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도교로 알려진 고전적인 중국 마술종교 체계의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가 많았다. 대승불교와 도교가 혼합되면서 중국에서는 선불교('명상 불교')가 발전했다. 선불교는 철저히 경험주의적인 방법을 취한 까닭에 형이상학(초자연적 실재에 대한 연구)과 이론, 추상적 초론을 삼갔으며, 1차적인 경험에 따른 직관을 선호했다. 중국에서 발전한 또 하나의 주요종파인 정토종은 우주적 구원을 강조하여 선불교의 교육 방법보다 전통적인 교육 방법을 활용했다. 학문과 경전 연구는 명상과 함께 높이 평가받았다. 유교가 중국의 서민생활에 주된 영향을 끼쳤던 8세기 동안(AD 3~10세기) 불교는 중국의 고급 문화를 지배했다. 몇몇 불교 사원은 주로 승려와 상층계급의 배움터가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불교는 중국에서 쇠퇴했고 수도승 교육의 질은 저하되었다.

중국의 영향이 한국과 일본에 퍼지면서 불교도 함께 전파되었다. 일본에서 발전된 불교는 중국의 불교와 유사했지만, 일본 불교는 그 나름의 성격을 발달시켰으며, 중국에서보다 일반교육 형태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마을의 절이 마을학교가 되고, 승려가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훈련된 단순한 삶과 정직한 노동생활을 강조한 선불교는 일본의 무사계급(사무라이 계급)의 마음에 들어 무사들의 훈련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9세기경 불교는 티베트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여 왕의 후원 아래 방대한 경전이 산스크리트에서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다. 이 티베트 경전은 불교 역사와 사상의 가장 중요한 보고(寶庫)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수세기 동안 불교 수도원(라마교 사원)들은 티베트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지난 1, 2세기 동안 불교의 종교교육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점증하는 세속화로 인해 여러 가지 도전을 받았으며, 이 시기에 불교 르네상스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를 북돋워준 인물은 팔리 경전협회를 창건한 T.W.R. 데이비스(1843~1922)와 미국의 신지학자 헨리 올콧 (1832~1907)이다. 특히 올콧은 실론·미얀마·인도에서 불교 문화와 교육을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상가는 교육적 책임을 한층 더 부여받고 있으며, 어떤 곳에서는 현대적인 사립학교와 대학교를 감독하고 공립학교의 종교교육을 감독하고 있다. 명상에 특히 중점을 두는 불교교육은 서구의 특정 집단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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