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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관계 황장엽의 사상에 관한 지만원 씨의 글

운영자 2009.08.20 07:38 조회 수 : 2029 추천: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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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 좋은 곳인 줄 알고 몇 번의 강연을 했고, 토론회에 나가 발표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매우 반겨주었습니다. 거기에서 이장희와 강만길 이철기 문국현 최열 등을 자주 만났습니다. 임동원이 안보수석이 되어 햇볓정책이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가장 먼저 강론한 곳이 경실연이었습니다. 1998년 4월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트를 들고 하나하나 기록을 했습니다. 분석을 해보니 이건 북한 퍼주기였습니다. 그다음부터 그와 김대중을 비판하고 햇볕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해 가장 먼저 비판한 사람도 저였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도 저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저는 김대중과 임동원 모두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습니다. 김대중으로부터는 과분한 사랑(?)까지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국정원 2차장 김은성의 검찰 진술에 의하면 한국에서 김대중이 가장 미워한 사람이 바로 저였다고 합니다.  

연세대 세미나 장에 갔었습니다. 세미나라야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거기에서 김낙중을 만났습니다. 걸어서 식당 골목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데 김낙중이 마치 형제처럼 살갑게 대해면서 제 손을 꼬옥 쥐고 다니더군요. 그 다음 어느 토요 모임에서 김남식을 만났습니다. 그 역시 제가 마치 친동생이나 되는 것처럼 손을 잡고 종로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로부터 해방 전후의 역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역사 공부가 없던 제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한완상이 방송대학 총장을 하면서 점심을 사더군요. 제가 쓴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라는 책을 다 읽었더군요. 그 때 부탁이 윤성민 전국방장관과 함께 골프모임을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기업체들에 시스템 강연을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아주 나중에야 김락중과 김남식이 간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997년 한국일보가 북경에서 3박4일간의 남북 세미나를 주최했습니다. 북한에서 8명, 남한에서 12명이 갔지요. 저는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터라 무슨 선물을 살까 하고 백화점에 갔습니다. 생각 끝에 커다란 바퀴 가방 2개에 사탕을 가득 채워 가기로 했습니다. 북경 켐핀스키 호텔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아침 2층으로 갔습니다. 로비로 걸어가는데 저와 동갑인 북한의 모선생이 저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아이 이거 지만원 선새이 아이십니까?” 하더군요. 그렇다 했더니 모두가 나서서 웃으면서 악수를 청해 왔습니다. 제 책들과 컬럼들을 거의 다 읽었다 하더군요. 글을 읽으면 마음과 인격을 읽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오전 세미나가 끝나고 점심을 했습니다. 모선생이라는 사람이 저와 함께 걸었습니다. 그 사람들 방은 2층, 저는 3층에 있었는데 제 방으로 따라 오더군요. “원선생님, 제가 외국에 나갔다 오면 집사람이 가장 먼저 제 손을 봅디다. 화장품이 뭐 있는가 하고” 마음 편하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원선생 부인이 무슨 화장품을 좋아하는지 나는 모르니 내 대신 맞는 화장품을 사서 선물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100달러를주었습니다.  “아 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 ”

“선생님, 제가 떠나면서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문득 신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북한 어린이가 배가 아파 구르다가도 사탕만 먹으면 금방 낫는다는 내용이 생각나서 사탕을 저기 저 가방 두 개에 잔득 가지고 왔습니다. 불편하시면 그냥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지선생, 잠시만 가다려 주시지요. 제가 2층에 가서 의논을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올라왔습니다. “지선생 참으로 고맙습니다.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가방 두 개를 끌고 그의 뒤를 따라 2층으로 갔습니다. 그의 자존심을 위해서였습니다. 북측 단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서열 6위라 하더군요. “지선생, 참으로 고맙소. 다른 사람들은 시계 같은 걸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거운 짐을 아이들을 위해 사오시니 지선생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소. 참으로 고맙습니다” 북경에 있는 동안 저녁 식사를 할 때면 제 양 옆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와 보안요원이 앉았습니다. 제게 너무 살갑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리영희 교수가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너무 늙었습니다. 우리는 지선생을 더 훌륭한 민족주의자로 알고 있습니다”  북측단장은 제게 여러 차례 술을 건네면서 호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북측 단장은 저를 한동안 포옹했습니다. “선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정감이 들어 있소”

돌아와서 얼마 후 주간지 기자 한 사람과 삼성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 제 동네에 와서 등심을 샀습니다. 소주도 많이 했지요. 삼성 명함을 건네더군요. 명함을 받아들고 제가 어느 부서냐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좀 거북해 하는 듯 했습니다. “박사님, 곧 사무실 하나 마련해 드려야지요. 이렇게 훌륭하신 박사님께 사무실 하나 마련해 드리지 않으면 국가의 체면이 말아 아니지요” “삼성 직원이신데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 집이 최고의 사무실입니다.” 주간지 기자가 많이 취했습니다.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집은 바로 제가 사는 아파트 앞 동이었습니다. 몇 달 후 글을 하나 발표할 생각으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가 안 되었습니다. 그 집을 찾아 갔지요. 그런데 이사를 갔더군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꼬리를 감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포섭될 수 있었던 찰라였던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욕심이 있으면 사기도 당하고 저들에 걸려들기도 합니다. 저는 중앙정보부 시절에 4개월간의 단기과정의 교육을 받았고, 가장 많이 배운 것이 간첩을 식별하고 의심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간첩들과 사이좋게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오랜 동안 대화를 하기를 여러 차례 했으면서도 그들이 간첩일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보기관의 발표가 있고서야 입이 벌어졌습니다.    

1995년 김대중이 12평짜리 빌라에 살고 있던 제게 꿀과 30만원을 보냈습니다. 아태재단의 수련생들에게 강연도 초청됐습니다. 그가 주최하는 국제세미나에 기조연설자가 됐습니다. 중국도 1주일 동안 같이 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각기 별개의 사건이라고는 생각들지 않습니다. 거물간첩 출신 김용규는 한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태에는 반드시 간첩의 역할이 있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런데 소요사태 한 개를 현장에 취재하러 갔었다는 어느 기자는 “내가 현장 취재를 했는데 간첩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운동에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황장엽 선생에 대한 의견들이 두 갈래입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누가 뭐라 합니까? 문제는 그를 추종하고, 그의 손발이 되어 주고, 그를 널리 칭송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황선생은 글만 쓰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대부분의 행동하는 우익과 글을 쓰는 우익들과 386주사파 출신들과 탈북자의 일부를 모두 아우르는 영웅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오르그(세포조직)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성향이 자꾸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인사는 “이재오와 김진홍을 건드리는 사람은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연설까지 했다 합니다. 전에는 이재호를 빨갱이라 하는 광고까지 냈었거든요. 옛날에는 국민 일반이 사람들을 의심했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마도 이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심하는 사람을 분렬주의자요 극우요 반공병에 걸린 정신병자라며 매도합니다. 빨갱이들이 만들어 놓은 망국의 문화인 것입니다. 신지호가 전향을 했다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반공정책의 포기'였습니다.      

김동길 선생님도 남신우 선생님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저보다 정보를 많이 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갖습니다. 황선생이 전향했다고 누가 보증을 했던가요? 북한 주민의 실상은 황선생으로부터가 아니라 수많은 탈북자들의 수기들과 책으로부터 더 많이 습득하고 있습니다. 남신우 선생님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읽으라고 일독을 권하시지만 그 책에는 아래와 같이 김일성 찬양이 들어 있습니다. 정보판단을 하려면 첩보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완전 전향해서 애국자가 되었다는 판단은 무슨 근거, 몇 개의 근거를 가지고 하셨는지 자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현직 정보기관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누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

                                               황장엽의 김일성 찬양 발언

-“김일성은 근면하고 지혜롭고 위신 있게 행동하였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3페이지)

-“김일성은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참작하여 정책을 결정하였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간부들을 모아놓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였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7페이지)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많이 하였으며 현지실정에서 많은 것을 착안하였다. 또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때도 한 단위에서 먼저 실험 삼아 해보고 경험을 쌓은 다음 그것을 더욱 일반화하였다.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해나가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큰 나라들의 나쁜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87페이지)

-“만일 김일성이 1960년대 말까지만 활동하고 한 생을 끝마쳤더라면 가짜 김일성이건, 진짜 김일성이건 관계없이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도 살아남았을 것이며 광복 후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역사도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89페이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책은 월간조선사가 발행했고, 월간조선사장의 추천문이 들어 있습니다. 책 속에는 주체사상을 적어놓고, 김일성 찬양의 글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체들을 향해서는 김정일이 나쁜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황장엽은 김일성으로부터는 총애를 받았지만, 그 아들인 김정일과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넘어 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그대로 간직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제가 가지고 있는 파일을 공개합니다. 
                      
                            황장엽이 바친 '사람중심철학', 김일성이 받아서 '주체철학'으로 이름바꿔!

황장엽에는 야망이 있었다. 자기가 만든 '인간중심철학'을 김일성의 '통치철학'으로 채택케 하는 것이었다. 반면 김일성에게는 ‘절대주의국가’를 세우기 위한 사상 체계가 필요했다.

히틀러에게는 헤스가 있었다. 그는 '나의투쟁'(Mein campf)이라는 책을 써서 히틀러에 바쳤다. 이와 똑 같이 황장엽은 ‘사람중심철학’을 김일성에게 바쳤다. 황장엽의 손에 있는 ‘사람중심철학’이 김일성에 손에 가자 ‘주체철학’으로 포장명이 바뀌었다.

헤스, 그는 종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베를린의 슈판다우 연합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김일성이 우리의 적이라면, 적장에게 전체주의 이론과 철학을 제공한 황장엽도 우리의 적이며 헤스처럼 재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주체사상 때문에 멍들고 있는 여기에 와서 주체사상 강론하고 주사파 조직하다니!

하지만 황장엽은 지금 이 나라에 와서도 김일성에게 바쳤던 ‘인간중심철학’을 대중 속에 침투시키고 있다. 주체사상에 멍들고 있는 이 사회에 와서!

그는 한국에 와서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옹립하는 여러 개의 저서를 냈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들겠다며(뉴라이트전국연합 5.4.신문) 2006.4.19일, 프레스센터에서 "인간중심철학을 대중 속으로" 침투시킨다는 기치를 내걸고 "민주주의 이념연구회”를 결성했다.

공동대표는 강태욱(흥사단), 황비서는 고문, 김영삼은 회장이 됐다. 참가자들은 이남영(서울대 명예교수), 서정수 박사, 도준호(전 조선일보논설위원) 황의각(고려대 명예교수) 이동복 교수, 이태호(전동아일보기자) 등이라 한다.
    
                                               "나 황장엽은 지금도 김일성을 존경한다"

황장엽 입장에서 보면 ‘사람중심철학’을 ‘주체철학’으로 승격시켜준 김일성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그래서 절대로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비판을 하지 않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지만 공공연히 김일성을 두둔하고 있다.

①“제가 1958년부터 65년까지 서기(김일성 개인서기)를 하면서 본 바에 의하면, 사실 역사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라는 식으로 김일성을 평가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 사람이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48페이지)

② 황장엽은 1999년 1월 18일 전 인천대 총장 김학준과의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천리마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한마디로 그때가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황금시대였습니다. 김일성의 활동에서도 최고봉을 이룬 시기지요. … … …천리마 운동에서 최고봉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래서 천리마 운동에 대단히 큰 의의를 부여하고 좀 더 이론화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천리마 운동을 복구했으면 좋겠다고 제기했지요. 당의 총노선으로까지 정식화했던 것을 망친 것도 김정일입니다.”(“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51페이지)    

김일성의 발기에 의해 1956년에 시작된 북한의 “천리마 운동”은  북한식 문화운동이었다. 명분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개조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돼 있지만 내용은 정적에 대한 소탕전이었다. 이 때 주민들은 3계층 51개 신분으로 부류됐다. 사실상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절대주의 공산세습독재체제수립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바로 이 때 “정치범수용소”가 설립됐다.    

황장엽씨는 이런 “천리마운동”을 “최고봉” “의의가 큰 운동”이라고 여기 남한 땅에와서까지 강론하고 있는 것이다.
                                         
                                                 황장엽에 몰려드는 부나비 같은 인사들

황장엽에 대한 분석 없이 황비서에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인사들은 지금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먼저 여기에 지적된 사항들에 대해 반론을 마련한 다음 그래도 그를 신뢰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에 가서 그에게 힘이 돼주어도 좋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의 지식인들이 왜 이러한지 모르겠다.

더러는 인간중심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보자.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는 철학이다. 개인의 자유가 으뜸으로 보장받는 철학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누려야 한다. 정부는 실력과 양심을 가진 소수에 의해 운영되지만 그 정부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인 것이다.

반면 주체철학을 보자.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어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노동자 농민은 다수이고, 실력이 없다. 그래서 실력이 있는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대중의 실력이 향상될 때까지 당분간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궤변 철학이다.

황장엽씨가 주장하는 인간중심, 즉 사람중심 철학은 미국식 민주주의보다 무엇이 더 훌륭하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의 두꺼운 책들에는 김일성 찬양의 글들이 여기 저기 숨겨져 있다.

한국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배울만큼 배운 지식인들이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황비서의 집단민주주의를 배우겠다는 것인가?

                                                   주체철학(인간중심철학)의 요지

인간중심철학 즉 주체철학은 황장엽이 김일성에 바친 노래, 아부의 궤변 철학이다. "공산주의의 고매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위대한 영도력을 지닌 김일성만이 이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단계는 북한을 주체사상화하고, 제2단계는 남한을 주체사상화하고, 제3단계에는 전 세계를 주체사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단계는 이미 완성했고, 1980년대 남한의 학원가와 노동계층을 무대로 주사파들을 양성한 것도 제2단계에 속한다. 1980년대는 주사파의 돌파단계요, 지금은 돌파구를 확대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황장엽씨가 남한으로 직접 내려와 주사파의 지존으로 알려진 김영환, 이른바 강철서신의 저자로 신격화됐던 사람을 옆에 끼고 있으면서 주사파들을 단결시키고 있으며, 김영환씨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통해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김진홍 목사 아래 주사파들이 대거 몰려들어 차기정권을 창출하려 하고 있는 것도 제2단계의 일환으로 보인다.

필자는 김진홍 목사를 1945년도의 여운형과 같은 사람이고, 그 밑에 있는 주사파들을 박헌영 일당이라고 비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 여운형은 수많은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받았다. 김진홍 목사 역시 일부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다. 여운형은 일본 총독으로부터 치안권을 인계받고 미군정으로부터 통치권한을 인수하려고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을 만들었지만 어느 날 박헌영이라는 이름 없는 빨갱이가 들어와 여운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건준을 하루아침에 ‘인공’(인민공화국)으로 그 명칭을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해방공간의 조선은 사실상 인민위원들이 통치했다. 필자는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뉴러이트전국연합을 이와 똑같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김일성을 유일한 영도자로 떠받드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이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거치가 없기 때문에 찬광, 제철소, 농촌에서 뼈 빠지게 강제노동을 해야 하며, 더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용소와 교화소 등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는 맑스-레닌사상에 따라 노동자-농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선동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주체철학을 만들어 가지고 인민대중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남한의 주사파들은 북한을 낙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이미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남한이 낙원이 돼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에서 가장 탄압받고 굶어죽고 매 맞아 죽는 대상이 바로 농민과 노동자인 것이다. 남한의 젊은이들 중에서 가정이 제대로 있고,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절대로 주사파에 빠지지 않는다. 사회의 낙제생들, 문제아들이 주사파에 빠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얼간이들이 주사파가 되어 청와대를 점령하고서도 인간 이하의 하등적 존재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농민”의 환각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무현은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현장과 국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노동자가 하루 놀면 세상이 멈춘다. 잘났다는 교수, 사장들이 뱃놀이 갔다가 물에 빠져 죽으면 노동자들이 꾸려간다. 하지만 노동자가 염병을 해서 자빠지면 사회는 그 날로 끝이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려면 시민혁명을 해야 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주식과 토지를 재분배해야 한다.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노무현이 가지고 있는 이런 식의 주체사상 이론은 북한의 오리지널 주체사상과 상당히 괴리돼 있다. 이들 주사파들은 수령론을 이렇게 미화한다.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돼야 하지만 아직은 성장이 부족하여 사회를 경영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과도기적으로 하늘이 내신 위대한 인물, 김일성 수령이 노동자-농민을 대신하여 노동자-농민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인민대중은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진정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수령은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한다”. 수령중심철학인 것이다.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지만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인 것이다. 그래서 사상학습과 조직화가 중요한 것이다. 필자는 황장엽씨와 여러 차례 만나는 동안 "조직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인간들이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있을 때 뭉칠 수 있으며, 사상으로 뭉친 조직이라야 힘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개조와 조직독재가 사람중심철학의 핵심인 것이다.  

저들이 빨갱이를 진보라는 말로 위장하듯이 황장엽씨는 김일성수령절대주의 철학을 ‘사람중심철학’이라 아름답게 포장했고, 다시 남한에 와서는 ‘사람중심철학’을 ‘인간중심철학’이라고 더욱 남한정서에 어울리는 단어로 위장을 하였다.  

지금도 김정일은 말끝마다 이렇게 말한다 한다. "김일성의 이름과 김일성주의로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처럼 김일성의 신격화는 너무나 깊어서 북한에서는 만고불변의 진리로 자리한 것이다.

                                             그의 집단민주주의 이론은 전체주의 이론

한국으로 탈출한 마영애씨, 미국에 가서 망명을 신청했다. 황비서는 집단의 명예(국가의 위신)를 위해 마영애씨의 망명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면서까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황씨의 집단민주주의란 집단의 이익이나 명예에 반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부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체주의 철학인 것이다.  

철학과 사상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북한이라는 숨막히는 통제사회, 폐쇄된 사회에서 황장엽씨가 무엇을 견학하고, 무엇을 읽었을 것인가, 그가 정리했다는 철학은 생존을 위해 만든 것인가 아니면 절간에 가서 수도하는 스님처럼 숭고한 고요속에서 신과의 대화에서 얻어진 것인가. 창작품인가, 아니면 곡학아세를 위한 붉은 포장품인가. 그는 과연 신비스러운 논객이요, '인간'이란 단어 속에 품어져 있는 사랑과 자유와 품위가 드러나는 행동을 보여 온 사상가였는가.  

                                                  황장엽씨는 도덕적 법률적 죄인

필자는 그의 책을 다 읽어낼만한 인내를 가지지 못하다. 그러나 마츠시타고노스케에 관한 살아있는 철학서들은 여러 차례 읽고 음미할만한 인내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글에서는 냄새가 나고, 간단명료한 글 속에는 살아 숨쉬는 영혼이 보이는 법이다.  

지금의 수용소들과 아오지 등의 탄광들은 천리마 운동의 산물이다. 천리마 운동이 시작될 때 평양에만도 10여개의 수용소가 설치됐고, 또 다른 10여개의 교화소가 설치되었다. 전국이 수용소와 교화소와 탄공들로 숲을 이루었다. 북한 전역에 검거 열풍이 불고, 강제노역이 유행했다.

1950년 대에 황장엽씨는 김정일의 개인서기였다. 히틀러의 헤스처럼 김일성이 구술하는 것을 편집해주고, 김일성에 아부하는 이론을 만들고, 김일성이 원하는 이론을 만들어 준 곡학아세의 인간이었다. 그는 자기가 천리마운동을 "당의 총노선"으로 정할 것을 김일성에 건의했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 남한에까지 와서도 천리마운동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도 대량의 수용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참으로 소름끼치는 장면이 연상된다. 만일 이 나라가 적화통일 된다면 황장엽씨는 북한의 천리마운동(문화혁명)을 남한에서 실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우익들, 가진자들이 남한에 건설되는 수용소와 교화소로 잡혀갈 것이다.

황장엽씨의 정체! 마영애씨의 망명이 국가라는 집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 탄압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론하는 데에 그의 정체가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강론하는 "집단민주주의"라는 것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이 이 두개 사례에 투명하게 비쳐져 있다. 집단을 위해서는 생각이다른 사람들을 탄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에는 자유가 있고, 개인에는 자유가 없다는 해괴한 전체주의적 이론이 그가 내세우는 '집단민주주의' 이론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입에서도 집단민주주의가 발설되고, 박모 전 한나라당 의원의 입에서도 집단민주주의가 발설되고 있다. 그와 함께 주체철학에 대한 이념연구를 하겠다고 발대식에 모인 사람이 400여 명이다. 도시 이해할 수 없다.

필자의 눈에 황씨는 북한에서 살아남고 출세를 하기 위해 곡학아세한 사이비 철학자요, 김일성의 살인행위들을 정당화시켜준 도덕적 법률적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정신들 좀 차리기 바란다.
  
2009.8.1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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