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간첩이라고 써 붙이고 돌아다니는 자가 없으니 간첩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간첩들과 악수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촛불시위에 동참한 적은 있을 지도 모른다.
간첩의 침투를 철통같은 경비로 막아내던 시절에도 간첩은 북에서 내려와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고 무장간첩이 동해안에서 상륙하려다 사살되기도 하고 체포되기도 하였다. 몇 년에 한 번 쯤은 고정간첩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수많은 간첩들이 일망타진 되었다고 신문마다 대서특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의 정권을 거치면서 단 한 놈의 간첩도 검거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북에서 이제는 간첩을 남파하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가 전혀 간첩을 잡지 않기 때문인가. 답은 뻔하다고 느껴진다. 간첩을 간첩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권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별난 정권 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것이 모든 간첩들의 유일무이한 사명인데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발표한 통계대로 하자면 남한 일대에는 3만에서 4만명의 간첩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30만 내지 40만명의 한국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다니 대한민국은 이제 대한민국 구실을 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간첩을 잡지 않거나 잡지 못하는 나라는 앉아서 망한다는 사실을 거듭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http://www.kimdonggil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