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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會 論.좋은글이있어 올림니다..

주바라기 2003.05.09 09:00 조회 수 : 1504 추천: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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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은 계시론에서 출발해야한다.
계시란 무엇인가?

모순과 곤경에 처한 인간 실존에 내재되어 있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이 계시이다.
전체를 어렴풋하게 감지할 수 있지만 부분으로 머물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처한 모순이다.
인간은 자기를 넘어서 전체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초월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간에게는 모든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발생하며, 알 수 없는 미래와 자연 법칙의 제약을 받는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간이 처한 모순 때문에 인간 실존은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존재의 모순된 구조에서 나오는 질문을 잉태한다.

그러나 인간은 질문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스스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이 처한 2차적인 곤경이다.

해답은 초월한 하나님(인간 실존과 질적으로 다른 분)으로부터 온다. 인간이 처한 곤경에 대해 하나님의 체휼적인
참여로서 계시가 발생한다.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 존재론적인 상징을 만든다. 그 사건은 역사적 사건, 실존의 심상에 일어난 실존적 사건모두 포함한다.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은 영원한 것과 관련된 궁극적 진리로서 인간에게 다가온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상징이 인간 실존에게 실질적인 해답으로서 작용하려면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을 헌탁한 신앙인에게 성령의 조명을 거쳐 비로소 해답이 주어진다.
계시가 계시가 되려면 신앙의 헌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려고 시도한 존재 양식인 교만을 버리는 것이다.
전체를 감지할 수 있지만 결코 전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스스로 전체가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것은 권력의 교만(힘에 의존), 물질의 교만(소유에 의존), 지식의 교만(자신의 지식이 절대적이라 믿음),
덕성의 교만(다른 사람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함) 등을 총괄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계시를 보존하고 계시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방도를 만드셨다.
그것이 성경과 교회이다.
성경과 교회는 짝을 이루어서 계시를 보존하고 선포하는 일을 한다.
성경없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고 교회없는 성경을 생각할 수 없다.

성경은 계시적 사건을 경험한 인간이 성령의 조명 속에서 기록한 책이다.
계시는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이룬다.
계시적 사건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으며 진정한 계시는 성경을 통해 나타난 계시와 통일성을 이룬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예배는 실존적 물음과 계시적 해답이 만나는 공간이다.
예배는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의식이나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존재 속에서 일어난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할지니라"

신령은 성령의 조명이며 진정은 신앙의 헌탁을 말한다.

예배가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존재 속에 일어난다는 것은 교회의 정의를 역사적인 접근이 아닌 존재론적인 접근으로 해야함을 암시한다.

교회는 신앙의 헌탁과 성령과 성경이 있는 공간이다.
교회는 개별적인 실존을 넘어서 공동체적인 공간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

존재론적인 교회와 대립하여 역사적인 교회가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존재론적인 교회이다.
역사적인 교회는 존재론적인 교회로부터 파생된 비본래적 존재이다.
역사적인 교회는 존재론적인 교회의 형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에서 들어온 이교의 영향이 섞여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계시록2장 참조)

역사적인 교회가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외적인 교세 확장에 심취하여 계시를 왜곡한 것이다.
각 시대의 문화와 대중들의 요구를 따르다 보니, 외적인 확장은 성공적이었지만 계시가 가리워졌다