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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지원 “북지원 식량은 군인들이 다 장악한다”(2003.9.23)

운영자 2004.06.17 01:47 조회 수 : 1321 추천:249

extra_vars1 http://headstone.pe.kr/05_Bible_History/South_North/Supply_policy/20030923_Food_Out_To_Arm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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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지원 식량은 군인들이 다 장악한다”


월간조선 특종/ 대북 지원쌀 관리했던 군인 증언


“북한의 원산항에 도착한 인도적 지원 식량은 군대가 다 장악합니다. 지원된 쌀을 주민들이 먹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당장 군대가 먹을 게 없는데 주민에게 주겠습니까? 군에서 장마당에 내다 파는 쌀이 돌고 있을 뿐입니다.” 북한에 인도적으로 지원된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식량 전부가 북한의 군량미로 사용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월간조선> 10월호는 대북 지원쌀을 관리,담당했던 군인출신 탈북자 진용규씨(32)의 증언을 싣고 북측의 대북 식량의 군량미 사용 실태와 유엔 사람들의 감시를 속이는 수법을 폭로했다.

진씨는 인터뷰에서 “외국 식량이 원산항으로 들어오면 지휘부(제1지구 사령부) 작전부에서 장악을 한다”며 “한국쌀은 고급이라서 큰 사람들 입에 다 들어간다. 북한은 선군정치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군대가 다 먹는 데 시비를 걸지 못한다. 주민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북한은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식량 수송에 동원된 군용차량 번호판을 민간 번호판으로 위장하고, 식량 수송에 나선 군인들에게 사복을 착용하게 한다”며 “UN의 감시단이 올 경우, 민간창고에 임시로 쌀을 보관했다가 감시단이 떠난 후 군부대로 보내는 방법으로 감시를 피하는 수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북한에 40만t(280만섬)의 쌀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 현재까지 17만t을 보내는 등 연말까지 40만t을 지원할 예정이다.
 


다음은 월간조선 기사 전문이다.

“김정일 군대는 대북 지원 식량을 전부 군량미로 빼돌린다”
“군대가 장마당에 내다 파는 쌀을 주민이 사먹을 뿐이다”


▶ 북한군의 인도 지원 식량 빼돌리기 작전

북한의 원산항에 도착한 인도적 지원 식량은 곧바로 북한 ‘제1지구 사령부’와 강원도에 배치된 5군단 등 5개 군단으로 수송됐고, 군량미로 사용됐다. 식량의 분배와 수송 작업은 북한 인민무력부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식량 수송에 동원된 군용차량 번호판을 민간 번호판으로 위장하고, 식량 수송에 나선 군인들에게는 사복을 착용하게 했다. UN의 감시단이 올 경우, 민간창고에 임시로 쌀을 보관했다가 감시단이 떠난 후 군부대로 보내는 방법으로 감시를 피했다.

이 같은 사실은 2002년 5월 북한을 탈출, 그해 6월 한국으로 귀환한 진용규(陳龍規·32)씨의 증언에 의해 확인됐다. 진씨는 원산항에 도착한 지원 식량의 분배, 인수인계 작업을 현장에서 지휘한 ‘제1지구 사령부’ 작전부 부부장의 운전병이었다.

진씨는 1988년 사병으로 군에 입대, 1994년 노동당에 입당했다. 1998년 말부터 작전부 부부장의 차를 몰았고, 당시 진씨의 계급은 하사관인 중사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증언은 1998년 이후의 시기에 집중돼 있다.

진씨는 최근 미국 정보기관에서 파견된 조사관에게 인도적 대북 지원 식량의 군량미 전용에 대해 증언했다.

월간조선은 진씨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추석 직전인 9월9일과 10일 이틀 동안 진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충청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이뤄졌다.

[Q] 제1지구 사령부 작전부 부부장의 차를 몰았다고 하는데 그전에는 어디서 근무했습니까?

[A] 청진의 나남 기계기술학교(중학 과정)를 졸업하고, 1988년 9월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원산의 1지구 사령부 신병 양성소에서 1년간 교육을 받고, 원산 앞의 려도에서 3년간 복무했습니다. 그 후로는 사령부에서 운전병으로 쭉 근무했습니다.”

[Q] 사령부에서 어떤 차를 몰았습니까.

[A] “간부들 차를 몰았습니다. 자재부장, 당생활부 부부장, 검찰소장, 작전부 부부장을 모셨습니다.”

[Q] 1지구 사령부는 어디에 있습니까?

[A] “원산시 봉춘동에 있습니다. 원산항까지 차로 10분쯤 걸립니다”

[Q] 1지구 사령부 예하 부대는 어떤 게 있고,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A] “군단 규모로 10만 명쯤 됩니다. 예하에 7사단이 있고, 426여단, 120여단, 72여단, 30여단이 있고, 직속 연대가 다섯 개 있습니다.”

[Q] 원산항에 도착한 국제사회의 지원 식량을 배분하는 데 참여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A] “1998년 말 작전부 부부장의 차를 몰 때부터입니다. 외국 식량이 원산港으로 들어오면 지휘부(제1지구 사령부) 작전부에서 장악을 합니다. 영감(작전부 부부장)이 현장의 책임자였고, 작전 일꾼 세 명, 후방 일꾼 한 명, 그리고 제가 상무가 돼서 도왔습니다. 지시대로 분배가 되나 확인하는 거죠. 저는 운전수니까 마음대로 원산港을 들락거렸어요.”

[Q] 작전부 부부장은 누구였습니까.

[A] “모시던 분인데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계급은 대좌(대령) 밑의 상좌였습니다.”

[Q] 1지구 사령관은 누구였습니까.

[A] “입대할 때는 모르겠고, 제가 복무할 때는 최용관 중장으로 별이 두 개였습니다.”

[Q] ‘원산港에 식량이 도착했다. 이렇게 분배하라’는 지시는 어디에서 내려옵니까.

[A] “인민무력부에서 전신 지시를 내립니다. 부대별로 분배할 양곡의 양, 동원할 기차 ‘빵통’(기차 화차)과 트럭 수를 알려주죠. 우리 영감이 원산항에 나가서 그대로 이행합니다. 원산항 항구에 우리가 쓰는 사무실이 있어요. 선군 정치니까 사무실 달라고 하면 꼼짝 못하고 내놓습니다. 거기에 인민무력부로 가는 직통전화가 1석, 2석, 3석 대기하고 있습니다.”

▶ 인민무력부가 각 부대에 ‘출고지도서’ 하달

[Q] 도착하는 식량의 양, 부대별 분배량에 대한 지시는 언제 내려옵니까.

[A] “식량이 도착할 무렵 인민무력부가 각 부대에 ‘출고지도서’를 내려 보냅니다. 우리는 출고지도서를 받고 양곡을 내주고, 인수인계서를 받죠. 쌀이 항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군대가 관리합니다. 보초병에게 실탄을 공급하고, 식량을 실은 빵통 위에도 보초병이 몽땅 무기를 메고 올라갑니다.”

[Q] 1998년 이전에도 국제사회의 지원 식량을 인민무력부가 이런 식으로 처리했습니까.

[A] “그때는 제가 직접 항구에 나가 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전에도 지원 식량이 오면 대부분 군인들이 먹은 건 확실합니다.”

[Q] 원산항에 들어온 쌀은 어디로 갑니까.

[A] “제1지구 사령부와 강원도에 있는 5개 공격 군단으로 뿌려집니다.”

[Q] 식량은 어떻게 수송합니까.

[A] “멀리 떨어져 있는 평강의 5군단, 금강의 1군단, 철원의 2군단 등 5개 공격 군단들은 빵통으로 가져갑니다. 가까이 있는 부대들은 트럭으로 가져가죠.”

[Q] 빵통 하나에 싣는 양은 얼마나 되나요.

[A] “하나에 60t입니다. 대개 한 개 기차가 10개에서 15개의 빵통을 답니다. 기차 하나가 600t에서 900t까지의 식량을 싣는 거죠. 빵통은 위가 열린 것이 있고, 옆으로 문을 열고 쌓는 것도 있습니다.”

[Q] 트럭들은 어디에 대기합니까.

[A] “트럭들은 원산항 항구 밖에 대기합니다. 각 군단 후방사령부가 인민무력부에서 내려 보낸 ‘출고지시서’를 가지고 옵니다. 항구 입구에서 전표를 검사하고, 싣고 나갈 때 다시 계량하고 나갑니다.”

[Q] ‘군단 후방사령부’는 무엇을 하는 조직입니까. 군단 사령부와 별개로 움직이나요.

[A] “5군단 사령관이 있고, 5군단 후방사령관이 따로 있습니다. 군단이 먹고 입고 쓰는 것을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군단장은 별이 두 개고, 후방사령관은 하나입니다. 5군단 후방사령부는 제가 복무했던 1지구 사령부 본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원산 관풍동에 있습니다.”

[Q] 처음 식량 배분 나갔을 때는 언제입니까.

[A]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납니다. 1998년 말로 영감을 처음 모실 때였어요. 유엔에서 강냉이가 2만t이 도착해서 분배를 했습니다. 원산항에 나가면 제가 제일 신경을 쓰는 건 ‘어떡하면 식량 포대를 몇개라도 차에 더 실어서, 영감집에 갖다 주고, 몰래 팔아서 돈을 만들까’였습니다. 영감이 한 달에 세 번 정도 회의차 평양을 왕복했는데, 연유(휘발유)를 사는 것, 출장비를 마련하는 게 다 제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휘부 차량 운전사니까 시도 때도 없이 항구를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Q] 강냉이 2만t을 다 분배하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A] “사료용으로 보이는 강냉이가 ‘바라’천으로 만든 큰 포대)로 들어왔는데, 차를 새지 않게 막아서 강냉이를 싣고 나갔습니다. 하루에 2000t 정도씩 뽑습니다. 1만t 정도면 3~4일에 다 빠집니다. 원산항 수심이 얕아서 1만t 이상의 배는 못 들어옵니다. 2만t짜리 배는 먼 바다에 대고 부선이 가서 싣고옵니다. 흥남 7군단으로도 일부 보냅니다.”

▶ 10만t은 50만 병력의 1년분 군량미

[Q] 양곡 2만t이면 어느 정도 병력을 먹여 살릴 수가 있나요.

[A] “북한에 있을 때 ‘한 해에 25만t이면 군단 다섯 개를 포함해서 강원도 전역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군인 한 명에 하루에 500g 정도가 배급됩니다. 일년에 180kg이 필요합니다. 2만t이면 1개 군단 10만 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양입니다.”

[Q]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배급 정량이 하루 500g입니까.

[A] “정량은 700g입니다. 강냉이가 7에, 입쌀이 3입니다. 이걸로 밥을 해놓으면 끼니마다 큰 밥사발로 가득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위에서 중간에서 빼내다 보면 병사들에게 가는 건 500g 정도밖에 안 됩니다.”

[Q] 벌크로 들어오는 강냉이를 트럭에 실어내기가 어려웠을 텐데.

[A] “큰 배 위에서 기중기로 ‘바라’를 내려놓으면, 접수 들어오는 차량마다 바가지로 큰 포대에 퍼 담고 기중기로 실어 주거든요. 사령부에 2000t이 배정될 때도 있었습니다.”

[Q] 유엔의 강냉이 지원 다음에는 어떤 식량들이 지원됐습니까.

[A] “2002년 1월 제대할 때까지 1년에 네댓번 원산항에 나갔습니다. 식량이 들어오면 지휘부에서 서로 못 나가서 안달이죠. 두 번째 분배한 것은 입쌀이었는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그 다음에 ‘USA’라고 찍힌 포대가 들어왔고, 대한민국에서 온 선물도 접수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쌀은 2000t인가, 4000t인가 양이 적었어요.”

[Q] 한국 쌀이 들어온 건 언제였습니까.

[A] “1999년도에 들어왔습니다. 포대가 흰색이었어요. 미국에서는 어두운 색 포대에 가운데 녹색을 치고 ‘USA’를 찍어서 들어옵니다.”

[Q] 한국 쌀은 북한 사람들 입맛에 맞아서 인기가 있었을 텐데, 어디로 배분됐습니까? 한국 쌀 배분도 인민무력부에서 지시했습니까.

[A] “그거야 당연하죠. 그전과 같은 방법으로 배분됐습니다. 한국 쌀은 고급이니까, 큰 사람들 입에 다 들어가죠. 장마당에 내다 팔면 수지가 맞죠.”

[Q] 한국 쌀 가운데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것은 없습니까.

[A] “식량은 군대가 다 장악합니다. 지원된 쌀을 주민들이 먹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당장 군대가 먹을 게 없는데 주민에게 주겠습니까. 군에서 장마당에 내다 파는 쌀이 돌고 있을 뿐입니다.”

[Q] 미국에서는 어떤 양곡이 지원됐습니까.

[A] “안락미(동남아에서 생산되는 길쭉한 모양의 쌀, 안남미)도 들어오고, 밀도 들어왔습니다. 밀은 정제해서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전기가 부족하니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Q] 국제사회의 지원 식량이 민간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軍에서 돈을 벌기 위해 유출시키는 경우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A] “쌀을 빼돌리다가 모가지 짤린 군인들이 많아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오면서 군의 후방 일꾼이 인기입니다. 전에는 군관으로 가서 별 달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전부 후방 일꾼을 하겠다고 합니다. 쌀값이 올라서 후방 일꾼들이 덕을 엄청 봤습니다. 후방 일꾼들은 쌀값 오르라고 빌고 있어요.”

▶ 사회 차량으로 위장

[Q] 1995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15만t의 쌀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압니까.

[A] “그 쌀도 군인들이 다 먹었습니다. 북한은 선군정치입니다. 남한 분들은 ‘설마 군인들이 다 먹겠느냐’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군대가 다 먹는 데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주민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Q]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하나같이 ‘구호 식량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얘기해 의아했는데, 사실이군요.

[A] “간혹가다 명절날 깡통에 든 콩이라도 하나 배급되면 그걸 희귀하게 여겨서 집에다 소중하게 보관을 합니다. 깡통이나 병이 하나 굴러다니면 그걸 집 장식대 위에 올려 놓아요. 버리는 것이 아니고.”

[Q] 한국에서 온 쌀을 먹어 봤습니까.

[A] “많이 먹었죠. 한국 쌀은 하얗게 벗겨져서 와요. 지휘부 차 운전사니까 식권을 가지고 창고에 가서 제일 좋은 쌀을 탑니다. 영감 집에 갖다 놓고 출퇴근하면서 거기서 밥을 먹죠.”

[Q] 북한군이 국제사회에서 지원한 식량을 소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A] “1994년, 1995년 무렵에도 유엔이든 어디서 들어오든 식량은 일체 군대가 다 소비하죠. 군대가 먹을 것이 없는데 주민들한테 돌아갈 게 있나요. 북한은 선군정치입니다. 군인이 어디서 왔건 그 식량을 먼저 먹는 건 당연한 얘기예요.”

[Q] 구호 식량이 들어오면 1지구 사령부의 간부들이 분배과정에서 많이 빼돌립니까.

[A] “수완이 좋으면 빼내는 것이고, 수완이 없으면 주는 대로 먹고 사는 것이죠. 영감들이 똑똑하고 발빠른 운전사를 두려고 서로 경쟁을 합니다. 점잔 빼고 가만있으면 누가 쌀 한 포대라도 갖다 주겠습니까.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고지식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당이 하라는 대로 기다리다가 앉아서 굶어 죽은 거죠.”

[Q] 미국과 한국에서 온 것이라는 포대의 표시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A] “그전에는 포대를 갈든가, 글자를 지웠는데 이제는 그런 거 지울 새도 없습니다. 그대로 공급하는데 포대 수를 세어서 회수합니다. 그걸 다 받아서 씁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볏짚 가마니가 많이 유통되는데, 비닐 포대는 쓸 데가 많거든요.”

[Q] 1998년 말이면 유엔이나 지원국에서 나와 민간에 전달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나요.

[A] “트럭들이 접수 올 때 군대 ‘남바’(넘버·번호판)를 다 떼고, 사회 남바를 달고 오거든요. 군인들은 모표 견장을 다 떼거나, 사복을 착용하고 나옵니다. 식량을 내리는 일은 항구 노동자들이 하지만, 항구에 내려 놓으면 전부 군인들 차지예요.”

▶ “UN 사람 오면 쇼한다”

[Q] 군용차량과 민간차량은 쉽게 식별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A] “비슷해요. 우리같이 북한 차를 잘 아는 사람은 군용차량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군에서는 북한산인 ‘승리 58’ 가형과 나형, 6t짜리 중국산 ‘동풍호’, 4t짜리 중국산 ‘해방호’, 러시아산 ‘신형 지루’, 닛산 엔진을 단 북한산 ‘신태백’ 5t짜리를 주로 씁니다. 민간에서는 ‘승리 58’ 가형을 주로 쓰고, ‘신형 지루’가 좀 있어요. 그리고 닛산 같은 일제 중고차, 러시아제 ‘까마즈’, ‘마즈’를 많이 씁니다』

[Q] 번호판을 사회 남바로 바꿔 단다고 했는데, 사회안전부(북한 경찰·2000년 4월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새로 가짜 남바를 만들어 지급하나요.

[A] “북한의 군용차량은 남바를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뿌려서 씁니다. 차 앞 범퍼에 번호를 새기고, 차 옆으로 하나 더 새깁니다. 바탕은 검은색이에요. 맨 앞 번호가 ‘5’면 운수차, ‘8’이면 간부들의 직무 차, ‘7’이면 기재 차. 그런 식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 위에 분필로 칠하고, 민간 남바를 새깁니다. 눈속임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저 항구에 오기 전에 쓱쓱하면 끝납니다.”

[Q] 민간 남바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민간 남바는 바탕이 흰색입니다. 강원, 함북, 평양, 개성 등 지역이 맨 앞에 나오죠.”

[Q] 유엔에서 구호물자가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도 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A] “유엔 사람들이 요구하면 데리고 가서 딱 보여 줘요. 분배된 양을 민간 창고의 서류에 가짜로 적어 놓고, 주민들 손에 포대를 들려 주는 걸 사진 찍어 갈 뿐입니다. 가고 나서 다시 (군부대로) 돌아가는데 사진을 백번 찍으면 뭐하나요?”

[Q] 그런 현장을 직접 본 적이 있나요.

[A] “1999년 6월 말쯤에 유엔에서 원산의 5호관리소(군중외화벌이사업소) 창고에 와서 사진을 찍었어요. 5호관리소 창고는 동명산 둔덕에 있습니다. 창고에 채워 놓을 양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창문 쪽에다 포대를 쌓고, 창고 입구에 두 겹으로 포대를 쌓았어요. 안은 텅 빈 거죠. 문 앞에 꽉 차고, 창문에 꽉 찬 걸 사진 찍어 갔어요. 5호관리소 창고에 양곡을 쌓아 놓고, 주민들에게 식량 공급하는 걸 봤습니다.”

(월간조선 취재팀)


http://independent.co.kr/bbs/dokrip/view.php?id=Ver2_bbs3&no=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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