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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도올’은 ´石’이다 -- 김용옥의 狂言과 暴說

운영자 2007.10.28 21:40 조회 수 : 1351 추천: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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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石’이다 -- 김용옥의 狂言과 暴說
[2007-10-10 14:04:26] 인쇄
‘도올’은 ‘돌(石)’이다 -- 김용옥의 狂言과 暴說

나는 KBS나 MBC 등 공중파 TV들이 ‘도올’ 김용옥(金容沃)에게 황금의 시간대를 할애해 주는 이유를 이해한다. 김용옥은 이들 공중파 TV 화면에 등장하여 침을 튀기면서 체조를 방불케 하는 몸짓으로 노무현 정권을 예찬하고 야당을 헐뜯는 변설(辨說)로 이들 공중파 TV의 필요에 충실하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 나라 공중파 TV들은 김대중(金大中) 씨가 창업하고 노무현(盧武鉉) 씨가 물려받아 대한민국이라는 소중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이 나라 ‘친북ㆍ좌파’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기 위한 선전ㆍ선동 활동의 일환으로 김용옥과 그 아류(亞流)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중앙일보>가 이 사람에게 그처럼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는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다. <중앙일보>는 망국(亡國)과 전쟁의 폐허로부터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인 대기업, 그 중에서도 선두 주자인 <삼성>을 친정(親庭)으로 가지고 있는 언론매체다. 그러한 언론매체가 김용옥을 이렇게 띄워주고 있다는 데는 무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있다.

그 김용옥이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의 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서울로 돌아 온 그는 KBS TV 화면과 <중앙일보> 지면을 통하여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월6일자부터 연재물처럼 김용옥의 ‘평양 방문기’를 게재하고 있다. 10월6일자에는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한 사회 그 최고선의 목적은 무엇일까 ?”; 10월8일자에는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 10월9일자에는 “북한 미술 `주체적 여백` 허락하소서”라는 제목의 글들이 실렸다. 아마도 앞으로도 <중앙일보>는 계속해서 그의 ‘평양 방문기’를 게재할 모양이다. 그 동안 게재된 3건의 글 가운데 첫 번째인 10월6일자의 글은 한 마디로 ‘개떡’ 같은 글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공공연하게 그가 10월3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관람한 북한 체제 찬양 집단체조 <아리랑>을 예찬했다.

이번에 그가 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방북 대표단원 전원과 함께 관람한 집단체조 <아리랑>은 한 마디로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강제 동원과 강제 훈련, 그리고 강제 노역의 집대성(集大成)이다. 이 같은 집단적 광태(狂態)는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심지어 제국 일본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김용옥이 관람한 <아리랑>의 상당 부분에는 아직 신체적으로 발육이 끝나지 못한 어린이들이 강제로 동원되고 있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집단적 아동 학대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10월3일 저녁 <5.1 경기장>에 들어서는 김용옥의 눈에 비친 “최후 일순간까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 학생의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입장 통로에 비치는 카드섹션의 모습”은 너무도 ‘현란(眩亂)’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체조의 광경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아리랑에 출연하는 5만여 명의 동작이 변검(變)의 탈처럼 순식간에 변하여 일초일촌의 오차(誤差)도 있을 수 없었고 거대한 경기장을 안방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교예사(巧藝士)들의 아슬아슬 곡예(曲藝)는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지만 그 절제 있는 동작의 미학은 찬탄(讚嘆)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리랑>이 “결코 쇼가 아니었다.” 그에 의하면, 오히려 <아리랑>은 “그들 유토피아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인 동시에 “이러한 집체적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북한 동포들)은 “교육을 받고 의식화되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쇠망치가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에 정신 나간 미친놈이 아니고 성한 사람이 과연 10월3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연출된 ‘집단적 강제 노역(勞役)’을 이처럼 미화(美化)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나의 머리를 강타(强打)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사사건건 북한과 경쟁을 하지 아니 하고는 못 배기는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고 그 때는 북한을 능가하기 위하여 이른바 카드섹션이라는 이름의 똑같은 집단체조로 발육기의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김용옥은 나이가 어려서 기억하지 못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같은 집단체조가 나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라는 여론 때문에 중지ㆍ폐지된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어째서 이 같은 일이 남쪽의 땅에서 전개되면 인권 유린이 되고 북쪽의 땅에서 연출되면 “유토피아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이 된다는 것인가? <중앙일보>에 실릴 다음 번 ‘평양 방문기’에서 김용옥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주어야 한다.

김용옥이 <아리랑>을 예찬하기 위하여 심지어 플라톤을 들먹이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던 것은 아마도 나뿐이 아니었을 게다. 그가 <아 리랑>을 보고 느낀 소감은 북한 사회가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O물에 튀할 망발(妄發)이 아니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망발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뿐인가. 김용옥은 심지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어의(語義)를 “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고 해설하면서 북한이 바로 “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어려운 정체(政體)를 가진 유토피아에 틀림없다”고 김씨왕조(金氏王朝)를 예찬하는 데 침을 말리고 있다. <아리랑>을 통해 그의 눈에 비추어진 북한은 “전일(全一)한 목적을 위해 집체적으로 통합된 사회”이고 “탐욕이 배제된 지성(nous)이 실현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였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북한 땅에서는, 왈(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옥이 해야 할 일은 정해진 셈이다. 그는 당연히 더 이상 남쪽의 지옥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그는 마땅히, 최소한 그의 직계 가족만이라도 몽땅 거느리고 평양으로 솔가이주(率家移住)하여, 북에 펼쳐지고 있는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능가하는‘이상국가’에서 직접 거주하면서 그 곳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 마음대로 여행도 못 하고, 거주지도 옮기지 못하고, 여행도 못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못 읽고, 믿고 싶은 신도 믿지 못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물론 생각도 못 할 뿐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개ㆍ돼지나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慘狀)은 외면(外面)하면서 진시황(秦始皇)과 네로, 히틀러와 무쏠리니,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인 김정일과 그의 졸개들과 요설(饒舌)을 희롱하면서 남은 여생(餘生)을 보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10월6일자 첫 번째 글 때문에 김용옥은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좀 듣기는 한 모양인가 보다. 그의 두 번째 글부터 그의 어조(語調)가 좀 바뀌었다. 그는 두 번째 글(제목: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에서는 평양 도착일인 10월2일 북한 사회로서는 어떻게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초호화판 연회 장소인 <목란관>에서 마침 옆 자리에 앉았던 김일성대학(金日成大學) 총장이라는 자를 상대로 그가 던졌던 “도발적 질문”들을 구화체(口話体)로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주체사상’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도중 ‘수령의 리더십의 정당성’을 시비하다가 ‘개똥철학’과 ‘사이비’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며 <목란관>에 오는 도중 “이동할 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협박조로 핏대를 올리던 통전부 안내원”의 경우를 실례로 들면서 “도무지 인민에게 복무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시비했다가 김일성대학 총장 성자립으로부터 "특정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말라"는 경고(警告)(?)를 들었다는 등의 무용담(武勇談)(?)을 장황스럽게 늘어놓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쓴 세 편의 ‘평양 방문기’ 가운데서 10월9일자 세 번째의 글(제목: “북한 미술 ‘주체적 여백’ 허락하소서”)을 가장 흥미 있게 읽었다. 여기서 그가 취급한 화제가 지금부터 35년 전인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초기에 내가 겪었던 황당한 일을 연상(聯想)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다룬 화두(話頭)는 ‘사실주의’(realism)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포함된 소위 ‘특별수행원 팀’이 평양 소재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하여 <공훈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현장과 ‘전시관’에 전시된 그림을 관람하면서 북측 인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용옥에 의하면 동행했던 문정인(文正仁) 교수(연세대)는 “북한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이 건재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김용옥은 그가 문정인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술해 놓았다. 그는 평양의 <만수대 창작사>에서 그리고 있고 또 그려서 전시해 놓은 그림들을 가리켜 “내 눈에 비친 북한 그림은 솔직히 말씀드려 옛날 ´이발소 그림´의 정교한 형태”라고 혹평(酷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10월9일자로 기사화된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김정일 위원장께 비옵나이다. 화가들에게 다양한 화풍과 다양한 주제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적 여백을 허락하시옵소서. 북한 화가들의 기초실력은 뛰어납니다. 이제 새로운 전환으로 도약해야 할 때이옵나이다” 운운....

그러나, 김용옥의 이 세 번째 글의 압권(壓卷)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더구나 북한 그림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칙을 버렸다”는 대목이었다. 그는 <로동신문> 기자에게 북한의 그림이 “어두운 사회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금강산이나 어여쁜 소녀, 화려한 산수를 사생하는 데 세필(細筆)을 소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썼다. 그는 “북한 그림은 사실주의 그림이 아니라 합목적적 장식화에 불과하다”면서 “세필이 있으면 갈필(渴筆)도 있어야 하고, 구상이 있으면 추상이 있어야 하고,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부언하기도 했다. 요컨대 <로동신문> 기자를 상대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 강의를 시도(試圖)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김용옥의 말은 나에게는 우습기만 하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가지고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면서 시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에 관해서는 내가 겪었던 일을 들려주어야 하겠다.

1972년10월 평양에서 <남북적십자회담> 세 번째 본회담이 열렸다. 남쪽에서 7명의 대표, 7명의 자문위원을 포함한 59명의 대표단이 4박5일의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이 무렵 남북관계의 상황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남북간의 긴장은 최고조를 유지하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국가보안법>과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반공법>마저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평양 회담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북한지역을 오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이 도끼가 되어 발등을 찍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냐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평양에 머무는 동안 드디어 ‘사고’가 터졌다. 이 회담 기간 중 남쪽 대표단 일행은 북한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게 되어 있었다. 북한측이 마련한 남쪽 대표단 일행들을 위한 ‘안내 일정’에는 <조선혁명박물관> 참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혁명박물관>은 총건평 53,700㎡에 90여개의 전시실과 3개의 영화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건물 앞에는 김일성(金日成)의 거대한 동상(銅像)이 평양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북한측은 이날 남측 대표단 일행에게 30여개의 전시실을 보여주었다. 전시물은 김일성의 만주(滿洲)에서의 항일 빨치산 시절의 유물이라는 무기류와 피복류 약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붓으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린 것들이었고 김일성이 등장하는 극히 제한된 매수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이 사진들은 김일성의 존재가 부각되도록 심하게 개작(改作)ㆍ변조(變造)되어 있어서 하와이 대학의 서대숙(徐大肅) 교수처럼 동일한 사진의 원전(原典)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수집가들이 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원전과 전시된 사진 사이의 차이를 놓고 안내원과의 사이에 심한 실랑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박물관 참관 다음 날인 1972년10월26일 <로동신문>ㆍ<로동청년>ㆍ<민주조선> 등 북한 신문들이 모두 2면 전면을 할애하여 남측 적십자회담 대표단 일행의 <조선혁명박물관> 참관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의 내용이었다. “민족의 영예를 빛낸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 북남 적십자 단체들의 본회담 제3차 회의에 참가한 남조선측 성원들과 함께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고”(<로동신문>), “김일성 수령님의 력사는 주체의 력사이며 애국, 애족, 애민의 력사입니다”(<로동청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민족의 크나큰 긍지”(<민주조선>) 등의 제목 아래 페이지를 가득 메운 르포타지 기사들의 몇몇 문제 대목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았다.

“강사의 해설을 정중히 듣고 난 한 남조선측 성원은 우리에게 ‘김일성 장군님의 투쟁사는 민족의 긍지를 높여 줍니다. 그 분은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이십니다’라고 말하였다.”

“남조선측 성원들은 ‘김일성 수상님의 사상은 옳았습니다. 그 분의 통일전선 전술이 옳았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수상님의 민족단합을 위한 넓으신 도량과 아량 있는 포용력에 깊은 감동을 표시했다.”

“참관을 마치고 나서도 한 남조선측 성원은 ‘김일성 수상님의 력사는 해방 전이나 후나 다 빛납니다. 그 분의 력사는 주체의 력사이며 애국, 애족, 애민의 력사입니다’라고 감격해 마지않았다.”

이 신문들을 받아 본 남측 대표단의 분위기는 아연 심각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남측 대표단의 이범석(李範錫) 수석대표(외무장관으로 전두환ㆍ全斗煥 대통령을 수행하여 미얀마 방문 도중 1983년10월9일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북한이 저지른 폭탄 테러로 사망)는 급하게 북측의 김태희(金泰熙) 단장을 찾았다. 이범석은 그를 찾아 온 김태희에게 북한 신문들을 보여주며 기사 날조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김태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 마디로 “무슨 소리냐?”는 것이었다. 김태희의 반응은 북측 신문들의 기사 내용이 “전혀 잘못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문제의 기사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김태희의 대답은 “언론의 사명은 인민을 정치적ㆍ사상적으로 올바르게 교양하는 데 있기 때문에 있는 사실이라고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인민을 올바르게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내용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신문들이 보도한 남한 적십자회담 대표단 일행의 ‘조선혁명박물관’ 참관 기사는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김태희는 다음과 같은 항의로 그의 말문을 닫았다. “더구나 문제의 기사들은 북조선의 인민들을 보라는 것이지 남조선 인민들더러 보라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남측에서 이 기사를 가지고 시비하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실체다. 이제는 김용옥에게 물어야 하겠다. 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김용옥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그래도 김용옥은 평양 <만수대 창작사>의 ‘공훈화가’들의 그림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원칙을 버렸다”고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인가? 사실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북한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이 건재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극찬을 마지않았다는 문정인의 말이 옳은 말이었다는 것을 그가 아직도 깨닫지 못 한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김용옥은 ‘도올’이 아니라 한 개의 ‘돌(石)’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의 유려(流麗)한 문재(文才)와 분방(奔放)한 언변(言辯)은 장안의 화제가 된 지 오래다. 그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섭렵(涉獵)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세인(世人)을 놀라게 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외피(外皮)일 뿐 그의 내면(內面)은 대ㆍ소변(大ㆍ小便)을 가리지 못 하는 천치(天痴) 이외의 다른 아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결과 그의 ‘말’과 ‘글’은 광언(狂言)ㆍ폭설(暴說)일 뿐이다. 다른 것은 제켜 놓자. 어떻게 북한 땅에 펼쳐지고 있는 수령독재라는 이름의 전근대적(前近代的)인 봉건왕조(封建王朝) 체제를 옹호할 수 있는 것인가. [끝]

[이동복 전 명지대 교수]http://www.dblee2000.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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